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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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雄

(? ~ 191)
1. 개요
2. 정사
3. 연의
4. 이름 논란
5. 기타
6. 미디어 믹스




1. 개요[편집]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려 하십니까?"

- 삼국지연의[1]


후한 말의 인물로 동탁의 부하 장수.


2. 정사[편집]


생전에 동탁을 섬겼다. 동탁이 권력을 잡고 전횡을 일삼자 이에 원소를 맹주로 한 반동탁 연합이 결성되었다. 이듬해, 연합군의 일원인 손견반동탁 연합군을 이끌고 양인 땅에 이르자, 동탁은 호진을 대독호(大督護)로 삼고 여포에게는 기병을 맡겨 요격을 맡겼다. 화웅은 여포와 함께 도독으로 출진해 양인성을 공격했으나, 오히려 손견에게 역관광당하면서 화웅도 전사했다.

삼국지 정사에서는 오서(吳書) 손파로토역전(孫破虜討逆傳 - 손견전)에서만 등장하는데, 딱 한 번 그것도 손견에게 참수당하는 모습 밖에 나오지 않는 인물. 관우에게 당했다는 건 연의의 창작이다. 동탁전에도 양인 전투 부분은 호진과 여포만 언급되지 화웅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堅復相收兵,合戰於陽人,大破卓軍,梟其都督華雄

손견은 다시 군세를 모아 양인에서 싸워 동탁군을 대파하고, 그 도독 화웅 등의 목을 베었다.



3. 연의[편집]


삼국지연의에서는 삼영전여포의 개막 출연 캐릭터다. 처음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되자, 동탁여포를 출격시켜 연합군을 막도록 하려는데, 이에 화웅이 나서서 연합군 따위를 막는 데에는 자신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동탁을 설득하여, 결국 효기교위가 되어 사수관을 수비했다. 정사와는 달리 호진은 화웅의 상관이 아닌 부장으로 출진하며, 화웅은 원래부터 도독이 아니라 포충을 베고 나서 도독으로 승진하는것으로 나온다.

화웅은 상당히 인상적인 엑스트라인데, 다른 게 아니라 연합군 상대에 여포까지 갈 것도 없이 자신이 가면 된다고 설득할 때 나온 최고의 명대사,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려 하십니까?" 덕분이다. 여포를 띄워주면서도 뒤로 모셔놓고 스스로 활약할 기회를 채어가는 굉장히 현명한 발언이며 비유 자체도 뜻이 확 와닿기 때문에 유명하다.

거기다 연의의 묘사로는 키가 9척에 몸집은 호랑이에 허리는 이리에 머리는 표범에 팔은 원숭이라고 한다. 이런 괴악하고 무시무시한 괴물 용장을 묘사해놓고 저렇게 사회생활 제법 잘할법한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애당초 저 발언 자체가 논어를 인용한 발언임을 생각하면 글월 좀 읽은 무장이라는 얘기도 되고. 심지어 여포는 완전히 신참자 주제에 군부 최고 자리를 꿰찬 낙하산 그 자체, 분명 동탁의 서량 시절부터의 숙장이었을 화웅으로서는 탐탁찮은 상대였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예를 갖춰 대하는 게 독자들에게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렇게 나선 후 연합군을 상대로 맹활약한다. 사수관을 지키면서 연합군의 선봉 손견과 싸울 준비를 했는데, 포신이 공을 다투어 자신의 아우 포충에게 병사를 주어 먼저 공격하게 했으나 포충은 간단히 끔살당했다. 이윽고 손견이 나타나 공격하였는데 손견과 화웅은 일단 대등한 전투를 벌인다.[2]

하지만 손견이 공적을 세워 기세가 높아지는 것을 경계한 원술이 손견에게 군량미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트롤짓을 터트리고, 굶어서 세력이 약화된 손견군은 엎친데 덮친격으로 화웅의 야습까지 받아 어이없이 패퇴한다. 이 과정에서 손견의 부하 조무가 손견을 대신하여 목숨을 바친다. 손견의 패배 소식이 전해지고 원소는 이를 어찌하면 좋겠냐며 의견을 묻지만 모두들 대답하지 못하고, 오직 유관장 삼형제만 공손찬의 뒤에서 냉소한다. 이를 본 원소가 누구냐며 묻자 공손찬이 유비의 출신과 행적을 설명해주고, 원소는 어쨌든 황족이니까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라고 명한다.

