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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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홍성흔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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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회[1]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10
2,046안타
2015년
우타자 최초 2000안타





홍성흔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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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s20.postimg.org/doosan2001.png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4.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1
2015


파일: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로고.svg
1998 방콕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1998


파일:2000 시드니 올림픽 로고.svg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종목
동메달
2000


파일: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02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4 KBO 리그 최다 안타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2004 준플레이오프 MVP





보유 기록
109경기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경기 출장
429타석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타석
376타수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타수
101안타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안타
149루타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루타
4개
통산 최다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1)
(1) 김기태와 타이 기록


홍성흔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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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등번호 22번
최기문
(1998)

홍성흔
(1999~2008)


성영훈
(2009~2010)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9번
마해영
(2008)

홍성흔
(2009~2012)


홍성민
(2013)
두산 베어스 등번호 22번
성영훈
(2009~2010)

홍성흔
(2013~2016)


이용호
(2017)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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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흔
洪性炘 | Hong Sung-Heon[1]

출생
1976년 10월 21일(음력)[2] (47세)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갑천면 중금리[3]
거주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동 더샵스타시티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공릉초등학교 (졸업)[4]
중앙중학교 (졸업)
중앙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과 95 / 학사)
신체
180㎝, 91㎏, O형
포지션
지명타자[5], 포수[6], 좌익수[7], 1루수[8]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1차 지명 (OB)[9]
소속팀
두산 베어스 (1999~2008)
롯데 자이언츠 (2009~2012)
두산 베어스 (2013~2016)
지도자
AZL 파드리스[10] 필드코치 (2018~2019)
병역
예술체육요원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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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곡
디아나 본체바 - 《Beethoven Virus[1][2]
응원가
두산 베어스 1기 시절
동요꼬부랑 할머니[가사1]
롯데 자이언츠 시절
4 Non Blondes - 《What's up[가사2]
두산 베어스 2기 시절
4 Non Blondes - 《What's up[가사3][3][4]
싸이 - 《챔피언[5]
본관
남양 홍씨 (南陽 洪氏) 당홍계
종교
불교 (법명:향천)
가족
배우자 김정임(1973년생)
홍화리(2005년 2월 21일생)
아들 홍화철(2008년 9월 23일생)

1. 개요
5. 플레이 스타일
5.1. 타격
5.2. 수비 및 주루
7. 여담
7.2. 응원가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現 방송인. 선수 시절 포지션은 포수, 지명타자였다.

1999년 1차 지명[11]으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자마자 주전 자리를 꿰차며 데뷔 시즌에 신인왕을 수상하였고, 이후 꾸준하게 활약하며 10여년 가까이 베어스의 주전 포수로 활동했다. 실력 뿐만 아니라 훈훈한 외모와 특유의 쾌활한 성격과 액션으로 팬들에게 인기도 무척 높은 선수였다.

2007년 입스로 인해 2루 송구에 어려움을 겪으며 포수 출전 빈도가 줄었고, FA 시즌인 2008년엔 포수 포지션을 은퇴하고 지명타자로 전업하게 된다. 시즌 후엔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였고 롯데에서 4년 연속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12] FA 성공 사례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13]

그 후 2013년, 2차 FA로 다시 친정 팀인 두산으로 리턴했다. 이후 선수 생활의 말년에 구단과 불화가 겹친 김동주 대신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다.[14] 선수 시절 별명으로는 '홍턱', '홍포(洪砲)', '오버맨' 등이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홍성흔의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성흔/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방송 및 기타 활동[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성흔/활동 내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플레이 스타일[편집]



5.1. 타격[편집]


컨택형 교타자지만 홈런을 20개 정도는 충분히 쳐줄 파워를 겸비하고 있다. 다만 IsoP(절대장타율)이 낮은 편이라 2사 이후에는 투수에게 큰 부담이 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적극적인 타격을 선호하고 타고난 선구안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이병규와 함께 대표적인 배드 볼 히터로 꼽힌다. 컨택형 교타자치고는 특이할 정도로 사정없는 투핸드 어퍼스윙을 구사하는 편이라 배트 플립도 상당히 맛깔나는 편이었다.

타격자세에 들어가기 전에 양팔을 흔들흔들 거리면서 어깨가 열리지 않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 암시를 거는 행동을 하는데 롯데에 들어와서 시도했기 때문에 반 자동적으로 갈매기 타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홍성흔 하면 빠지지 않는 트레이드 마크. 그러나 박진감 있는 경기를 위한 스피드룰(12초룰)이 도입됨에 따라 갈매기 타법을 자주 보기는 힘들어졌다.

