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씨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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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상세
3. 같이보기



1. 소개[편집]


원 태조 칭기즈 칸의 후손을 일컫는 말.

알탄 우룩(Altan urug)이라고 한다. 정확히는 보르지긴 오복 키야트 씨족 중에서도 위대한 정복자이자 대몽골 울루스의 시조인 칭기즈 칸의 직계 후손 및 칭기즈 칸의 동생들의 후예들인 동방 3왕가에 국한되는 범위이다.


2. 상세[편집]


족보학 등이 발달한 농경민족이 혈통을 더 중시할거 같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유목민족들이 더 혈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테무친이 '칭기즈 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능력 이전에 그가 카마그 몽골의 칸이 될 수 있는 하얀뼈 씨족이었기 때문이고, 골품제? 자다란 자무카가 치노스 씨족의 남성 학살같은 잔혹행위를 했던 것도 그가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칸이 될 수 없는 검은뼈 씨족이었기 때문이다.[1] 정주 농경민의 경우, 혈연 이외에도 지연•학연 등 여러 가지 연줄이 엮여 사회가 만들어지지만 부족 단위로 이동하며 유목하는 유목민에게는 사실 혈연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는 사회적 연줄이 딱히 없다. 애초에 각각의 부족 자체가 혈연집단이고, 이런 각각의 부족들은 같은 조상으로부터 독립해서 갈라져 나온 대부족에 속하기 때문이다. 즉, 유목민 사회에서 혈통집단인 부족은 정치, 사회, 경제, 군사. 복지, 생산, 기타 등 사회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구조이기에 유목민들이 그만큼 혈통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칭기즈 칸이 유목 세계를 한번 통일하고 난 뒤 그의 혈통은 황금씨족이란 이명으로 몽골제국이 사라진 뒤에도 대대로 중시되었다.

황금씨족은 모계로는 이어지지 않았고, 오직 부계만 인정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 이후 나타난 유목세계 주변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황금씨족에 속하지 않는다면 황금씨족의 여자들과 결혼해서 어떻게든 연관성을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티무르 제국의 창건자인 정복군주 바를라스 티무르이다. 그리고 원 세조 쿠빌라이 칸의 외손자인 고려의 충선왕인데, 이들 역시 황금씨족으로, 몽골 보르지긴 오복 키야트씨 황실 황족들의 회의체인 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청나라 황실인 아이신 기오로씨 또한 황금씨족 여성[2]을 황후로 맞는 등 황금씨족과의 연결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다만 티무르나 고려 국왕과 다른 점은 몽골 정복을 통해 대칸의 직위를 획득하여 합법적으로 세습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칭기즈 칸 이후로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등지에서 ''이라는 칭호는 오직 황금씨족만이 독점적으로 칭할 수 있었다. 이 룰을 어긴 사람도 있었지만, 초원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서몽골 오이라트에센 타이시는 황금씨족이 아니면서 칸을 자칭했기 때문에 부하의 반란으로 살해되었으며, 모굴리스탄 칸국의 찬탈자 카마르 웃 딘은 칸을 참칭한 자를 벌한다는 명분으로 티무르의 침략을 받았다. 황금씨족으로서 활동한 마지막 인물은 청말 민초 내몽골의 왕공이었던 데므치그돈로브였다.

티무르의 경우 원나라의 멸망 이후 몽골계로서는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인물이었지만, 칭기즈 칸의 직계 후손이 아니었기 때문에 '칸'이라고 자칭하지 못했다. 다만 황금씨족의 왕녀와 결혼해 '귀르겐'(몽골어: 쿠르겐)을 자처하고 아들, 손자들을 칭기즈 칸의 후예와 결혼시켜 권위를 높이려는 시도는 했다. 티무르의 경우 모계가 황금씨족이었다. 물론 위에 나와있다시피 황금씨족은 모계로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3.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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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자무카의 선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몽골 부족의 직계 시조인 보돈차르의 장남의 후손이라 격은 꽤 높다. 문제는 카마그 몽골을 세운 카불 칸이나 이후의 칸들 모두 3남 바림의 후손이며, 정작 장남 역시도 정실부인의 자식은 아니라는 점이었다.[2] 주로 동방 3왕가 중 하나인 카사르 울루스 출신. 만주어로 보르지기트씨(박이제길특씨)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