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황금종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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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칸 영화제
칸 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초청작 가운데 최고 작품에게 주어지는 상. 1955년 조직위원회가 상을 만들었다. 초창기엔 1939년부터[1] 1954년까지 최고상의 이름은 국제영화제 그랑프리(Grand Prix du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였으며, 1964년부터 1974년까지는 영화제 그랑프리(Grand Prix du Festival)가 최고상이었다. 통칭 팔름도르(Palme d'Or).
본래 황금종려상은 해당 작품의 감독에게만 돌아간다. 하지만 2013년 66회 영화제에서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과 주연배우 두 명(레아 세두,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이 황금종려상을 공동수상했다. 당시의 심사위원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극찬한 작품으로 배우들의 공로까지 함께 치하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에서 다른 주요상을 수상하지 못한다는 룰이 있어서 배우들이 수상을 못하게 되자 황금종려상을 배우에게도 준 최초의 사례이다.
1939년 초대 황금종려상 수상자인 세실 B. 드밀 감독의 경우에는 당시에 수상한 것이 아닌 2002년 회고전에서 수상한 것이다. 본래 1939년 제1회 칸 영화제가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제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해 1946년까지 개최가 연기되어 당시에 상을 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드밀 감독은 1959년에 사망했기에 대리 수상으로 받아야 했다.
1989년 영화 월간지 로드쇼(1989.4~1998년까지 나옴)에서 칸 영화제를 취재하며 한국에선 과연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나올까? 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딱 30년 만에 수상작이 나왔다.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탄 작품은 1945년 빌리 와일더의 잃어버린 주말,[2] 1955년 델버트 맨의 마티, 2019년 봉준호의 기생충[3] 세 작품 뿐이다. 마티 이후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의 노선이 확연히 갈라졌기 때문이다.[4] 지옥의 묵시록은 아카데미에서 촬영과 음향 부문을 수상했으며 작품상은 후보에만 올랐다.
보통 칸과 함께 베니스영화제, 베를린영화제까지를 3대 영화제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칸영화제 위상이 나머지 두 영화제보다 훨씬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사실상 세계 최고의 영화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동진 평론가는 거친 비유를 들어 황금종려상은 소설로 치면 노벨문학상이나 맨부커상을 받은 것과 비슷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황금종려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국가는 미국. 그 다음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일본, 덴마크, 스웨덴 순이다. #
수상작 대부분이 흥행을 보장하기 어려운 예술영화 혹은 독립영화여서 흥행이 영 신통치 않다. 가장 큰 시장인 북미 관객이 자막 읽는 것을 매우 꺼리기 때문이다.
의외로 국내 흥행 성적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좋은 편에 속한다. 기생충이 최고 흥행작. 그냥 흥행한 수준이 아니라 천만 관객 돌파 영화고, 한국 기준이 아닌 해외 기준으로 보면 더 대박으로, 2억 7000만달러에 가깝게 벌어들여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에서도 최고 흥행을 했다.~한국영화가 진정으로 착하다는 걸 확실하게 증명해 준다~
한국 시장에서는 화씨 9/11, 펄프 픽션(서울 122,873명),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매시(서울 92,146명),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서울 103,608명), 지옥의 묵시록[13] , 끌로드 를르슈 감독의 남과 여, 쉘부르의 우산, 올 댓 재즈, 피아노, 어느 가족(서울 104,979명), 양철북,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 스티브 소던버그 감독의 <섹스 거짓말 비디오 테이프>,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아빠는 출장중> (서울 114,781명), 빔 벤더스 감독의 <파리, 텍사스> (서울 98,905명), 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서울 109,685명)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영화들이다. 대중성이 없는 예술영화, 낯설은 유럽영화라는 고정관념과는 달리 오히려, 자막에 거부감이 없는, 한국시장에서 수입가 대비해서, 알음알음 실속있게 흥행한 작품들이 꽤 된다. 공식자료가 없지만,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 욕망>, <제 3의 사나이> 외에도, 특히 쉘부르의 우산은 1990년대 재개봉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도 대흥행한 작품이다. 주제가 <카니발의 아침>으로 유명한 <흑인 오르페>, 빌 어거스트 감독의 <정복자 펠레>는 비디오 시장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린 작품에 속하며, <나라야먀 부시코>, <카케무사> 처럼 몇년이상 뒤늦게 국내 개봉하고도, 서울에서만 5만 이상 관객 동원한 영화들도 있다.