커리어 하이는 2010 시즌으로[15] 이대호와 함께 팀 타선을 이끌며 5개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해 장타율과 OPS가 무지막지하게 올라갔으며, 절대장타율도 2009시즌 대비 0.109 상승한 0.271로 리그 2위인 리그 최강의 타자로 발돋움했다. 이해에는 눈야구도 가능해져서 1.19의 BB/K, 0.435의 훌륭한 출루율을 기록했다. 2011년부터 성적이 다시 떨어졌다는 점에서 플루크라고 의견이 많지만, 2011년부터 외야수 훈련을 병행해 타격 훈련량이 떨어지고 직전 시즌에 손에 사구를 맞아 부상을 당해 시즌아웃된데다 노쇠화가 겹쳤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2013시즌이 종료된 시점에서 2012, 2013년의 기록을 보면 2010시즌은 타격의 변화를 통한 브레이크아웃 시즌이자 커리어하이 시즌일 뿐 플루크라고까지 몰아붙이기는 어렵다. 홍성흔의 커리어는 그게 플루크 소리 들을 정도로 형편없지 않다. 즉 2011시즌의 급격한 장타력 감소는 난생 처음하는 외야수비 훈련 탓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2012년은 부상으로 기복이 있었지만 시즌 초에는 날아다녔으며, 장타력은 명백히 2011년에 비하면 좋아졌다. 2013년 역시 노쇠화와 친정팀 잠실구장의 영향 등으로 전반기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후반기에 제대로 부활하며 여전히 중심타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2014년에도 5월에 그야말로 폭주하며 2012년 초반을 넘어 2010시즌을 떠올리게 하는 활약을 했으나 이후 다시 부진. 2010시즌을 재현하기에는 나이 탓에 시즌 내내 꾸준함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 많이 아쉽지만 10시즌 이전의 홍성흔과 이후의 홍성흔은 완전히 다른 유형의 타자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은근히 묻힌 사실이지만 2010시즌 김현수와 함께 3시즌 연속 타율 0.330 이상 기록에 도전하는 단 둘뿐인 선수였는데, 사구로 인한 부상과 복귀 끝에 시즌 타율을 0.350으로 마감하게 되면서 최초로 기록을 확정지었다.[16] 참고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3시즌 연속 타율 0.330 이상은 홍성흔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17] 2016년과 2017년, 역대급 타고투저가 2시즌 연속 이어지며 선수들의 평균 타율이 높아진 덕에 2018년에는 이 기록에 박건우와 박민우, 박용택과 최형우가 도전했다. 이 중 박용택과 최형우는 3시즌 이상 0.330을 기록한 적이 있으나 역시 3시즌 연속 타율 0.330에는 실패했었던 전력이 있다. 그럼에도 넷 중에서 오직 최형우만이 이 기록에 도전해 성공했다는 점에서 타신투병과도 별 연관이 없던 시기에 선수 생활을 했던 전성기 홍성흔의 기량을 가늠할 수 있다.[18]

그리고 이대호, 김현수, 양의지와 함께 2년 연속 타율 0.350 이상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이게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설명하자면, 한국프로야구에서 한 시즌이라도 .350 이상 쳐본 선수는 30년 역사에서 역대급 타고투저가 이어지는 2014~2017시즌까지 포함해도 30명이 채 되지 않는다.[19]

2013년 만 36의 나이로 통산 1,800안타 고지를 넘었고 2014년 5월 1,000타점, 9월 12일 200홈런을 돌파했다. 그리고 2015년 6월 14일 KBO에서 2,000안타를 돌파한 최초의 우타자가 됨과 동시에 양준혁, 장성호에 이어 3번째로 2,000안타-200홈런-1000타점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이런 출중한 타격능력과 데뷔 초부터 공격력만은 못했다고 평가받는 수비실력을 고려했을때 처음부터 포수가 아닌 코너 외야수나 1루수였다면 양준혁, 김동주에 버금가는 전설적인 대타자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지금 커리어로도 일세를 풍미한 훌륭한 타자다. 다만 그렇다기엔 아마 시절 두각을 낸 것과 프로 데뷔와 함께 주전을 차지한 것도 포수였던 이유가 크기에 오히려 포수를 선택함이 옳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5.2. 수비 및 주루[편집]


