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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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 전경
주요 관광지인 동파적벽의 풍경
1. 개요[편집]
중국 후베이성 동부의 지급시. 우한에서 동쪽으로 30km, 신양에서 서남쪽으로 150km 떨어진 평지에 위치한다. 관할 인구 590만명 중 도시 자체에는 46만이 거주한다. 시가지는 양쯔강 북안에 있으며, 건너편의 어저우와 마주보고 있다. 황강은 어저우와 함께 100만이 넘는 광역권을 이루며, 우한의 위성도시이다. 한국의 청송군과 교류 협정을 체결하였다.
2. 관광[편집]
주요 관광지로 동파적벽 (东坡赤壁), 명대의 청운탑 (青云塔) 등이 있다. 옛 지명은 황주로, 많은 위인들과 명사들이 태어나거나 거쳐갔다. 면직물과 담배가 주요 생산품이며, 식품업 등 다양한 산업이 발달하였다.
3. 교통[편집]
황강역(黄冈站)이 관내에 존재하고, 우황도시간철도(武黄城际铁路)가 해당 역을 지난다. 공항은 없으며, 우한 톈허 국제공항이 항운을 담당한다.
4. 역사[편집]
월벽루
본래 황나라는 황강에서 북쪽으로 150km 떨어진 신양 황촨현(潢川县)에 있었다. 남쪽의 초나라에게 시달리던 황나라는 결국 기원전 648년 초성왕에게 멸망하였고, 마지막 군주 목후 황기생은 기나라로 망명하였다.[1] 한편 황나라의 주민들은 초나라의 영토로 이주되었는데, 현 후베이성 동부에 해당한다. 이는 황강 뿐만 아니라 황스, 황메이 등 일대 지명의 어원이 되었다.
영가의 난 직후 일대는 후조의 군대에게 유린되었다. 남북조 시대에 동남쪽 90km 지점 황매현은 선종 불교의 중심 중 하나였다.
현 시가지 일대는 당나라 대에 황주(黃州)의 치소가 된 이래로 번영하였다. 송대 성리학의 거두인 정호, 정이 형제가 이곳 출신이다. 당송팔대가 중 한 명인 소식 (소동파)가 동파 (東坡)라는 호를 얻은 것은 이곳의 동쪽 둑에 집을 지어 거주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원대에 황주로, 명/청대에의 황주부를 거쳐 신해혁명 이후 현 지명인 황강현으로 개칭되었다. 서북쪽으로 80km 떨어진 훙안현은 일명 장군의 현으로, 린뱌오와 리셴녠 등의 고향이다. 그외에 철학자 슝스리, 지질학자 리쓰광 등이 황강 출신이다.
2007년 베이징 중국 도시 포럼에서 중국에서 살만한 도시 10위 안에 들었으나, 2020년대 들어 코로나 사태와 홍수로 피해를 입었다. 코로나19의 발생지인 우한시의 위성도시인데다가 같은 후베이성 내 이창시에 싼샤댐이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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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3년 후 기나라 역시 초에 의해 멸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