칸 영화제의 최고상에 걸맞게, 황금종려상의 트로피도 전문 보석상과 전문 디자이너들이 제작한다. 칸 영화제의 로고이자 트로피를 상징하는 잎사귀는 종려나무의 잎사귀이며, 프랑스의 영화감독이자 시인인 장 콕토 감독이 디자인 한 것이다. 현재 수여되는 트로피는 1998년부터 스위스의 보석 및 시계 브랜드인 쇼파드에서 디자인과 제작을 하고 있다. 큰 잎줄기에 작은 이파리들이 달린 형태의 황금종려상은 미리 제작해놓은 고무틀에 왁스를 부어 형태를 만들고, 석고를 부어 금형틀을 만들어낸다. 그 다음 금형틀에 용해된 합금을 붓는데 75%의 금과 25%의 은으로 이루어진 18k이다.[23] 그후 표면에서 불순물을 제거한 뒤, 불로 가열해 거친 부분을 다듬는 과정을 거친 후 커팅된 크리스털 받침대에 고정시킨다. 크리스털 받침대는 독일과 스위스 광산에서 채굴된 순수한 크리스털 이며, 사용되는 금은 NGO 환경단체에서 공정 채굴(Fairmined) 인증을 받은 콜롬비아 나리뇨 광산에서 채굴한다.[24] 이 모든 과정을 총 5명의 장인들이 40시간에 걸쳐 수작업으로 완성한다.
1. 개요[편집]
칸 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초청작 가운데 최고 작품에게 주어지는 상. 1955년 조직위원회가 상을 만들었다. 초창기엔 1939년부터[1] 1954년까지 최고상의 이름은 국제영화제 그랑프리(Grand Prix du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였으며, 1964년부터 1974년까지는 영화제 그랑프리(Grand Prix du Festival)가 최고상이었다. 통칭 팔름도르(Palme d'Or).
2. 특징[편집]
본래 황금종려상은 해당 작품의 감독에게만 돌아간다. 하지만 2013년 66회 영화제에서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과 주연배우 두 명(레아 세두,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이 황금종려상을 공동수상했다. 당시의 심사위원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극찬한 작품으로 배우들의 공로까지 함께 치하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에서 다른 주요상을 수상하지 못한다는 룰이 있어서 배우들이 수상을 못하게 되자 황금종려상을 배우에게도 준 최초의 사례이다.
1939년 초대 황금종려상 수상자인 세실 B. 드밀 감독의 경우에는 당시에 수상한 것이 아닌 2002년 회고전에서 수상한 것이다. 본래 1939년 제1회 칸 영화제가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제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해 1946년까지 개최가 연기되어 당시에 상을 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드밀 감독은 1959년에 사망했기에 대리 수상으로 받아야 했다.
1989년 영화 월간지 로드쇼(1989.4~1998년까지 나옴)에서 칸 영화제를 취재하며 한국에선 과연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나올까? 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딱 30년 만에 수상작이 나왔다.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탄 작품은 1945년 빌리 와일더의 잃어버린 주말,[2] 1955년 델버트 맨의 마티, 2019년 봉준호의 기생충[3] 세 작품 뿐이다. 마티 이후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의 노선이 확연히 갈라졌기 때문이다.[4] 지옥의 묵시록은 아카데미에서 촬영과 음향 부문을 수상했으며 작품상은 후보에만 올랐다.
