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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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일의 수상 경력 / 역대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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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우승반지

1985

파일:Eagles_Champion_v1.png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0.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1999
200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8번
김휘욱
(1982)

황병일
(1983~1985)


최무영
(1986~1989)
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43번
팀 창단

황병일
(1986~1990)


윤석중
(1991~1992)
빙그레 / 한화 이글스 등번호 90번
결번

황병일
(1991~2002)


우경하
(2005~2007)
LG 트윈스 등번호 90번
김용수
(2002)

황병일
(2003)


차명석
(2004~2007)
LG 트윈스 등번호 88번
박현식
(1991~1992)

황병일
(2004~2005)


허문회
(2008~2011)
KIA 타이거즈 등번호 88번
이건열
(2001~2003)

황병일
(2008~2011)


박철우
(2012~201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9번
정회열
(2008~2011)

황병일
(2012)


이종두
(2013~2016)
두산 베어스 등번호 83번
이토
(2012)

황병일
(2013)


이광우
(2014~2021)
두산 베어스 등번호 85번
전상렬
(2012~2013)

황병일
(2014)


이상훈
(2015)
kt wiz 등번호 87번
결번

황병일
(2015~2016)


김형석
(2017)
LG 트윈스 등번호 79번
양상문
(2014.5.11.~2017)

황병일
(2018~2023)


결번




파일:22황병일코치프로필사진.png

황병일
黃炳一 | Hwang Byeong-Il

출생
1960년 3월 22일 (64세)
경상북도 포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포항중앙초 - 포항중 - 경북고 - 건국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3년 1차 지명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83~1985)
빙그레 이글스 (1986~1990)
지도자
빙그레-한화 이글스 2군 타격코치 (1991~1998)
한화 이글스 1군 타격코치 (1999~2000)
한화 이글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01)[1]
한화 이글스 2군 타격코치 (2001~2002)[2]
LG 트윈스 2군 타격코치 (2003)[3]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03)[4]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04~2005)
SK 와이번스 2군 타격코치 (2006)[5]
SK 와이번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06)[6]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06)[7]
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 (2008)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09)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2010~2011)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12)
두산 베어스 1군 수석코치 (2013)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4)
kt wiz 2군 감독 (2015)[8]
kt wiz 1군 수석·타격코치 (2015~2016)[9]
LG 트윈스 육성군 타격 인스트럭터 (2018)
LG 트윈스 2군 감독 (2019~2021)[10]
LG 트윈스 1군 수석·타격코치 (2021)[11]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22)
LG 트윈스 2군 감독 (2023)
해설위원
TJB 라디오 야구 해설위원 (2007)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3.2.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
3.3.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3.4. 두산 베어스 코치 시절
3.5. kt wiz 2군 감독 및 수석 코치 시절
4. 연도별 성적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삼성 라이온즈, 빙그레 이글스 외야수, LG 트윈스 2군 감독.


2. 선수 경력[편집]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경북고등학교 때부터 타격 재능이 뛰어나고 정평났으나,[12] 워낙 두터웠던 당시 삼성 선수진 때문에 대개 백업으로 출전했다. 1986년 빙그레 이글스에 전력보강선수로 이적한 후 1990년에 은퇴하고 빙그레의 타격코치를 맡으며 일찌감치 지도자로 전향했다.

프로필상 포지션은 외야수였지만 내야수로도 활약했었다. 눈이 나빠서 야간 경기에는 거의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

198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최종 6차전의 마지막 타자로 타석에 나와, 해태 투수 문희수에게 삼진을 당하며 해태의 3년 연속 우승을 확정지어주는 제물이 되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과거 아마추어 시절에 뛰어난 타격 재능으로 유명했던 것만큼 코치로서는 거포형 타자를 발굴하여 그 기량을 발전시키는 데 뛰어나다는 것이 중평. 특히 장타의 중요성이 높아진 현대 야구에서 이런 코칭 방식이 더 빛을 발한다.

코치로서 권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선수를 지도하기보다는 선수들과 직접 소통하며 선수 스스로가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 가도록 이끌어 가는 능력이 탁월해, 팀을 옮겨도 그를 따르는 선수들이 많다. 한화 이글스에서 함께 했던 송지만은 현대에 이적한 후로도 슬럼프에 빠졌을 때 다른 팀 코치였던 황병일에게 조언을 구했고, 자신의 롤 모델로 장종훈과 황병일을 꼽았다. 이범호도 한화에 있었을 때, 황병일이 한화를 떠난 후에 슬럼프에 빠지면 황병일을 제일 처음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2010년에 수석코치가 되었음에도 KIA 타자들은 타격에 대해 타격코치가 아닌 황병일을 찾았다고 한다.[13]


3.1. 빙그레-한화 이글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코치 시절[편집]


