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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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홍콩 민주화 운동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인 홍콩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이다. 시위 중 햇빛, 최루탄 등을 막기 위해 우산을 쓴 것을 계기로 우산 혁명, 우산 시위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국민당 치하에서는 자유의 많고 적음이 문제지만 공산당 치하에서는 자유의 있고 없음이 문제다.
추안핑(儲安平 1909~1966)이 1947년 잡지 〈觀察〉에 발표한 '中國的政局'이란 글에서.[출처]
시초는 제각각이지만 해당 시위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실현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민주화 운동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데, 중국 본토에서 민주화 운동이 탄압을 받는 동안 홍콩에서는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동조하는 시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토와 달리 홍콩에서는 천안문 민주화 운동에 대한 추모가 오랫동안 자유롭게 진행되었다.
2. 2014년 이전 반정부 집회[편집]
2.1. 2003년 홍콩판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편집]
파일:hong-kong-national-security-2003.jpg
2003년 홍콩 정부는 중국에 대한 반역은 물론 외국 정치단체의 홍콩 내 정치행위 등을 모두 금지하는 내용의 이른바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것이 기본권을 제한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억압할 수 있다고 생각한 시민들은 반대시위에 나섰다. 시위 인파는 한때 50만명에 이르렀고 홍콩 정부는 법안을 철회했다. 당시 홍콩에서는 SARS 전염병이 대유행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홍콩 국가보안법에 반대하여 마스크를 쓰고 시위에 참가했다.
그리고 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2020년 중국 전인대에 상정해서 통과시켰다. 중국 정부는 홍콩 입법절차로는 국가보안법을 시행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서 중국 전인대에서 직접 법률을 만든 이후 홍콩 정부를 통제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일국양제의 결정적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
2.2. 2005년 평등선거 시위[편집]
홍콩의 선거가 평등선거가 아니라며 열린 시위다.
2.3. 2009년 반분열국가법 반대 시위[편집]
2009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 기본법을 개정하려면 중국 전인대에서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반분열국가법 홍콩조항을 만들었다. 이에 대해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2.4. 2012년 애국교육 필수과목 지정 반대시위[편집]
2012년 홍콩 정부가 친중국적 내용을 강조하는 ‘애국교육’ 과목을 필수 교과목으로 지정하려 하자 ‘정치적 세뇌’라며 고등학생들이 반발했다. 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돼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여 당국의 철회를 끌어냈다.
3.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 시위[편집]
자세한 내용은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2019년 범죄인 인도법 반대시위[편집]
자세한 내용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홍콩 독립운동[편집]
자세한 내용은 홍콩 독립운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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