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석

덤프버전 :


前 스타크래프트 1 프로게이머
現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파일:/image/347/2016/02/02/2016020220451741493_20160202204554_1_99_20160202204603.jpg

프로필
이름
황규석
로마자 이름
Hwang Kyoo Seok
생년월일
1994년 10월 2일 (29세)
국적
대한민국
종족
테란
現 소속
KWANGDONG FREECS
ID
KeeN
2013 WCS 순위/점수
69위/675점
2014 WCS 순위/점수
공동 152위/175점
2015 WCS 순위/점수
공동 117위/150점
2016 WCS Korea 순위/점수
공동 58위/100점
2017 WCS Korea 순위/점수
22위/1300점
2018 WCS Korea 순위/점수
공동 22위/1425점
2019 WCS Korea 순위/점수
22위/1775점
2021/22 EPT Korea 순위/점수
22위/305점[1]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방송국
파일:트위치 아이콘.svg 파일:아프리카TV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소속 기록
하이트 스파키즈
2010 ~ 2011
MVP
2011 ~ 2014-07-31
Invasion eSport
2015-01-05 ~ 2015-02-22
Prime
2015-02-23 ~ 2015-10-18
Afreeca Freecs
2015-11-25 ~ 2016-??-??
Team LeiFeng
2016-12-28 ~ 2017-04-16
Team RevolutioN
2018-02-08 ~ 2018-11-15
KWANGDONG FREECS
2018-11-?? ~

1. 경력
2. 상세
3. 플레이 스타일
4. 연도별 경기내용
4.1. 공허의 유산에서의 황규석
4.1.1. 2016년
4.1.2. 2019년
4.1.3. 2021년
5. 기타




1. 경력[편집]



1.1.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 경력[편집]



1.2. 스타크래프트 2: 군단의 심장 경력[편집]



1.3. 스타크래프트 2: 공허의 유산 경력[편집]



2. 상세[편집]


브루드워 연습생 시절에는 eSTRO, 하이트 스파키즈를 거쳤고, 하이트 스파키즈에 입단한 것은 2010년 하반기 드래프트에서 추천선수로서다.[2] 그러나 입단하자마자 팀이 해체되었으며[3], 이듬해인 2011년 MVP에 입단하면서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했다.

LG 시네마 3D GSL May. 코드 A에서 갑자기 나타나, 이형섭 선수를 상대로 데뷔전 첫세트에서 전술핵을 성공시키며 승리하고, 2세트에서는 치즈러쉬로 끝내버리며 이형섭 선수를 완전히 멘붕시키며 팬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한다.

데뷔전 승리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프로게이머 우상은 이성은 선수로써, 이성은처럼 팬들에게 다양한 쇼맨쉽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로 남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WCG 2012 한국 대표 선발전 4위 출신[4]임에도 불구하고 그 페이스가 딱히 떨어지거나 하지 않는다. 2011년도의 4위였던 안호진2012년에 기량이 하락하며 코드 A로 내려가 있지만 그는 여전히 코드 S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

소속 팀 MVP가 협회에 합류하면서 신상문 이후로 끊어진 하이트 스파키즈 출신 협회 선수 계보를 한지원과 함께 다시 잇게 되었다. 허나 MVP의 리빌딩 과정에서 팀을 나오게 되었고, 이후 해외팀을 물색하는 중에 GEM과 개인 스폰을 맺어 활동했고, 2015년 1월 5일 Invasion eSport에 합류하여 서성민, 박수호와 재회하게 되었다. 허나 2월 22일 부로 해당 팀을 탈퇴했으며, 이틀 뒤 이욱담이 은퇴하여 테란 라인에 공백이 생긴 Prime에 입단했다.

10월 18일 프라임을 떠나서 새로운 팀을 구하고 있다.[5] 이후 포스팅을 통해 이동녕과 함께 스베누에 입단했다. 그러나 스베누도 모기업구설수와 재정난으로 팀이 위기를 맞고 있다.[6] 그리고 본인도 GSL 코드 A에서 탈락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저그의 러쉬를 막아야할때 바이오닉 방어력 업그레이드를 취소하고 건물 방어 업그레이드를 하는 등 순간순간 센스가 굉장히 뛰어난 편이다. 2018년에 들어서는 조성주에게서 두 세트를 따낸 운영 능력이나, GSL 시즌 3 32강에서 보여준 뛰어난 마이크로 컨트롤이 주목을 받고 있다.

