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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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설명



1. 개요[편집]


조선 후기의 군영.


2. 설명[편집]


용호청과 함께 내삼청을 형성하였으며, 국왕의 근접 호위를 맡았다.[1]

인조반정 이후 중앙군 강화를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시작은 인조반정 당시 동원되었던 사병들을 반정이 성공한 이후 반정 공신들에게 나누어 분속시킨 것이며, 이것이 확장되어 금군과 함께 조선의 친위군을 형성한 것이다.

총 3청이 존재하였으며, 각 하에는 350명의 군관들이 존재하였다.[2] 여타 군영들과 다르게 지휘관은 호위대장[3]으로 정 1품 고위직이었으나, 명예직에 가까웠고 실질적인 지휘는 정 3품의 호위별장이 담당하였다.

조선 중후기 서인의 무력기간을 형성하였으며 정조 연간 숙위소를 설치하고 장용영으로 대체시키면서 1청으로 축소되었으나 정조 승하 후 400여명으로 회복되었다. 실제로 급료를 받는 군관은 400명 중 95명이었으며, 이외에도 뇌자 10인, 순령수 10인, 등룡군 10인, 표하군 12인, 사후군 6인, 장막군 6인이 있었다.

[1] 그러나 실제로는 반정공신들이 모집해 거사에 이용했던 군사들로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에, 반정공신 주축의 군사적 세력기반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어느 면에서는 왕권 견제의 구실을 하였다.[2] 설치 당시는 ‘호위4청’이라 하여 반정에 공로가 가장 많았던 이서(李曙)·김류·이귀·신경진(申景禛) 등을 대장으로 임명하고, 각각 100명의 군관을 거느리게 하였다. 이 밖에 심기원(沈器遠)·김자점(金自點)은 당상관이라 하여 각 50명의 군관을 거느리게 했다. 그 수는 모두 500명으로, 국가에서 급료를 지불하였다.[3] 대개 시·원임대신 및 국구(國舅) 중에서 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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