보통 칸과 함께 베니스영화제, 베를린영화제까지를 3대 영화제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칸영화제 위상이 나머지 두 영화제보다 훨씬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사실상 세계 최고의 영화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동진 평론가는 거친 비유를 들어 황금종려상은 소설로 치면 노벨문학상이나 맨부커상을 받은 것과 비슷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황금종려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국가는 미국. 그 다음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일본, 덴마크, 스웨덴 순이다. #
3. 역대 황금 종려상[편집]
3.1. 2회 이상 수상자[편집]
4. 흥행[편집]
수상작 대부분이 흥행을 보장하기 어려운 예술영화 혹은 독립영화여서 흥행이 영 신통치 않다. 가장 큰 시장인 북미 관객이 자막 읽는 것을 매우 꺼리기 때문이다.
의외로 국내 흥행 성적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좋은 편에 속한다. 기생충이 최고 흥행작. 그냥 흥행한 수준이 아니라 천만 관객 돌파 영화고, 한국 기준이 아닌 해외 기준으로 보면 더 대박으로, 2억 7000만달러에 가깝게 벌어들여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에서도 최고 흥행을 했다.
한국 시장에서는 화씨 9/11, 펄프 픽션(서울 122,873명),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매시(서울 92,146명),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서울 103,608명), 지옥의 묵시록[13] , 끌로드 를르슈 감독의 남과 여, 쉘부르의 우산, 올 댓 재즈, 피아노, 어느 가족(서울 104,979명), 양철북,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 스티브 소던버그 감독의 <섹스 거짓말 비디오 테이프>,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아빠는 출장중> (서울 114,781명), 빔 벤더스 감독의 <파리, 텍사스> (서울 98,905명), 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서울 109,685명)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영화들이다. 대중성이 없는 예술영화, 낯설은 유럽영화라는 고정관념과는 달리 오히려, 자막에 거부감이 없는, 한국시장에서 수입가 대비해서, 알음알음 실속있게 흥행한 작품들이 꽤 된다. 공식자료가 없지만,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 욕망>, <제 3의 사나이> 외에도, 특히 쉘부르의 우산은 1990년대 재개봉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도 대흥행한 작품이다. 주제가 <카니발의 아침>으로 유명한 <흑인 오르페>, 빌 어거스트 감독의 <정복자 펠레>는 비디오 시장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린 작품에 속하며, <나라야먀 부시코>, <카케무사> 처럼 몇년이상 뒤늦게 국내 개봉하고도, 서울에서만 5만 이상 관객 동원한 영화들도 있다.
5. 황금종려상 트로피[편집]
칸 영화제의 최고상에 걸맞게, 황금종려상의 트로피도 전문 보석상과 전문 디자이너들이 제작한다. 칸 영화제의 로고이자 트로피를 상징하는 잎사귀는 종려나무의 잎사귀이며, 프랑스의 영화감독이자 시인인 장 콕토 감독이 디자인 한 것이다. 현재 수여되는 트로피는 1998년부터 스위스의 보석 및 시계 브랜드인 쇼파드에서 디자인과 제작을 하고 있다. 큰 잎줄기에 작은 이파리들이 달린 형태의 황금종려상은 미리 제작해놓은 고무틀에 왁스를 부어 형태를 만들고, 석고를 부어 금형틀을 만들어낸다. 그 다음 금형틀에 용해된 합금을 붓는데 75%의 금과 25%의 은으로 이루어진 18k이다.[23] 그후 표면에서 불순물을 제거한 뒤, 불로 가열해 거친 부분을 다듬는 과정을 거친 후 커팅된 크리스털 받침대에 고정시킨다. 크리스털 받침대는 독일과 스위스 광산에서 채굴된 순수한 크리스털 이며, 사용되는 금은 NGO 환경단체에서 공정 채굴(Fairmined) 인증을 받은 콜롬비아 나리뇨 광산에서 채굴한다.[24] 이 모든 과정을 총 5명의 장인들이 40시간에 걸쳐 수작업으로 완성한다.
