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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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홍석훈.jpg
출생
1921년 7월 5일
평안남도 평양부 신양동
사망
1945년 9월 8일
중국 선양시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홍석훈은 1921년 7월 5일 평안남도 평양부 신양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4년 일본 입교대학(立敎大學) 재학중 학병으로 일군에 강제 징집되어 동년 2월 16일 중국 쑤어주에 주둔한 치중대(輜重隊)에 배속되어 근무했다. 그러다 7월 7일 장준하·윤경빈(尹慶彬)·김영록(金永錄) 등과 함께 일군을 탈출하여 8월 한국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10월 22일 중국 안휘성 임천에 소재한 중앙군관학교(中央軍官學校) 분교 한국광복군간부훈련반(韓國光復軍幹部訓練班) 제1생으로 입교하여 소정의 훈련을 수료하였다. 1944년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명령으로 한광반을 수료한 일해 43명과 함께 임천을 떠나 6천리에 걸쳐 이동한 끝에 1945년 1월 30일 신송식(申松植) 교관의 인도로 충칭에 도착하여 크게 환영을 받았다.

이 사실은 중경내 각 신문들이 대서특필로 보도하면서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극찬하였고 중국의 조야 요인들도 모두 열혈히 한국청년 일행을 영접하였다. 그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여 다방면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중국중앙군사위원회(中國中央軍事委員會)의 9개항 행동준승(行動準繩) 폐기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주성 회복을 위해 노력했으며, 1945년 2월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서기로 임명되었다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잠행중앙관제(暫行中央官制)에 따라 선전부원으로 임명되었으며,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정훈처(政訓處) 부관으로 근무하면서 대적방송을 통하여 일제의 죄악상 폭로와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내외에 선전하였다.

동년 6월에는 서안(西安) 섬서성(陝西省)의 광복군 제2재대로 입대하여 한미합작특수훈련(O.S.S) 제2진으로 선발되어 전 훈련과정을 수료한 후 한국후방의 특수공작임무를 맡은 공작조(工作組)에 편성되어 한국내 정진군(挺進軍)으로 출발 대기중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1945년 9월 8일 만주 선양시에서 급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홍석훈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20년 국립서울현충원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