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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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서(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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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權
?~240년
1. 개요
2.1. 유장 휘하에서
2.2. 유비 휘하에서
2.3. 조위에서
4. 평가
5. 미디어 믹스



1. 개요[편집]


후한유장 휘하의 참모이자 촉한조위의 참모다. 자는 공형(公衡)으로 익주 파서(巴西)군 낭중(閬中)현 사람이다.


2. 정사[편집]



2.1. 유장 휘하에서[편집]


원래 유장의 수하에 있었다. 그는 어려서 군리가 되었으며, 주목 유장이 불러내 주부로 삼았다. 당시 별가 장송은 응당 유비를 영접해야만 되므로, 황권을 시켜 장로를 토벌하자고 건의했다. 황권이 간언하여 말했다.

좌장군(유비)은 용맹한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으로 이르도록 요청하더라도 부하로서 그를 대우한다면 그(유비)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고, 빈객으로 접대한다면 주공(유장)은 계란을 쌓아 놓은 것 같은 위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단지 국경을 폐쇄하고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유장은 황권의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사자를 파견하여 유비를 맞이하였으므로, 황권을 밖으로 내보내 광한현의 장으로 임명했다.[1]

이후 유비가 촉을 공격하자 그의 장수들은 나누어 군현을 공격했으며, 군현은 그림자가 형제를 따르듯 유비에게 귀순했는데, 황권은 성을 닫고 견고하게 수비하다가 유장이 항복하는 것을 기다린 연후에야 비로소 유비에게 귀순했다. 황권을 임시로 편장군에 임명했다.[2]


2.2. 유비 휘하에서[편집]


조조가 장로를 격파하면서 장로가 도주해 파중현으로 들어올 때 황권이 유비에게 한중을 잃게 되면 파 지역이 약해질 것이고 촉군의 수족을 자르는 것이라 간언해서 황권이 장로를 영접하려고 했다.

만일 한중을 잃게 된다면, 삼파는 힘이 약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촉군의 수족을 자르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유비는 황권을 호군으로 임명하고,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장로를 영접하도록 했다. 그러나 장로는 벌써 남정으로 돌아가 북쪽으로 조조에게 투항했다. 이후 한중공방전에서 두호, 박호를 격파하고, 하후연을 살해하고 한중을 점거했는데, 이는 모두 황권의 계획이었다. 한중전은 총사령관 유비, 전략입안 황권, 전술지휘 법정, 야전지휘 황충, 총사령관 직속 기동대장 조운, 별동대 사령관 장비, 마초로 업무 분담이 굉장히 잘 된 편이었다.

유비는 한중왕이 되어서도 여전히 익주목을 겸임하고 있었으며, 황권을 치중종사에 임명했다. 오의 배신으로 유비가 형주와 관우를 잃자 유비가 황제라고 칭하며 이릉대전을 일으켰고 황권은 다음과 같이 간언했다.

오나라 사람은 용감하여 전쟁을 잘하고, 또 촉의 수군은 물의 흐름을 따라 행동하므로, 전진하기는 쉬워도 물러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먼저 가서 적군의 허실을 살피고, 폐하께서는 응당 뒤에서 지키시기를 청합니다.


황권은 유비에게 자신이 앞장설 테니 유비는 후방에 머물러달라고 건의했지만 유비는 이를 듣지 않고 황권을 진북장군으로 임명해 장강 이북에서 위를 견제하고 막도록 했고 자신이 장강 이남으로 갔다.

오나라의 장군 육의(육손)가 물의 흐름을 타고, 갑자기 포위하자 강남의 촉나라 군대는 크게 패하였다. 유비는 군대를 인솔하여 후퇴했다. 유비가 육손의 화공에 참패하면서 황권은 오와 위 사이에서 고립되었고, 이때 길이 끊겼으므로, 곧 촉의 지원이 끊기자 어쩔 수 없이 황권은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에 장수들을 이끌고 위나라로 투항했다. 참고로 이때 같이 투항한 사람이 형주의 핵심인 남군태수가 될 사합 등 318명. 그중 항복 후 열후가 된 게 42인이고 장군이나 낭장이 된 게 100명 정도다.

