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서라아파트 모녀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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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건 발생
3. 범인에 대해
4. 사건 개요
5. 수사와 검거
6. 뒷이야기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캡션


1997년 7월 9일,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서 일어난 미성년자가 저지른 강도살인 사건.

2. 사건 발생[편집]


1997년 7월 9일 오후 4시 무렵. 전남 화순군 화순읍 일심리 (현재 도로명 주소 알메로 86)에 위치한 서라4차 아파트에 사는 5살 소녀 김 모 양[1]은 그 날도 평소처럼 미술 학원을 다녀와 대문 초인종을 눌렀지만 문을 열어 환한 미소로 맞이해 줘야할 엄마와 3살배기 여동생은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당황한 수빈 양은 계속해서 초인종을 누르며 울먹였지만 TV 소리만 크게 울릴 뿐 어떠한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10분 뒤 근처를 지나가던 수빈 양의 이모가 집 앞에서 김 양을 발견하여 김 양의 아빠에게 연락을 하고 연락을 받고 황급히 집에 도착한 김 양의 아빠 김 모씨(36세/개인택시 운전수)[2]열쇠로 대문을 열고 수빈 양의 이모와 큰딸과 함께 아내와 어린 작은 딸을 찾기 위해 다급히 이름을 외치며 욕실 문을 열었을 때 아내 이 모씨(32세)[3]와 둘째 딸 김 양(3세)[4]은 핏물이 철철 흘러넘치는 욕조 속에 머리를 박은 채 나란히 엎드려 숨이 끊어진 채 누워있었다.


3. 범인에 대해[편집]


주범인 김 군은 이미 특수절도 전과 1범으로 영광군에 위치한 영산성지고등학교[5]를 다니다 같은 해 1월에 자퇴하고 집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구실로 소일하던 중[6] 비슷한 시기에 같은 학교를 자퇴한 후배 채 군에게 '한탕할 곳을 봐 두었으니 화순으로 내려오라'고 전화를 건다.

이에 채 군은 단란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애인 최 양(15세)[7]에게 "화순에 가면 선배가 잠자리를 제공해 준다고 한다. 여자애들을 잡아서 팔아넘기면 우리가 동거할 집도 쉽게 장만할 수 있다."고 말하니 최 양은 이를 반갑게 듣고 친구인 윤 양(18세)[8]에게 동행을 제안하여 둘은 채 군과 함께 화순 여행에 따라나서게 된다.


4. 사건 개요[편집]


세 사람은 기차를 타고 7월 7일 오후 3시경 광주역에 도착하는데, 첫날은 김 군의 집에서 고스톱을 치며 시간을 보내고 다음날인 7월 8일부터 수퍼에서 구입한 과도 2개를 소지하고 평소 김 군이 범행대상지로 눈여겨 보아둔 근처 아파트들을 돌며 범행을 모색한다.

그러나 이들의 범행은 처음 예상한 것과는 달리 쉽게 풀리지 않았다. 첫 번째 시도는 초인종을 누르자 당시 집 안에 있던 주부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 실패하고, 두 번째 시도에서는 창문을 뜯고 실내에 들어가니 훔칠만 한 물건이 없어서 실패하고 계속해서 5~6곳의 아파트들을 돌며 초인종을 눌렀으나 인기척이 없어 모두 실패하고 만다.

이에 낙담하고 있던 차에 다음날인 7월 9일 김 군의 어머니가 친구들을 빨리 돌려보내라고 야단치자 궁지에 몰린 김 군과 채 군은 담배를 나눠피우며 마지막 범행을 모의하게 된다.

이 때 김 군의 앞집이 범행 대상으로 떠오르게 되는데, '아줌마와 아기만 있는데, 내 얼굴을 안다'고 하자 채 군은 '죽이면 되지'라는 소름끼치는 발언을 서슴없이 뱉었다고 한다. 이때 최 양과 윤 양도 낌새를 눈치채고 범행에 적극 가담하겠다며 동조한다.

같은 날 오전 11시 김 군이 앞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피해자 이 씨가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기가[9] 무섭게 김 군은 식칼을 들이밀어 이 씨를 뒤로 넘어뜨렸고 채 군은 재빨리 실내로 뛰어들어가 넘어진 이 씨를 실신에 이르도록 주먹과 발로 마구 폭행한다.

