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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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상세
4. NTR
5. 형사취수를 실천한 인물들
5.1. 실존/전설 인물
5.2. 가공의 인물



1. 개요[편집]


국사 시간에 잠 깨는 부분
兄死娶嫂. 이 사망했을 경우 남동생형수를 취하는 풍습. 현대에선 금지 혹은 암묵적으로 금지나 마찬가지지만, 과거에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현대와는 달리 사회적으로 용인, 혹은 요구되기도 했다.

쉽게 말해, 고대에 남성은 사냥이나 전쟁 등으로 일찍 죽는 경우가 많았고, 자녀와 함께 홀로 남는 여성을 사회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있었던 제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에 몇가지 요소들과 상황이 더해지게 된다.

형수를 아내로서 맞이하는 경우도 있고, 결혼 없이 형수와 성관계를 갖고 임신시켜서 형의 대를 잇게 하는 방법(쉽게 말해 씨내리)도 있다. 업그레이드 버전으로는 아버지가 죽은 후 생모를 제외한 아버지의 처첩들을 아들이 취하는 수계혼 풍습이 있다.

몽골족이나 만주족 등의 북방 유목민들은 이를 더 확대하여, 아버지가 사망하면, 상속을 받는 자식은 생모를 제외한 아버지의 모든 처첩을 자신의 처첩으로 승계하였다.

고대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레비라트' 라고 하였다. 구약성경 신명기 25장 5-10절에 형사취수제에 대한 설명이 있다.[1]

고구려 등 고대 한국 일부 왕조나 아시아 북방 유목민에게서 나타났고 서양에서도 흔한 풍습이었으나, 현재 한국에서는 금지되고 있다.


2. 역사[편집]


중국 정사 등의 북적 열전에 북방 민족들의 형사취수제가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만주 지방에서 일어난 부여고구려에서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으며, 동아시아에서는 만주 지역 북방 기마민족들의 경우 계속 행해졌다. 고구려 동명성왕소서노의 결혼도 형사취수의 일종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소서노의 전 남편도 부여의 왕족이라는 것이다.

청나라도 이러한 풍습이 있었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 출신 의순공주가 끌려가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죽은 뒤 형사취수로 다시 한 번 결혼했다. 결국 조선에 돌아간 뒤 "오랑캐에게 몸을 두 번 더럽혔다"고 괄시받게 된다. 성경을 보면 유대인 사이에서 이러한 제도가 최소한 예수가 활동했던 시대까지 존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여러 형제가 함께 살다가 그 중의 하나가 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에 그 남은 과부는 일가 아닌 남과 결혼하지 못한다. 시동생이 그를 아내로 맞아 같이 살아서 시동생으로서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난 첫아들은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그 사람이 형수를 아내로 맞지 않으려 할 경우에는 형수는 성문께로 장로들에게 올라가서 이렇게 호소해야 한다. '나의 시동생이 형의 이름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어가게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동생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성읍의 장로들이 그를 불러다가 타일러도 굽히지 않고 그를 아내로 맞고 싶지 않다고 하거든

형수가 장로들 면전에서 그에게 다가서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욕해 주어라. '제 형의 가문을 이어주지 않는 사람은 이 꼴이 되어라.'

그 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는 '신 벗긴 집안'이라는 별명으로 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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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5:5~10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정해 준 법에는 '형이 자녀가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자기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 칠 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니 부활 때에 그들이 다시 살아나면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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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코 복음서 12:18~23[2]


"오나니즘"의 어원이 되는 오난 역시 이 풍습과 관련되어 있다.[3] 동양의 경우 문화적으로 앞선 농경민족이 문화적으로 뒤쳐진 기마민족을 변태, 미개인이라고 까는 소재로 쏠쏠하게 써먹었으며(...) 결국 중화주의와 유교의 확산으로 유목민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점차 소멸되었다. 다만 한족이라고 해도 북방민족들과 가까이 살면서 그들과 피가 섞인 한족 주민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비족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거의 확실시되는 당나라 황실의 경우는 형사취수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당태종후궁이었던 측천무후가 감업사로 출가한 뒤에 환속해서 태종의 아들인 당고종의 황후가 되었다거나, 당현종의 후궁인 양귀비가 원래는 현종의 며느리였다거나 하는, 그러니까 아버지가 죽고 아들이 아버지의 첩을 부인으로 맞거나 혹은 그 반대 사례도 있었던 점을 보아 형사취수도 아예 없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대명률에서도 형사취수를 금지하는 법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명나라 초기까지 형사취수가 한족들 사이에서 꽤 널리 퍼져 있었음은 틀림없다. 굳이 금지한다고 쓰는 것은, 그런 일이 있으니까 금지하는 것일 테니.

