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특급 헬기추락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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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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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발생일
1982년 7월 23일
유형
폭발로 인한 기체고장
발생 위치
캘리포니아발렌시아 인디언듄스
기종
UH-1B
운영사
웨스턴 헬리콥터
기체 등록번호
N87701
출도착지
인디언 듄스
탑승인원
승객: 5명
승무원: 1명
사망자
지상: 3명[1]
생존자
탑승 인원 6명 전원 생존
파일:TwilightZoneMovieAP16322627362401.jpg

1. 개요
2. 사고 이전
3. 사고 당시
4. 후일담



1. 개요[편집]


Twilight Zone Helicopter Accident

목숨을 걸 만한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No movie is worth dying for)

스티븐 스필버그가 해당 사고와 관련해 남긴 말 #


미국의 TV 시리즈 환상특급의 극장판을 촬영하다가 일어난 사건이다.


2. 사고 이전[편집]


스티븐 스필버그는 어린 시절부터 즐겨봤던 환상특급의 극장판을 만들기로 기획했다. 영화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4개의 에피소드가 묶여 하나의 영화가 됐다. 이중 흑인과 유대인, 아시아인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던 인종주의자가 시간여행을 통해 그들이 겪은 피해를 자신도 겪게 되면서 뉘우치고 살아가게 된다는 에피소드 "빌에게 생긴 일(원제: Time out)" 은 런던의 늑대인간으로 유명한 영화 감독 존 랜디스에게 맡겼다. 주인공은 빅 모로가 캐스팅됐다.

하지만 영화사 측에서는 해당 에피소드가 너무 무겁다는 이유로 촬영을 거부했고, 이에 존 랜디스는 "그럼 주인공이 어린이 2명을 구하는 장면을 넣겠다." 며 줄거리를 수정했고 제작사에선 이를 읽고 통과시켰다. 그렇게 베트남인이 된 주인공이 야간에 미군의 사격과 폭격을 피해 베트남 고아 2명을 구하는 장면을 찍게됐다. 고아 역으로는 인맥을 통해 레니 첸(Renee Shin-Yi Chen. 향년 6세)과 마이카 딘 레(Myca Dinh Le. 향년 7세)를 뽑았다. 인맥으로 뽑은 이유는 당시 촬영지인 캘리포니아 주법상 어린이를 야간 촬영에 고용하는게 아동노동에 해당되는 불법이었기 때문. 불법이 되지 않으려면 주간에 촬영을 진행해야 했는데 시나리오 배경이 야간이었기 때문에 야간 촬영을 강행한 것이다. 이 때문에 캐스팅 에이전시에서도 이 사항을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존 랜디스는 프로듀서 조지 폴시에게 부탁했고, 조지 폴시는 자신의 비서 도나 슈먼의 남편 해럴드 슈먼에게 전화해 아시아계 어린이 배역 2명을 부탁했다. 해럴드 슈먼은 옛 동료였던 피터 첸에게 연락해 피터 첸의 조카였던 레니 첸, 피터 첸의 동료였던 다니엘 레의 아들 마이카 딘 레를 캐스팅하게 됐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건 불법이었다. 때문에 촬영장에선 돈을 현금으로 가져와 주고, 관련 계약서도 쓰지 않는 식으로 고용 관련 증거를 최대한 없었다. 같이 환상특급을 촬영하던 감독 앤더슨 G. 하우스(Anderson G. House)는 총괄 매니저 댄앨링햄(Dan Allingham)에게 왜 아이 2명이 촬영장에 있는지 물었지만 댄은 이를 함구했다. 폴시는 이를 두고 "설마 이걸로 우리가 감옥이나 가겠어?" 라며 농담을 했다.

1982년 7월 22일, 베트남 전쟁베트남인이 된 주인공이 아이 2명을 구하는 장면 촬영이 시작됐다. 당시엔 아이들의 부모도 왔었다. 촬영은 저녁에 시작되어 다음날 새벽 3시 30분에 큰 사고 없이 끝냈다. 하지만 당시 헬기 조종을 맡았던 조종사 도시 윙고(Dorcey Wingo)는 "폭약이 너무 쎄서 헬기까지 물이 닿아 앞이 잘 안보인다." 고 불안감을 표했다. 랜디스 감독은 아이 부모에게 500달러씩 건내며 쉬고 저녁에 다시 와 촬영에 임해달라 했다. 하지만 부모들은 그 촬영에 폭발 특수효과가 있는 것을 몰랐다.


3. 사고 당시[편집]


해당 사고 영상[2]

7월 23일, 촬영이 다시 시작됐다.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배우들 위에서 호버링을 하던 헬기가 특수효과용 폭발에 휘말렸다. 헬기가 추락하기 시작했고 조종사 도시 윙고는 끝까지 제어해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헬기는 빅 모로와 레니 첸, 마이카 딘 레 위로 떨어져, 3명 모두 즉사해버렸다. 모로와 아역 1명은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로터에 머리가 잘려나가 사망했고, 나머지 아역 1명은 추락한 기체에 깔려서 사망하였다.
※ 실제 목이 잘려 나가는 장면

이 사건 때문에 베트남 전쟁 장면은 통째로 삭제되었고, 제작진은 사망한 아역 배우들의 부모에게 2백만 달러를 배상했다. 또한 극장판 중 첫 번째 에피소드인 '빌에게 생긴 일'은 본래는 주인공(빅 모로)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다가 탈출하는 해피 엔딩으로 할 예정이었으나 이 사고로 끝부분을 완성하지 못해서 그대로 끌려가는 배드 엔딩으로 끝내야 했다.