이내 기절한 이 씨를 화장실로 옮겨놓고 장롱에서 꺼낸 넥타이로 손발을 묶는 동안 최 양과 윤 양은 거실의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 놓는다. 범인들은 거실과 안방을 뒤져 다이아몬드 반지와 금반지 금목걸이 등의 신혼예물들과 현금 115,000원을 강취하고 기절해 있는 이 씨를 질식시켜 살해할 목적으로 화장실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거꾸로 넣고는 준비해 온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른 후 문을 닫았지만, 뜻밖에도 정신을 차린 이 씨가 뒤늦게 넥타이를 풀고 불을 끈 후 화장실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자 놀란 김 군이 문을 열기 위해 문짝을 마구 발로 차면서 문설주가 깨져나간다.

이 씨는 공포에 떨며 "아기는 어디 있느냐? 내 아기를 돌려다오.", "앞집 학생은 착하게 생겼는데 왜 이런 짓을 하느냐?", "살려달라. 신고하지 않겠다."라고 애원했으나 김 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씨의 아랫배에 주방에서 가져온 식도를 푹 찔러넣는다.

그리고 칼을 뽑았을 때 이 씨의 하복부에서 창자가 튀어나오자 김 군은 그것이 징그럽다며 이 씨에게 이불을 뒤집어 씌우고 채 군에게 "너도 찔러라."하니 칼을 건네받은 채 군이 이 씨의 등허리를 2회에 걸쳐 식도로 깊숙이 찌르고 다시 욕조물에 엎드린 자세로 처넣고는 등허리를 수차례에 걸쳐 반복해서 찌르다가 그만 칼손잡이가 미끄러지면서 손바닥에 창상을 입는다.

이어서 둘은 욕조위로 올라가 이 씨의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등과 머리를 밟아 완전살해한다.

이 씨의 죽음을 확인한 둘은 이제 아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의논한다. 채 군이 무언가를 생각한 듯 아기에게 다가가 "아가야. 나 누군지 알아?" 하며 방긋 눈웃음을 치자 아기는 그만 고개를 끄덕였고 공범들 중 하나가 "죽여! 죽여! 얼굴을 아는 이상 죽여야 해!" 하며 소리치자, 김 군은 채 군에게 화장대 위에 있던 인삼주병을 건네주며 아기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채 군이 아기를 향해 인삼주병을 내던지자 아기는 머리를 맞고 맥없이 쓰러지고 뒤이어 채 군은 바닥에 쓰러진 아기의 얼굴을 세차게 밟았으나 그래도 아기가 죽지 않자 이 씨가 누워있는 화장실 욕조 속에 아기를 처박고 한 명은 머리를 또 다른 한 명은 등허리를 누른다. 잠시 파닥거리던 아기는 이내 움직임을 멈췄고 둘은 5분여를 더 눌러 완전살인을 확인한다.

전부 멸살한 이후 장갑을 끼지 않은 채 군이 지문이 남아있을 지 모른다며 양동이에 물을 가득 받아와 집안 이곳 저곳에 마구 뿌리자 이로 인해 실내에 남아있던 지문들은 모두 사라진다.

범인들은 강취한 현금으로[10] 삼겹살을 사먹고 광천터미널 부근 노래방에서 1시간 가량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는 '우리 앞으로 이 이야기는 영원히 하지 말자!'라고 다짐한 후 3명은 서울로 돌아가고, 김 군만이 남는다.


5. 수사와 검거[편집]


수사에 들어간 경찰은 프로파일링을 통해
범인들은 피살자와 가까운 거리에 살며 평소 면식이 있고,
평균 연령 17~19세의 성생활이 난잡한 불량 청소년들.
해당 가정의 장자 혹은 외아들이며, 현재 손바닥에 창상을 입었다.[11]
라는 결론을 내렸고, 형사팀이 피해자의 주변사람들에게 탐문수사를 진행하던 과정에서 피해자의 큰언니가 때마침 중요한 진술을 한다.

앞집 사는 남자 아이 하나가 놀면서 소일하는데 집에 여자친구를 자주 데려와 〈포르노〉를 즐겨보며 주변 이웃들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소리를 크게 틀어 놓는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여자친구와 아무렇지 않게 〈키스〉와 〈애무〉를 즐긴다.

이에 경찰은 피해자의 앞집에 사는 청년 김 모군(1980년생, 사건 당시 17세)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규정하고 김 군의 아버지에게 집안을 좀 살펴봐도 되겠느냐고 요청한 후 현장을 살피던 중 현관에 놓인 여성용 밤색 슬리퍼 밑창에서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것과 동일한 혈흔을 발견한다.

