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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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華嚴經
한글
대방광불화엄경
화엄경
데바나가리 문자
महावैपुल्यबुद्धावतंसकसूत्र
라틴 문자
Avataṃsaka Sutra

1. 개요
2. 내용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방광불화엄경, 약칭 화엄경은 대승 불교의 중요한 경전이다. 대승불교의 종합학습서라고 말할 수 있다.

석가모니불이 처음 깨달았을 때의 경지를 설하고 또한 그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을 설한 경전이라고 전한다. 나가르주나(용수보살)가 용궁에서 가져왔다는 전승이 있다.

나가르주나가 용궁에 갔을 때 세 가지 화엄경이 있었는데 첫 번째 화엄경은 우주와 같이 너무 커서 가져오지 못했고 두 번째 화엄경도 너무 커서 가져오지 못했으나 세 번째 화엄경은 가져올 수 있어서 가져왔다고 한다.

화엄경은 그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다 읽기 힘들다. 그래서 잛게 요약한 것이 화엄경 약찬게이다.

학자들은 화엄경을 바닷가 근처에서 결집한 경전이라고 추측한다. 우리가 아는 여러 가지 수 단위의 출처이기도 하다.

고은이 1991년에 출판한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화엄경 입법계품으로서 주인공은 선재동자. 또한 1993년에 영화화되었다. 영화에 신현준, 오태경 등이 등장하며 작품성 자체는 호평을 받았지만 내용자체가 난해해서 흥행에 실패했다. 그래도 난해함을 생각하면 크게 망한 수치는 아니라는 평이었다. 참고로 감독은 장선우이다.

화엄경의 중심사상은 '일체유심조'로, 이 일체유심조는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낸다' 혹은 '우주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은 마음이 짓는다','모든 것은 마음이 결정한다','마음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1]','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우주와 만물은 마음이 만든 것' 등 여려 의미를 가지고 있는 뜻을 지녔는데 이는 마음이 생기면 모든 존재와 것들은 물론, 만물이 창조되나[2], 반대로 마음이 없어지면 모든 존재와 것들, 그리고 만물 또한 멸함을 의미한다고 한다.[3] 그러면서, 만법유식[4]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마음과 의식을 떠난 일체의 것들은 존재할 수가 없으며, 그렇기에 우주 자연 만물 등 모든 것들의 주인이자 본체이며 곧 주체[5]이자 핵은 바로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근원이라 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6] 그러면서 이 일체유심조는 마음이 만물을 창조한다라는 의미가 아닌, 자신의 마음의 주체가 되어 세계만물을 구성해간다라는 의미로 쓰이곤 하며[7], 이 세계(우주)의 모든 일은 마음에 의해 결정이 되며, '마음'에 의해 우주만물들은 변화하고 변천하며, 모든 현상 또한 이 마음에 의해 만들어낸 것이며, 마음에 의해 만물이 지배되기에, 마음을 떠나서는 그 어떠한 것도 존재할 수가 없다고 한다.

또한 화엄경의 본래 명칭에 있는 '대방광불'은 한량없이 크고 넓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절대적 부처를 말하는데, 이 부처에 해당되는 존재가 바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8]로, 비로자나불은 어떠한 모양과 색깔이 없는 무상무색(無相無色)이고 아니계신 곳이 없는, 온 법계에 충만해 있어 항상 우리와 존재하는, 무소부주의 존재라고 한다.

그러면서, 비로자나불은 세간에 두루 계시는 변만불이며, 일체 혹은 모든 존재가 이 비로자나불 아님이 없고, 온 세계와 중생은 이 비로자나불의 현현과도 같으며, 그 능력이 부사의 해서 불가능한 일 자체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위에 서술한 것처럼 모양도 색깔도 없고 태양광명과 같이 법계에 충만해 있어 아니 계신 곳이 없지만, 생(生)할 일도 멸(滅)하는 일도 없고, 신통자재해 못하는 일이 없고, 그 공덕 또한 무량해서 법신의 광명을 한번만 보아도 부처의 지혜를 얻어 생사해탈이 가능한 존재다.[9]


2. 내용[편집]