이 와중에 사수관을 나온 화웅이 18로 제후군의 진영 앞에서 손견의 붉은 두건[3]을 보여주며 도발하자 원술의 부장 유섭, 한복의 부하 반봉 등이 일 대 일로 싸우러 나갔다가 화웅에게 당한다.[4]

이렇게 되자 연합군의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누가 다음으로 상대하겠냐 해도 누구도 선뜻 나서려 하질 않는다. 이 때 관우가 자진해서 나서지만 원술은 어디서 마궁수 따위가[5] 나대느냐며 호통쳤고, 원소는 그나마 점잖을 차리긴 했지만 그래도 일개 마궁수를 보내면 화웅도 비웃지 않겠냐며 반대 의견을 내비친다. 다행히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전에 조조가 나서서 '저렇게 나서는데 어디 한 번 싸워보게 해줘도 손해는 아니지 않느냐, 저사람 생긴것도 당당하니까 화웅도 아마 마궁수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다'라며 중재를 한다. 그리고 출전을 허가받은 뒤 관우에게 데운 술 한 잔을 대접하는데, 이에 관우는

"먼저 술을 따르십시오. 제가 곧 돌아오리다."


라고 하고 출진했다. 혹은 "그 술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라고 했다는 버전도 유명하다. 하여튼 그렇게 출전한 관우는 단칼에 화웅을 베고 돌아왔는데 아직 술이 식지 않았다.

참고로 이 장면은 수나라의 기록인 《수서》의 장면을 각색한 것이다.

한왕(漢王) 양량(楊諒)이 반역해, 교종규(喬鍾葵)를 파견해 대주(代州)를 포위했다. 교종규에게는 장수 왕발(王拔)이 날래고 용맹하며 전투에 능하여, 양의신은 이를 근심해, 왕발을 당해낼 수 있는 자를 모집했다. 거기장군 왕사은(王思恩)이 그를 감당하길 청하여, 양의신(楊義臣)이 이르길 "장사로다!" 적은 양의 술을 줬다. 왕사은이 왕발을 멀리서 바라보고는, 곧 땅에 잔을 던지고, 말을 채찍질해 그에게로 달려가나, 재차 이기지 못하고, 왕발에게 살해당했다.

《수서》


정사에서나 연의에서나 비참하지만, 달랑 한 줄에 그친 정사와는 달리 연의에서는 상당한 포스를 지닌 중간 보스급으로 등장해 취급이 달라졌다. 연의에서 자주 나오는 '관우 띄우기를 위해서 적 무장을 강화시키는' 버프를 잔뜩 받았다.[6]

연의에서도 개연성을 위해 작품에 따라 여러 차례의 승리로 우쭐해있던 화웅이 대비하지 않고 있다가 갑작스레 공격해온 관우를 미처 막지 못하고 당했다는 식으로 화웅의 실력을 변호하는 내용도 있는 편이다.[7]


4. 이름 논란[편집]


일단 위에 언급되어 있듯이 정사 삼국지에서는 분명히 도독 화웅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에 대해 청나라 시대의 삼국지집해에서 반비(潘眉)는 화웅의 계급이 도독이 아니라 도위이고 본명도 섭웅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화웅의 본명이 섭웅(葉雄)[8]이 아니냐는 것이 논란이 있다.

삼국지 집해에는

독(督)은 위(尉)로 고쳐야 하며, 화(華)는 섭(葉)으로 고쳐야 한다. 《광운(廣韻)》 29의 '葉' 항목에 《오지(吳志 ; 삼국지 오서)》 손견전에 '도위 섭웅(都尉 葉雄)'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송본(宋本)또한 이렇게 적혀있다. 이는(도독 화웅) 잘못된 것이니, 광운의 기록을 따라야 한다.


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견해에 대해서는

  • 일단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 오서 손견전에 분명히 도독 화웅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점.
  • 삼국지 집해가 근거로 인용한 광운(廣韻)이란 책은 북송 시절의 책으로 삼국시대보다 800년이나 먼 훗날 쓰인 책이고, 광운 자체가 전문적으로 삼국지를 다루는 책이 아니라 운서라는 점[9]
  • 후한 말부터 삼국시대에 걸쳐 섭(葉)씨성을 가진 무장의 기록은 아무도 없으므로 섭웅이 옳다고 볼 근거도 부족하다는 점.[10]

이런 이유로 부정적으로 본다. 애초에 정사 삼국지에 멀쩡히 등장하는 화웅을 청나라 시절에 쓰인 해설서를 근거로 하여 섭웅이라고 볼 이유는 없는 셈. 이와 별개로 후한 말부터 삼국시대에 걸친 무장 중에 섭씨가 없긴 해도 해당 성씨는 춘추시대 말기 초나라의 장수인 심윤술의 아들 심제량이 섭 땅에 봉해져 이를 성씨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자치통감과 통지(通志-남송의 역사서)에도 짤막하게 섭웅이란 사람이 있다고 나오는데 모두 삼국시대로부터 700년 이상 뒤의 저작들이다. 아무래도 송대에 화웅을 잘못 본 게 퍼진 듯. 왜냐면 송대 이전의 서적에서는 섭웅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삼국지 관련 팬덤에서는 화웅과 섭웅이 두 명 있는게 아니냐는 논란도 잠깐 일었으나 둘 다 정사 손견전에만 등장하는 인물이고, 섭씨성을 가진 무장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현재는 부정적.