워낙 공격력이 좋았던 탓에 수비가 묻힌 감이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국가대표에 포수로 수차례 차출되는 등 괜찮은 수비력을 가지고 있었다. 김태형, 진갑용, 최기문, 이도형 등등 걸출한 포수자원이 넘쳐났던 포수왕국 두산에서 살아남은 선수다. 물론 당대 최고의 포수들인 박경완, 김동수보다는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부상과 입스로 인해 2007시즌부터 포수로서의 출전이 어려워지며 지명타자로 나오게 되었고, 1루수좌익수로 이동해보려 했지만 실패하여 대부분 지명타자로 나왔다. 빅터 마르티네즈와 비슷한 케이스. 가끔 크게 이기고 있거나 크게 지고 있던 경기에서 1루수로 포지션을 바꾸고 뛴적은 있지만, 1루수로 선발 출장한 경기는 단 1경기밖에 없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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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1루 수비. 공격 일변도의 야구를 추구했던 로이스터 감독조차 이 한 경기 쓰고 바로 봉인했다.

주력이 좋은 편은 아니나 그렇다고 이대호김태균같은 수준은 아니다. 그래서 의외로 10도루 이상을 기록한 시즌들도 있고 통산 도루가 85개다.[21]


6.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성흔/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여담[편집]


  • 신인 시절부터 상당히 밝고 쾌활한 이미지를 유지해왔지만 알고 보면 어린 시절이 꽤나 불우했다. 중학생 시절 홍성흔의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이혼을 했고 아버지, 형과 함께 살았다. 아버지가 홀로 개인택시 운전을 하면서 홍성흔의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 1999년에는 신인왕, 총 6번의 KBO 골든글러브[22] 수상, 야구 국가대표 수차례 차출 등 경력이 매우 화려하다. 다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골든글러브 수상이 많다는 것이 흠이다.[23]

  • 트위터를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롯데 선수였다.[24] 오히려 선수단의 트위터 등 SNS 이용을 금지시켰던 주장이었으며, 현재는 개인 SNS가 있다.

  • 경희대학교에서 체육학을 전공했고 체육 과목 교원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한다. 소수의 기사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체육교사 자격증이 자동으로 나오는 체육교육과가 아닌 체육학과 출신으로 교원자격증을 취득하려면 학점을 잘 받아서 교직이수에 선발되어야 하는데 대학에서 공부를 열심히 한 모양이다.

  • 스포츠 스타 여럿[25]을 보내버린 치명적인 온라인게임 리니지를 아내와 즐겨 했다고 알려졌다.[26] 결혼 당시 기사를 보면 꽤 열심히 한 듯하다. 참고로 2003년 당시 75렙으로 알려져있다. 직접 NC소프트를 방문 했을 정도. 그럼에도 최고의 타자로 군림한 걸 보면 자기관리 하난 정말 철저한 듯하다. 다만 게임 내에서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알려졌다. 이외에도 살림남에서는 서든어택을 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컴퓨터를 옮기자마자 그 자리가 인터넷이 안 되어 방바닥에서 양반다리로 서든어택을 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 # 게임은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는데, 학교 야구부에서 맞으면서 혼이 나고 집에 돌아와도 아무도 없으니 혼자 오락실을 다니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하지만 2022년 정신건강의학과 방문 결과 성인 ADHD, 게임 중독 증상이 있다고 진단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가족 간의 갈등과 성장 과정 등도 있었다. 이 때문인지, 살림남에서는 관리교육 성향이 강하여 자녀의 스마트폰 보유에 대해 우려하는 아내와는 다르게 아들 화철이에게 스마트폰을 사 주곤 했다.

  • 오버스러운 끼를 주체할 수 없는 것으로 유명해서 방송에 자주 출연했다. 경희대 재학 시절에는 KBS 2TV 캠퍼스 영상가요에 출연하기도 했고 두산 입단 후에는 출발 드림팀에 출연해 같은 팀 선배들인 강병규, 정수근과 함께[27] 하드캐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는 로 분장해서 공연을 했다. 역시 홍오바.# 동영상 : # 2015년 1월 15일 해피투게더에 딸 홍화리와 같이 나와 또 췄다.

파일:두산 치트키.gif
파일:두산 치트키2.gif
그리고 이 짤방은 두산 베어스 갤러리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 개념글을 빠르게 갈 수 있는 치트키가 되어버렸다. 이 경우 통용되는 별명은 흐니흐니.

