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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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憲法裁判所
Constitutional Court of Korea

파일:헌법재판소 휘장.svg
설립일
1988년 9월 1일
전신
대한민국 헌법위원회
설립 근거
대한민국 헌법
헌법재판소장
이종석 / 제8대 (사법연수원 15기)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15 (재동)
재판관
9명[1]
헌법연구관
60명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1. 개요
2. 상징
3. 역사
3.1. 설립 경위
3.2. 설립 이후
3.3. 역대 재판부
4. 구성
5. 조직
6. 소속 위원회
7. 유관 단체
9. 평가
9.1. 위상
9.2. 성향
10. 논란
10.1. 차별에 관한 기준
11. 여담
12.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헌법 제111조
① 헌법재판소는 다음 사항을 관장한다.
1.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
2. 탄핵의 심판
3. 정당의 해산 심판
4. 국가기관 상호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5.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
②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③ 제2항의 재판관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
④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1] 재판관 중 1명은 헌법재판소장을 겸임한다.

파일:헌법재판소 휘장.svg 국민과 함께하는 정의의 파수꾼

파일:헌법재판소 청사 정면.jpg

전경
대한민국헌법재판을 전담하는 최고법원.

법원과 함께 대한민국 사법부를 이루는 양대 헌법기관이다. 1987년에 실시한 국민투표로 확정한 현행 헌법(제9차 개정헌법)에 의거해 신설했다. 권력분립 원칙에 입각해 대통령 임명, 국회 선출, 대법원장 지명[2]에 따른 9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구성되며, 그 중 한 명이 재판소를 대표하여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된다.

현재의 청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15 (재동)에 있다. 헌법재판소는 초창기에 을지로 청사[3]를 사용했으나, 새 청사를 완공하고 이전하여 1993년 6월 1일부터 사용하는 중이다.


2. 상징[편집]


헌법재판소 휘장
파일:헌법재판소 휘장.svg
Pantone 195C
Pantone 467C

145, 27, 43
#911B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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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180, 119
#E4B477

헌법재판소 상징문양
파일:헌법재판소 상징문양.svg
파란색
회색

10, 88, 165
#0A58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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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102, 102
#666666

헌법재판소 휘장헌법재판소 상징문양 공식 소개
2017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헌법재판소 휘장을 교체하였다.[4] 이후 예전 휘장이 달린 헌법재판소 의자와 재판석 뒷벽 휘장도 전부 교체했다.


3. 역사[편집]



3.1. 설립 경위[편집]


1948년에 제정된 제헌헌법 제81조에 따라 설립된 헌법위원회가 그 시초다. 당시 위원장은 부통령이 겸직하며 위원들은 대법관 5명과 국회의원 5명이 겸직한다. 위헌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했다. 위헌법률심판권만 가지고 있었고 탄핵은 국회 소속 탄핵재판소에서 담당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1987년6월 항쟁을 통한 국민개헌 요구에 대해 전두환제5공화국이 응답(6.29 선언)하여 개헌 과정에서 헌법재판을 전담할 헌법기관의 필요성을 제기해 신설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시절 1925년 임시의정원에서 지금의 헌법재판소격인 탄핵심판위원회를 설치해 이승만 임시대통령을 탄핵했고, 제2공화국 헌법에도 헌법재판소를 규정했으나 5.16 군사정변 때문에 구성하지는 못했고, 제4공화국, 제5공화국에서는 헌법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어 구성되었지만 단 한 번도 위헌법률심사를 한 적이 없었다.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위상이 생긴 때는 제6공화국으로, 이때부터 헌법재판소로 다시 바뀌었다.


3.2. 설립 이후[편집]


헌법재판소는 2004년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신 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한 헌법소원(위헌확인)을 거치며 사회적인 주목을 받는다. 헌법재판관 9명의 판단에 따라 대통령을 파면하거나 수도 이전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헌법재판관끼리 논쟁했는데, 재판관 김영일이 역사적 책임을 분명하게 새겨두기 위해서 소수의견 공개를 강하게 주장하다가 좌절한 것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이후 헌법재판소의 모든 결정문에 소수 의견도 반드시 명기하도록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했다.[5]

2006년에는 국회에서 헌법재판소장 임명 동의안을 상정하지 못했다. 당시 전효숙[6] 헌법재판관을 다시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기 위해 면직하고, 헌재소장으로 지명했는데 야당인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야당 측 주장의 요지는 헌법재판소장은 현직 헌법재판관 중에서 임명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헌법 111조 5항), 헌법재판관을 사퇴해 일반인 신분이 된 전효숙 후보자를 임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7] 결국 논란 끝에 전효숙 후보자가 자진해서 사퇴하며 끝을 맺었다. 이때에는 최선임이던 주선회 재판관이 소장 직무를 대행하고 8인 재판관 체제로 운영했는데, 9인의 재판관 중 7인의 재판관이 참여하면 심리·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률의 위헌 여부를 가르는 위헌법률심사, 헌법소원, 탄핵심판 등은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8인 체제로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2011년에도 같은 상황이 다시 나타나서, 간통죄사학법 등 902가지에 달하는 판단을 계속 유보했다. 그러다가 1년 2개월 만인 2012년 9월 20일에 드디어 헌법재판관 9명을 모두 임명했다.

2014년 12월에는 통합진보당 해산(결정문)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결국 통합진보당은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은 자격을 상실했다. 2015년 1월에는 형법간통죄 규정을 어겼다고 선고했다.

2016년 12월부터 4개월간 박근혜 탄핵 소추를 심리하고 판단하였고, 2017년 3월 10일에 재판관 8명 모두 인용 의견을 내면서 헌법재판소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파면하였다. 당시 재판부는 정원보다 1명 부족한 8인 재판부로 헌법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라는 기존 의견을 다시 확인했으며,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대통령의 중대한 법 위배행위'의 대표적 사례를 공인했다. 이로써 5기 재판부는 헌법재판으로 분류한 모든 재판을 다룬 진기록을 세웠다.


3.3. 역대 재판부[편집]


소장
재판관
조규광
김양균
최광률
한병채
변정수
김진우
이시윤
김문희
이성열
이재화
황도연
1988년 09월 15일 ~ 1994년 09월 14일

헌법재판소 창립 당시 헌법재판소법상 모든 재판관은 동등한 재판관이 아니었으며, 상임재판관 6명에 비상임재판관 3명을 두었다. 각 지명/선출 주체별로 2명의 상임재판관과 1명의 비상임재판관을 지명/선출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명단은 다음과 같다.