경찰은 곧이어 광주 할아버지 집으로 피신한 용의자를 불러들여 살인범으로 지목된 이유를 설명하고 현관에서 발견된 신발과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신발의 족적과 혈흔이 일치한다는 빠져나갈 수 없는 물증을 확보했으니 자백하여 용서를 구하라고 설득한다.

이에 김 모군은 경찰 심문이 시작된 지 채 10분도 안되어 "엄마를 불러주세요. 전부 말할게요."하며 무너져 내렸고 취조실에 들어 온 엄마를 향해 "엄마 제가 그랬어요."하며 흐느껴 울부짖는다.

이후 경찰은 김 모군에게 연락하도록 유도하여 약속 장소로 나온 공범 3명을 차례차례 검거하게 되는데 그들은 채 모군(1981년생, 당시 16세), 최 모양(15세), 윤 모양(18세) 등으로 모두 4명이었고 주범인 김 모군과 채 모군은 경찰이 예상했던 그대로 모두 외아들이었으며, 주범 채 모군의 손바닥엔 처음 예상했던 그대로 주방용 식도가 미끄러지면서 생긴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었다.

당시 이 부근에서 미성년자가 저지른 흉악 범죄가 이 외에도 다량 발생했고. 사건 후 몇 년이 지나자 묻혀가는 듯 싶었다.


검거 당시 뉴스 영상. 가해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6. 뒷이야기[편집]


소년법에 의해 재판과 처벌 모두 공개되지 않았다고 세간에 이야기가 떠드나 뉴스 보도만 되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사건번호만 알면 판결문을 확인할 수 있다. 남자 2명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고 여자 2명은 징역 15년씩 선고받았다.

2008년에 방영 된 다큐멘터리 3일 죄와 벌 - 청주여자교도소 72시간 편에서 잠깐 등장한 안유진(가명) 여자 죄수가 바로 이 사건의 공범이라는 설이 네티즌들에 의해 제기되었으나, 해당 방송에서 나온 여자 죄수가 본 사건의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방송에 나온 이름도 가명이고, 어떤 범죄로 들어온 건지도 소개되지 않았다. 방송에 함께 나온 여성 역시 구체적으로 무슨 사건으로 교도소에 오게 된 것인지 나오지 않아 화순 살인사건의 범인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청소년이 15년형을 받기 위한 요건인 살인, 계획 범죄, 피해자와의 합의 없음 등을 토대로 해당 년도에 일어난 청소년 강력 범죄를 추측한 것이다. 혹시라도 만약 맞다면 문제의 여성은 2012년에 만기출소했을 것이다.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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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2년생.[2] 1961년생[3] 1965년생[4] 1994년생[5]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비행 청소년들을 선도하기 위해 원불교 재단에서 세운 대안학교.[6] 여기서 소일은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낸다는 의미이다.[7] 1982년생[8] 1979년생[9] 이 당시 전라도 지역은 현관문을 닫은 채 도어 렌즈로 상대방을 확인하거나 문을 닫은 채 대화를 나누는 것을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강해서 도어렌즈로 확인조차 안하고 문부터 열어 직접 방문자와 대면하는 일이 많았다. 범인들도 이런 풍조를 이용한 것. 도어폰이 보편화된 요즘도 전라도 출신으로 나이 많은 중장년은 도어렌즈나 도어폰으로 방문자를 확인하고 대화하는 것을 예의 없다고 생각하고 반사적으로 문부터 연다. 또한 방문자도 "사람을 문 앞에 세워두고 이게 무슨 짓인가. 최소한 얼굴을 보이고 얘기해야지."라며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했다. 오죽하면 집주인한테 예의를 차려도 모자랄 외판원이 적반하장으로 "아니 좀 나와서 얘기합시다. 문 뒤에서 그러지 말고."라고 요구할 정도로 이 시기 전라도 지역은 대면 대화를 예의의 기본으로 여겼다. 물론 안전 문제 등으로 인해 현재는 사실상 사라진 풍조이지만, 이 관행 때문에 21세기 시점에서는 방범문제로 젊은 세대와 심한 갈등요소가 되기도 한다.[10] 광주광역시내 모 금은방에서 장물들을 처분하려 했으나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이것들을 가지고 있으면 후에 꼬리가 잡힐지 모른다는 걱정에 사로잡혀 모두 유기했다.[11] 흉기를 이용한 살인시 가해자가 피해자를 흉기로 찌르면서 자기 손을 다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