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에 숨겨진 비밀

최근 편집일시 :

1.1. 김민지 괴담
1.2. 10원 동전 양김씨설
1.3. 노태우가 10원 동전에 불상을 새겼다?
1.4. 마당쇠
1.5. 희귀한 주화들
1.5.1. 발행량이 희소한 주화
1.5.2. 귀금속이 포함된 주화?
1.6. 50원 벼이삭


1. 대한민국 원[편집]



1.1. 김민지 괴담[편집]


2000년대 이전까지 크게 유행했던 괴담이다. 동전들은 지금도 통용되고 있지만 지폐 부분은 현재 많이 사용되는 신권 지폐 직전의 구권 지폐에 대한 것이 많아 2010년대 이후 떡밥이 상했다.

당시 한국에서 화폐를 새로 만들 당시 한국 조폐공사사장이었던 사람의 딸이 토막 살인을 당하는 바람에 조폐공사사장이 슬퍼하며 자신의 딸을 암시하는 것들을 화폐에 몰래 숨겨 놓았다고 한 것. 한국은행 총재의 딸이라는 버전도 있으며 무당이 몰래 숨기라고 지시했다는 변형도 있다.

이름은 김민지 (Kim Min Ji).#

  • 10원 주화다보탑 하단에 구조물이 한글로 '김'자를 옆으로 눕혀놓은 것처럼 되어 있다. 1982년까지 쓰인 구형 10원은 뚜렷하게 김 자 모양으로 보이고 이후 동전에서도 옆으로 돌리면 김 비슷한 모양이 보인다. 하지만 이건 애초부터 경주시 불국사에 있는 다보탑 실물에 '김'과 비슷한 모양이 존재하는 경우다. 한글이 생기기도 한참 전인 1,300년 전 신라 장인이 이미 이렇게 만든 것이므로 화폐 디자이너하고는 아무 상관 없다. 또 다보탑 가운데에 작게 보이는 동물 같은 것이 민지가 갖고 논 인형이란 말도 있었는데 이건 그냥 실제로 불국사 다보탑 위에 있는 해태상(또는 사자상)이다.
  • 50원 주화의 경우 김민지를 살해한 '' 비슷한 것이 있다. 뒷면의 이삭만 가지고 괴담을 만들어내기 뭣하기 때문에 다양한 변형이 존재한다. 왼쪽 첫 번째 이삭의 낱알 수가(9개) 김민지가 살해당할 당시 나이였다는 설, 모든 낱알 수의 합이 범인 나이라는 설(28개), 오른쪽 아래를 보면 잎이 꺾어져 있는데 낫을 상징한다는 설, 낱알이 민지 엄마의 눈물이라 해마다 하나씩 늘어난다는 설, 시체가 발견된 곳이 논이라서 벼이삭을 그려 넣은 것이라는 설 등이 있다. 벼가 토막 살인을 당한 김민지의 마디마디 잘린 손 이라는 설, 벼 이삭 수가 토막난 부위의 수라는 설, 벼 이삭 중 유독 동그란 게 김민지의 눈이라는 설도 있다.
  • 100원 주화이순신상의 위아래를 뒤집어 보면 이순신의 수염 자리에 고통스러워하는 민지의 얼굴[1]이 보인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세상에 세상을 떠난 자기 자식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기억하고 싶은 부모는 없으며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는, 그것도 모든 이들이 사용하는 돈에 남기고 싶다는 병적이고 뒤틀린 생각을 가진 부모는 더더욱 없다.
  • 변형으로 100원 주화의 위아래를 뒤집어 보면 이순신 장군의 가운데 수염이 여고생의 긴 머리, 양 옆으로 어깨가 보이는 뒷모습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 500원 주화의 다리 부분은 사실 민지의 팔이라고 한다. 근데 원래 학 다리가 그렇게 생겼다고 한다.
  • 천 원권 지폐의 앞페이지 투호 끝부분을 자세히 보면 진짜로 'MIN'자 처럼 보이는 단어가 있다. 이건 위의 여러 말장난과 달리 진짜로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에 괴담의 신빙성을 보증해 주는 주 근거가 됐다.[2]
  • 오천 원권 지폐의 율곡 이이의 눈 안에는 '志'라는 한자가 보이고 오천 원권 지폐 뒷면을 보면 오죽헌 앞에 원래는 없는 비석이 있고, 거기에 '知'라는 한자가 있다고 한다. 후자는 그냥 루머다. 오죽헌 앞에 실존하는 비석이며 도안에 그려진 것도 知가 아니라 江陵이다.#
  • 만 원권 지폐세종대왕의 오른팔에 김민지의 두 다리가 그려져 있다. 신권 지폐에서는 이 루머의 존재가 거슬렸는지 신기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김민지의 다리'에 해당하는 그 무늬 부분을 지워 버렸다.

