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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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호데이다 예멘 1.jpg
호데이다 항구 전경

1. 개요[편집]


아랍어 الْحُدَيْدَة
영어 Hodeida / Al-Hudaydah

예멘 서부의 항구도시. 수도 사나에서 서남쪽으로 200여 km 떨어져 있다. 아덴과 함께 예멘의 대표적인 항구로, 특히 홍해 방면의 주요 항구이다. 전쟁 전 인구는 약 60만명으로, 사나와 타이즈에 이은 예멘 제3의 도시였으나 현재는 장기화된 예멘 내전으로 인해 33만명으로 격감하였다. 역사적으로 19세기오스만 제국의 거점이자 메카 순례의 중간 기착지로써 번영하기 시작하였다. 시가지는 순환도로로 둘러져 있고, 항구는 도시 북쪽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깊은 만에 자리하고 있다. 시내 남부에는 호데이다 대학교가 있고, 남쪽 외곽에 호데이다 국제공항이 있다. 해당 공항과 시가지를 두고 2018년 후티 반군과 정부군 및 다국적 연합군 사이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끝에 현재는 UN의 호데이다 협정 지원 임무단이 도시를 관리하고 있다.

2. 역사[편집]


15세기에 처음 언급되었으며,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예멘을 정복할 때에 주요 거점으로 활용하며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635년 자이디 이맘국에 의해 오스만 군이 축출된 후 쇠퇴하였던 도시는 1832년 오스만 탈영병들의 수중에 들어갔고, 1837년까지 메흐메트 알리의 이집트가 관리하였다. 1849년 4월 오스만 제국이 예멘을 재점령한 후 호데이다는 사나와 함께 예멘 에얄레트의 중심이었고, 불안정했던 사나와 달리 확고한 거점이었다. 1854년 메카 순례 여정 도중 호데이다를 방문한 말레이인 작가 압둘라 이븐 압둘 카디르는 주민들 사이에 카트를 씹는 습관이 만연하다고 기록하였다.

1876년에는 후일 이맘 알 만수르로 즉위하는 무함마드 하미드 앗 딘이 호데이다에서 2년간 유배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20세기 초엽 알 만수르와 후계자 알 무타와킬의 반란 시에 오스만 군은 호데이다를 중심으로 반격에 나섰고, 자이디 반군은 호데이다와 사나 사이의 교통로 차단에 주력하였다. 1913년 양측은 휴전하였다. 이듬해 세계 1차 대전 시에는 오스만 조의 동맹인 독일군이 무선 전파 기지를 세우고 주둔하며 독일령 탄자니아와 오스만 본토 사이의 연락 및 동부 아프리카에서의 선전 활동에 나섰다. 1934년 예멘-사우디 전쟁 당시에는 일시적으로 사우디 군이 도시를 점령하였다.

1961년 1월 호데이다는 대화재로 시가지 대부분이 전소되는 참화를 겪었다. 이후 소련의 원조 하에 항구를 중심으로 재건되었고, 같은해 사나와의 고속도로가 완공되었다. 북예멘 내전 당시에는 공화국을 돕기 위해 이집트 군이 파견되어 주요 기지로 활용되었고, 70년대와 80년대에는 소련 해군 기지가 있었다. 예멘 내전기에 호데이다는 후티 반군의 수중에 있었다. 그러나 2018년 봄부터 가을까지 사우디아라비아UAE의 개입 하에 정부군이 호데이다 탈환을 시도하며 전투가 이어졌고, 민간인 6백명을 포함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끝에 12월 13일 UN 주도 하의 휴전이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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