황권의 투항을 두고 담당 관리가 법을 집행하면서, 황권의 처자식을 체포해야 한다고 아뢰자 유비는 "황권이 나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내가 황권을 배신한 셈이다." 라고 말하며 그의 가족을 보호하고 이전과 같이 대우했다.[3]


2.3. 조위에서[편집]


황권이 투항한 후 조비가 황권에게 그대는 진평한신[4]을 따르려는 것이냐고 묻자 황권은 자신은 단지 패장일 뿐 그들을 감히 따라하는 게 아니라고 답했다.

신은 유주로부터 과분한 대우를 받아 오나라에 항복하는 일은 없었는데, 촉으로 돌아가는 길이 없어서 귀순한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한 군대의 장수로서, 죽음을 면한 것은 다행스런 일인데 어찌 고인을 따라 흠모할 수 있겠습니까?


조비는 황권의 대답에 감동하여 진남장군으로 임명하고, 육양후로 봉했으며, 시중의 관직을 더하고, 그로 하여금 수레에 함께 타도록 했다.

촉나라에 투항한 사람 중 어떤 이가 황권의 처자식이 처형되었다는 말을 했지만, 황권은 그 말이 거짓임을 알고 상을 치르지 않았다.

한진춘추(漢魏春秋)에 이르길 문제(文帝)가 발상(發喪)을 명하였다. 황권이 답하여 말하길

신에게 선주와 제갈량은 (서로를) 정성으로 대하고 서로 믿어 신의 진심을 (선주와 제갈량은) 명백히 알고 있습니다. 의혹은 사실이 아닐지언대, 청컨대 (자세한 내막을) 들은 후에 발상하겠습니다.


후에 상세한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과연 황권이 말한 대로였다.

유비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위나라 신하들은 모두 기뻐했는데, 황권만은 그렇지 못했다.

조비는 황권이 도량이 있다고 판명하여, 그를 놀래키려는 생각으로 주위 사람을 보내, 황권에게 출두하라는 칙명을 내리고, 도착하기까지 사이에 재촉하는 사자를 보냈다. 말을 탄 사자가 질주하여 길에서 교체했다. 황권 수하의 기종으로 혼비백산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는데, 황권의 행동거지와 안색은 태연자약했다. 후에 황권은 익주자사를 겸임하였고, 옮겨 하남을 차지하게 되었다.

대장군 사마의는 그(황권)를 매우 중시했다. 사마선왕이 황권에게 질문을 했다.

촉나라에는 그대와 같은 사람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황권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명공께서 저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깊을 줄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사마의제갈량에게 주는 편지에서 말했다.

황공형은 호방한 남자입니다. 항상 앉으나 서나 그대를 칭찬하였는데 말을 빌려 어떤 구실을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경초 3년(239), 즉 촉나라 연희 2년에 황권은 거기장군, 개부의동삼사로 승진했다.

촉기에 이르길 조방이 황권에게, "천하는 삼국 정립의 상황인데, 어떤 국가를 정통으로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황권은 "천문에 따라 정통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화성이 심성이 되어 문황제(조비)가 붕어했지만, 오와 촉의 군주에게는 어떠한 일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 증거입니다."라고 답했다.

다음해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를 경후라고 했다. 아들 황옹(黃邕)이 후사를 이었다.[5] 그러나 황옹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작위는 끊겼다.

황권이 촉에 남겨 두었던 아들 황숭(黃嵩)은 상서랑이 되어 위장군 제갈첨을 수행하여 등애를 방어했다. 부현에 도착하자, 제갈첨은 주저하여 전진하지 못했다. 황숭은 제갈첨에게 응당 신속하게 가서 요충지를 점거하여 적군의 평지 진입을 저지하도록 여러 차례 권유했다. 제갈첨은 결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황숭은 눈물까지 흘리게 되었다.

마침 등애가 신속하게 전진해 왔다. 제갈첨은 퇴각하면서 싸워 면죽까지 이르렀다. 유비가 이릉에서 황권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가 패한 것처럼 제갈첨도 황숭의 간언을 듣지 않았고 결국 전사했다. 황숭은 병사들을 독려하며 필사의 각오로 싸우다가 전쟁터에서 죽었다.


