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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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견환전 서화열.호온용.jpg
胡蕴蓉

옹정황제의 여인(후궁견환전)의 등장인물.

품계(원작)
정6품
정5품
종4품
정4품
정3품
종2품
정2품
종1품
정1품
종6품
창(昌)귀인

창빈

호덕의

호용화

창귀빈

호소의[1]

민(敏)비

장민부인(莊敏夫人)[2]

현비[3]

호재인

1. 개요
2. 상세
3. 기타


1. 개요[편집]


원작 후반부의 주역으로 무양대장공주의 외손녀이자 진강옹주의 딸. 진강옹주 주씨가 태후의 사촌 여동생이라 온용은 황후자매와도 친척이다.[4] 이름은 미인을 상징하는 부용에서 따왔고 이름답게 상당한 미인으로 묘사된다. 계란형 얼굴에 눈이 크고 빛나며 뽀얀 피부에[5] 입술은 붉고 키는 아담하다고 한다. 이를 반영해서인지 만화판에서도 흑발자안에 고양이상, 깨끗한 흰 피부를 가진 미녀로 묘사된다.

한 손을 못 폈는데 궁 밖에서 현릉을 우연히퍽이나 만나 현릉이 손을 만지자 만세영창(万世永昌)이라 새겨진 옥돌[6][7]이 나왔고 현릉에게 봉호 창(昌)을 받는다.

만화판 서화열에서 그녀의 앞에 붙은 꽃은 부용...인데, 왜인지는 몰라도 작약/모란으로 추측되는 꽃과 함께 나오고 부용은 보이질 않는다(...)[8]


2. 상세[편집]


현릉과 6촌 지간이라 표매(表妹)-표가(表哥)라고 부른다. 의수와 순원에게는 표저(表姐)라고 한다. 공주의 후손인 자신만이 황후가 될 자격이 있다고 믿어 오만하나 이런 종류의 다른 후궁들보다는 두뇌 회전이 빠르다. 말주변이 좋다는 평을 받으나 이 말주변을 남들 까는데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너무 지나치다는 소리를 듣는다.[9][10] 그렇게 어그로를 끌면서 현비까지 오른 게 신기하다고 할 정도. 현릉과 견환에게 총명하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작중 행적을 보면 좀 더 똑똑한 화비 정도다.

아버지 호옹장이 융경 10년에 죄인[11]이 되어 유배가자 호씨 가문이 몰락한 것이 약점으로, 황후가 되려는 것은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황실 친척이라 몰락했어도 나름 대우받고 있다는 설정이다. 견환이 출궁했을 때는 가세가 황후 다음이라고 한다. 의수가 주씨 가문 3번째 첩의 딸이라며 무시하다가 의수에 의해 화목제희를 낳고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후 의수를 적대하며 환궁한 견환과 손잡았다.

소의에서 창비로 책봉되려 할 때 황후의 상징인 봉황이 새겨진 옷을 입었다. 안릉용이 황후에게 밀고하여 강등될 뻔했으나 서연의가 봉황과 다르다고 지적하고 온용의 심복인 경지가 봉황이 아닌 동방 신조 발명(發明)이다, 라고 하여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신조 발명은 귀비의 상징이기 때문에 이 일로 견환이 그녀를 경계하게 된다.[12][13]

어쨌든 온용이 분수에 지나친 상징을 쓴 것이 맞지만 온용 스스로 만세영창의 옥돌로 자신의 존귀함을 정당화하고 동방 신조 발명의 비호를 받기 위해서라고 말하여 넘어간다. 그러자 황후가 예전에 견환이 순원황후의 옷을 입은 것을 거론했는데, 현릉이 견환의 친정시녀인 유주의 죽음을 언급하며 죄책감을 드러냈다.

그런데 온용이 화비조차도 은근히 돌려까기만 했던 의수의 서출 컴플렉스를 공개적으로 공격한다. 순원과 지금의 황후는 비교가 될 수 없음. 순원은 적배황후이며, 순원은 적후인데 반해 황후는 첩실 출신의 계후로, 민간에선 적처(결발)와 계처(전방填房)[14]로 나누고 적서와 장유의 구분이 있는데 황상은 순원과 황후가 같다고 보심?이라는 요지다.

현릉은 "당연히 같지 않다."며 온용의 말을 긍정하고 결과적으로 의수는 얻은 것 없이 망신만 당했다.

시간이 지나 잠잠해진 후[15] 현릉이 다시 비로 봉하려고 하자 황후가 되려는 호온용의 야심을 경계한 견환이 창이란 봉호는 너무 거창하니 바꾸자고 제안하고, 현릉은 온용이 총명하니 민(敏)이라는 봉호를 내리겠다고 해 민비로 봉해진다.

안릉용이 죽은 후 수녀 선발에서 수국공부인의 양녀 허이인과 아버지쪽 사람의 딸인 이씨[16]를 후궁에 들어오게 하려 했지만, 허이인이 황장자 여리의 정비가 되자 화병나서 이틀 동안 앓다가 현릉이 잘 달래서 그만둔다.