석가모니불비로자나불이 하나가 되면서 시작된다. 하나의 작은 티끌 속에 무한의 세계가 있다. 그 무한의 세계에 수없이 많은 부처가 있다. 그 부처들의 이름은 수없이 많다. 고통을 없애는 사성제 또한 그 명칭이 수없이 많다.(이거 완전 불교판 멀티버스....) 다만 중생의 마음과 행위에 따라 무수한 이름이 붙여진 것일 뿐이다. 모든 것이 공(空)하여 실제가 없음을 알아야한다. 부처가 깨달은 법은 단 하나이며 변하지 않는다. 일체에 평등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 카르마에 의해 다르게 나타난다. 불법(佛法)을 구하려면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해야 한다. 모든 부처의 몸은 하나의 법신(法身)이다. 화엄 경계에서 보면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는 비로자나불의 화신이다. 일체 중생도 비로자나불의 화신이다. 일상생활 속에 부처의 가르침을 찾을 수 있다. 하나하나의 의미를 잘 알아야한다. 신심(信心)은 근신하는 근본이다. 보살은 모든 부처를 공양하고자 생각하여야 한다. 일체의 오욕(五欲)은 모두가 허망하고 물거품과 같다. 항상 진실하고 청정한 보살행을 구하라. 대승을 믿는 마음을 일으켜라. 최고의 깨달음 구하는 자는 보살행을 닦아야 한다.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청정한 눈을 구하여 팔정도의 길을 따르라. 일체의 차별을 초월한 모습이 부처의 성품이다. 진실을 진실이라고 알며,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지 아니하다고 알아라. 하나에 의하여 많음을 알고, 많음에 의하여 하나를 안다. 모든 것은 의지하는 곳이 없이 다만 인연에 의하여 일어난다. 깨달은 이에게는 집착이 없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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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흥이라고 하는 승려가 마음에 대해 설명하길, 마음이라고 함은 상이 없는 무상(無相)이며, 마음은 만물을 지배하며, 마음가짐에 딸차 이 세계가 정토가 되기도 하고, 슬픈 고해가 되기도 하며, 모든 것은 이 마음에 의해 좌우되고 지배된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이 마음이야말로 우주삼라만상의 근원이라 할 수 있으며, 이 마음에 의해 우주가 나오고 반대로 되돌아간다고 할 수가 있고 이 마음에 의해 우주와 우주 내의 모든 것들이 지배 및 통제된다고 할 수가 있으며(그러면서 우주의 모든 것들과 존재들은 이 마음에 의해 일어나고 나타난 것이라 할 수가 있다고 한다.) 이 마음난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음의 중심이 곧 우주의 중심이라 할 수가 있다고 한다.[2] 무엇이든지 이루어내는 마음이야말로 세게창조의 주체라 할 수 있다고 한다.[3]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원효대사와 오도성의 일화다.[4] 모든 존재자는 자신의 마음이 그것을 인식하는 한에만 있다라는 것이며, 이 세계는 나의 의식주관이 건립한 세계라는 것[5] 그러면서도 만물(세계 혹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고 우주를 지배하는 무한한 힘 그 자체라고 한다.[6] 대행의 <한마음요전>이라는 저서에 있는 내용에 따르면,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천지(天地 = 우주,세계)의 근본이자 인간이 일체 만법(모든 것, 존재, 현상 혹은 의식에 형성된 모든 현상 그리고 사상)을 운영하고 행하는 것이자 곧 선악을 초월해 모든 것을 만는 전지전능한 창조자와도 같은 것이며, 이 마음에 의해 모든 것이 형성되고 모든 것들은 이 마음을 바탕으로 하여 세워졌으며, 삼천대천세계와 삼계 또한 이 마음에 의하여 하나로 통하여 있으며, 수천수만 리 밖이라고 해도 어디든 걸림없이 넘나들 수 있으며, 그렇기에 이 우주만물은 한 정원에 오손도손 모여 사는 거와도 같다고 한다. 거기에, 마음은 정해진 형상이 없기에 못 미치는 곳이 없고, 도달하지 못하는 곳도 없기에 우주 전체를 감싸기에 어디든 갈 수가 있는, 즉 우주 전체를 탐험할 수가 있으며, 우주를 운행하고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거기에, 그 도리만 안다면은 능히 무궁무진하게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있고 빛보다도 빠르면서도 그 무엇도 막을 수 없고 더럽힐 수조차 없고, 죽는 것도 산 것도 없고 시공을 초월해서 본래로 있는 것이며, 용도에 따라서는 무한으로 쓸 수가 있으며, 이 마음 하나로 우주세계를 조절하고, 여려가지 문제들을 조절할 수가 있으며, 자력, 광력, 전기력, 통신력을 모두 갖추고 있고, 무한의 능력을 지녀서 자력으로 끌어오기도 하고, 통신력으로 통하기도 하고 자재롭게 주고받을 수가 있고,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고, 하느니 못하느니에도 끄달리지 않고, 이 마음 하나로 자재롭게 살 수 있고 우주 삼천대천세계, 상대의 속, 오고 가는 도리를 알고 볼 수가 있게 된다고 한다.[7] 예를 들어 붉은 연꽃이 있다면, 마음이 눈 앞의 물자체인 연꽃을 만들었다라는 의미가 아닌, 연꽃에 마음이 개입하고 명칭을 짓고 개념을 짓고 가치를 지었다라는 의미가 되며, 연꽃이라는 이름, 그리고 색이 붉은 것, 그리고 줄기,잎,꽃이라는 구분도, 연꽃은 저렇게 생겼다라는 개념 또한 모두 마음에 의해 구성된 것이며, 그렇기에 연꽃은 자신이 보는 것처럼 고정불변한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바라보는 중생으 마음에 따라 천만가지의 형태로 나타나며, 연꽃은 공하여 실체가 없는 것이나, 오로지 마음에 정해놓고 실체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보니, 눈앞에 전개된 모든 사물과 읻를이 마음에 의한 조작을 알게 되면 부처를 알고 진리를 보게 된다고 한다.[8] 그러면서 화엄경의 주불(主佛)이라고 한다.[9] 불교 교학에서는 이를 법(法)이자 제법의 실상이고 우주의 법칙이자 자연의 섭리이며 곧 인간과 인간 사이의 도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