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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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어 : Konservative Revolution
  • 영어 : Conservative Revolution

1. 개요
2. 배경
3. 대표 인물과 주장
4. 나치와의 관계
5. 같이보기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독일 제국에서 부흥한 반민주주의적, 반자본주의적, 반자유주의적, 반공주의적 그리고 급진적 보수주의·민족주의 운동을 말한다.[1]

자유주의에 대한 반대가 극심했으며, 보수혁명론자들은 자유주의를 외세의 이념이자 독일 사회에 세속주의, 자본주의, 부르주아 문화를 주입한 모든 서구적 질병의 원흉으로 비난했다. 독일 민족적 보수주의 운동의 한 조류이다.


2. 배경[편집]


보수혁명은 19세기 독일이 경험한 극적인 변화를 통해 발생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통일 이후 비스마르크는 약한 권한을 가진 의회와 권위주의적인 체제를 설립했고, 그의 정책은 독일에 도시화와 계급적대, 기독교 신앙의 쇠퇴, 산업 자본주의 문화를 불러 일으켰다. 따라서 독일인들은 그런 갈등의 원흉으로 의회와 정당들을 비난했고, 독일을 다시 단결시킬 막강한 권위를 가진 국민적 영웅이 나타나길 갈망했다.[2]

보수혁명론자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을 반겼는데, 이 전쟁이 그들이 증오하는 낡은 체제와 단절하고 독일과 대립하는 서구의 영향력을 격파할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3][4] 패전 후 설립된 자유주의적인 바이마르 공화국은 그들이 증오하는 모든 것을 집합한 것으로 표상되었다. 보수주의 운동의 윗세대들은 새로운 공화국을 수용하고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길 원했지만, 전쟁을 경험한 젊은 세대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증오했고, 혁명을 통해 독재국가로 변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일 관념론 철학과 낭만주의, 생기론의 영향을 받았다.

두번째 유형의 보수주의는 역사적 변화와 발전 법칙을 발견하고 이것이 인간 의지의 한계와 인간의 불완전성을 규정짓는다고 파악했다. 프랑스 혁명기를 지배한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자연권 이론에 대항하기 위해 독일의 낭만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주장된 두번째 유형의 보수주의는, 따라서 역사적이며 상대적이고 역동적인 인간관과 사회관을 특징으로 한다.

...

독일의 보수주의는 대립과 갈등을 인간 사회의 본질적 요소로 파악함으로써 모든 종류의 정태적인 상황은 타락과 쇠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을 낳았다. 이른바 "보수혁명론conservative revolutionary thought" 으로 불리는 이러한 입장은 인간 의지의 역동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반합리주의적 행동주의를 찬양하고 개인의 공동체에 대한 전적인 예속과 지도자에 대한 철저한 복종을 주장하는 전체주의적 민족주의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보수혁명론은 비록 1차 세계대전의 패배에 따른 치욕감에서 출발했지만, 전쟁의 경험을 통해 공동체의 중요성과 영웅적 전사의 이미지에서 도출된 새로운 도덕을 배경으로 하여 전후 독일이 처한 상황을 쇠퇴와 타락, 혼란의 징후로 파악했다. 묄러 판 덴 브루크Arthur Moeller van den Bruck, 윙거Ernst Jünger, 슈미트 등으로 대표되는 보수혁명론자들은 승전국들의 강요에 의해 독일의 토양에 이식된 외래적 현상으로 보았으며, 그것이 독일 민족이 필요로 하는 강력한 지도자의 출현을 가로막는다며 강력히 거부했다. 이들이 볼 때 직접적인 행동이 가장 절실한 시점에서 의회민주주의에 의한 정치는 단순히 법안을 작성하고 토의하는 문제에만 골몰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혁명론자들은 보수주의의 가장 절실한 과제는 혁명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혁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묄러 판 덴 브루크의 표현처럼 "만일 보수주의자들이 혁명적 주장과 혁명적 수단을 통해 보수주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정치적 지혜를 가지고 있다면" 보수주의와 혁명은 상호 대립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수혁명론자들 사이에서 보이는 민족주의와 행동주의, 반(反)의회주의 등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나치 이데올로기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김용우, 호모 파시스투스, 90~92p


3. 대표 인물과 주장[편집]


아르투어 묄러 판 덴 브루크(Arthur Moeller van den Bruck)는 세계는 낡은 나라와 젊은 나라로 구성 되어 있고, 젊은 것이 낡은 것을 넘어서는 것을 숙명적인 것으로 바라보아 지지했다. 따라서 늙은 영국과 프랑스가 젊고 어리숙한 미국을 이용하여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독일의 패배를 합리화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독일의 방향은 서구의 자본주의와 러시아의 공산주의를 넘어선 젊은 독일을 만드는 것이 독일의 미래였다.