의수가 연금되자 의수의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심복인 경지가 원래 무양대장공주부의 시녀였고, 경지의 동생 경라는 순원황후의 시중을 들었던 시녀였기에 경라가 호온용에게 순원황후의 식단을 상세히 고해바쳤다.

의수가 연금된 후 자신과 달리 황손이 많은 견환이 황후가 될 것을 걱정해 견환을 적대한다. 그리고 공공연하게 황후 자리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는데, 마격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후궁 중 단귀비가 가장 높음에도 상석에 앉아 비빈들을 당황시키고 온의에게 "장민부인[17], 거긴 우리 어머니 자리니 비켜주세요."라고 한 소리 듣는다.

견환이 키우는 심미장의 아들 여윤을 자신의 양자로 삼으려 했으며 현청과 견환의 관계를 눈치 채 현릉에게 알렸다.[18] 견환은 현청이 죽은 후 숙비안이 적힌 편지를 현릉에게 보낸 게 온용임을 알고 그녀를 증오하게 된다.

폭우가 내리자 흠천감 계유생[19]이 황제의 존귀한 총비가 상제를 속이고 있기 때문에 하늘이 노한 것이라며 총비는 옥과 관련있다는 말을 이용해 옛 규명이 옥환인 견환을 연금시키는데 성공하나 견환의 지시를 받은 롱월제희가 온용에게 시비를 걸어 옥돌을 떨어뜨리고 현릉의 명으로 수리하려고 온실초에게 부탁했는데 온실초가 경성에서 연륜 있는 장인을 찾아갔고 그 장인이 10여년 전에 똑같은 것을 만든 적이 있다고 불었다. 이로 인해 옥돌의 일이 거짓인 게 밝혀지고 견환과 의수를 저주한 흔적[20]이 발견되어 재인으로 강등당하고, 화목제희는 서연의가 키우게 된다.

이후 현릉이 섭란의의 위협(동물 다루는 게 특기였던 섭란의가 맹수를 이용해 묘기를 부리는 척 현릉을 죽이려고 했다.)으로 다쳐 쓰러지자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견환이 천식을 이용해[21] 대놓고 온용을 죽인다.


3. 기타[편집]


견환과 동맹 관계였을 때조차 서로 견제하고 경계했다. 여담으로, 원작에서 릉용을 보고 불여우라고 한 건 이 여자다.

캐릭터성이 화비와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22] 오만하며 현릉에게 애교를 잘 부린다. 화비처럼 현릉을 사랑하는 건 아니더라도 혈연으로 여기며 위험에 빠지면 의지하거나 현릉이 다쳤을 때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작중 인물들도 모두 화비가 살아돌아왔다고 말했을 정도로 닮았다. 황후는 직접 "너는 예전의 모용세란처럼 철딱서니없구나."라고 말했다.[23][24] 그러나 머리 나쁘게 묘사돼서 타인의 지략을 빌리는 화비와는 달리 이쪽은 화비보다는 똑똑하다.

때문에 화비와 마찬가지로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편이다. 주로 나댄다고. 화비 팬들에게도 화비 짝퉁이라는 식으로 욕먹는다. 다만 곰 때문에 견환이 죽을 뻔하자 죽게 냅두자거나 의수에게 지나치게 무례하게 구는 등 인성이 좋지는 않아도 타 후궁들에 비해 아주 악독하진 않다는 평도 있다. 군주기만죄는 딴 후궁들도 다 저질렀고 사람 죽인 횟수도 없으며 견환과 현청의 불륜을 잡아 황제에게 보여준 것도 주인공 견환 입장에선 나쁜 짓인지 몰라도 불륜이란 범법을 저지른 후궁을 고발한 것 뿐이니 객관적으로 보면 문제되는 행동은 아니기 때문. 그런 짓 하면 불륜 잡아내는 흥신소도 다 망해야 한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본인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 안릉용의 목을 망치고 흠천감을 이용해 견환을 모함한 것은 잘못이 맞지만 다른 악역에 비교하자면 아주 악독하다기엔 무리가 있다. 게다가 원작에선 견환도 호온용을 직접 살해하기까지 한데다 만만찮게 인성적으로 나쁜 구석과 문제시되는 행적들이 있어서 둘을 대조해봐도 호온용이 더 눈에 띄게 대놓고 나빠보이고 견환이 대놓고 선역으로 보이거나 하진 않는다. 원작보다 엄청 착해진 드라마판 견환과 비교하면 얘도 악녀처럼 보이겠지만드라마에 등장하지 못하자 중국 현지에서 드라마 상상도나 팬아트가 쏟아졌다.