1990년대에는 하도 여기저기서 김민지 괴담으로 하도 말이 많고 시끄러웠기 때문에 한국조폐공사에서 직접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다." 라고 공식 발표까지 했다. 김씨 성을 가진 조폐공사 사장은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사장직을 지낸 김무룡 사장 단 1명이었는데 아들만 둘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남자 이름으로 '민지'를 쓰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보다시피 위의 괴담은 여자아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김민지는 사실 남자였다고 하면 앞뒤가 안 맞는다. 애초에 조폐공사 사장 정도 되는 사람의 딸이 토막 살인을 당했다면 전국이 떠들썩했을 것이 뻔하다.

파일:minzodia.jpg

위의 김민지 괴담에 나온 요소를 모두 조합해 보면 대략 이런 모습이(...) 된다. 나는 그루트다? 2000년대 초중반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김민지 괴담을 소개하면서 마지막에 위의 짤방이 토막 살인을 당한 김민지의 사진이라는 낚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1.2. 10원 동전 양김씨설[편집]


과거 10원 주화 가 형(1966년 적동화)과 나 형(1970년 황동화)는 다보탑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도안이었다. 따라서 하단 좌우 양측 구조물이 확실하게 '김'자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YSDJ 양김씨를 상징하기 때문에 군사정권에서 1983년 새로 발행한 다 형부터는 다보탑 도안을 약간 틀어서 '김'자가 안 보이게 만들었다는 도시전설. 도안은 10원 주화 문서 참조. 이 역시 앞의 토막살해당한 딸처럼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약간 틀었어도 '김'자는 얼핏 보인다. 애초에 실제 다보탑을 1,300년 전 신라 장인이 만들 때 이미 김 자를 눕힌 것 비슷한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군사정권이 진짜로 '김'으로 읽히는 것 자체를 없애고 싶었다면 그냥 다보탑 말고 다른 물건을 동전에 넣도록 바꾸면 해결되었을 것이다.


1.3. 노태우가 10원 동전에 불상을 새겼다?[편집]


이 루머도 한동안 유명했는데 전두환 집권기인 1980년대에 차기 대통령을 꿈꾸던 노태우에 가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이에 스님 왈 "전국민이 집집마다 불상을 모시게 하면 된다"라고 대답했다고. 그러나 한국의 불자의 수는 전체 인구의 절반도 안 되는데 그게 가능할까. 고심 끝에 노태우는 10원 주화 다보탑에 불상을 새겨넣기로 했고 그래서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카더라. 하지만 이것 또한 도시전설에 불과하다.

