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비(서진)

덤프버전 :

胡羆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서진의 인물. 자는 계상(季象). 호질의 아들, 호위의 동생.


2. 생애[편집]


양주 회남군 수춘현 사람으로 익주자사가 되어 왕장문을 불러 종사좨주로 삼았지만 왕장문은 병을 핑계대어 사양했고, 호비는 왕장문을 수재로 천거했지만 왕장문이 거짓으로 미친 것처럼 행동해 짐을 짋어지고 바깥으로 뛰쳐나갔으며, 호비는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그에게 돌아올 것을 청했지만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익주자사 재임 시기는 화양국지 대동지에는 오나라 평정 직후에 왕준의 후임으로 익주자사가 된 것으로 나오지만, 화양국지 후현지에서는 호비가 여러 차례 부르려고 한 왕장문이 호비의 권유를 여러 차례 권유를 거절하다가 함녕 연간에 이르러 벼슬을 지낸 것 때문에 시기상 모순이 있다.

왕준의 후임인 것이 오류라면 동영이 268년에 왕부의 반란을 진압한 후에 기록이 없고, 호비의 추천을 거절한 왕장문이 후에 함녕 연간에 벼슬을 지냈으며, 272년에 황보안이 자사를 지내다가 살해당한 직후 왕준이 오 정벌까지 익주자사를 지낸 것을 고려하면 동영과 황보안 사이에 자사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밀이 술이론을 저술해 중화와 인의, 유학을 교화하는 일을 논한 것이 모두 100편이었는데, 호비는 황보밀과 함께 이를 매우 훌륭하게 여겼다.

정사 삼국지에는 정남장군을 지냈다고 하고, 화양국지에는 안동장군을 지냈다고 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6 04:57:54에 나무위키 호비(서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