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옥 경부 폭탄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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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鈺

1. 개요
2. 상세
3. 이후의 행보
4. 여담


1. 개요[편집]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 경부[1]였던 황옥김시현 및 다른 의열단 단원들과 협력해서 국내 폭탄 밀반입 시도에 관여한 사건.


2. 상세[편집]


1923년 2월 11일 황옥은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 단원 김시현(1883년 ~ 1966년), 단장 김원봉(1898년 ~ 1958년?)과 중국 천진에서 만났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때 황옥은 의열단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사실은 아니다.

황옥은 김시현(金始顯) 등과 함께 의열단의 비밀 계획에 동참했는데 독립운동 유발과 요인 암살 공작용 폭탄의 밀반입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1923년 3월 3일 중국 천진에서 의열단 단장 김원봉에게 폭탄을 수령했다. 그리고 수령한 폭탄 36개와 권총 5정을 조선으로 밀반입을 시도한다.

1923년 3월 22일 새벽 열차로 폭탄과 권총, 전단을 몰래 옮기기 위해 신의주 출발 경성기차를 탔으나 의열단 요원 김재진의 밀고로 일본제국 경찰에 체포되었다. 황옥, 김시현 등 9명이 이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3. 이후의 행보[편집]


이 사건의 중심 인물인 황옥은 6.25 전쟁 당시 납북되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언제 죽었는지도 불명확하다. 여담으로 황옥의 친손자가 1983년 11월 8일 민주화 시위 도중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추락해 숨진 황정하(서울대학교 도시공학과 4학년 재학 중 사망, 1960년 ~ 1983년)라고 한다.

김시현은 해방 이후 정치인으로 활동하여 2대 민의원을 지냈고 이승만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을 일으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지만 1960년 4.19 혁명으로 풀려난 후 민의원에 재차 당선되었다.


4. 여담[편집]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밀정이 2016년에 개봉되었다.

역사학계에서는 황옥이 친일반민족행위자였는지, 독립투사였는지 의견이 엇갈린다. 황옥이 '위장 친일파'로 독립 운동을 했다는 설과 의열단에 협력하는 척하면서 정보를 빼내기 위한 일제의 밀정(스파이) 역할을 했다는 의견이 대립한다. 김시현은 황옥이 위장 친일파라고 언급했지만 역사학계의 다수설은 황옥이 밀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위에 서술된 밀정(영화)에서는 친일파였다가 의열단으로 바뀌는 것으로 나온다.

[1] 警部. 현재의 경감, 6급 공무원 정도의 직책. 당시 조선인이 달기 상당히 힘든 계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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