일단 1983년에 화폐 디자인이 변경되면서 예전과는 달리 다보탑 기단에 뭔가 조그마한 것이 그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주 불국사에 가서 다보탑 실물을 보면 알겠지만 이것은 불상이 아니라 돌 사자상이고 실제로 옛날부터 다보탑에 돌사자상 하나가 딸려 있었기에[3] 실제 모습을 고증해서 10원에 새겨넣은 것뿐이다. 한국은행에서도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1982~83년경 노태우는 체육부장관과 내무부장관, 대한체육회 회장,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임시위원장 등을 역임하긴 했으나 당시까지만 해도 아직 전두환의 후계자로 확실하게 정해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소관 업무도 아닌 화폐 도안 변경에 대하여 지시를 내렸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리고 일단 그 당시는 전두환의 집권 초기 안정화 단계라 권력이 하늘을 찌를 때인데 뒤에서 또 반란 모의나 다름없는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게 알려지면 노태우는 친구든 뭐든 가차없이 숙청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박정희도 마찬가지였듯이 독재자들은 그 자신이 쿠데타와 같은 방식으로 집권했듯 자신도 역시 그런 일을 당해서 물러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

6월 항쟁 이후 군사정권 종식을 희망했으나 신군부 출신인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실망한 시민들 사이에서 퍼져나간 루머로 추정된다.

참고로 화폐에 정말 불상이 그려질 뻔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1972년 만원권 지폐 디자인을 석굴암 본존불로 정하고 박정희의 서명까지 받았으나, 기독교계는 당연히 "특정 종교 편향"이라며 반대했고 심지어 불교계에서조차 "부처님을 세속의 상징인 돈에 새긴다"고 반발하여 흑역사가 되었다. 자세한 것은 이쪽 참조.


1.4. 마당쇠[편집]


구 1,000원권 뒷면의 도산서원에는 마당 쓰는 마당쇠가 어딘가 숨겨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찾는 동안 마당을 다 쓸고 들어가 버린다. 1989년에 방영한 MBC 어린이 드라마 '댕기동자' 에 이것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1.5. 희귀한 주화들[편집]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에서만 사용되는 것으로 '150원'짜리 주화가 있다. 화폐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조폐창 직원들은 동전을 반입/반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150원짜리 '코인'을 구매해 사용한다고 하며 자판기 음료수를 사먹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액면가가 150원이라고 적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판매가격이 150원이다. 1원짜리보다 작은 크기이고 아무런 무늬나 도안이 없는 민무늬 주화다. 150원 주화 관련 게시물

200원짜리 희귀동전 이야기가 있으나 사실 이는 기념주화이고 전량 수출했다가 일부가 역수입된 거라 존재 자체가 희귀하긴 하다. 같이 생산된 기념주화에는 25,000원, 20,000원, 2,500원, 250원 같은 액면가를 가진 것들도 있다. 실제 일반용으로 유통된 200원 주화는 없다.

연도별로 발행량이 희소해서 희귀품 취급받는 주화가 있으며 연도별 세트를 만들고자 할 때 비어 있는 칸이 생긴다. 그런 주화중에서 귀금속이 포함되었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하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780원은 일종의 유사화폐다. 꽤나 뿌려댔기에 희귀하다고 취급해 주긴 힘들다.


1.5.1. 발행량이 희소한 주화[편집]


  • 1981년 10원 주화: 10만 개

  • 1981년 100원 주화: 10만 개

  • 1982년 1원/5원/10원/100원/500원 무광 프루프용 주화: 2,000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발매된 통용주화 프루프 세트. 완세트가 대략 500만 원에서 800만원까지 거래되고 있다.

