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아비 훈장과 과부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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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줄거리
3. 기타



1. 개요[편집]


한국의 전래동화.


2. 줄거리[편집]


조선 어느 작은 마을에 20대 초반의 한 젊은 훈장이 살았다. 훈장은 3년 전 조혼을 했지만 아내가 결혼 후 한 달 만에 바로 세상을 떠나서 자식도 없는 홀아비였다. 공교롭게도 이 훈장의 옆집에는 3년 전 남편을 잃고 자식없이 홀로 사는 20대 초반의 젊은 과부가 한 명 있었으며 그녀 역시 결혼하고 석 달 지나 남편과 사별한 뒤였다.

두 사람은 모두 3년 전 가족을 잃고 자식 없이 홀로 살고 있는데 가계 규모는 천지차이였다. 홀아비 3년에 이 석말, 과부 3년에 쌀 석말이란 속담처럼 홀아비인 훈장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로부터 강미와 주민들의 도움으로 그러저럭 살았으나 아무래도 홀아비로 지내다 보니 살림이 매우 궁색한 데 비해 과부는 세상을 떠난 남편이 물려준 재산들을 이용해서 열심히 살림을 이끌어 제법 잘 살고 있었다.

이때 훈장이 가르치던 동네 학동들 중 영리한 학동 삼인조가 홀아비인 훈장이 너무 안타까워 작전을 세우기로 했다. 한 소년이 훈장에게 달려가 넌지시 운을 띄우자 훈장은 겉으로는 일부러 타박을 주어도 속으론 은근 눈치를 보았다. 그러자 다른 소년이 달려들어서 자신들이 세운 계획을 알려주었다. 훈장은 걱정이 되었으나 다른 학동이 미소를 지으며 걱정 말라고 했다.

이튿날이 되자 학동 삼인조는 과부의 집으로 달려갔다. 과부가 나오자 학동들은 과부에게 훈장이 과부네 집에 있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고 과부는 처음엔 놀라서 아이들을 뒤쫓았다. 아이들의 대답은 계속되었고 과부는 점차 화가 나 아이들을 혼내주기 위해 단단히 벼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들이 똑같은 소리를 하자 과부는 화를 내며 아이들을 뒤쫓았고 아이들은 달아나면서도 훈장이 과부댁에 있다고 계속 말했다. 이 소리에 동네 주민들이 놀라서 달려와 자초지종을 설명해달라 하자 아이들은 훈장을 찾으러 왔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과부는 믿을 수 없고 화도 나서 아이들에게 한 번 자기 집으로 가서 확인해 보라고 외쳤다.

그리고 과부네 집. 과부가 이불을 들춘 순간, 홀아비 훈장이 속옷바람으로 이불 위에 가부좌를 틀고 점잖게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훈장이 정말 과부네 집에 있다는 걸 눈으로 보고 두 사람이 사귀는 걸로 알았다. 과부가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사람들은 쿨하게 평소 맘에 둔 걸 알고 있으니까 우리가 주선할거니 그냥 이 참에 결혼해서 부부로 지내라고 얘기했다. 결국 마을 주민들의 주선으로 결혼한 뒤 두 사람은 사이가 참 좋아서 이후에 네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3. 기타[편집]


사실 따지고 보면 학동들과 훈장은 과부의 사생활에 대해 모함을 한 셈이다. 조선시대에 18세 젊은 여인이 자신의 행실에 대해 수년간 모함하던 이웃 노파를 참다못해 찔러죽였는데, 국왕이 정상참작을 하여 무죄석방해준 사건도 있었음을 생각하면 나름 중범죄. 그래서인지 학동들과 훈장이 일방적으로 계획한 것이 아니라, 훈장과 과부가 서로 호감이 있지만 사람들 시선 때문에 대놓고 어쩌지 못하는 것을 눈치챈 학동들이 꾀를 냈다고 나오는 버전도 있다.[1]

또 다른 판본에 전체적으로 동일하지만 이웃 주민이 소를 빌리러 올 때 훈장이 "모처럼의 부탁이건만, 어떡하죠... 우리도 오늘 논을 갈아야하니 다른 집으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하고 과부 역시 사리판단이 뛰어나 "죄송합니다만 저희 집도 오늘 논을 갈아야 한답니다. 다른 곳에 가시는 게 좋겠어요."라고 맞장구를 치고 부부가 되는 것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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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경우는 납치혼에서도 간혹 있던 일인데 특히 조선에서는 아예 서로간에 합의를 해 놓고 납치혼으로 위장한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보쌈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