허정무호/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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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 터키
1986

김정남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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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첫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한 허정무호를 설명하는 문서다.

2. 엔트리[편집]


1 이운재 · 2 오범석 · 3 김형일 · 4 조용형 · 5 김남일 · 6 김보경 · 7 박지성

C
· 8 김정우
9 안정환 · 10 박주영 · 11 이승렬 · 12 이영표 · 13 김재성 · 14 이정수 · 15 김동진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정성룡 · 19 염기훈 · 20 이동국 · 21 김영광 · 22 차두리 · 23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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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허정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정해성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태하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현태




괄호 안은 당시 소속팀이다.

3. 경기 전적[편집]


아래 표는 경기 결과를 간략히 적어 놓은 것이다. 일시는 한국시간(UTC+09:00)으로 표기하였다.

일시
장소
라운드
상대국
점수
결과
6.12. (토) 20:30
넬슨 만델라 베이
조별리그 1
그리스
2:0 (1:0)

6.17. (목) 20:30
사커 시티
조별리그 2
아르헨티나
1:4 (1:2)

6.23. (수) 03:30
모세스 마비다
조별리그 3
나이지리아
2:2 (1:1)

6.26. (토) 23:00
넬슨 만델라 베이
16강전
우루과이
1:2 (0:1)


위 표에서 괄호 안은 전반전의 점수이며, 경기가 완전 무득점으로 종료된 경우는 편의상 전반 점수를 별도로 기록하지 않는다.

4. 경기 목록[편집]



4.1. B조 1경기: 대한민국 2 : 0 그리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허정무호/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그리스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B조 2경기: 대한민국 1 : 4 아르헨티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허정무호/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아르헨티나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3. B조 3경기: 대한민국 2 : 2 나이지리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허정무호/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나이지리아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4. 16강전: 대한민국 1 : 2 우루과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허정무호/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우루과이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기록[편집]


  • 주장 박지성은 대한민국 월드컵 개인 최다 득점(3골, 안정환과 동률)과 세 대회(2002, 2006, 2010) 연속 득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세 대회 연속 득점 기록은 아시아 최초이다.(그리스전)[1]

  • 허정무는 대한민국 감독 중 최초로 원정 1승을 달성했다.(그리스전) 그리고 최초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 그리스전 이정수의 선제골은 대한민국이 월드컵 무대에서 가장 최단 시간에 득점한 골이 되었다.(전반 7분)

  • 아르헨티나전에서 박주영이 기록한 자책골은 한국 월드컵 역사상 두번째 자책골이 되었다.[2]

  • 나이지리아전 박주영의 프리킥 골로 1990년 월드컵부터 6회 연속 본선에서 프리킥골을 성공시키게 되었다.[3]

  • 득점/도움 기록
선수
경기수
득점
도움
이정수
4
2
-
박지성
4
1
-
이청용
4
2
-
박주영
4
1
-
기성용
4
-
2

6. 병역특례 논란[편집]


16강 진출이 확정된 후 당시 허정무 전 감독이 특별한 대접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융통성을 발휘해 선수들의 병역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병역특례에 대한 소망을 밝혔고, 기다렸다는 듯이 대한축구협회장 조중연은 "정부에 정식으로 병역 특례를 건의해 보겠다"고 응답했다. 참고로 병역법 시행령은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에게만 '국위선양' 차원에서 병역 특례를 부여하도록 규정한다.

국민 여론은 논란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비판적인 분위기였는데, 축구 선수라고 해도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것이며, 각종 세계 선수권이나 WBC 등에서 우승을 해도 병역 특례를 받지 못하게 된 타 종목과의 형평성이 문제[4]가 된다는 것이 주 논리이다. 병무청 또한 국민 여론을 봐가며 결정할 문제이지만 일단은 현 시행령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네티즌들이 이를 고깝게 본 것은 허정무의 발언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전이 끝나고 바로 인터뷰에서, 그리고 조중연의 발언 역시 이에 맞추어 나이지리아전의 열기가 식기 전에 바로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즉슨 대회가 한창 진행중인데 설레발부터 친 것.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묵묵하게 16강을 치뤘으면 월드컵이 끝나고 어련히 여론이 조성될 건데 괜히 설레발쳐서 16강 갔다고 다 끝났냐?하는 비판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실장 정정길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4강까지 가면 병역특례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6강 우루과이전에서 패배해 병역특례 요구는 자연스럽게 없던 일이 되었다.

한편,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 정몽준월드컵 16강과 올림픽 동메달(3위)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며 병역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많은 네티즌들은 '그럼 올림픽 3위해서 병역특례 받지 왜 월드컵은 들먹이는가?'로 응수했다.

어쨌든 의미없는 얘기가 됐지만 만약 당시 병역특례가 주어졌다고 가정한다면 그 대상 인원은 정성룡, 오범석, 김형일, 조용형[5], 김보경, 김정우[6] 박주영, 이승렬, 김재성, 기성용, 염기훈, 강민수 등 12명이었다. 이 중 정성룡, 김보경, 박주영, 기성용 4명은 2년 후 올림픽으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참고로 비교 대상으로 2002 월드컵 당시 병역특례의 수혜자는 총 10명이었다.

7. 평가[편집]


사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보여준 모습은 기대와 불안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할 수 있다. 양박쌍용이 버티는 공격진은 4경기에서 6골을 기록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7] 대신 불안하다는 소리를 듣던 수비진이 그동안 8골을 허용했다.