  • 그놈의 끼는 인터뷰에서도 감출 수가 없었는지, 2008년 즈음[28], KBS 스포츠뉴스의 인터뷰에서 김종서의 대답없는 너[29]를 짤막하게 부르는 모습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 이 영상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홍성흔을 대표하는 밈이 되었고, 2022년 3월엔 충주시 홍보맨이 각종 청소년, 충주시 여성청소년과 소관 상담시설 연락처를 홍보하면서 이 밈을 사용하기도 했다.#

  • 올스타전에서는 2009년에는 가발을 쓰더니[30] 2010년엔 최다득표 감사[31] 라고 마킹된 유니폼을 입고 수염도 달고 나왔다. 쇼맨십이 있는 듯. 그리고는 그 수염쓴 상태로 류현진에게 2점 홈런을 날렸다.[32] 2006년 및 2010년 올스타전 MVP 수상.##

  • 위의 올스타전과 골든글러브 수상식 일화에서 보여지듯 쇼맨십과 스타의식이 상당한 선수로 팬 서비스도 그에 걸맞게 좋은 선수였다. 단순히 사인만 잘 해주는 것이 아니라 '홍오바' 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시상식이나 올스타전에서 팬들을 즐겁게 해 줄 퍼포먼스를 준비해 와서 프로야구가 단순히 운동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것을 일깨워줬던 선수. 지금은 팬 감사데이 등에서 선수들이 각종 분장을 하거나, 춤을 추거나 하는 것이 당연한데, 홍성흔 젊은 시절만 해도 운동선수가 저렇게 머리를 염색하거나, 튀는 행동을 하면 선배들로부터 구박을 받았던 경직된 체육계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이를 벗어던지기 시작해서 자유로운 문화를 어느정도 정착시킨 1세대 선수. 물론 기본 중의 기본인 사인도 어린이 팬에게 먼저 다가가서 사인을 해줬다는 일화부터 시작해서 미담뿐이다.

  • 1남 1녀의 아버지이며, 본인의 미남 유전자를 고대로 받은 장녀 홍화리는 상당히 큐트하고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어 팬들로부터 화리여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홍화리 양은 2014년 2월 22일부터 왕가네 식구들 후속으로 방영되는 참 좋은 시절에서 강동주 역으로 출연, 아역 배우로써 커리어를 시작했다. 2014년 12월 31일 열린 KBS 연기대상에서, 강동주 역으로 청소년 연기상 여자 부문을 수상했다. 홍성흔도 직접 관객석에 앉아 딸의 수상을 지켜봤다. 2014년 5월 30일 롯데와 두산 경기에서 시구를 맡았는데 그야말로 베테랑 투수급의 포스를 뿜는다.[33] 아들 홍화철 군도 강동구 소속으로 리틀야구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현재는 배재중학교 야구부에 진학해있다.[34]



  • 2002년 잠실구장에서 경기 시작 전 초등학생 팬이 경기 준비 중인 홍성흔 선수를 보고 "와 홍성흔이다!"라고 말하자 이를 듣고 한 기자가 "홍성흔 선수가 네 친구야?"라는 핀잔을 주자[35] 홍성흔 선수는 "나 너네 친구 맞지!? 오늘 이겨야 하니깐 하이파이브 하자!"라며 홍성흔 선수가 분위기를 전환시켜주며 덕후까지 양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 2011년 9월 6일 MBC FM4U 정오의 희망곡에 문자사연을 올린 게 당첨이 되면서 전화연결까지 했다. DJ인 현영은 홍성흔의 부인과 친분이 있던지라 이야기하는 동안 홍성흔을 형부라고 지칭했다. 롯데 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면서 우승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등 유창하게 멘트를 날리고. 현영에게 자기 응원가를 가르쳐주고 퇴장.

  • 2013년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에 SBS ESPN에서 특별기획으로 방송한 김성근의 돌직구에서 제대로 디스당했다. 두산의 전반기 결산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홍성흔의 이야기가 나오자 김성근이 "홍성흔은 자기 할 일이나 똑바로 했으면 좋겠다"라고 정면으로 디스한것이다. 그 방송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후반기엔 비교적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36][37]