참고로 현재 대한민국 민법상 자기 형제/자매의 배우자였던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 이혼을 했든 사별을 했든 마찬가지다. 불가능한 이유는 중혼이 되기 때문이 아니다. 이혼을 하거나 사별을 하면 혼인관계가 소멸되기 때문이다. 결혼할 수 없는 이유는 근친혼 등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제809조에 걸리기 때문이다. 제809조 2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6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6촌 이내의 혈족, 배우자의 4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인 인척이거나 이러한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여기서 형제/자매의 배우자는 6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인 인척이었던 자에 해당하여, 혼인이 불가능하다. 혼인 취소라면 가능한 건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극히 드물겠지만, 현행 일본 민법상으로는 형사취수가 가능하다. 일본 민법상 혼인이 금지되는 경우는, "직계혈족 또는 3촌 등 내의 방계혈족(§734)"[4], "직계인척 간(§735)"[5] 등인데, 형제/자매의 배우자는 방계인족[6]으로, 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혼인이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수많은 아이 있는 과부들이 생겨나자, 시동생들이 자신의 집안과 조카를 위해 기꺼이 형수와 결혼했다.[7] '역연혼'이니 '인연 고치기' 등으로 불렀는데, 당연히 시대가 낳은 어쩔 수 없는 현상들이었고 지금은 당연 볼 수 없는 현상.


3. 상세[편집]


이러한 제도는 가족의 중요한 노동력인 성인 여성을 배우자의 사망과 같은 사소한(?) 이유로 놓치지 않으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또 아들을 낳는 장자 상속 체제를 유지시키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체제이기도 하다. 또한 결혼으로 이어진 두 집단의 유대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행해진 경우도 있다. 부친의 처첩을 아들이 이어받는 수계혼의 경우에는 부친이 죽으면 처첩들이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그 생계를 아들이 뒤이어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행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은 출산 증감의 조절이다. 남자는 줄어도 여자가 그대로면 다음 세대 인구 수는 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용납이 안 되는데, 즉 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할 수는 없었다.

모 개그 만화에서는 이걸 이용한 개그를 선보인 적도 있다. 왕소군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인데, 모략에 휘말려서 후궁으로 들어가 냉궁에서 황제에게 한 번도 눈에 띄인 적이 없던 절세미녀였던 그녀가 흉노족 왕에게 자진해서 시집을 가자 기다리고 있던 왕이 미남이었고, 그 뒤를 따라오는 형제들도 하나같이 미남이었는데, '자신들의 풍습으로 말하길 형이 죽으면 형수는 동생이 받는다'라 하여 평생 미남들과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형사취수 제도가 있으면 한명의 부인을 형제들이 공유하는 구조이다 보니 일처다부제일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일부다처제와 엮이기도 하는데, 2명의 형제가 각각 결혼을 했는데, 형이 사망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 경우 동생이 형사취수를 하면 부인이 2명이 된다.

4. NTR[편집]


형이 살아있는데 형수를 취하는 경우는 형사취수라고 하지 않는다. NTR이라 부른다. 영국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나온다. 라이언 긱스 같은 경우는 동생이 살아있는데도 제수를 NTR... 이를 좀 비틀어서 씨내리를 소재로 형이 불임이라 동생이 대신 가족의 묵인하에 형수와 은밀히 성관계를 맺고 임신시킨다는 국내 성인 소설이 있다.


5. 형사취수를 실천한 인물들[편집]


역사적으로 권력자들 사이에서의 결혼은 99% 정략결혼이었으므로, 기껏 맺어 놓은 결혼 동맹이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 형사취수는 실제로 아주 흔한 일이었다. 형의 사망 후 형의 약혼녀와 결혼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 경우는 혼인 전이므로 형사취수로 보기는 힘들다. 사회 통념상 형사취수혼이 근친상간의 일종이 된 후에도 헨리 8세아라곤의 캐서린의 경우처럼 교황을 통해 허가를 받으면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8]


5.1. 실존/전설 인물[편집]