- 소장 조규광(상임재판관, 변호사)
- 김양균(상임재판관, 광주고검장)
- 최광률(비상임재판관, 변호사) (이상 노태우 대통령 직접 임명 3인),
- 한병채(상임재판관으로 여당 민주정의당에 의해 지명, 판사 및 4선의원)
- 변정수(상임재판관으로 야당 평화민주당에 의해 지명, 인권변호사)
- 김진우(비상임재판관으로 야당 통일민주당에 의해 지명, 변호사) (이상 국회선출 3인)
- 이시윤(상임재판관, 수원지방법원장 및 서울법대 교수)
- 김문희(상임재판관, 변호사)
- 이성열(비상임재판관, 대법원판사 및 12대 민정당 전국구의원) (이상 대법원장 지명 3인)

그러나 굳이 헌법에도 규정되지 않은 방식으로 재판관 사이에 차등을 둘 필요성이 명확하지 않았으므로, 1991년 11월 30일에 재판관 전원이 상임하도록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했다. 그 후 1991년 8월 26일 이성렬 헌법재판관은 황도연(사법연수원장, 판사)을 후임으로 지명하고 정년퇴임했다. 1993년 12월 30일 이시윤 헌법재판관은 감사원장이 되어 사임하였으며, 이재화(법원장)을 후임으로 지명했다.

국회선출 재판관 몫 3명을 여당 민주정의당 1명, 제1야당 평화민주당 1명, 제2야당 통일민주당이 1명씩 나누어 지명했다는 특색이 있다. 3기 재판부부터는 여당 및 제1야당이 각 1명씩을 지명하고 나머지 1명을 여야합의 몫으로 선출하는 관행이 오랫 동안 유지되어 왔으므로 군소야당들이 재판관 선출에 관여하기 어려웠는데, 6~7기 재판부에 들어 제2야당(제3당)으로서는 상당한 규모를 갖춘 바른미래당이 등장하자 여야합의 몫을 없애고 제3당이 재판관을 단독으로 추천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때의 관례가 전례로서 작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장
재판관
김용준
김진우
정경식
김문희
조승형
신창언
고중석
황도연
이재화
이영모
하경철
한대현
김영일
1994년 09월 15일 ~ 2000년 09월 14일

2기 재판부에서는 국회선출 몫 3명 중 여당이 2명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는데, 이에 대해 거센 정치적 반발이 있었다. 이에 그 다음부터는 여당 1, 야당 1, 여야합의 1의 비율로 선출하는 관례를 유지하게 된다. 당시 명단은 다음과 같다.

- 소장 김용준(김영삼 대통령 지명, 대법관)
- 김진우(김영삼 대통령 지명, 1기에서는 국회선출(통일민주당), 2기에는 대통령지명으로 연임후 정년퇴임) → 이영모
- 정경식(김영삼 대통령 지명, 대구고검장, 초원복국집 사건 연루자)
- 김문희(국회선출(민주자유당), 1기에는 대법원장지명, 2기에는 여당의 지명으로 연임, 유일하게 12년 재임)
- 조승형(국회선출(민주당), 인권변호사, 13대 평민당 전국구의원) → 하경철
- 신창언(국회선출(민주자유당), 부산지검장)
- 고중석(윤관 대법원장 지명, 광주고등법원장)
- 황도연(김덕주 대법원장 지명, 사법연수원장) → 한대현(윤관 대법원장지명)
- 이재화(윤관 대법원장 지명, 지방법원장) → 김영일(최종영 대법원장지명)

1997년 1월 22일 정년퇴임한 김진우 재판관의 후임으로 이영모 당시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 지명되었고, 1997년 8월 26일 임기만료로 퇴임한 황도연 재판관의 후임으로 한대현 당시 서울고등법원장이 지명되었다. 1999년 9월 25일에는 정년퇴임한 민주당계 지명 몫 조승형 재판관의 후임으로 하경철 변호사를 새정치국민회의가 지명하였고, 1999년 12월 30일 임기만료로 퇴임한 이재화의 후임으로 김영일 판사가 지명되었다.

소장
재판관
윤영철
이영모
송인준
권성
하경철
김효종
김영일
김경일
한대현
주선회
이상경
전효숙
조대현
이공현
(주선회 소장 대행)
2000년 09월 15일 ~ 2007년 01월 21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당시 기각 판결을 내린 것으로 유명한 재판부다.

- 소장 윤영철(김대중 대통령 지명, 대법관)
- 이영모(김영삼 대통령 지명,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 주선회(김대중 대통령 지명, 대검 공안부장, 법무연수원장)
- 송인준(김대중 대통령 지명, 대구고검장)
- 권성(국회선출(한나라당), 서울행정법원장)
- 하경철(국회선출(새정치국민회의), 변호사) → 이상경(새천년민주당 지명, 특허법원장) → 조대현(열린우리당 지명)
- 김효종(국회선출(여야합의), 서울지방법원장)
- 김영일(최종영 대법원장 지명) → 이공현(이용훈 대법원장 지명)
- 김경일(최종영 대법원장 지명, 수원지방법원장)
- 한대현(윤관 대법원장 지명) → 전효숙(최종영 대법원장 지명)

2001년 3월 23일 정년퇴임한 이영모 재판관의 후임으로 주선회 당시 법무연수원장이 지명되었으며, 2003년 8월 26일 임기만료로 퇴임한 한대현 재판관의 후임으로 전효숙 판사가 지명되었다. 한편 2004년 1월 28일 정년퇴임한 하경철 재판관의 후임으로 이상경 당시 특허법원장이 지명되었으며, 2005년 3월 14일에는 정년퇴임한 김영일 재판관의 후임으로 이공현 판사가 지명되었다. 2005년 6월 6일에는 탈세의혹으로 자진사퇴한 이상경 재판관의 후임으로 조대현 판사가 지명되었으며, 국회 임명동의 절차의 지연으로 7월 11일에 취임하였다.