4. 연도별 경기내용[편집]




4.1. 공허의 유산에서의 황규석[편집]



4.1.1. 2016년[편집]


개인리그는 SSL, GSL 모두 예선, 코드 A 탈락으로 양대백수가 되었다.

프로리그는 1주차 CJ전에 출전해 변영봉을 상대로, 3주차 kt전에서 김대엽을 상대로 불리하던 경기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1라운드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대장으로 출전, 김대엽을 상대로 지난 번처럼 역전에 성공하며 팀의 영봉패는 막았으나 이동녕에게 지상 공중을 모두 장악당하며 패배했다.

2라운드부터 모습을 안 보이더니, 급기야 3라운드에는 로스터에서 말소되었다. 프로리그 폐지 후 2017년 말 술먹방에 따르면 팀에 섭섭한 것이 있어서 나왔다고 한다.

4.1.2. 2019년[편집]


2018시즌까지 16강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한계가 명확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2019 마운틴듀 GSL 시즌3에서 막강한 테테전을 보여주며 16강에서 정명훈,후안 로페즈를 꺽고 2011년 이후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한다. 군 입대를 코 앞에 두고 정말 열심히 준비하여 8강에 진출 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8강에서 조성호에게 3:0으로 완패하며 시즌을 마감한다.

4.1.3. 2021년[편집]



5. 기타[편집]


그리고 실제로 LG 시네마 3D GSL May. 코드 A 8강에서는 최종환 선수를 이겼고, 펩시 GSL Aug.에서는 첫세트에서 패배했지만, 최종전에서 다시 만나 복수하며 자신이 음료수 더비에서 앞섬을 보여줬다. 허나 2012년 말 최종환이 은퇴하면서 다시는 볼 수 없는 매치가 되었으나... 최종환이 진에어 그린윙스로 복귀, 황규석의 소속 팀이 KeSPA에 합류하면서 프로리그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생겼으나 최종환이 다시 은퇴하면서 더 이상의 매치는 불가능해졌다.
  • 2015년 2월 23일, 김명식의 스포일러로 인해 프라임에 입단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오피셜은 이튿날 발표. #
  • 2015 4라운드에 들어서 거의 유일하게 프라임에서 평균급 성적을 내주는 선수이다. 다른 팀이였으면 팀의 허리를 담당했겠지만 프라임이라 눈물이 주르르르륵. 9월 1일 마지막 경기에서조차 1경기를 이기고 에이스 결정전에서 이동녕을 만나 분전을 펼쳤으나 중반까지 좋았던 분위기를 정신없는 이동녕의 땅굴과 막멀티에 의한 후반에 자잘한 실수가 쌓이면서 결국 팀의 0승 7패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프라임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선수였으며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프라임이 12월 02일에 해체됨에 따라 황규석은 프라임의 마지막 출전 선수로 기록된다.
  • GSL에서 32강 최종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아쉽게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조편성 운이 잘 안따라준다는 것도 한 몫한다. 2011년 이후 드디어 16강의 벽을 넘어 8강에 진출하였다.
  • 이 때문인지 변현우의 군입대 이후 2019년, 우마갤의 새로운 아이돌로 급 부상하면서 야 OOO 잘생기지 않았냐?의 드립의 3번째 희생자(?)가 되어 변현우, 박령우에 이은 유동닉으로 활동한다는 기믹이 생기면서 킨붕이 라는 별명이 생겼다.
  • 7년 만에 8강에 간 것이 무색하게도 2019 GSL 시즌 3 탈락 직후 9월 23일 입대하였다.
  • 전역 후 복귀하긴 했지만 동료 선수들 말로는 다른 일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스타 2를 많이 안 한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매년마다 한 시즌씩 GSL 본선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 실력이 많이 퇴보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7 01:00:28에 나무위키 황규석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참조[2] 당시 팀은 주전들이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많이 날라가서 상황이 좋지 않았다.[3] 정확히는 CJ 엔투스로 흡수되었다.[4]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대표 선발전의 3,4위전은 무게감이 결승전보다 더했다는 점을 상기할 것. 특히 2012년의 경우는 그 3위에서 우승자가 나왔다.[5] 묘하게도 바로 다음 날 전 소속팀의 선수들이 제명되었다.[6] 다행히도 아프리카TV에 인수되어 Afreeca Freecs가 되었다. 허나 그 해를 끝으로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가 폐지되면서 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