6. 관련 문서[편집]
[1] 하지만 개최되지 않았기에 의미가 없었다.[2] 다만 잃어버린 주말 수상 당시 황금종려상은 그리 권위가 크지 않아 공동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열 편이나 있었다. 일단 영화 자체는 고전으로 꼽히는 편이고 칸 영화제 측에서도 공식적으로 수상 기록을 인정하고 있다.[3] 또한 한국 영화 최초이자 미국 외 다른 나라 영화로서도 최초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이다.[4] 참고로 이 기록은 베니스 영화제랑 동률인데 베니스는 오랫동안 1948년 햄릿 한 편이었다가 2010년대 이후 급격한 친 할리우드화로 2편이 연달아 추가된 쪽에 가깝다. 베를린 영화제는 레인 맨 딱 한 편이다. 베를린은 레인맨 이후 반 할리우드에 가까운 노선으로 선회했고 코어한 영화들 수상 확률이 높아서 아카데미에서 각광받을 확률이 낮다.[5] 뮤지컬 코미디 부문[6] 심리 애정 영화 부문[7] 애니메이션 디자인 부문[8] 사회 영화 부문[9] 모험 범죄 영화 부문[§]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R S T U V 심사위원 만장일치 수상[10] 브라질, 프랑스, 이탈리아 합작 영화.[11] 최초로 감독과 함께 두 주연배우에게도 수여되었다.[12] 한국 영화 최초 장편 황금종려상 수상[13] 흥행은 대박이나, 정작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은 늘어나는 제작기간과 비용으로 자기 재산 전부를 저당잡혀 빚을 내어 만들었기 때문에 흥행 수입은 거의 빚쟁이들이 챙겨가고 감독은 그다지 수익이 없었다.[14] 87년 한국흥행 2위[15] 93년 한국흥행 7위[16] 88년 한국흥행 5위[17] 서울 재개봉 포함[18] 서울 재개봉 포함[19] 79년 한국흥행 19위[20] 10년후 개봉임에도, 88년 한국흥행 17위[21] 쇼파드의 공동 대표이자 아트디렉터인 카롤리네 쇠펠레(Caroline Sxheufele) 회장이 디자인했다.[22] 2019년 봉준호 감독에게 수여된 트로피이다.[23] 118g(약 50돈)으로, 금 값만 천 만원을 넘는다.[24] 2014년 제67회 칸 영화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트로피 뒷면에 공정 채굴을 인증하는 'Fairmined' 글자가 각인되어 있다.
[25] 1954년부터 1974년까지 사용된 디자인이다.[26] 1975년부터 1983년까지 사용된 디자인이다. 모로코 가죽상자에 백색 스웨이드 안감으로 장식장을 만들었다.[27] 1996년까지 사용된 디자인이다. 둥근 나무색상의 피라미드 타입의 받침대가 사용되다, 1992년부터 디자이너 티에리 드 부르케네(Thierry de Bourqueney)가 고안한 피라미드 형태로 커팅된 크리스털 트로피로 디자인이 바뀐다.[28] 황금종려가지가 청색 모로코 가죽 위에 놓인 상패 형태로 수여되었다. 역대 트로피 중에 종려잎이 가장 풍성하고, 빽빽하고, 가지 자체가 크다.대신 밭침대 트로피가 없다.
[25] 1954년부터 1974년까지 사용된 디자인이다.[26] 1975년부터 1983년까지 사용된 디자인이다. 모로코 가죽상자에 백색 스웨이드 안감으로 장식장을 만들었다.[27] 1996년까지 사용된 디자인이다. 둥근 나무색상의 피라미드 타입의 받침대가 사용되다, 1992년부터 디자이너 티에리 드 부르케네(Thierry de Bourqueney)가 고안한 피라미드 형태로 커팅된 크리스털 트로피로 디자인이 바뀐다.[28] 황금종려가지가 청색 모로코 가죽 위에 놓인 상패 형태로 수여되었다. 역대 트로피 중에 종려잎이 가장 풍성하고, 빽빽하고, 가지 자체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