  • 2014년부터 홈런을 친 후 손 대신 턱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세레머니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10호 이후로 평범하게 하이파이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5월 19일 라디오볼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밝혔는데, 부인이랑 딸이 가정교육에 문제가 된다면서 턱 세레머니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 딸 홍화리의 주장에 의하면, 같은 팀 외국인 선수를 많이 데려온다고 한다. 이유는 불쌍해서라고...사실 한국에 와서는 돈을 많이 받는다지만 한국에 용병으로 오는 선수는 여태까지 대부분의 선수생활을 마이너를 전전한 선수가 많아 누적연봉이 많지 않아 저금이 별로 없어 가난한 선수가 많고, 20대~많아야 30대초인 젊은, 사회적으로 보면 어리다고도 할 만한 나이에 돈 벌려고 지구 반바퀴 돌아 고된 타지생활을 하는 청년들이니 돈을 떠나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파일:홍성흔_헤드앤숄더.jpg
  • 잘 나가던 선수 시절 헤드앤 솔더광고를 찍었는데그의 오버를 볼 수 있다.[38] 이 광고가 훗날 미국에서 코치 생활을 했던 시절 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홍성흔이 과거 한국에서 샴푸 광고모델로 출연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클럽하우스 매니저가 홍성흔에 양해를 구한 뒤 샤워실에 놓여진 샴푸통에 모두 광고 사진을 붙여놨고 그걸 본 선수들이 배꼽 잡고 웃었다고 한다. 그 일로 스태프들과도 더 친숙해졌다고 한다. #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011년 6월 광고모델 계약을 중개한 한 광고모델에이전시가 홍성흔의 광고출연료 2억 6,400만원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홍성흔의 광고료를 가로챈 김모 씨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기사 보도에 따르면 김모 씨는 같은 사기 혐의로 지난 2월에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 받은 바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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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O 리그 통산 230개의 병살타를 쳤으며, 이 부문 2위에 올라있다.[39][40] 최근 고정 출연하고 있는 살림남에서도 아들에게 야구를 가르쳐주면서 과거 자신의 병살타 기록을 언급하며 본인을 디스하기도 했다.

  • 맨 위에 서술되어 있지만 부모님의 이혼으로 방황할때 틀을 잡아준건 바로 야구계 대선배이자 스승이었던 MBC 청룡 출신 이해창이었다. 리틀야구로 딱 한번 방문했을때 원 타임 코칭을 해준 인연이 시작이 된것.. 2019년 2월 22일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서 32년만에 해후를 하였다. 홍성흔, 불우했던 가정사 고백.."부모님 이혼, 어렵게 자라"[41]

파일:ㅎㄴㅎㄴ.jpg

  •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그날 경기 승리시 상대팀 갤러리에 깃발 꽂듯이 홍성흔의 사진을 들고가고 높은 확률로 개념에 가있다. 이런 일이 하도 빈번하게 일어나다보니까 2021년 중반부턴 롯데를 상대하는 팀이 자기 팀이 오늘 못이긴다 싶으면 미리 홍성흔 사진을 올려놓고 미리 개념글에 보내놓는 경우까지 있다. 비단 롯데와의 경기가 없더라도, 어느 한 갤을 나머지 9개 갤이 터는 상황에서는 꽤나 자주 념글로 올라간다. 어떠한 경우건 사진은 위에 있는 이 사진으로 통일.

  • 영화 오늘의 연애에서 문채원의 아역 역할이었던 딸 홍화리와 함께 자이로드롭을 탄 남자로 등장했다. 심지어 대사도 있다. 대사 내용은 이승기 아역에 괜찮냐고 말한 거. 덤으로 이승기 아역은 자이로드롭을 타고 오줌을 지리고선 홍화리(문채원아역)에게 현실의 홍화리아빠(홍성흔)가 쏟았다고 변명했다가 차였다. 자세한 상황은 같이 자이로드롭타면 사귀어주겠다고 했는데 그때 이승기 아역이 바지에다 오줌을 지렸다.

  • 2007년 한국시리즈 3차전 벤치클리어링에서는 당시 다음날 선발인 다니엘 리오스가 흥분한 상태로 참여했는데 홍성흔이 말리느라고 애먹었다고 한다[42]


  • 2018년부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루키팀 코치로 지도자 연수를 시작했다가 2019년에는 정식코치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메이저리그 팀의 마이너리그 운영이 중단되는 일을 겪었고, 홍성흔 역시 이 시기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기사

  • 코로나19 때문에 마이너리그 2020시즌이 통째로 취소되면서 2020년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예능 노망주로 변신했다. 화리, 화철과 함께 공부가 머니에 출연했고, 노는 언니 '가을운동회' 편에서는 남자팀 주장으로 나와 피구 시합 중에 한유미의 강슛에 고간을 정통으로 맞고 플로어를 뒹구는 등 몸개그까지 보여줬다. 2020년 11월 21일에 방영된 아는 형님김광현과 함께 출연하여 활약하였다.


  • 2021년 9월 KBO에서 최근 프로야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 선수들에게 전하는 충고의 메시지가 담긴 총 3편의 캠페인 영상을 제작했고, 허구연, 이승엽과 함께 출연했다.영상 보기



  • 어린이날 시리즈 도중 귀루지연으로 아웃된 적 있는데 이 때 이 나오는 드라마 보려고 그랬다고 농담한 적이 있다.[43] 물론 경기 후 선수단 내규에 따라 벌금을 물었다고 하며 올해 관종이 됐다고 한다.