은퇴 후 1991년부터 이글스 코치를 재임하며,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이 때 장종훈, 송지만, 이영우, 김태균, 이범호 등을 발굴하거나 성장시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의 박흥식 코치, 현대의 김용달 코치, 두산의 송재박 코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타격코치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후 LG, SK 타격코치를 거쳤는데[14] SK 시절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15]


3.2.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편집]



파일:external/image.mt.co.kr/image_display_origin.php?ImageID=2012110508385014608_1.jpg


2008년부터 SK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조범현 감독을 따라 KIA에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2009년 우승의 공로로[16], 2010 시즌부터는 수석코치로 승격되었다.[17] 여담으로 2009년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분석자료 뭉치를 양손에 들어 허공에 날렸다.# 2010 시즌 20홈런 타자 5명을 배출하는 게 목표라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KIA 타선의 성적이 하락하자 그에 대한 비난이 증가했다. 수석코치가 된 후로는 조범현 감독을 보좌하는데 전념했다지만, 타격 쪽에 아예 손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2010 시즌에는 경험이 부족한 최경환이 타격코치를 맡아 실질적으로는 황병일이 타격코치도 겸했다고 보는 쪽이 많다.[18]


3.3.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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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즌이 끝나고 조범현 감독이 사퇴하면서 황병일도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그리고 곧바로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의 2군 타격코치로 부임했다.[19] 무려 26년만에 친정팀에 복귀하는 것.

그러나 2012 시즌 삼성 2군 타자들은 죄다 부진했고, 시즌 후 사임하면서 1년만에 친정팀 유니폼을 도로 벗었다.[20]


3.4. 두산 베어스 코치 시절[편집]



파일:external/file.osen.co.kr/201301091352775973_50ecf8311d119.jpg


2012년 11월 4일 두산 베어스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애초에 삼성의 마무리훈련 명단에서 제외된 걸 보면 보다 전에 팀에서 재계약을 포기했다든가, 스스로 사의를 표하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김진욱 감독에 대한 두산 베어스 팬들의 평가가 안 좋으면서, 상대적으로 황병일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 한 때는 김진욱을 경질하고 황병일을 감독 대행으로 앉히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후반기 두산의 성적이 좋아지고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게 되어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2013 시즌이 끝나고, 송재박 타격코치가 수석코치로 승격되고 송일수 2군 감독이 김진욱의 후임으로 신임 감독이 되자 공석이 된 2군 감독을 맡았다.

그렇게 2군 감독을 1년간 지내다가, 조범현 감독의 부름을 받아 kt wiz로 자리를 옮겼다. 동시에 다시 1년 만에 송재박 2군 타격코치가 2군 감독으로 복귀했다.

3.5. kt wiz 2군 감독 및 수석 코치 시절[편집]


조범현 감독의 부름을 받고 2군 감독으로 취임했다가, 4월 15일 자 코칭스태프 개편으로 수석코치로 올라왔다. 황병일이 타격도 겸임하면서 이숭용이 타격보조 코치로 보직 이동되었다.

10월 12일 조범현 감독의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후임 감독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었으나, 김진욱 감독의 부임 이후 수석코치에서 사임했다. 한 때 두산에서 함께한 점을 보면 의외로 보일 수 있는 부분.[21] 후임 수석코치는 이광길.


3.6. LG 트윈스 2기[편집]



파일:LG 황병일코치.jpg


2018시즌 중에 육성군 타격 인스트럭터로 LG에 합류하였다.

시즌 종료 뒤 해임된 9명의 코치 중 한명이었지만 양상문 단장 사임 이후 철회되었고 다시 복귀했다. 기사 내용에 언급되어 있다. 동시에 새로 받은 보직은 2군 감독.

2020년에는 LG 2군을 유일한 6할대 승률로 27년만에 북부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젊은 선수들이 주로 주축을 이루었기에 고무적인 성과이다.

2020년 홍창기가 주전 리드오프로 자리잡고, 2021년에는 문보경도 퓨처스 폭격 뒤 1군에서 안정적으로 안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8월에는 이재원까지 1군에 3할대 타율로 자리잡으며 유망주의 무덤으로 악명높았던 LG에서 뛰어난 선수 육성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LG 역사상 가장 강한 뎁스를 만들고 있는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공로자이다. 또한 2군에 다녀온 채은성[22]이천웅이 맹타를 휘두르자 찬사를 받고 있다.

2021년 9월 13일 분위기 쇄신을 위한 코칭스태프 보직 변경으로 1군 수석 및 타격코치로 승격되었다. 동시에 수석코치였던 김동수가 2군 감독으로 전보되었다.[23]

황병일 코치의 효과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올라온 이후 LG 트윈스는 첫 주에 부진을 겪었으나, 그 이후 두자릿 수 득점 경기도 꽤 많아질 정도로 안정적인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희생타도 늘었으며 전반적으로 득점도 잘 되고 있다. 하지만 10월 이후로 타격이 다시 부진해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패배와 무승부도 급격하게 늘었다.