아르투어 묄러 판 덴 브루크은 독일의 패전과 새로이 등장한 바이마르 공화국 아래서 소외와 불만을 가진 중간계급과 전직 장교를 사이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6월회(Juniklub)를 설립했는데 이것은 민족사회주의적이고 조합주의적인 성향을 가졌고, 특히 베르사유 조약의 체결 이후 보수주의 집단들 사이에서 강한 주목을 받았는데 그 중엔 오토 슈트라서아돌프 히틀러 또한 포함되었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은 Das Dritte Reich(제3제국)인데, 이 책에서 묄러는 보수혁명론자의 원한과 포부를 정리하여 독일을 민족사회주의라는 이념을 통해 모든 계급을 통합(계급협조론적이고, 조합주의적인)한 제3제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 또한 보수혁명 운동의 주요한 인물이다.[5]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영국에서 주입된 외세의 이념으로 반대했으며, 그의 저작 “서구의 몰락(Der Untergang des Abendlandes/The Decline of the West)”에서 역사결정론적인 시각에 따라 문명은 부흥과 쇠퇴를 거친다고 주장했다. 그의 서구의 쇠퇴는 독일의 패망을 거대한 역사적 과정으로 합리화 함으로써 독일인들을 위로했기 때문에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 슈펭글러의 또 다른 저작 프로이센주의와 사회주의(Preußentum und Sozialismus/Prussianism and Socialism)에서는 독일의 사회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바이마르 공화국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를 외세의 이념으로 반대했으며, 프로이센의 "군인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에 영향을 받은 전제군주제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프로이센 국가의 권위 아래, 조합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군국주의적인 사회주의를 제시했다.[6]

카를 하우스호퍼(Karl Haushofer)는 당대 지정학계의 주요 인물이였는데, 국가 간의 관계를 사회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 러시아 제국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을 장악한 나라는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7] 1차 세계 대전에서 복무한 이후 독일과 러시아의 동맹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중국과 일본과의 동맹 또한 주장하기 시작했다. 제3세계에 대한 식민화와 백인우월주의적 지배를 선호하는 나치와는 달리, 하우스호퍼는 영국과 프랑스 제국에 맞선 반식민 투쟁을 옹호했다. 그럼에도 그는 루돌프 헤스를 통해 나치에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고, 나치의 레벤스라움 정책은 하우스호퍼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카를 슈미트 역시 보수혁명과 연관된 인물이다. 그는 의회민주주의를 거부했고, 현대 사회에는 전체주의 국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8]

에른스트 윙거도 보수혁명 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그의 사상은 총력전 행태를 통한 영웅적인 노동자 병사의 양성과 이를 위한 노동자 국가의 건설이였다. 트로츠키주의와 상당히 유사하며 실제로도 윙거는 트로츠키를 좀 눈여겨봤다.


4. 나치와의 관계[편집]


보수혁명론자들은 나치에 대하여 이중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들은 나치의 많은 점들을 지지했고 나치의 부흥을 지지했다. 그럼에도 나치의 포퓰리스트적이고 계급협조론적인 시각과는 달리 보수혁명론자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주의자들이었고, 나치보다 확실히 반자본주의적 입장을 가졌다는 점에서 갈등이 존재했다. 그들은 미개한 대중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경멸했으며, 나치가 말하는 것과는 또다른 “새로운 독일”을 건설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치와는 달리 그들은 자신의 낭만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독일 사회주의(민족주의적이고 조합주의적인)”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소련과의 동맹을 지지했으며, “생물학적” 인종차별[9]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다. 이점 때문에 학자들은 보수혁명을 "독일 초기 파시즘"[10] 내지는 "비(非)나치 파시즘"으로 분류한다.[11][12]

그럼에도 보수혁명론자들의 카이사르주의(Caesarism)에 대한 찬양, 그리고 잔인함에 대한 미화는 나치가 등장하기 위한 정신적 이데올로기적 분위기를 초래했다.[13][14] 나치는 그들의 위험하고 애매한 사상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군중을 실제로 모았다. 이후 보수혁명론자들은 나치에 협조하거나 장검의 밤 당시 숙청되었으며, 카를 하우스호퍼를 비롯한 몇몇은 1944년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관여하기도 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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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즘은 독일 보수주의 전통과 구별되는 개념이므로 적지 않는다.
** 나치의 National socialism이 아니라 비스마르크State socialism이다. 다만 학계에서 일반적인 사회주의로 인정받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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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Politics of Cultural Despair: A Study in the Rise of the Germanic Ideology, P. 16[2] The Politics of Cultural Despair: A Study in the Rise of the Germanic Ideology, P. 28[3] The Politics of Cultural Despair: A Study in the Rise of the Germanic Ideology, p. 29[4] The Weimar Dilemma: Intellectuals in the Weimar Republic, p. 48[5] Who's Who in Nazi Germany, p. 239[6] Oswald Spengler: A Critical Estimate, p. 106[7] Who's Who in Nazi Germany, p. 101[8] The Anatomy of Fascism, p. 287[9] 나치가 유달리 극단적이어서 그렇지, 사실 보수혁명론자들도 인종주의자이긴 했다.[10] Dupeux, Louis (1992). La Révolution conservatrice allemande sous la République de Weimar[11] Bar-On, Tamir (7 December 2011), Backes, Uwe; Moreau, Patrick (eds.), "Intellectual Right - Wing Extremism – Alain de Benoist's Mazeway Resynthesis since 2000", The Extreme Right in Europe (1 ed.), Vandenhoeck & Ruprecht, p. 333, ISBN 9783525369227[12] Blamires, Cyprian (2006). World Fascism: A-K. ABC-CLIO. p. 304. ISBN 9781576079409.[13] The Beast Reawakens: Fascism's Resurgence from Hitler's Spymasters to Today's Neo-Nazi Groups and Right-Wing Extremists, p. 78[14] The Weimar Dilemma: Intellectuals in the Weimar Republic, p. 62[15] The Politics of Cultural Despair: A Study in the Rise of the Germanic Ideology, p. 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