소장
재판관
이강국
송두환
김희옥
김종대
이공현
민형기
목영준
조대현
이동흡
박한철
이정미
김창종
이진성
강일원
김이수
안창호
(송두환 소장 대행)
(이정미 소장 대행)
(공석)
2007년 01월 ~ 2013년 04월

2006년 8월 16일 전효숙 헌법재판관이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헌재소장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국회에서의 인사청문회와 임명동의 절차를 밟던 중 한나라당의 반대로 11월 27일 본인이 지명철회를 요청하게 된다. 이에 2006년 12월 21일 이강국이 4기 소장 후보로 지명, 국회 임명동의 절차를 거쳐 2007년 1월 12일 취임하였다. 헌법재판연구원이 최초로 설립되는 등 헌법재판소의 전반적인 조직체계가 강화된 시기로 알려져 있다.

- 소장 이강국(노무현 대통령 지명, 대법관, 전효숙 사태로 2007년 1월 12일에 취임)
- 주선회 → 송두환(노무현 대통령 지명, 변호사, 대북송금 특별검사)
- 김희옥(노무현 대통령 지명, 법무부 차관) → 박한철(이명박 대통령 지명, 서울동부지검장)
- 이동흡(국회선출(한나라당), 수원지방법원장)
- 조대현(국회선출(열린우리당), 판사) → 조용환 사태로 4기 재판소 구성 전까지 공석이 됨.
- 목영준(국회선출(여야합의), 법원행정처 차장)
- 이공현 → 이정미(이용훈 대법원장 지명, 전효숙 이후 2번째 여성 헌법재판관)
- 김종대(이용훈 대법원장 지명, 창원지방법원장, 향판 출신)
- 민형기(이용훈 대법원장 지명, 인천지방법원장)

2007년 3월 23일에는 임기만료로 퇴임한 주선회 재판관의 후임으로 송두환 변호사가 지명되었고, 2011년 1월에는 김희옥이 모교인 동국대 총장 공모에 지원하면서 임기 중 사퇴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후임으로 박한철 전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임명하였다. 2011년 3월 14일에는 이공현 재판관이 임기만료로 퇴임하자, 이용훈 대법원장은 후임자로 이정미 판사를 지명하였다. 2011년 7월 11일에 조대현 재판관이 임기만료로 퇴임하자, 그 후임으로 민주당이 지명한 조용환(인권변호사) 후보자는 한나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이에 4기 재판소를 구성하기 전까지 조대현 재판관의 후임은 공석이 되었다.

이강국 소장이 퇴임한 뒤 소장 후보자로는 이동흡 재판관이 지명되었는데, 2013년 1월에 국회에서는 자질과 도덕성 문제로 헌법재판소장 이동흡 후보자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아서 최선임이던 송두환 재판관이 소장 직무를 대행했다. 이 사태는 이동흡 후보자가 결국 41일 만에 사퇴하고 2013년 4월에서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취임하면서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다.

소장
재판관
박한철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이정미 소장 대행)
(김이수 소장 대행)
이선애
2013년 04월 ~ 2018년 9월

이 기수는 역대 헌법재판소 심판 종류 6가지를 모두 결정했던 역사적인 재판관 기수로 평가받는다. 원래는 헌법재판관을 역임한 이동흡이 헌법재판소장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여러가지 비리 혐의로 인해 결국 2월 13일에 자진 사퇴했다. 뒤이어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헌법재판소 사상 최초의 헌법재판관 출신 소장이며 또한 최초의 검사 출신 소장이다. 2013년 3월 23일 임기만료로 퇴임한 송두환의 후임으로 서기석조용호가 임명되었다.

2017년 3월 10일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를 인용함으로써 5기 헌법재판관들은 모든 헌법재판소 심판 사항[8]에 대해 심판한 최초의 재판관들이 되었다. 아울러 통합진보당 해산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한국의 극좌세력과 극우세력을 모두 제재한 진기록을 세웠다. 공교롭게도 두 심판 모두 8명의 재판관이 인용 의견을 냈었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건에서는 유일하게 김이수 심판관이 소수의견으로 기각 의견을 냈고 박근혜 탄핵 심판 건에서는 선고 시점에서 박한철 소장이 임기만료로 퇴임한 상태라 나머지 8명이 전원일치로 인용 의견을 냈다. 그 외에도 역시 역사에 남을 만한 중요 판례인 간통죄 위헌 결정을 내린 기수이기도 하다.

2017년 1월 31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만료됨[9]에 따라, 그 다음으로 선임인 이정미 재판관이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당분간 맡게 되었다.[10]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이므로 후임자가 지명되지 않아 8인 체제가 되었다. 이 때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이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후임자를 지명하도록 촉구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국무총리는 국민 직선으로 선출되지 않으므로 민주적 정당성이 떨어져 이 정도로 중요한 인사는 하지 못하는 게 관례이기 때문.

2017년 3월 13일에 임기가 만료되는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으로, 양승태 대법원장이선애 변호사를 2017년 3월 6일에 지명하였다. 2017년 3월 13일에 이정미 재판관이 임기 만료로 퇴임하여 7인 체제가 되었고, 그 다음 선임자 5명[11] 중 연장자인 김이수 재판관이 헌법재판소장의 권한을 대행하게 되었으며, 역시 재판관들의 투표로 김이수 재판관이 선출되었다. 그리고 이선애 지명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여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임명 절차를 모두 마치고 2017년 3월 29일에 취임함으로서 헌법재판소는 다시 8인 체제로 가게 되었다.

2017년 5월 19일에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에 김이수 재판관을 지명하였다. 국회의 임명 동의를 받아서 정식 임명된다면 헌재사상 최초로 재판관으로 지명한 기관과 재판소장으로 지명한 기관이 서로 다른 경우가 된다. 전임 박한철 소장은 재판관으로서의 임명권자(이명박)와 재판소장으로서의 임명권자(박근혜)가 다르기는 하지만, 둘 다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2017년 8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박한철 전 재판관 후임으로 이유정 변호사(이대 로스쿨 겸임교수)를 지명하였다. 이로써 박한철 재판관 퇴임 이후 약 7개월 만에 다시 9인 체제로 돌아오는 듯 싶었지만 이유정 후보자가 각종 논란 등으로 자진 사퇴하였다. 거기다 김이수 임명 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대행 체제는 더 길어지게 되었다.

2017년 10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유남석 광주고등법원장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하였다. 유남석 후보자가 임명절차 완료 후 헌법재판관으로 정식 취임할 경우, 헌법재판소는 9인 전원재판부 체제로 돌아간다.

2017년 10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장에 이진성 재판관을 지명하였다. 이진성 재판관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여 소장으로 정식 취임할 경우 잔여임기인 2018년 9월 19일까지 업무를 수행한다.