  • 2022년 9월 17일 자에 방송된 KBS 2TV-살림하는 남자들에서 아들인 홍화철 군과 그의 친구(남자 중학생 야구선수 꿈나무)들에게 살림하는 남자들 제작진들과 비뇨기과의사 출신 유튜버 꽈추형이 자행한 성희롱 논란을 방관했다는 지탄을 받고있다. 나머지 4명의 포경수술 장면은 홍성흔이 친권을 행사할 수 없으니, 사회적인 비난수준으로 논란이 일단락 될 수는 있어도, 친자인 홍화철군의 포경수술 장면이 방송으로 나가는 것을 방관했다는 사실은 부모로서, 무책임했다는 논리이다.[44]

  • 향후 경우에 따라서 장남인 홍화철군과 각종 아동청소년 인권단체 등에게 꽈추형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제작진과 더불어서 홍성흔 본인조차도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 아동복지법 위반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정제제 + 한국야구위원회 윤리위원회에 회부될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홍성흔 야구 인생상, 최대의 슬럼프 기간이 도래했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 2023년 석가탄신일 봉축법요식에 조계사에서 불자대상을 받았다.
홍성흔 불자(법명: 향천)는 대학 야구선수 시절부터 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108배를 한 바 있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자만심을 경계하기 위해 3천배를 3번이나 하는 등 하심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부상으로 108배를 못하게 될 시에는 참선과 명상으로 마음을 수련하는 등 불자로서 모범이 되는 신행활동을 해 왔습니다. 또한 프로야구 선수 시절에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었으며, 은퇴 후에는 활발한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긍정적 에너지와 웃음을 주는 등 불자로서 타의 귀감이 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Mr. Hong Seong-heon, a Buddhist with the dharma name Hyang cheon, performed the Buddhist practice of 108 prostrations for 7 years during and after his college baseball years. In order to pacify his mind and guard against arrogance, he even performed 3,000 prostrations on three occasions. He has been mindful to maintain a mindset of humility, and when he could not do 108 prostrations due to some injury or other reason, he cultivated his mind by practicing Seon and other meditations. In this way he practices his faith as a model Buddhist. During his professional baseball player career, he gave hope and touched the hearts of others with his enthusiastic and passionate attitude. Since retirement, he has been active in broadcasting, conveying his positive energy to viewers and making them smile.

7.1. 특이사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성흔/특이사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2. 응원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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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흔 응원가

첫 번째 등장하는 응원가는 원래 롯데에서 사용하던 응원가로 홍성흔이 두산으로 돌아올때 선수 본인의 요청으로 롯데 응원가를 가져와 "롯데"를 "두산"으로 개사하여 편곡한 곡이다. 처음에는 롯데 구단의 허락을 받지 않고 사용하여 롯데 자이언츠의 조지훈 응원단장이 개인 SNS에 이에 대한 서운함을 표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원만하게 해결되어 두산에서도 은퇴할 때까지 사용했다.


8. 관련 문서[편집]


