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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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의 왕녀
혜정옹주 | 惠靜翁主


혜정옹주와 홍여 묘 전경
출생
1514년 11월 6일(음력 10월 10일)
사망
1580년 6월 12일(음력 4월 21일)
(향년 67세)
능묘
혜정옹주와 홍여의 묘
양주 서면 장흥 입암동(楊州 西面 長興 笠岩洞)
(現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3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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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이씨

석환(石環)[1]
부왕
중종
생모
경빈 박씨
부군
당성위(唐城尉) 홍여(洪礪, ? ~ 1533)
자녀
슬하 1녀
딸 - 홍옥환(洪玉環, 1531 ~ ?)
봉호
혜정옹주(惠靜翁主)

1. 개요
2. 생애
3. 가족 관계



1. 개요[편집]


조선 중종의 서2녀. 어머니 경빈 박씨의 차녀로, 오빠 복성군혜순옹주동복 남매 지간이 된다.

2. 생애[편집]


중종 20년(1525) 판결사 홍서주[1]의 아들 홍여와 가례를 올렸는데, 남편 홍여는 당성위에 봉해졌다.

중종은 혜정옹주가 출합할 때를 고려하여 옹주의 집을 지어주려고 하였는데, 집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사치스럽다고 신하들이 상소하였다. 이에 중종은 "지금 혜정 옹주의 집은 단지 70간으로 비록 제도보다 지나친 듯하나 반드시 용도를 헤아려 지었을 것이니 고칠 수 없다."라고 하였다.[2] 나중에 효종이랑 현종이 공주 집 지어주는 거 보면 70간은 아무 것도 아니다

중종 22년(1527) 작서의 변이 일어나 어머니 경빈 박씨와 오빠 복성군이 경상도 상주 지방으로 유배를 갔다.[3] 중종 28년(1533) '가작인두의 변'이 일어나자 옹주의 남편 홍여는 경빈 박씨의 사주로 중종과 세자를 저주하는 익명의 글을 썼다는 의심을 받아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이때 홍여는 소년이었으나 형장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4] 이 날, 옹주 자신도 언니인 혜순옹주와 함께 폐서인이 되었다.

중종 32년(1537) 김안로가 죽은 뒤에야 당시 옥사를 맡았던 김안로가 홍여에게 죄를 씌우고자 무리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 옥사를 추국할 적에 김안로가 추관(推官)이었는데, 홍여의 집안으로 죄를 돌리고자 하여 이는 작서(灼鼠)의 사건과 유사하다고 하니, 사람들이 모두 그 말을 믿었으며, 그 집의 노비(奴婢)들이 무수하게 형장을 받고 그가 묻는 대로 자복(自服)하였다.

중종실록》 중종 32년(1537) 11월 26일


중종 36년(1541) 세자가 복성군의 딸[5]과 이복누이인 혜순옹주와 혜정옹주를 용서달라고 해 줄 것을 상소하면서, 옹주의 직첩을 돌려받고 살게 되었다.


3. 가족 관계[편집]


  • 부왕 : 중종(中宗, 1488 ~ 1544)
  • 생모 : 경빈 박씨(敬嬪 朴氏, ? ~ 1533)
    • 오빠 :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 1509 ~ 1533)
    • 언니 : 혜순옹주(惠順翁主) 이철환(李鐵環, 1512 ~ 1583)

  • 시부 : 홍서주(洪敍疇, 1499 ~ 1546)
  • 시모 : 철성군(鐵城君) 이갱(李鏗)의 딸 전주 이씨[6]

  • 남편 : 당성위(唐城尉) 홍여(洪礪, ? ~ 1533)
    • : 홍옥환(洪玉環, 1531 ~ ?)
    • 사위 : 윤호(尹琥)[7]
      • 외손녀 : 윤예순(尹禮順, 1552 ~ ?)
      • 외손녀 : 안천서(安天敍)의 처(1553 ~ ?)
      • 외손녀 : 윤순이(尹順伊, 1554 ~ ?)
      • 외손녀 : 윤응례(尹應禮, 1558 ~ ?)
      • 외손녀 : 윤순례(尹順禮, 1562 ~ ?)
      • 외손자 : 윤정언(尹廷彦, 1564 ~ ?)
      • 외손녀 : 윤경례(尹敬禮, 157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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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서주의 아버지 홍숙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3등이 된 인물이다. [2] 중종실록 중종 18년(1523) 4월 25일 기사. # [3] 경빈 박씨의 아버지 박수림이 상주 지방의 사족이었으므로 고향으로 내려보낸 것이다. [4] 중종실록 중종 28년(1533) 5월 26일 3번째 기사. # [5] 복성군이 군부인 파평 윤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로 나중에 유학 최예수와 혼인했다.[6] 밀성군의 증손녀[7] 윤임의 손자, 윤흥인(尹興仁)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