2017년 1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자결재로 유남석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였다. 이로써 헌법재판소는 약 10개월 만에 다시 9인 전원재판부 체제로 돌아왔다.

2017년 11월 24일, 국회에서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가결되며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유남석 헌법재판관과 함께 임명장을 수여받으며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패킷 감청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린 재판부이다. 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6헌마263 전원재판부 결정, 법률신문 기사 또한 전국교수노동조합을 합법화시킨 재판부이다. 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5헌가38 전원재판부 결정, 서울행정법원 2020. 8. 20. 선고 2015구합68857 판결 법률신문 기사 이밖에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재판부이기도 하다.헌법재판소 2018. 6. 28. 선고 2011헌바379, 383, 2012헌바15, 32, 86, 129, 181, 182, 193, 227, 228, 250, 271, 281, 282, 283, 287, 324, 2013헌바273, 2015헌바73, 2016헌바360, 2017헌바225(병합), 2012헌가17, 2013헌가5, 23, 27, 2014헌가8, 2015헌가5(병합) 전원재판부 결정


2018년 9월 20일, 유남석 소장 임명동의안이 가결되면서 출범했다. 하지만 이진성 전 소장을 포함해 헌법재판관 5명이 퇴임한 뒤 여야 갈등으로 헌재 심리에 필요한 재판관 수(7명)를 못 채운 헌재 공백 상태가 출범 이후 한 달 가량 이어졌다. 이러한 헌재 마비 사태는 10월 17일 이종석·이영진·김기영 헌법재판관 임명안이 가결되면서 해소됐다.

이은애 재판관이 취임하면서 복수 여성재판관이 있는 최초의 헌법재판소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처음으로 검사 출신이 없는 헌법재판소가 출범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이미선 재판관이 취임하면서는 사상 처음으로 여성 재판관 비율 30%를 달성했다.


4. 구성[편집]



4.1. 헌법재판소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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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조규광
제2대
김용준
제3대
윤영철
제4대
이강국
제5대
박한철
제6대
이진성
제7대
유남석
제8대
이종석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헌법재판소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헌법재판소 재판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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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재판관 겸 헌법재판소장
이종석
헌법재판소 재판관: 자유한국당 추천, 문재인 대통령 임명
헌법재판소장: 윤석열 대통령 임명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은애
김명수 대법원장 지명, 문재인 대통령 임명
이영진
바른미래당 추천, 문재인 대통령 임명
김기영
더불어민주당 추천, 문재인 대통령 임명
문형배
문재인 대통령 임명
이미선
문재인 대통령 임명
김형두
김명수 대법원장 지명, 윤석열 대통령 임명
정정미
김명수 대법원장 지명, 윤석열 대통령 임명
정형식
윤석열 대통령 임명
역대 헌법재판소 재판관 목록 보기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조직[편집]



5.1. 재판부[편집]



지정재판부는 지정재판부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규칙에 따라 편성된다.[12]


5.2. 헌법재판소사무처[편집]


  • 사무처장 - 국무위원급(장관급)
    • 사무차장 - 차관급
      • 공보관
        • 홍보담당관
      • 도서심의관
    • 기획조정실 - 실장은 1급 상당
      • 기획재정국
      • 국제협력국
    • 심판지원실 - 실장은 1급 상당
    • 행정관리국
    • 도서심의관

헌법재판소사무처는 일반직 공무원의 '전입'만을 받고 공채방식의 신규모집은 없다. 단 경력채용은 존재.[13]


5.3. 헌법재판연구원[편집]


  • 헌법재판연구원장 - 1급 상당
    • 연구교수부
    • 기획행정과

헌법, 헌법재판에 관한 연구 및 법학전문대학원생들의 헌법실무연수 등을 주관하는 기관이다.


6. 소속 위원회[편집]


  • 헌법재판소 자문위원회
  • 헌법연구관 인사위원회
  • 헌법재판소 도서 및 판례 심의위원회
  • 헌법재판소 정보화심의위원회
  • 헌법재판소 공직자윤리위원회
  • 헌법재판소사무처 행정심판위원회


7. 유관 단체[편집]


  • (사) 아시아 헌법재판소 연합 연구사무국 운영법인
서울 종로구에 있다. 2017년 1월 사단법인 아시아 헌법재판소 연합 연구사무국 운영법인이 출범했으며 2017년 5월 업무를 개시했다. 영문 명칭은 AACC(Association of Asian Constitutional Courts and Equivalent Institutions)를 사용한다. 아프가니스탄 헌법이행감독 독립위원회, 아제르바이잔 헌법재판소,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 카자흐스탄 헌법위원회,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키르기즈스탄 대법원 헌법재판부, 말레이시아 연방법원, 몽골 헌법재판소, 미얀마 헌법재판소, 파키스탄 헌법재판소, 필리핀 대법원, 러시아 헌법재판소, 타지키스탄 헌법재판소, 태국 헌법재판소, 터키 헌법재판소, 우즈베키스탄 헌법재판소 등 16개 회원기관이 있다. 참고로, 아시아 헌법재판소 연합 총회 사무국(현 의장기관)은 말레이시아 연방법원이 맡고 있으며, 상설 사무국으로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행정사무국),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연구사무국), 터키 헌법재판소(연수 및 인적자원 개발센터) 등으로 나뉘어 있다.


8. 헌법재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헌법재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헌법재판
대한민국의 헌법재판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권리구제형
위헌심사형
외국의 헌법재판
선거재판, 연방-주 분쟁 해결, 대통령 궐위여부 심판, 헌법개정심판 등



8.1. 헌법재판소 결정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헌법재판소/주요 헌재결정례 요약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한편 헌법재판소의 판결문(헌재결정)은 대법원판례에 비해 상당히 쉬운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사법기관의 판결문이니만큼 절대적으로 쉽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만연체와 일본어식 표현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법원 판례보다는 훨씬 쉽다. 문장 자체도 단문(單文)이 많고, 사용하는 용어도 최대한 일상용어에 가깝게 쓴다. 이는 헌법을 국민들에게 알기쉽게 풀어내려는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태도이기도 하고, 또한 대법원과의 차별화를 두는 것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가 이미 한 번 결정을 내린 사안에 대하여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내용의 심판을 청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 역시 이미 심판을 거친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는 다시 심판할 수 없다(헌법재판소법 제39조).[14] 헌법재판소가 이미 행한 결정에 대해서는 자기기속력 때문에 이를 취소 ·변경할 수 없으며 이는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불가피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불복신청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다만, 헌법소원심판청구가 청구요건을 흠결하여 부적법하다는 이유로 각하된 경우에는 각하결정에서 판시한 요건의 흠결을 보완할 수 있는 때에 한하여 그 요건의 흠결을 보완하여 다시 심판청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요건의 흠결을 보완하여 다시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할 경우에도 그 외 청구요건들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9. 평가[편집]