  • 1999년 5원 주화: 약 10,000개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인지 1999년 5원 주화는 민트세트로만 발행되었고 원래 5원 주화는 1995년 이후 민트세트로만 발행하기 때문에 1995년 5원 주화는 물론이고, 아무년도가 박힌 5원 주화도 찾기 힘들 것이다. 1999년 5원 주화는 미사용일 경우 대략 40만 원에서 50만 원에 거래되고 사용제라도 최소 20만 원 이상은 거래된다. 1998년 500원보다 더 저렴한 이유는 발행량이 2000개 정도 차이나는 것도 있겠지만 희귀하다고 하여도 아직 수집가들의 1999년 5원 주화 인기는 얼마 없기 때문이다. 화폐의 가격은 희귀성과 희소성을 따라가는 수요가 조화로워야 가치가 1998년 500원처럼 가치가 상승한다. 원래 1998년 500원도 2000년도까지만 해도 5만 원선에서 끝났으니까. 이후에 인기도에 따라 가치가 상승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면 1999년 5원 주화를 구입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1999년 5원 주화는 회현지하상가나 화폐 수집 카페에 들어가서 구입할 수 있다. 웬만하면 화폐수집 카페에서 구입하는 걸 추천한다. 회현지하상가에서 구입하면 무슨 화폐든 더 비싸질 수 있기 때문. 자세한 건 오원화에서 참고.

  • 1998년 500원 주화: 약 8,000개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주화 중 가장 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화폐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못해도 80만 원은 넘게 거래된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외환위기 때문에 1998년에는 500원 주화를 극소수만 발행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사실이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가정에서 잠자고 있던 주화가 쏟아져 나와 시중의 주화 유통량이 폭주해 1998년에는 500원 주화를 한정생산했다. (약 8,000개) 그리고 이걸 시중에 유통시킨 게 아니라, 주화세트로 만들어서 해외 대사와 귀빈들에게 증정했다. 일부는 한국은행 직원들에게도 증정된 듯하다. 그리고 민트에서 해체되어 실제 시중에 풀린 건 1,000여 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때문에 그 주화들은 프리미엄이 붙어 돌아다닌다고 신문 기사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으며 위에 말한 주화 이야기 또한 거기서 나왔다. 1998년도 500원의 가치는 그 기사에 따르면 약 30만 원, 100원짜리의 가치는 10만 원 정도였다. 다만 현재 1998년 500원의 가치는 100만 원을 넘지만 100원은 2~3천원대이다.
자세한 건 오백원 주화 참고. 그 외에도 1987년 발행된 500원 주화 역시 희귀 주화로 취급된다.[4]


1.5.2. 귀금속이 포함된 주화?[편집]


특정년도산 10원짜리가 제작 당시 금속비중을 잘못 맞춰서 국가적으로 전원 회수했지만 회수되지 않고 일부 남아있는 10원짜리는 매우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같은 이야기가 인터넷에 많이 퍼져 있는데 믿지 말자. 현행 주화 가운데 어떤 주화도 회수된 사실이 없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1966년 10원 주화: 1980년대쯤에 10원권 주화 중 1966년 발행 10원 주화에는 이 섞여있다는 괴담이 퍼진 적이 있다. 그래서 이 괴담을 접한 사람들이 1966년에 발행된 10원 주화를 수집하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괴담은 거짓인 것으로 밝혀졌다. 애초에 금의 특성이 쉽게 변색되지 않는다는 것임을 생각해 봐도 말도 안 되는 얘기다.

  • 1975년 100원 주화: 위의 10원 주화처럼 1978년에 조폐국의 실수로 1975년 발행된 100원권 주화에 이 다랑 섞여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 한국은행에서 전량 수거한다며 개당 50배를 더 붙인 5,000원씩에 사들인다는 루머가 돌았다. 실제로 여의도의 한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은 물론이고 선생까지 이 루머에 낚여서 1주일간 1975년 발행 100원권 주화 200개(액면으로 2만 원)를 모아서 은행에 가져갔다고 한다. 만약 이 루머가 사실이었다면 2만 원의 50배인 100만 원으로 환전받을 수 있었겠지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환전받지 못했다. 100원 주화의 재질은 구리니켈의 합금인 백동인데 백동이라는 게 은빛과 비슷한 빛을 내기 때문에 이런 루머가 쉽게 퍼진 것으로 보인다. 그때 발행한 100원 주화가 아마도 은빛에 유난히 가까웠던 듯. 여담으로 100원과 비슷하게 생긴 100엔 주화에는 실제로 1966년까지 이 함유되었다고 한다.