어쨌든 한중일 삼국 모두 일반적으로 화웅이라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고, 영어권에서도 'Hua Xiong'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섭웅이라는 주장이 옳다고 해도, 주요한 자료에서 섭웅이라고 쓰는 곳이 아무데도 없으니 현실적으로는 화웅으로 쓰는 것이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5. 기타[편집]


  • 연의에서 적 세력의 선봉장으로 나와 계속해서 승승장구를 하면서 공포에 질리게 했다가 주인공 측의 장수가 죽여버린다는 화웅의 행적이 성경의 골리앗과 비슷하다. 둘 다 거한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 주인공, 세계관 설명이 담긴 프롤로그 격인 황건적의 난, 내부 정치-정변을 묘사한 십상시의 난 이후 처음으로 각 네임드 제후들과 동탁군이 총 출동하여 대격돌하는 삼국지 초반의 대형 이벤트인 반동탁연합 에피소드의 서두를 상술한 “닭 잡는 칼” 명대사와 함께 임팩트 있는 등장으로 장식했기에 이말년은 이 명대사가 없었으면 삼국지 시리즈에 개근출석하기 힘들었을거라 평하였다. 일명 “닭칼좌”.

  • 인터넷 방송인 강소연의 별명이다.


6. 미디어 믹스[편집]


화웅/기타 창작물 문서로.

[1] 연의의 오리지널 대사는 아니고, 논어에서 공자가 제자 자유의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정치능력에 감탄하여 칭찬한 것이다. 공자가 농담으로 한 말이라고 본인이 인정한 꽤나 독특한(?) 구절. 한대 이래의 필독서였던 논어이니만큼 이 구절도 당연히 매우 유명했을 것이고 나관중의 시대에는 하나의 관용어로 굳어졌을 가능성이 있다.[2] 혹은 손견에게는 어느 정도 밀렸다고도 한다. 화웅 측에서는 호진이 정보한테 죽고, 손견 측도 공성전을 벌이다보니 병력에 피해가 있었다 정도로 서술한다.[3] 앞서 조무가 손견의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 두건을 가져다 써서 화웅을 유인했다.[4] 화웅에게 목숨을 잃은 자들 중 조무를 제외하면 모두 연의의 가공인물에다 그 조무도 손견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부분은 정사에서는 서영과 싸울 때의 일이다.[5] 참고로 마궁수는 고을의 기병대장을 의미한다. 아무리 유비의 최측근이라고 하지만 당시 유비는 현령에 불과했다. 그 측근이라고 해서 직위가 높을 리 없었다. 즉, 말이 좋아 기병대장이지 실제론 군수를 따라온 지역 방위 소대장 정도였다.[6] 안량, 문추도 죽기 전에 버프를 엄청나게 받는다. 안량은 여포를 배신하고 조조에게 투항한 송헌과 위속을 원턴킬 내는데다 심지어 앞의 둘과는 비교도 안되게 강한, 조조 휘하의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장수인 서황마저도 20합 만에 패배시켰다. 문추는 한술 더 떠서 조조의 매복에 걸렸을 때 정사에서는 그냥 죽지만 연의에선 오히려 장료와 서황을 동시에 상대한다. 뒤이어 바로 관우에게 끔살당하지만 이것 때문에 조조의 매복이 별 의미없어 보였다.[7] 이 점에서는 관우가 나타나자 인사를 하고 유비가 자기네 원소편에 있다는 걸 얘기하려다가 관우의 적토마가 너무 빨라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당했다고 연의에서 묘사하는 안량의 경우와 유사점이 많다. 실제 정사로는 관우가 본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안량의 대장기를 보고 적진을 돌파해서 잡은 것. 그나마 안량은 용맹했다고 기록이라도 여러군데 있기라도 하다.[8] 葉은 성씨로 쓸 때는 '엽'이 아니라 '섭'으로 읽는다. 참고로 엽문도 원래는 고대 중국어로 하면 '섭문'이라고 읽는 식이 정상이지만 현대 중국어에서는 그냥 '엽', '섭' 구분없이 '엽'으로 발음을 통일했기 때문에 상관이 없어졌고, 보통은 광동어식 발음인 '입만'을 따르는 편이다.[9] 한시를 지을 때 쓰는 한자들을 분류해 놓은 일종의 발음 한자 자전. 때문에 광운의 29 '葉' 항목에는 달랑 吳志 孫堅傳 有都尉葉雄(오지 손견전 섭웅이라는 도위가 있다)는 말만 써 있다. 광운에 대해서는 여기로 이동할 것.[10] 이 때는 아직 과거제도가 없던 시절이므로 관직은 지체높은 가문의 혈족들이 돌려먹는 식으로 주어졌는데, 만약 섭웅이라는 무장이 실제로 있었다면 그의 아버지든 아들이든 형제들이든 친척들이든 한 명 정도는 사서(史書)에 이름을 남긴 섭씨 무장이 있을 법도 하다. 그런데 아무도 없으니 과연 섭(葉)씨 성을 가진 무장이 있겠느냐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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