[1] 올바른 표기대로 적으면 Hong Seong Heun이 맞다.[2] 호적상 생일은 1977년 2월 28일.[3] 학창 시절은 서울특별시 강북구에서 보냈다.[4] 어린 시절 서울 도봉구 리틀야구단(現 강북구 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배웠다고 한다.[5] 2007년부터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고, 이후론 거의 지명타자로만 출전했다. 결과적으론 가장 많이 출전한 포지션이 되었다.[6] 아마 시절 최고의 포수였고, 데뷔 첫해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했으며 2007년까지 포수로 출전하였다. 통산 875경기 출전.[7] 통산 24경기. 2008시즌, 2011시즌.[8] 통산 4경기. 2009시즌.[9] 당시 신인드래프트 시점은 1998년 10월이었기 때문에 팀명이 OB 베어스였다. 이듬해 1월 홍성흔이 정식으로 입단할 시점 즈음 두산 베어스로 팀명이 변경되었다.[10]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산하 루키[11] 당시 OB 베어스였다.[12] 단, 2008년 골글은 엄연히 두산에서의 활약으로 받은 골글이다. 골글 시상식을 하기 전에 롯데로 이적했기 때문에 골글도 롯데 소속으로 받은 것이다.[13] 이적해온 선수지만 대단한 임팩트를 남기며 단기간에 기존 프랜차이즈 못지 않은 간판급 선수로의 입지를 다졌다.[14] 대부분의 누적스탯에서 역대 두산 타자들 중 김동주, 김현수와 같이 탑을 달리고 있는 두산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레전드이지만 본인 커리어의 전성기를 FA 이적 후 롯데 자이언츠에서 보냈다는 점과 부산 레전드 발언 등으로 인해 두산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몇몇 두산팬들의 여론이 좋지 않던 기간이 있었다. 하지만 두산 베어스의 각종 이벤트 데이(미스터두데이 레전드 열쇠고리 증정 등)때 홍성흔의 캐리커쳐 굿즈도 매년 계속 등장하고 있으며, 매년 신년이 되면 두산 신인 선수들에게 멘토링과 강연을 해주는 등 두산과의 동행을 이어가고있다.[15] 스탯티즈에서의 커리어 하이는 포수로서 최다안타 1위를 기록한 2004년. 타격 커리어하이인 2010시즌은 완전한 지명타자였기 때문에 포지션 보정에서 까인 게 좀 크다.[16] 그리고 상기됐듯 이해 전무후무한 5개 부문 2위를 차지했다. 타율 타점 최다안타 장타율 OPS 2위이며 득점은 3위.[17] 그 이전까지 이 기록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는 단 두 명, 전설적인 교타자 장효조와 2009년 홍성흔과 타격왕을 두고 다툰 라이벌이었던 LG의 레전드 박용택밖에 없었다. 장효조 : 0.369, 0.324, 0.373, 0.329, 0.387(1983년~1987년) / 박용택 : 0.328, 0.343, 0.326, 0.346, 0.344(2013년~2017년)[18] 이후 2020시즌에 이정후가 3시즌 연속 타율 0.330 이상에 성공했지만 우타자로서 도전한 양의지는 0.328로 아쉽게 기록 연장에 실패하고 만다. 즉 여전히 우타자로서 이 기록을 가진 것은 홍성흔이 유일하다.[19] 백인천(1982년), 장효조(1983년, 1985년, 1987년), 김종모(1983년), MBC 김상훈(1988년), 이정훈(1992년), 이종범(1994년), 마해영(1999년), 양준혁(2001년), 김현수(2008년, 2009년,2018년), 김동주(2009년), 정근우(2009년), 박용택(2009년), 홍성흔(2009년, 2010년), 이대호(2010년, 2011년), 김태균(2012년, 2014년, 2016년), 서건창(2014년), 손아섭(2014년, 2020년),강정호(2014년), 최형우(2014년, 2016년, 2020년), 에릭 테임즈(2015년), 유한준(2015년), 이용규(2016년), 김선빈(2017년), 박건우(2017년), 박민우(2017년), 양의지(2018년, 2019년), 이정후(2021년) [20] 2009년 6월 28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7이닝 동안 1루수로 뛰었다.[21] 절대 느린 발이 아니다. 평균에서 평균 이하 정도의 주력에 가깝고 포수치고는 스피드가 있는 편이지만, 우타자에다가 타구속도가 빨라 병살타가 매우 많아 느리다는 고정관념이 나온 거지 크게 느린 편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정성훈보단 느리고 김태균보단 빠른 정도다.[22] 포수로써 01, 04년 2차례, 지명타자 4차례(4년 연속 08~11년). 포수 및 지명타자 1차례는 두산 소속으로, 나머지는 롯데 소속으로 수상한 것이다. 그러나 2008년과 2010년 지명타자 골글을 제외한 4번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수상이다. 특히 가장 큰 피해자는 2001, 2004년 무려 두 번이나 골든글러브를 빼앗긴 박경완이다. 여기에 2009년 페타지니와 2011년 김동주 또한 피해자로 분류된다. 자세한 서술은 골든글러브 논란 부분과 홍성흔의 선수경력 부분에 많이 나와있으니 참조해보도록 하자.[23] 워낙에 친목의 대가로 알려져 있고 기자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 투표에서 유리한 점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24] 2012년 1월 10일 가짜 홍성흔 트위터가 적발됐었다.