9.1. 위상[편집]


제헌헌법부터 헌법재판을 규정한 것치고는, 국내 정치사가 다 그런 것처럼 굴곡이 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제1공화국제2공화국 시절 십여 차례 위헌법률 심사를 한 이후로 제3공화국 때, 딱 한 번 대법원에서 위헌법률심판이 이루어지고[15] , 제4공화국, 제5공화국을 거치면서 위헌법률심판 자체가 단 한 건도 열리지 못하다보니 군사정권 시절 헌법위원회의 위원은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고, 그 결과 현행 헌법이 시행되어 헌법재판소의 초대 헌법재판관들을 임명할 때에도 역시 거의 퇴물들만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생겨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위상에 차이를 만들고, 헌법재판소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될 뻔한 상황에 처한 적도 있었다.[16]

결국 9차 개헌 당시 헌법학계에서는 헌법재판소를 어떻게 하면 활성화할 것인가를 화두로 갖은 무리수를 다 동원했다. 그 결과 생겨난 것들이,

  • 법원에서 하는 위헌제청의 경우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권 박탈: 사실상 위헌 제청은 위헌사유를 첨부해야 하고, 위헌 사유가 아니라고 여길 경우는 기각이나 각하를 해버리기 때문에 실질적으론 판단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헌법 재판소에는 그냥 무시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대답은, '합리적 의심만 있으면 위헌제청을 해라.'

  • 대법원의 불송부결정권 배제: 하위 법원에서 헌법재판소로 위헌 제청을 할 경우 대법원을 거치는데, 이때 대법원이 헌법재판소로 보낼지 말지 결정하는 권한이 불송부결정권이다. 4공과 5공 시기에는 있었다. 현재는 헌법재판소법상 위헌제청 시 대법원을 거치도록 되어는 있으나 이는 다분히 행정적인 절차일 뿐, 대법원이 이를 거부할 권한은 없다.

  • 위헌심사형 헌법소원 신설: 소송 당사자가 위헌제청신청을 했지만 법원에서 기각이나 각하를 한 경우, 기본권을 구제하는 헌법소원의 틀만 빌려서 사실상 위헌 제청을 할 수 있게 한 법률로 한국에서만 실시하고 있다. 이 방법을 직접 통과하는 경우 외에도 법원에서 어지간한 문제는 속편하게 위헌여부를 심사해달라고 헌재에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헌법재판관들은 쏟아지는 소송서류 속에 파묻혀 살게 되었다. 2012년 한 해,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사건이 1,711건, 처리된 사건이 1,661건이다. 대법원에 한 해 접수되는 사건이 민사사건만 해도 10만 건이 넘어간 지 오래라고는 하나, 대법원은 실제 소송에 관여하는 대법관 수부터가 12명으로서 9명인 헌법재판관보다 더 많고, 법정의 요건이 충족된다는 전제하에서 대법원은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 부에서 사건을 처리할 수 있으며[17] 실질적으로 결정문을 작성하는 것은 주심 대법관 1명이다. 거기다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과 같은 법률들 덕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사건들은 결정이유를 제시하지 않고서도 기각해버릴 수 있으므로 사건처리에 대한 부담이 적다.[18]

더구나 대법원에서 검토되는 사건기록은 모두 제1심과 항소심을 거쳐 올라간 것들이라 소송기록 자체가 이미 완전히 정리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냥 읽고 판단만 하면 된다. 반면 헌법재판소의 사건은 크게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권한쟁의심판, 권리구제형 헌법소원,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으로 나뉘어지는데, 2016년 한 해 기준, 각각 20건, 1건, 9건, 1,379건, 542건이 접수되었다.출처

공권력위헌성을 따지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은, 행정법원에 의한 행정소송에서 처리할 수 없지만 그 성격상 행정소송에 해당하는 사건들을 처리하는 헌법재판이다. 달리 말하면, 헌법재판소가 사실심과 법률심의 기능을 모두 다 수행하게 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나라도 법치국가원리가 나름 정착이 된 상태여서, 옛날처럼 주먹구구식으로 또는 국민들 겁줘가면서 나랏일 처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에 의해서 피해를 보는 경우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전체 접수사건의 절반에 미달하며, 그 나머지는 모두 국민들의 법질서에 대한 몰이해 또는 단순한 감정적인 대응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처구니 없는 헌법소원청구가 상당히 많다. 그러므로 제대로 정제되지도 않고 중구난방인 주장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그렇게 확정된 사실관계를 토대로 헌법적, 법적 평가가 이루어진다. 통상의 민형사재판조차도 사실관계의 확정이 전체 부담의 7~80%를 먹고 들어간다는 사실과, 헌법재판은 헌법적, 법적 평가의 관점도 매우 중요한 절차라는 점을 감안하면, 헌법재판은 적어도 일반 재판의 2배 이상의 부담을 요하는 소송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헌법재판소는 전원재판부에서 재판하는 것이 예외 없는 원칙이기 때문에 (헌법소원으로서의 형식적 요건만 갖추면) 재판관 9명이 이런 사건에도 얄짤 없이 다 붙어서 심리하여야 한다.