  • 산상왕 - 신대왕의 넷째 아들. 둘째 형인 고국천왕왕후 우씨를 아내로 맞이함.
  • 헨리 8세 - 첫 왕비인 스페인 공주 캐서린이 본래 형 아서 튜더의 아내.
  • 아이신기오로 도르곤[9]
  • 오난[10] -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유다의 둘째 아들로, 형인 엘이 죽자 형수인 다말과 결혼하였다. 그런데 오난도 죽어서 다말은 유다의 셋째 아들인 셀라와 결혼할 예정이었으나, 여차저차하여 이 2단 콤보(...)는 실현되지 않았다. 오난은 형사취수제에 따라 형수인 다말을 아내로 맞았으나, 체면상 형수와 동침은 하지만 자식은 안 낳아주려고 체외사정을 한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 풍습상 형사취수로 형수가 낳는 첫 아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자기 아들이지만 제도상으로는 형의 아들이 되어 결과적으로 자신의 유산 지분이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쾌락만 얻고 의무는 거부한 것. 이 일로 인해 오난은 하느님에게 벌을 받아 죽는데, 엘과 오난이 모두 자식 없이 죽었기 때문에 다말은 막내인 셀라와 결혼해야 했지만 유다는 엘과 오난이 죽은 게 다말 때문이 아닌데 그건 생각 안 하고 셀라도 죽을까 봐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보낸다.
  • 데이포보스 - 형 파리스필록테테스의 화살(헤라클레스가 가졌었던, 히드라 독이 묻은 화살.)에 죽자 형수인 헬레네를 아내로 맞으나 얼마 안가서 트로이가 멸망한다. 그리고 헬레네의 원래 남편이었던 메넬라오스칼빵을 맞고 죽는다.
  • 헬레노스[11]


5.2. 가공의 인물[편집]


☆ : 형사취수의 대상이 된 여성

  • 파르페 -쇼콜라 세컨드 브류-스기사와 에마
  • 햄릿의 거트루드☆
  • 신부 이야기탈라스☆, 탈라스의 시어머니
  • 야연의 황후 완씨☆
  • 약탈 신부의 아다르☆
  • 식인종 영화인 움베르토 렌지 감독의 작품 'Eaten Alive(한국명' 홀로코스트 2)'의 어느 원주민 여자☆.[12]
  • 팔남이라니, 그건 아니지!의 아말리에☆[13]
  • 후궁: 제왕의 첩의 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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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명기 25장 5절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2] 그리고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다음에는 장가드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마르코 복음서 12:25)[3] 오나니즘은 자위행위라는 뜻이지만 오난의 행동은 피임이며, 좀 더 복잡한(?) 뒷사정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내용 참조.[4] 즉 자신의 부모 등(직계혈족) 또는 형제/자매 또는 형제/자매의 자식 등(3촌 등 내의 방계혈족).[5] 즉 배우자의 직계혈족 등.[6] 배우자의 방계혈족과 방계혈족의 배우자.[7] 문제는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던 원래 남편이 귀가하면서 집안이 콩가루가 되는 일도 발생했다는 것이다. 일본 해군 출신 와타나베 기요시의 <산산조각난 신>이라는 수기를 보면, 형의 전사 소식을 들은 이후 가족들에 의해 동생이 마지못해 형수와 결혼하는 일화가 나온다. 그렇게 부부 관계를 맺고 부인은 시동생의 아이까지 임신하는데,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형이 패잔병 몰골로 집에 돌아온다. 아내의 임신한 배를 보고 격노한 형은 미쳐 날뛰다가 사건의 전말을 알고는 '동생만 아니었으면 모조리 죽였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하며 부모까지 뿌리치고 가출해 버린다.[8] 다만 이 시기에는 이미 형사취수에 대한 관점에 약해진 이후였기 때문에, 헨리 8세아라곤의 캐서린의 이혼의 핑계거리로 사용되기도 한다.[9] 다만 일설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있다.[10] 자위행위를 뜻하는 오나니의 어원이 된 그 사람.[11] 네오프톨레모스 사후 형수였던 안드로마케와 재혼한다는 전승이 있으나 네오프톨레모스의 어머니 데이다메이아를 아내로 맞는다는 전승도 있고 안드로마케 역시 네오프톨레모스와 끝까지 잘 산다는 전승도 있고 해서 일단 취소선 처리.[12] 행방불명된 언니를 찾아서 인도네시아의 깊은 정글로 들어간 미국인 여주인공. 그녀는 어떤 미국 남자를 경호원으로 고용해 동행하는데, 그들이 찾아간 곳에는 미국의 유명한 사이비 종교인 '다윗파'를 닮은 사이비 교주 존스가 있고 언니는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마을 광장에는 어느 남자의 장례식이 열렸는데, 화장을 끝낸 후에 갑자기 그 남자의 아내가 옷을 벗더니 광장의 제단에 누운다. 그리고 갑자기 3명의 남자와 같이 검열삭제를...... 여주 일행의 옆에 있던 남자가 넌지시 말하기를..... "죽은 저 남자에게는 3명의 남동생이 있는데, 그들과 다시 재혼하는 것이죠." 그러자 그 경호원 남자는 "가족이 지킨다는 말이군"[13] 이쪽은 조카의 지원 등, 정치적으로 여러가지가 복합된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