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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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2. 생애[편집]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군에서 태어났으며, 평창중학교, 평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였다. 5.16 군사정변 당시 4학년 생도대표였다고 하며, 18기 대표화랑을 맡았다. 엘리트로 인정받았던 그가 12.12 군사반란 이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수석부관을 지냈다는 이유로 하나회의 대대적인 견제를 받았다.
이후 5공화국에서 고의적인 진급 누락을 당하다가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고 비교적 늦게 별을 달아[2] 소장으로 진급한다. 그리고 한국군 최초의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로 임명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수석대표직은 황원탁 소장 이후로 한국군 장성이 그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소장 예편 이후, 1996년 3월부터 1999년 3월까지 파나마대사직을 수행하다가, 1999년 5월부터 임동원 수석의 후임으로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맡아 2000년 남북정상회담 수행단에 참여했고 2000년 8월 말에 물러났다. 이후 2000년 10월부터 2003년 3월까지 주 독일대사를 지냈으며, 이후 경남대학교 석좌교수를 맡았다.
3. 여담[편집]
- 18기 대표화랑으로 임명받았을 만큼 육사 엘리트 출신이며, 군사영어에 매우 능통하여 한미연합사 근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 대령 시절부터 소장 시절까지 대부분 외국군과 교류가 많은 한미연합사 및 유엔사에서 근무하였다.
- 선친이 황호현이다.
- 2004년 제17대 총선 때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출마 예정이었으나 민주당 내의 내분에 힘입어(....) 무산되었다.
- 정치 성향은 민주당계 정당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럴 만한 것이 12.12 군사반란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을 맡은 이력 때문에 하나회와 9-9 라인에게 핍박을 받았던 사람이었으며, 이 들이 민주정의당 - 민주자유당의 주류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의 정부에서 기용된 이력도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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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미연합사령부는 모든 보직이 정·부로 나뉘며 정 보직에는 미군이, 부 보직에는 대한민국 국군이 보직된다.[2] 사실 정승화 라인이라 강제전역당할 뻔했지만 나중에 참모총장이 되는 하나회 이진삼 (당시)준장이 그를 좋게 봐준 덕에 좌천되는 선에서 끝났다고 한다. 황원탁은 18기 대표화랑이었으니 하나회만 아닐 뿐 엘리트 라인을 밟아오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