한편 위헌심사형 헌법소원도 다를 것 없다. 일반 법원에서 소송 중인 당사자가 사건에 적용될 법률에 위헌의 의심이 있다고 생각하면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게 되는데, 재판부가 보기에 위헌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없다면 제청신청을 기각한다. 이 경우, 당사자가 신청기각에 불복하려면 당해 소송절차에서 항고할 수는 없고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으로 가게 되는데, 이게 또 골때린다. 애초에 담당 사건에 적용될 법률이 위헌이다 싶으면, 재판부가 알아서 직권으로, 그렇지 않더라도 당사자의 신청을 받아들여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부가 신청을 기각한다면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으로 들어온 사건이 인용결정이 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바꿔 말하자면 있긴 있다!![19]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게 되는 이유가 정말로 재판의 전제가 되는 법률에 위헌이라는 의심이 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형사재판의 경우에는 판결을 지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 또는 남용되는 경우가 많다. 재판부가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게 되면, 소송절차가 정지되고, 위헌법률심판은 대개 몇 년씩 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담당재판부가 제청신청을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제청신청을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에도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적어도 기일 1, 2회 정도의 기간은 충분히 잡아먹을 수 있다. 그런데 내심 판결의 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제청신청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설득력이 있는 주장을 담고 있다면 모르겠는데, 필연적인 관련은 없겠지만 노골적으로 절차를 지연시킬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제청신청의 경우, 최소한의 합리성을 결여한 주장일 공산이 크고, 담당재판부는 당연히 기각 또는 각하하는데, 이런 민폐 케이스가 헌법재판소로 가기도 한다. [20] 총리급 대우를 받는 1명, 장관급 대우를 받는 8명이 다 붙어서. 다만 위헌심사형 헌법소원의 경우 사건당사자가 법원의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의 기각 또는 각하에 불복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해도 당해 재판절차가 정지되지 않고 계속 진행된다. 이로 인해 재판이 3심까지 모두 끝난 뒤에 헌법재판소에서 해당 법률이 위헌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 당사자는 모두 재심을 청구하여 구제받을 수 있다.(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7항)

수많은 위헌심판이 이루어져서 이전까지 문제가 많았던 사안들에 대해서 위헌과 합헌 결정들이 사회에 큰 파장을 주었다. 그리고 문제의 노무현 정부 시기,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심판과 신행정수도 문제로 헌법재판소는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미지가 현재까지 와서, 큰 문제만 생기면 헌법재판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2010년대에도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2015년 간통죄 위헌심판,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헌법재판소가 큰 주목을 받았다.

다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입법자(국회)와 관계될 때에는 큰 효력이나 권위를 갖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기도 하다. 선거구 상실 사태에서 보듯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나 법효 시한과 같은 내용이 국회에서 지켜지지 않았고, 국민투표 역시 법 조항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음에도 여전히 입법부작위가 계속되고 있다. 사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강제력이나 권위는 입법자와의 관계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 간 권한 쟁의 등 다양한 결정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자신의 결정을 강제 집행할 기구를 충분히 갖추지 못해, 그 결정의 집행을 타 권력 기관의 힘을 빌어 해야 하는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위에서 언급된 선거구 상실 사태의 경우에 대해서도, 이 사태를 해결 해야 할 입법 구성원들 입장에선 선거구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직위가 자연 상실될 가능성은 0에 수렴하고, 헌법재판소가 그 결정을 강제할 수단을 갖고 있지 아니하므로 정략적인 선거구 개편에만 골몰했던 것이다.


9.2. 성향[편집]


헌법재판소를 포함하는 사법기관은 현존하는 법질서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는 기관이다 보니 당연히 일반적으로는 보수적인 성향이지만 그것이 특정 정파의 성향과 일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는 우파로 표현되기도 하는 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적 성향을 의미한다. 현실적이거나 정치적 판단도 자주 있고, 사건에 따라 일관성이 없다고 보일 정도로 결론이 달라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실제로 정치적 문제의 경우는 민감한 사안의 경우는 회피를 해버리는 경우나, 양쪽을 번갈아가며 편드는 경우가 있다. 법률적 해석의 순수성을 배제하더라도, 대통령 탄핵-신행정수도이전-행정복합신도시 문제에 있어서 여당야당의 손을 번갈아가면서 들어주는 결과가 되었다.

중등교육기관 등에서는 헌재가 순수히 법에 따라서만 결정하는 기관이라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건 이상뿐인 내용이고 실제로는 마땅히 해결이 안 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을 법적으로 합당한 것으로 만드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헌법재판소에 대해 법률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 정치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대표적으로 강용석 변호사는 썰전 95화에서 통진당 해산에 대해 다룰 때 '법률을 적용하는 법원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판단을 하는 고도의 정치적 결사체'라고 평했으며 전원책 변호사는 '헌재의 판결은 정치적 상황과 국민 여론을 고려한 정치순화적 판결'이라고 평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때 탄핵소추인단 측은 헌재가 '정치적 사법기구이며 정치적 판단도 해야한다' 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헌법재판소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헌법은 조문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매우 일반적이고 추상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법에 따라서만 결정한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헌법재판은 결국 기본권에 대한 재판(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심판)과 국가기관들에 대한 재판(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으로 나뉘는데, 어떤 법률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나 어떤 정당이나 대통령의 행동이 반헌법적인지 여부 같은 것을 판단하는 데에 정치적 판단이 없을 수가 없다. 헌법재판소의 정치성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굳이 허점을 잡자면 재판관들의 성향에 따라 결론이 많이 달라지는 것치고는 재판관 구성에 국민들의 의사가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 지적되는 편이다.

판결 성향 분석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나누어 판결성향을 분석해본 결과 정치분야에서는 국민들의 집회 및 시위의 자유, 통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선거운동의 자유 내지 정치적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보아 위헌결정을 내린 사법적극적 성향의 판결들이 다수 있었다.

경제 분야에서는 안마사 자격취득에 대한 의료법규정이 비시각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하여 합헌결정을 내린 것과 공용수용의 주체에 민간기업도 포함된다고 판시하여 공용수용에 따른 정당한 보상의 범위를 확대한 결정 등을 제외하면 사법진보적 성향의 판결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사회 분야에서는 근로기준법의 근로기준 중 주요사항을 외국인 산업연수생에 대하여만 적용되지 않도록 한 것에 대한 위헌결정처럼 사법진보적 판결도 있었으나, 사형제도에 대한 합헌결정이나 주거침입강제추행죄의 법정형을 강간죄의 법정형과 동일하게 정한 것이 형벌체계상의 균형을 잃었다고 볼 수 없다하여 합헌 결정을 내린 것 등 사법보수적인 판결들이 다수 있었다. 다만 개정된 형법에서 주거침입강제추행죄를 7년 이상의 징역으로 정한 조항에 대해서는 위헌 결정을 내렸다

문화 분야에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삭제요구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 볼 수 없다고 한 결정처럼 정신적 자유권과 관련된 영역에서 모든 현상들을 법과 규제의 틀 속에 가두려는 경향에 대해서 동조하는 모습을 성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10. 논란[편집]


음주운전에 관대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번 이상 음주운전을 했을 경우에 대한 가중처벌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고 이후 음주운전자의 음주측정 거부에 대한 가중처벌에 대해서도 위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윤창호법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음주측정 거부의 기간을 전혀 정함 없이 곧바로 가중처벌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취지였다.