시즌 종료 후 이호준모창민이 코치로 합류하면서 2022 시즌에는 1군 수석코치직만 담당한다. 3월 21일 SSG전을 앞두고 류지현 감독이 코로나 확진이 되며 일주일 동안 LG 트윈스 감독대행을 한다.

2023년, 류지현 감독이 재계약에 실패하고, 염경엽 감독이 취임하자 새 수석코치로는 김정준 SSG 랜더스 데이터센터장이 취임했다. 황병일 수석코치는 2군 감독으로 전보되었다.[24]

2023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팀을 떠났다.

4.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3
삼성
39
64
.250
16
6
2
0
12
8
0
3
.406
.279
1984
37
51
.137
7
1
0
2
5
4
0
8
.275
.254
1985
9
10
.100
1
0
0
0
2
0
0
0
.100
.100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6
빙그레
75
260
.242
63
9
2
3
21
25
12
24
.327
.305
1987
43
55
.200
11
0
1
1
7
2
0
4
.291
.250
1988
31
53
.283
15
3
0
1
4
7
2
6
.396
.356
1989
69
116
.207
24
4
0
2
9
14
2
17
.293
.304
1990
65
67
.179
12
3
0
0
4
7
0
12
.224
.300
KBO 리그 통산
(8시즌)
368
676
.200
149
26
5
9
64
67
16
74
.314
.295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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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월 9일[2] 6월 10일~[3] ~5월 8일[4] 5월 9일~[5] ~5월 22일[6] 5월 23일~6월 19일[7] 6월 20일~[8] ~4월 14일[9] 4월 15일~[10] ~9월 12일[11] 9월 13일~[12] 한국 야구 사상 기록된 것으로는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1980년 대학야구 춘계연맹전 원광대전) 기록 보유자이다.[13] 물론 최경환이 연수도 없이 은퇴하자마자 바로 1군 타격코치가 된 이상 원래 타격코치였던 황병일 수석코치가 더 믿음직할 수 밖에 없다.[14] 사실 LG 1기 시절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2003~2005년 LG의 성적은 666. 결국 보다 못 한 구단에서는 수석코치였던 황병일을 문책성 해임하고, 두산에서 나온 양승호를 수석코치로 교체한다.[15] 다만 조범현 감독이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황병일 타격코치도 같이 팀을 떠나게 된다. 확실한 것은 이 때부터 황병일 코치는 조범현 감독과 같이 다니게 되었다는 것.[16] 무엇보다도 김상현의 포텐을 터뜨리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는 점이 크게 반영되었다. 또한 최희섭이 커리어하이를 기록하기도 했고.[17] 다만 이 과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는데 우승 후 4일만에 조범현은 김종모 수석코치를 해임하고 조범현의 최측근이던 황병일을 수석코치에 앉혔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김종모가 술회하길 7차전 경기 직후 김종모를 제외한 코칭스태프들끼리 얼싸안고 기뻐할 때부터 느낌이 이상했으며 축승회 때 정의선 부회장에게 인사할 때 조범현이 김종모 본인을 밀어내고 황병일을 인사시킬 때 알아챘다고 한다. 황병일이 수석코치가 된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전임 수석코치인 김종모를 자를 때 사전에 언질 같은 것을 주기로 했는데도 조범현 쪽에서 안 줬던 것도 있다고 한다.[18]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김한수 타격코치의 경험이 부족해 김성래가 수석코치로 승격된 첫 해에는 타격을 겸임한 바 있다.[19] 이 때 같이 KIA에서 나온 장재중 배터리코치도 같이 삼성에 합류했다.[20] 2011 시즌 삼성 2군 팀 타격 기록이 도루 제외 전부문 전체 2위 안에 들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불과 1년만에 팀 타격 기록이 전체적으로 하락했는데, 특히 사사구와 홈런이 급감해 출루율과 장타율 부분이 하위권으로 크게 하락했다. 참고로 2012 시즌 삼성 2군 타격코치는 황병일을 포함해 강기웅김종훈까지 3명이 있었는데, 김종훈은 시즌 중 1군 보조 타격코치로 보직이 바뀌었고, 2011 시즌 중반에 삼성 2군에 합류한 강기웅은 이제 코치로 복귀한지 2년째가 되기에, 연배나 경험이 많은 황병일이 메인 타격코치를 맡았다.[21] 다만 황병일은 애초부터 조범현이 데려온 인물이었기 때문에 한 때 김진욱과 함께 한 이력이 있어도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22] 부진이 아닌 부상이 이유다.[23] 그리고 시즌 끝나고 재계약에 실패한다.[24] 동시에 이종범 2군 감독이 1군 주루코치로 전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