  • 1981년 100원 주화: 위의 1975년 100원처럼 조폐국의 실수로 백금이 섞여서 국가에서 회수했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근데 이건 다른 루머와 달리 현재까지도 돌아다니고 있다. 현재는 사장되었지만 1981년 10원 주화에도 금이 섞였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1.6. 50원 벼이삭[편집]


50원짜리의 벼이삭의 숫자가 44개라는 소문. 확인해 본 결과 한 개 모자라다.

파일:external/cfs6.tistory.com/download.blog?fhandle=YmxvZzgxMjkwQGZzNi50aXN0b3J5LmNvbTovYXR0YWNoLzAvMTUwMDAwMDAwMDAxLmpwZw%3D%3D&filename=ftwon.jpg
오오 근성왕 오오

참고로 72년도 도안으로 발행된 주화는 28개, 83년도 도안으로 발행된 주화는 43개라고 한다.


2. 미국 달러[편집]


  • 1달러의 뒷면 피라미드와 그 중앙에 위치한 전시안(全視眼),"IN GOD WE TRUST" 문구는 사실 프리메이슨의 상징이라는 음모론. 이쪽 계열에서는 워낙 유명하다.


2.1. 9.11 테러 관련[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9.11 테러/도시전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일본 엔[편집]


이는 미국의 1달러 지폐 음모론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 천 엔짜리의 모델인 노구치 히데요의 초상을 절반으로 잘라 보면 왼쪽은 일본인 얼굴이지만 오른쪽은 유대인 얼굴이다.
  • 천 엔짜리의 배경에는 후지산이 그려져 있지만 호수에 비친 모습은 전혀 다르다. 뒤집어 보면 이스라엘의 시나이산임을 알 수 있다.
  • 천 엔 지폐를 불빛에 비추어 뒷면의 후지산 그림과 노구치의 얼굴을 합쳐 보면 프리메이슨의 상징인 전시안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전시안은 위의 유대인 얼굴에 있다.
  • Nippon Ginko(일본은행)의 N부분을 접으면, WWW가 나타난다. 이는 악마의 수 666을 상징한다. 사실 월드 와이드 웹의 WWW이라 카더라
  • 천 엔 지폐 구석에 있는 꽃무늬에도 666이 숨어 있다.
  • 이천 엔 지폐 뒷면에는 프리메이슨의 상징인 컴퍼스와 직각자가 그려져 있다.
  • 오천 엔 지폐의 모델인 히구치 이치요의 一葉는 '이치'와 '하'로 읽을 수 있다. 이는 一八, 즉 18을 가리키며, 18=6+6+6이므로 악마의 수 666을 상징한다.
  • 겉면의 五千円 표기 중 千 밑에는 야훼의 눈이 숨겨져 있다.
  • 오천 엔 뒷면에는 유대교를 상징하는 촛대 그림이 있다.
  • 만 엔짜리의 겉면 무늬에는 육망성이 2개나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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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혹은 잘린 머리와 머리카락.[2] 그런데 이 기호는 1984년 5월 3일 발행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기념우표에도 있다. 이 우표는 요판으로 조각된 우표들인데 지폐 역시 요판 조각이 되기 때문에 아마도 요판 조각 디자이너가 일종의 자신만의 표시를 한 듯하다. 참고로 이 우표와 지폐의 요판 조각을 한 디자이너의 이름은 병휘다.[3] 사실 신라시대에는 돌사자 4개를 다보탑 한 면마다 하나씩 만들었는데 일제강점기에 3개는 훔쳐가고 마지막 남은 하나는 얼굴이 살짝 깨져 있어 훔쳐갈 가치가 낮아서 아무도 안 훔쳐가고 남아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의 복제 다보탑에는 돌사자 4개를 모두 복원해 놨다.[4] 1987년 500원 주화는 100만 개만 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