미성년자 성범죄 전과자의 공무원 영구 임용제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다만 이는 1) 죄질이 경한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해서도[21] 2) 임용제한 기간을 평생으로 하고[22] 3) 미성년자와 업무상 관련이 있든 없든 어떤 종류의 공무원이든지[23] 임용을 제한하기 때문에 위헌판결이 난 것으로,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판단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쉽게 말해 공무원 임용에 관하여는 오사마 빈 라덴보다 미성년자 엉덩이 만진 사람을 더 중하게 제한하는 이상한 법률이었다. 애초 여성계가 무리하게 입법을 한 측면이 있었다.

국군에 대한 판결도 기존 질서 유지에 중심을 두는데, 2012년 최저 시급보다 월급을 못 받아도 정당하다고 판결했고 2006년, 2011년, 2014년, 2023년 4번이나 남성 징집만을 규정한 현행 병역법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10.1. 차별에 관한 기준[편집]


헌법재판소는 제대군인에게 가산점을 주는 군가산점제에 관하여 여성에 대한 차별은 헌법이 특별히 금지하는 차별이라는 입장[24] 하에, 만장일치로 군가산점제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했다. (98헌마363 참조)

반면 남성만 군복무를 하는 점에 관하여 남성에 대한 차별은 헌법이 특별히 금지하지는 않는 차별이라는 입장[25] 하에, 만장일치로 남성만의 병역 의무는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2011헌마825 참조)

즉, 헌법재판소의 입장에 따르면 여성차별은 특별히 금지되고 남성차별은 특별히 금지되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헌법재판소의 의견이 대한민국 내에서는 구속력을 가진다. 두 사건 모두 사회적으로 찬반이 갈리는 사안임에도 헌법재판관들은 만장일치로 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온도 차이가 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직계존속에 대한 고발금지 사건, 즉 직계비속[26]이 직계존속[27]을 고발하는 것은 금지되나, 반대로 직계존속이 직계비속을 고발하는 것은 허용하는 법률은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2008헌바56 참조)

10.2. 대법원과의 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법원-헌법재판소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여담[편집]


  • 헌법재판소 영내에 천연기념물 제8호인 재동 백송이 있다. 백송은 껍질이 자연히 떨어져 나가 하얀 심을 노출하는 중국 원산인 종으로 국내에서 매우 귀한 존재이며, 수령 약 600년의 제법 거대한 나무이다.[28] 헌법재판소 안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주제의 강연회 이름을 '백송 아카데미', 헌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든 봉사단체를 백송한마음 봉사단이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헌법재판소 근무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상징과도 같은 나무. 강연회에서 말한 바로는 겉에 있는 흉한 껍질이 떨어져 나가면서 순수한 하얀 빛 나무가 된 백송처럼 원래 취지에 맞지 않게 변질되어버린 법을 헌법의 취지에 맞는 올바른 형태로 되돌리자는 뜻에서 백송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 대법원에 비해 건물의 높이가 많이 낮다. 주변에 국가지정문화재들[29] 특히 경복궁창덕궁의 주변 건물 고도 제한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 헌법재판소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중앙에 까만 하트 모양의 특이한 조형물이 있고 그 주변에 8개의 사각형 장식이 바닥에 박혀 있는데, 이는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상징한다.


  • 헌법재판소장의 의전서열은 대통령-국회의장 다음인 3위이다.[30] 기존에는 국무총리가 4위였으나, 꾸준히 국회법 46조의3, 공항에서의 귀빈 예우에 관한 규칙 제4조, 월급[31] 등을 이유로 국무총리보다 앞에 세울 것을 요구했고, 2006년 신년인사회에 불참하는 등 보이콧을 한 끝에, 2006년 3월 31일자로 현재와 같은 의전서열이 확정되었다.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헌법재판소 청사와 청사 부지 경계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 장소에서는 옥외집회와 시위가 불가능하다.

  • 2017년 10월 13일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에서 김진태 의원은 다음 개헌 때 헌법재판소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 2017년 기준으로 30년 간 사용해왔던 의자가 바뀌었다. '권위주의적인 느낌을 주지 말자'는 재판관들의 의견이 반영됐다는 게 헌재의 설명이다. 교체된 의자는 1개당 100만 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헌재가 '탈권위'를 앞세우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고가의 의자를 들여놨다"는 지적도 있으나, 국가의 중대한 결정을 하는 상징적인 의자인데다 수십년을 쓰는 의자인데 이정도는 비싼것도 아니라는 반론도 있었다. 헌재 관계자는 "변론이 길어지면서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재판관이 많다"며 "딱딱한 나무 의자를 부드러운 가죽 의자로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30년간 사용해 왔던 의자들은 창고에 보관했다가 2년 뒤 들어설 홍보관으로 옮기기로 했다.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미국연방대법원 대법관이 방한했을 때 대법원과 함께 찾은 장소이기도 하다. 한국에 헌법재판소가 있는 게 부럽다고 말을 했다고. 현재 미국은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의 업무를 모두 담당한다.