원작에서 인기가 많은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드라마에선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유인즉 캐릭터성이 분명해야 할 드라마에서 화비와 캐릭터성이 너무 겹쳤기 때문이라고

만약 드라마판에도 출연했다면 태후와 황후들, 황제의 친척이란 설정 탓에 만군기로 나왔을 확률이 크다.[25][26]
덤으로 원작 설정상 후궁 중 상위권까지 올라간 인물이니 최소 -비(妃)의 자리는 올랐을 셈. 경비나 단비보다 품계가 높았던 적은 없었기 때문에 견환 환궁 시점에서 빈, 육궁대봉 시점에서 비에 봉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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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견환이 환궁할 당시 품계[2] 대봉육궁 후 품계[3] 견환이 혁혁에서 돌아온 후 품계[4] 잘 보면 진강옹주와 황후 자매 모두 성씨가 '주'씨로 같다. (원작에서 황후 자매의 이름은 순원이 주유칙, 의수가 주의수.)[5] 여담으로 동양권이나 서양권이나 예로부터 흰 피부는 미인의 상징 중 하나였다. 밖에서 힘들게 일할 일 없는 신분 높은 사람들이 주로 지니는 피부색이어서 그랬다는 말도 있지만.[6] 봉황을 닮은 신조 발명이 새겨져 있다. 발명은 동방신조로 귀비의 상징.[7] 그러나 이건 사실 일종의 구라였다. 현릉의 눈에 띄어 궁 내에서 한 자리 얻기 위해 일부러 소문을 내고 왼손에 옥돌을 가지고 다니느라 옥돌을 쥐고 있다가 현릉이 나타났을 때 말을 걸면서 손을 피고 현릉이 자기 운명의 상대라고 말을 지어낸 것(...) 나중에 이게 들통나서 결국 입지가 추락한다.[8] 물론 겹꽃으로 피는 부용 품종은 작약과 그 모양새가 좀 닮았긴 하지만.[9] 황후 앞에서 신첩이 아니라 나라고 한다든가 자기보다 높은 품계의 비빈에게도 본궁이라 한다든가 완비로서 환궁한 견환을 보고도 인사하지 않고 도발한다든가.[10] 물론 바보는 아니기에 태후 앞에서는 공손하고, 태후를 모시며 총애를 다투지 않는 심미장에겐 예의를 지킨다.[11] 선제 때 옥액부인 친정의 반란에 연루되었다.[12] 숙비인 견환의 상징은 서방 신조 숙상(鷫䴂). 동방이 서방보다 존귀하게 여겨진다.[13] 참고로 중국의 신조는 총 다섯으로, 동방 발명(發明), 서방 숙상(鷫䴂), 남방 초명(鷦䳟/焦明), 북방 유창(幽昌), 중앙 봉황(鳳凰). 그 중 봉황이 가장 잘 알려졌고 나머지들은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당장 우리나라나 일본만 해도 봉황은 알아도 나머지는 그게 뭐임? 하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중국에서도 잘 모르는데 작중 인물들은 경지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런 게 있다고 알았다. 참고로 동방 발명의 경우 한자가 발명할 때 그 한자랑 똑같아서(...) 검색해봤자 우리가 소위 아는 발명이란 결과만 더 많이 나온다.[14] 방을 채운다는 뜻으로 적처의 땜빵이라는 것이다[15] 원래는 옷 사건 후에 바로 책봉례를 하려했는데, 기빈 관문원이 친자 확인 사건을 터트리는 바람에 미뤄졌다.[16] 원작 초판에서 섭란의가 표범을 부려 현릉을 죽이려 했을 때 팔이 잘린다. 수정판에서는 허이인과 이씨가 사라지고 춘빈 나석석으로 바뀌었다.[17] 원래 황손들은 후궁들에게 "(봉호) 모비"라고 불러야 하는데 온의가 호온용을 싫어해서 지위명으로 부른다.[18] 온용은 현청과 현분처럼 모친의 출신이 비천하면 황족이라도 무시했다.[19] 심미장쪽 사람이다[20] 견환이 누명씌운 것이다.[21] 상림원에서 버들개지를 썼다. 참고로 온용이 천식 완화제로 쓰던 박하 향낭을 떨궈서 주우려고 하자 견환이 일부러 그걸 태액지로 걷어차 빠트리는 장면도 나온다.[22] 그래서 드라마에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23] 이에 온용은 자식이 없었으며 가장 높을 때에도 부인(종1품)에 불과한 대역죄인을 언급해서 자신을 욕보이냐고 말한다.[24] 반대로 현릉은 견환이 막 환궁했을 때 온용이 제멋대로긴 해도 착하다고 평한다. 태후도 자기 조카뻘이라고 예뻐하는 편.[25] 만군기중에서도 잘 나가는 가문의 성씨로 나왔을 것이다. 겹치지 않는 선에서 황후와 먼 친척으로 가능한 엽혁나랍씨나 8대성씨에 드는 동가씨, 마가씨, 색작륜씨, 혁사리씨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부찰, 뉴호록, 과이가는 이미 있기에 패스.[26] 나랍씨는 나랍씨들 중에서도 오라부, 휘발부, 엽혁부로 나뉘어져있으니 먼 친척이라는게 가능하다. 엽혁부가 세 부중에서 가장 대성한 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