3. 연의[편집]


대체적으로 정사의 기록을 따르는 편으로 행적 부분만 보면 무난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작가가 대놓고 깐다. 가령 황권이 이빨까지 부러지면서 유비의 입촉을 막은 일에 대해서 왕루와 비교하면서 "이빨 부러진 황권은 결국 유비에게 투항하였으니 그 절개가 왕루에 미치지 못하다"고 하질 않나, 위나라 투항[6]에 대해서는 "충신은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 법인데 황권이 목숨을 아까워 했으니 사서의 비판을 들을 것"이라고 깐다. 사실 요 두 부분 평가만 제외하면 딱히 황권이 나쁜놈이라는 느낌도 주지 않는데도 작가가 이렇게 혹평하는 게 좀 신기하다.[7]


4. 평가[편집]


제갈량이 북벌을 나갔을때 내정과 군사 어느 쪽으로든 뒤를 완벽하게 서포트할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황권이 있었다면 제갈량의 북벌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제갈량 이후 촉한의 정치를 책임질 만한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계한보신찬에서는 진북장군(鎮北, 황권)은 민첩한 두뇌를 가졌으며, 책략을 운영함에 있어 방향이 있었다. 군사를 지휘하여 사악한 자들을 몰아내고, 임무를 수행하여 공적을 이루었다. 동쪽 구석 땅에 임명되어 말년의 운명은 불우했다. 선주의 패배로 위나라에 항복하여 본래의 뜻을 펴지 못한 것을 슬퍼하며 타향으로 떠돌았다고 평가했다.

황권은 동진 원굉이 지은 <삼국명신서찬>에서 제갈량, 방통, 장완과 함께 촉한 4대 명신으로 꼽힌다.


5. 미디어 믹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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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지연의에서는 유장이 유비를 만나러 가는 것을 막다가 앞니 두 개가 뽑히는 것으로 나온다.[2] 서중(徐眾)이 평하여 말하길 황권(黃權)이 이미 그 주인에게 충성스럽게 간언하였고 또 성을 닫아 굳게 방비하였으니 주군을 섬기는 예를 이룬 것이다. 무왕(武王)이 (은나라로 들어가) 수레에 내려 비간(比干)의 묘(墓)에 봉을 더하고, 상용(商容)의 마을에 표창한 것은 충현지사(忠賢之士= 충성스럽고 현명한 신하)에 대한 존중의 뜻을 명확히 밝히기 위함이었다. 선주는 임시로 황권을 장군으로 삼았으니 옳은 일이지만, 오히려 그 대우가 미비하고, 충의스러운 높은 절개를 기려 선행하는 자의 의지를 격려함에는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다. 민음사에서 펴낸 김원중의 삼국지 촉서에는 '거짓으로'로 번역되어 있지만 맥락을 살피자면 '임시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3] 배송지는 주석에서 '신 송지가 살펴 보건대 한무제(漢武帝)는 허망된 (거짓되고 왜곡된) 말을 들어, 이릉(李陵)의 집안을 멸하였고, 유주(劉主= 유비)는 담당 관리가 법을 집행하는 것을 막고 황권의 가족을 용서하였으니, 이 두 군주의 옳고 그름은 격하게 멀고 아득할 뿐이다. 시경(詩經)에서도 전하기를 ‘즐거워라 군자여, 그대의 후손을 편안히 길러 주리라.’ 하였으니, 이것은 유주를 일컫음이랴!' 라고 하였다.[4] 진평과 한신은 항우를 버리고, 한고조에게 갔던 인물이다. 물론 항우가 이들을 제대로 쓰지 않아서 그랬을 뿐이다.[5] 황권과 위나라에 함께 투항한 것으로 추정된다.[6] 이에 대해 연의에서 유비 스스로 자신이 황권을 저버린 것이지 황권이 자신을 저버린 게 아니라고 인정하였다.[7] 다만 황권은 그 경위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주인을 두 번이나 갈아탄 셈이니 비록 황권이 처했던 사정이 불가항력이라 하더라도 당시 충의를 목숨보다 중시했던 전근대 사람인 나관중 입장에서는 충분히 혹평할만하다. 차라리 오나라로 투항했으면 유비 사후 촉오 동맹 당시 촉으로 송환되서 촉나라에 봉사할 수 있을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었지, 아예 주적인 위나라로 투항해버리는 바람에 그마저도 불가능해졌으니 말이다. 오나라로 투항하더라도 역사대로 유비가 용서해 줄 가능성이 크고 제갈량 역시 그 유지를 받들었을 테니 어쩌면 황권 역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본인의 평마저 깎게 하는 족쇄로 작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