4. 후일담[편집]


이에 대한 뒷말이 많았는데 특히 촬영 현장의 안전 대비가 엉망이라는 점에서 비난을 받았다. 이 사고에 대하여 제작진간에 갈등이 벌어져 여러 충돌이 벌어지고 배상금도 10년이나 지나서야 지급하는 등 여러모로 욕을 먹기도 했다. 게다가 이 에피소드의 감독인 존 랜디스와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 사고 문제로 엄청 다퉈서 그 뒤로 둘은 다시는 같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일설에 의하면 스필버그는 빅 모로가 꿈에 나와 토막난 머리를 들고 고맙다면서 비아냥거리는 걸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꿈 이야기는 영화의 흥행을 위해 저런 것까지 홍보에 사용하냐는 비난도 받았고, 빅 모로의 딸은 스필버그가 아버지를 죽게 했다며 십수년간 그를 싫어했다고 한다.

빅 모로는 TV 드라마 컴뱃!에서 카리스마 있는 분대장 역을 맡아 국내에서도 큰 인지도를 가진 배우였는데 이후 별다른 필모그래피가 없어 퇴물 배우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일본 영화에 나오기도 하고 죽기 1년 전에 임권택 감독의 아벤고 공수군단에서 엑스트라를 겨우 벗어난 수준으로 나와 대사도 몇 마디 안 되는 연기를 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영화는 그에게 재기를 위한 기회였는데 뜻밖의 참극으로 끝난 셈이었다.

커리어가 썩 좋지 않은 모로의 유족들은[3] 쉽게 협상에 동의했고, 아이들의 유족들도 랜디스 등의 제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배상협상 과정에는 별 잡음이 없어서 사건이 쉽게 묻혔으며 이 사건에 관련된 그 어떤 사람들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소룡의 아들 브랜든 리가 영화 촬영 중에 사망한 사건 이후에야 재조명되었다.

존 랜디스는 이후에도 여러 코미디 영화들을 히트시키며 1980년대까지 영화감독으로 흥행감독으로서 잘 나갔고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Black or White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여전히 이름을 알렸지만, 90년대 들어서 영화감독으로 연이어 흥행과 비평에서 추락해버렸다. 1991년 감독 영화 오스카가 흥행과 비평에서 쫄딱 망했고 오스카가 망하고 난 뒤 감독인 존 랜디스는 이후로 부진이 이어졌다. 오스카 이후 감독한 '미녀 드라큐라'(1992)가 망했고 다시 에디 머피와 같이 손잡은 비버리 힐스 캅 3편을 감독했으나 시리즈를 끝장나게 만들었다. 이후로도 감독한 영화들인 스투피드 가족(1996), 블루스 브라더스 2000(1998)를 연이어 망하게 만들어 1998년 감독작 '수잔의 계획'은 저예산 영화임에도 나스타샤 킨스키, 댄 애크로이드, 빌리 제인, 마이클 빈 같이 나름 호화캐스팅임에도 시사회에서 악평으로 개봉조차 못하고 2차 매체로 출시되었으며 이게 마지막 할리우드 감독 영화가 되었다. 2010년에 영국에서 '버크와 헤어'를 감독하고 이것도 별로 평이 안 좋아 이걸 마지막으로 2022년 72살인 존 랜디스는 사실상 영화감독은 은퇴한 셈이 되었다. 2010년대에 저예산 영화 2편을 제작했을 뿐이다.

이후에는 영화사 중역으로 지냈다. 현장에서 물러난 뒤 세간에서 잊어져 있던 존 랜디스는 아버지를 따라 영화계에 입문했던 아들 맥스 랜디스[4]가 8명의 여성을 강간 및 성추행한 사건으로 잠시 재조명되었다.

소년탐정 김전일은막의 살인귀에서 이 사건이 언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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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빅 모로, 동양계 아역 배우 2명[2] 같은 장면을 다룬 다른 영상들에 비해 비교적 저화질이어서 연령 제한에 걸리진 않았지만, 후반부에 목이 잘리는 장면을 프레임 별로 끊어서 아주 천천히 보여주므로 시청 시 주의. 그나마 저화질이라 형상만 알 수 있다.[3] 유족 중 하나인 제니퍼 제이슨 리는 당시 갓 이름을 알린 청춘 배우에 불과했다. 리가 본격적으로 뜬 건 1989년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와 마이애미 블루스 때부터다.[4] 크로니클(영화), 더크 젠틀리의 정체론적 탐정 사무소 의 각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