  • 2021년 7월 14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32]이 헌법재판소를 광주광역시로 옮기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의원들은 서울 등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가 균형 발전 차원에서 많은 공공기관이 지역으로 이전했기에 헌법재판소도 이에 맞춰 이전해야 한다는 것. 또한 헌법상 정치적 중립이 강하게 요청되는 국가기관이기에 행정 권력의 중심에서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광주광역시로 옮기는 이유는 광주광역시에서 일제강점기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난 곳이며, 1980년 5.18 민주화운동6월 민주항쟁을 일으켜 87년 체제를 탄생케한 밑거름이고 이 87년 체제로 헌법재판소가 탄생했다는 점을 들었다. 따라서 광주광역시가 헌정질서를 수호하는 국가기관인 헌법재판소가 소재하기에 적절하며, 5·18 광주 정신 계승에도 부합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접근성과 편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국회의 개정안에 대하여 검토의견서를 제출하는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공식적으로 반대 내지 신중검토의견으로 국회에 회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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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18년부터 추천위원회를 운영하여 지명자를 결정하고 있다. 헌법재판관 추천위, 후보 첫 추천…김창보·김용헌 등 36명[3] 을지로 청사는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5가 40-3, 현재의 훈련원공원 자리에 있었다. 헌법재판소 청사로 쓰던 건물은 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등 부속 학교가 쓰던 건물이며, 1988년 12월 27일부터 1993년 5월 31일까지 사용했다. 헌법재판소가 이곳을 떠난 뒤 건물은 철거했다.[4] 헌법재판소 창립 30주년 발자취[5] 구 헌법재판소법 제36조 제3항은 "법률의 위헌심판, 권한쟁의심판 및 헌법소원심판에 관여한 재판관은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라고만 규정했으나, 이후 "심판에 관여한 재판관은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로 개정했다.[6] 대법원장이 임명했지만 행정수도 위헌재판 당시 유일하게 관습헌법에 의한 위헌 논리를 부정하여 친 성향이라고 알려졌다.[7] 그러나 헌법재판소장 임명은 헌법재판관 임명을 포함하는 규정은 아무데도 없으며, 헌법재판관 임명 절차와 헌법재판소장 임명 절차는 다르게 규정하고 나중에서야 소장 임명 절차로 재판관 임명 절차를 갈음하도록 규정했다. 역대 헌법재판소장 5명 중 4명이 비재판관 신분에서 곧장 헌법재판소장이 되었으므로 관행화된 사례에 효력을 잃은 법문을 억지로 적용했다고 비판할 수는 있어도 억지논리라고 규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독립하여 직무를 수행하도록 임기를 보장한 재판관의 임기 중 사퇴 후 다시 임명한다는 행위 자체가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을지언정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8]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9] 헌법재판관의 임기 중에 헌법재판소장이 되었으므로 남은 임기 동안만 헌법재판소장이 된다.[10] 헌재규칙에 의해 선임 재판관으로써 이정미 재판관이 대행하다가, 헌재 회의에 의해 역시 이정미 재판관이 선출되었다.[11] 서기석, 조용호 두 재판관을 뺀 나머지 다섯 명이 같은 날 임명되었다.[12] 헌법재판소 조직도 참고[13] 근무지가 서울에 정착되어있고, 헌재 특성상 전속재판부 등 재판관을 보좌하는 부서 이외에는 리버럴한 조직문화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근무하는 직원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편.[14] 물론, '동일 사건'의 재심판이 금지된다는 것이지 '동일 쟁점'의 재심판은 가능하다. 간통죄낙태죄 위헌여부에 대해 사건을 달리하여 수 차례의 심판이 있었던 사례가 대표적. 두 쟁점은 모두 여러 차례의 합헌 결정을 받고서도 이후 최종적으로 위헌결정을 받았다.[15] 대법원 1971.6.22. 70다1010 판결. 이에 분노한 박정희가 위헌판결에 찬성한 대법관 전원을 숙청하는 1차 사법 파동을 일으키고 위헌으로 선언된 문제의 국가배상법 조항을 다음 해 유신헌법 개정 시 헌법조항으로 삽입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문제의 이중배상금지규정.[16] 헌법재판소는 1960년 제2공화국 헌법에서 신설되었으나 이 역시 1961년 헌법재판소법이 제정된 직후 5·16쿠데타가 발발하여 국가재건비상조치법 부칙 제5항에 의거, 효력이 정지됨에 따라 실제로 헌법재판소가 구성되지 못하였고 1962년 제3공화국 헌법에서 사라진 후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에서 부활하였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실제로 구성된 것은 제6공화국 헌법이 최초이다.[17] 헌법재판소도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 라는 게 있긴 있다. 그러나 이 지정재판부에서는 청구인 적격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만 심사하고(쉽게 말해 각하의 여부만 심사하고) 적격 요건이 갖추어지면 무조건 9명이 다 달라붙는 전원재판부에서 사건을 처리한다.[18]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절반 이상을 처리한다. 그러나 그래도 대법관의 업무는 매우 막중하다. 오죽하면 대법관은 옷 입을 때, 옷 벗을 때 딱 두 번 웃는다고 할까. 자세한 것은 심리불속행, 법률심, 상고법원 문서 참조.[19]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직접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고 실제로 위헌 결정을 받은 사례 1, 사례 2.[20] 헌법재판소가 일반 법원들보다 친절한 것은 사실이다. 언론 취재 절차도 상당히 간소하고, 사진, 녹음, 취재도 웬만한 경우에는 거의 다 허가해 준다. 또 거의 대부분의 변론, 선고에 대한 동영상 서비스를 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꼭 취재진이 아니라 하더라도 결정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재판에 대한 녹화, 녹음 허가도 신청할 수 있다.[21] ex. 1회적인 경한 추행행위나 카메라촬영행위. 팔을 만지는 정도나, 다소의 노출 있는 복장을 몰래 촬영한 경우에도 성립할 수 있다. [22] 일반적으로 취업제한제도는 '10년' 등으로 기간이 정해져 있다. 미성년자를 죽인 경우보다 미성년자에게 성범죄를 한 경우에 제한기간이 더 길었다.[23] ex. 부사관, 건설 관련 공무원 등. 특히 군인의 경우 범죄경력에 따른 제한이 어느 정도 완화된다. [24] '심사의 척도' 항목 참고[25] '심사기준' 항목 참고[26] 자녀 등 손아랫사람[27] 부모 등 손윗사람[28] 원래 경복궁 서쪽의 통의동 백송(천연기념물 제4호)가 더 컸지만, 1990년대 초반에 통의동 백송이 고사하면서 현재는 재동 백송이 백송 중에서 가장 큰 나무이다.[29] 건물 바로 옆의 백송 포함.[30] 대법원장과 의전서열이 같다.[31] 헌재소장이 국무총리보다 돈을 더 받는다.[32] 민형배(더불어민주당/閔馨培), 김남국(더불어민주당/金南局), 김승원(더불어민주당/金勝源), 김용민(더불어민주당/金容民), 민병덕(더불어민주당/閔炳德), 박영순(더불어민주당/朴英淳), 송갑석(더불어민주당/宋甲錫), 유정주(더불어민주당/兪訂炷), 윤영덕(더불어민주당/尹永德), 이병훈(더불어민주당/李炳勳), 이수진(더불어민주당/李秀眞), 이용빈(더불어민주당/李龍彬), 장경태(더불어민주당/張耿態), 조오섭(더불어민주당/曺五燮), 최강욱(열린민주당/崔康旭), 홍정민(더불어민주당/洪貞敏), 황운하(더불어민주당/黃雲夏)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