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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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화된 현재 모습

호뢰관[1]
虎牢關
hŭláoguān
Hulao Pass
1. 개요
2. 내용
3. 창작물에서의 등장


1. 개요[편집]


현재의 중국 허난성 정저우 산하 싱양시[2]에 위치한 관문.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중국 왕조들의 군사적 요충지로 이용됐다.

삼국지연의에는 호로관, 사수관이 각각 별개의 지명으로 나오지만, 실제 같은 지명의 두 이름이다.


2. 내용[편집]


호뢰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춘추좌씨전에 따르면 주나라 시절인 기원전 571년경 건설되었다고 하며 주나라 5대왕인 목왕이 이곳에 호랑이를 가두어 길렀다고 하여 '호뢰관(호랑이 우리 관문)'이라고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이명으로는 허난성에 흐르는 하천인 사수(汜水)를 딴 사수관(汜水關), 당나라 시절 황제의 휘와 겹친 다는 이유로 개명된 무뢰관(武牢関)이 있다. 또한 호뢰관이라는 명칭은 당나라 때 관문을 성으로 증축하면서 바뀐 이름이며 그 이전엔 사수관이라 불렸다는 설도 존재한다. 이후 송나라 시기에는 1011년 3월 25일에 행경관(行慶關)으로 고치고 명나라 때는 고효관(古淆關)으로 고쳤다.




호뢰관의 위치[3]

남쪽으로는 숭산, 북쪽으로는 황하와 접해 있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을 둘러싼 자연 지형 덕분에 천혜의 요새로 평가받아 고대부터 오랜 세월 동안 주요 군사 거점으로 활용됐다. 초한전쟁 시 한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작용하였던 성고 전투의 장이었으며 수말당초 당태종 이세민왕세충두건덕을 물리치고 두하 정권을 멸한 호뢰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나라 시절 이후부터는 중국 왕조의 수도가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비교적 군사적 중요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중국의 정치중심지가 동쪽으로 옮겨가고 낙양이 몰락하고 관리가 안되면서 무너졌고 현재는 평범한 고갯길이다. # 탐방기


3. 창작물에서의 등장[편집]


  •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삼영전여포 부분에서 지역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소설 상에선 관우화웅을 물리친 사수관과 유비, 장비, 관우여포와 교전한 호뢰관이란 두 가지 명칭이 마치 서로 다른 두개의 관문처럼 묘사되는데 현대에서는 이는 작가 나관중이 지명을 착각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화웅이 지킨 사수관은 양인 전투 부분을 인용하여 만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삼영전여포를 표현한 청나라 시절 삽화
  • 삼국지연의를 배경으로 한 많은 게임에서 주요 군사 거점 혹은 전투 지역으로 자주 등장한다. 또한 삼영전여포 부분에서 여포는 이 관문을 배경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시그니쳐 룩인 자금관과 묶여 '호로관 메뚜기'란 별명으로 자주 불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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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 온라인에서의 묘사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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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같은 의미인 우리 로(窂)와 우리 뢰(牢)가 혼용되고 있지만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는 표현을 기준으로 '뢰'로 표기한다.[2] 싱양(滎陽)이 형양 · 성고 전역의 그 형양이다.[3] 현재 성곽은 남아 있지 않고 관광지가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