[25] 대표적으로 고종수, 김동주(타자)로 알려졌으나, 둘 다 오해라고 밝혔다.[26] https://news.joins.com/article/1811914[27] 강병규는 이때의 방송 출연을 계기로 예능인으로서의 변신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28] 영상 마지막에 히어로즈 유니폼이 나오는데 홍성흔이 구 두산 유니폼을 입을 때 히어로즈라는 구단이 있었던 게 2008년 밖에 없다.[29] 이 노래는 이종범선동열과 함께한 Two&One시절에도 불러 앨범에 수록되고 심지어 라이브로도 불렀었다![30] 참고로 이 가발은 전지훈련 갔다가 조성환과 같이 산 거다. 올스타전 나가면 쓰자고 산 건데 조성환은 잃어버렸다고 한다.[31] 역대 올스타전 최다득표를 기록하였다.(818,269표) 이 유니폼 홍성흔이 직접 준비한 거라고 힌다.[32] 10시즌 올스타전 최종 성적은 5타수 4안타 2홈런 3타점[33] 반면 최근엔 예능 프로그램 등지에서 버릇없다고 욕을 먹기도 한다.[34] 아버지와 달리 좌투좌타라고 한다. 그 이유는 아빠가 돈 되는 왼손잡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는 형님 어린이날 특집에서는 아빠의 모습을 화면으로 보고 따라하다가 왼손잡이가 됐다고 하며 거기서 보여준 타격폼은 좌타 버전 홍포였다.[35] 사실 이거 굉장히 팬에게 무례한 말이다.[36] 영웅스윙 발언과 이 돌직구 발언을 통해 김성근이 홍성흔을 싫어하나? 라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김성근 감독은 자서전을 통해 홍성흔이 이타적인 타자고, 팀을 위해 희생한다라고 평가를 내린 적이 있었다. 홍성흔을 비판하기 시작한건 최근의 일이고 각각 모래알 발언과 07, 08년으로 김성근 감독이라면 치를 떠는 롯데팬들과 두산팬들 조차 인정했으니 이건 홍성흔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게 맞다.[37] 그러나 김성근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 홍성흔은 지명타자 전향으로 인한 체력문제 해결로 급격한 타율 향상을 경험했지만, 그가 중심타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은 롯데 이적 후 소위 영웅스윙으로 불리는 풀스윙을 완성하면서부터이다. 그의 스윙 변화는 삼진과 병살을 늘렸지만 장타를 늘리는 동시에 다른 어떤 공격스탯에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나이로 인한 노쇠화를 감안하면 2012년 이후의 모습도 나쁘지 않다. 그의 과도한 부담감으로 인한 찬스에서의 부진과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을 비판한다고 해도, 그것이 스윙 변화와 필연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근거는 따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김성근은 최정을 교타자로 키우려고 레벨스윙을 강요했고, 최정이 고교 시절처럼 어퍼스윙만 했다 하면 때리던 감독으로 손버릇까지 안 좋았던 감독이였다. 최정은 실제로 중장거리로 활약하다가 김성근이 짤린 뒤 선임된 이만수 감독의 조언으로 어퍼스윙으로 바꾸자 단숨에 리그를 대표하는 슬러거를 입단 동기 박병호와 함께 양분하게 된다.[38] 근데 이 과정에서 모델에이전시 대표가 출연료를 빼돌렸다가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고 한다 기사 [39] 2022년 8월 30일 이대호가 통산 231호 병살을 치며 역전당했다.[40] 참고로 가장 적은 병살타를 친 타자는 타격의 달인 장효조(통산 10시즌 31개)이다.[41] 이해창도 소싯적에 고아였던 형편 때문에 야구를 그만둬야 할 상황에서 원로 야구인 풍규명이 그를 거두어 주며 야구 생활을 지속하였다. 그런데 풍규명씨의 집에 기거하던 이해창이 어린 시절부터 누나로 모시던 2살 연상인 그의 딸 풍옥희를 임신시키는 사고를 쳤고 이 사실이 들통나자 풍규명은 이해창을 죽일놈 살릴놈 하며 두들겨 팼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자식처럼 키운 정을 끊을 수 없어 일찌감치 결혼시키고 장인-사위지간이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임신후 출산한 애기가 홍성흔과 동갑내기에 같은 학번동기다.[42] 다음날 선발투수는 벤치클리어링에서 빠져도 왕따를 먹거나 벌금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때문에 다니엘 리오스는 결국 당시 선발에서 컨디션 난조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날 리오스의 상대 선발 투수였던 고졸 신인의 전설이 시작되었다.[43] 9회였다.[44] 실제로도 KBS 관찰예능 출연과정에서 (이번에 발생한 홍성흔의 논란과 더불어) 일부 연예인(유명인) 부모들의 무책임한 방송 모니터링(내용적으로 향후 아이들이 여러가지로 사회적 수치심을 느낄만한 방영내용을 제작진들에게 비송출해달라는 부모로서의 당연한 권한)을 무책임하게 수행하여 관찰예능 출연아동들이 고초를 걷은 사례가 여럿 있었던만큼, 홍성흔의 책임과 더불어 "이참에 방심위, 방통위, 여가부, 법무부의 범정부적인 대대적인 관찰예능 제작/심의 모니터링의 점검요청"이 전국민적으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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