아르헨티나전 4:1 떡실신의 아픔이 있긴 했으나[8][9] 첫번째 경기 그리스전에선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를 농락하는 모습을 보였고 16강 우루과이 전에선 석패하긴 했지만 중반 이후 우루과이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10]

결과적으로 제1의 목표인 원정 16강 달성에 성공했다. 수비적인 뻥축구가 아니라 공격적인 플레이로 세계 무대에 강한 인상을 남겼기에 2002년 이후 가장 성공한 월드컵 도전이라는 평을 받는다.[11]

하지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후 가장 성공적인 대진과 가장 강한 멤버 구성이라는 평가를 받았기에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 축구의 상징인 박지성과 이영표를 비롯해 당시 떠오르는 한국 축구의 미래 기성용과 이청용, 공격수로는 전성기 박주영이 든든히 버텨주었고 아시아 지역예선을 무패로 통과하며 기대를 모았기에 원정 16강이라는 성적이 대단한 것은 맞지만 아쉬움이 공존한다. 또한 우루과이와의 경기가 워낙 박빙에 석패여서 더욱 아쉬울 따름. 경기 후 외신들이 우루과이 감독에게 "경기력에서 밀리고도 수아레즈의 원더골로 이긴 것 아닌가"라고 질문하고 감독이 부분적으로 인정할 정도였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정성룡이 어이없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만약 이동국이 1대1 찬스를 어이없게 날리지 않았다면 등 수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월드컵을 마무리했다.[12]

허정무는 우루과이전에 대해 첫 실점에서 골키퍼가 이운재였다면, 후반전 막판 기회가 안정환이었다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든게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고 당시 선택하는 처지에서 굉장히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아쉬운 경기였지만 당시에는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이운재와 안정환 모두 노장인데다 폼이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 한경기 한경기가 살얼음판인 월드컵 무대에서 도박수를 던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박지성, 이영표 등 2002 월드컵 대표 출신들이 현역 시절 마지막으로 출전한 월드컵으로 남게되었다. 이 탓인지라 2010년까지만 해도 빨간 티를 입는 사람이 많았다.
[1] 연속은 아니지만 세 대회에서 골을 넣은 선수는 사우디에 알 자베르가 최초이다. 1994년, 1998년, 2006년 각각 1골씩 기록하여 안정환, 박지성과 함께 3골로 동률이다.[2] 1986년 멕시코 대회 조별리그 이탈리아와 3차전(2:3 패) 때 조광래에 이어 두 번째이다.[3] 1990년 황보관, 1994년 홍명보, 1998년 하석주, 2002년 이을용, 2006년 이천수, 2010년 박주영.[4]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야구 대표팀의 2006 WBC 4강 진출로 인한 병역 특례를 준 것이 문제가 되어 다른 종목 선수들과 코치들의 정당한 이의제기 때문이었다.[5] 대회 당시 병무청과 소송이 진행중이었고 나중에 승소하여 5급 판정을 받아 면제 받았다.[6] 대회 당시 광주 상무 복무중이었기에 병역 특례를 받았을시 바로 조기 전역이 가능했다.[7] 월드컵 본선 최다 득점을 기록한 때는 2002 한일 월드컵(8골)으로 이번 대회는 이 다음으로 다득점을 기록한 셈. 참고로 월드컵 본선 전 경기 득점은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와 이 대회가 유이하다. 4강에 진출한 2002 월드컵 때도 스페인과의 8강전, 독일과의 4강전은 무득점이다. 어쨌든 득점 기록으로만 보면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대회가 남아공 월드컵이라고 할 수 있겠다.[8] 이때의 아르헨티나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약한 편에 속하는 팀이었다. 그래서 정신을 가다듬고 시합했으면 해 볼만한 경기를 이끌어 나갈 수도 있었는데 문제는 메시의 명성 때문에 쫄아 제 실력을 못 낸 것이다. 경기 내용을 보면 메시에게 극단적인 집착을 보인 것을 알 수 있다.[9] 다만 대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선수단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전에서 기록한 이청용의 만회골이 아르헨티나의 조별리그 유일한 실점인데다 허정무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전은 최선이 비기는 것이고 16강의 승부처는 그리스전과 나이지리아전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고. 아르헨티나가 3승을 쓸어담으면 나머지 팀과 2위를 놓고 경쟁하는 시나리오를 그린 것. 그리고 현실적으로 이게 맞았다.[10] 실제로 후반전의 공격 대부분이 우루과이 진영에서 이뤄졌다. 수아레스의 역전골 이전까지 우루과이는 대한민국 대표팀 페널티 에어리어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을 정도. 참고로 우루과이는 조별리그 무실점으로 올라왔다. 우루과이의 골문을 연 게 대한민국이 처음인 셈.[11] 2002년 4강 신화는 물론 2006년과 2010년에 각각 강호 프랑스와 우루과이를 상대로 팽팽한 접전을 보였기에,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대한민국은 얕볼 수 없는 팀'이라는 인식을 각인시켰다. 이 때문에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호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한 알제리한테 4:2로 박살난 것을 본 해외 축구팬들은 한국이 왜 이렇게 약해졌냐며 놀랐을 정도였다.[12] 이동국의 당시 물회오리슛은 본인과 그의 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통한의 장면으로 기억된다. 특히 이동국은 "내가 항상 머릿속으로 그려왔고, 기다려왔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마무리는 그렇지 못했다"고 씁쓸한 인터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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