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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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최종 계급은 대장이며 제2작전사령관직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국방안보특별위원장이다.
2. 생애[편집]
전남 보성군 회천면 출신으로 광주석산고등학교(8회)와 호남대학교 법률실무학과(81학번)를 거쳐 육군3사관학교를 20기[1] 로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대령 시절 제8보병사단 10연대장, 제3야전군사령부 감찰참모부 검열과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 연습훈련계획과장, 수도군단 작전참모를 역임했고, 준장 시절에는 육군3사관학교 생도대장과 제8군단 참모장을 역임했다. 소장으로 무려 5차에 진급한 후 제51보병사단장,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8군단장을 역임했다.
2018년 10월 1일, 합동참모의장으로 자리를 옮긴 박한기 대장의 뒤를 이어 제2작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황인권 중장을 대장으로 진급시키고 육군 제2작전사령관에 임명했다. 전임자인 박한기 장군만큼은 아니지만, 지역방위사단장을 역임했던 만큼 후방 작전을 담당하는 제2작전사령관으로서의 자격은 충분하다는 평가.
학군사관후보생 출신 박한기 대장에 이어 3사 출신의 황인권 장군을 제2작전사령관으로 임명하면서, 국방개혁 동력의 강화를 위해 기존 기득권 세력인 육사 출신들의 영향력(입김)을 줄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의지가 재확인되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2018년 10월 5일 제43대 육군2작전사령관으로 취임했다.
2018년 10월 11일 청와대에서 대장 진급 신고를 하였다. 이날 박한기 합참의장의 보직변경 신고도 같이 실시하였다.
2020년 10월 초에 박한기 합참의장과 함께 임기가 만료된다. 육사 - 비육사 출신에 관계없이 기회 균등을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첫 비 육군사관학교 출신 육군참모총장의 탄생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참모총장 경쟁자인 남영신 지상작전사령관은 2019년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 발생으로 국방부로부터 엄중경고를 받았고, 북한이탈주민 강화도 경유 월북 사건까지 터지는 바람에 감점 요소가 있다. 황인권 대장 본인도 2작사 예하 제32보병사단에서 발생한 태안 보트 밀입국 사건이 마이너스 요소다.
2020년 8월 28일 서욱 육군참모총장의 국방부 장관, 같은 달 31일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의 합동참모의장 지명되면서 육군 대장 보직 4석[3] 이 모두 새 얼굴로 채워지며[4] , 육사 42기[5] 의 대장 진급 및 보직이동할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2020년 9월 21일, 후임 제2작전사령관에 전 지작사 참모장이었던 김정수 중장이 영전, 임명되었으며, 이틀 후인 9월 23일, 제2작전사령관 이취임식 및 축하연 후 전역하였다.
2.1. 전역 이후[편집]
2021년 2월 19일, 3사관학교 58기 입학식 당일 모교인 육군3사관학교 석좌교수로 임용되었다. 역시 모교인 호남대학교 초빙교수로도 임용됐다.#
2021년 9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경기도지사 이재명의 열린캠프에 합류하였다.# 열린캠프 스마트강군위원회 소속으로 위원회에는 박종진, 김운용, 황인권(이상 대장)[6] , 최현국, 모종화, 고현수, 정항래, 김성일(이상 중장) 등 장성급 인사들이 대거 들어왔다.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한 김정섭,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 등 국방부에 몸담은 사람들도 참여하고 있다.
2023년 5월 4일 더불어민주당 국방안보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같은 4성 장군 출신인 김병주 의원과 이철휘 전 제2작전사령관과 함께 공동위원장에 임명되었다.#
3. 경력[편집]
- 대령
- 준장
- 소장 2015년 10월 5차 진급
- 제51보병사단장 (2015.10 ~ 2017.09)
- 중장 2017년 9월 2차 진급
- 제8군단장 (2017.09 ~ 2018.10)
- 대장 2018년 10월 1차 진급
4. 여담[편집]
독서에 대한 강조는 2작전사령관 취임 이후에도 마찬가지인지 취임하자마자 2작사 직할부대를 대상으로 오후 13시부터 13시 20분까지 전 장병이 열외없이 독서를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였다.
- 회의 시에 농담을 하며 편안한 분위기로 회의를 이끌어가는 편이지만, 보고 시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는 것을 좋아한다. 참모가 이유를 대지 못하면 보좌관순으로 내려가면서 이유를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 훈련은 FM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단장 시절 사령부 간부 모두가 위장을 하지 않을 때 사단장 본인이 위장을 먼저함으로써 사령부 간부 전체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자신은 위장 안 해도 될 거라고 좋아하던 사단장 무전병도 같이 위장했다.
- 51사단장으로 재직중이던 2017년 2월 전역자부터는 신교대 기수별로 전역자들을 사단 신병교육대에 소집하여 전역자 집체교육 후 사단장에게 전역 신고를 하도록 하였는데[10] 같은해 9월 중장 진급 및 제8군단장으로 영전하면서 2017년 11월 전역자부터는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집체교육을 하지 않고 자대에서 전역신고를 하였다.
- 서욱 장군(육사 41기)보다 대장 진급을 먼저 했음에도, 서욱 장군이 육군참모총장에 보임되어 족보가 꼬였다. 상호간 존중해주는 걸로 보인다. 임관년도상으로는 박한기 합동참모의장과 임관동기지만 육군3사관학교 1998년 이전 임관자의 경우 소위 임관 후 2년간 학사학위 위탁교육을 받았기에 사실상 육사 41기, 학군 23기와 임관동기로 간주된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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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기생 중 가장 유명한 이가 절절포로 유명한 서정열 前3사관학교장이었다. 참고로 서정열 장군은 동기생들 중 진급이 가장 빨랐고 소장 진급 전까진 황인권 장군보다 서정열 장군이 더 빨랐다. 하지만 중장 이후 입장이 뒤바뀌어서 서정열은 끝내 중장 진급이 좌절되어 소장으로 전역했고 황인권 본인은 대장으로 진급했다. 서정열 소장은 포병 출신이라 진급이 힘들었다.[2] 황인권 대장 전임 8군단장이 박한기 대장이었으며, 8군단장 다음 보직이 제2작전사령관인 것까지 똑같다. 사실 이건 8군단장과 2작사령관이 둘 다 구색 맞추기로 진급한 비육사들을 자주 보임시키는 비주류 보직이기 때문이다. 육사 출신 중에서도 작전통 선두주자는 중장은 1•5군단장과 수방사령관, 대장은 3군사령관과 연합사부사령관이다.[3] 육군참모총장, 지상작전사령관, 제2작전사령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4] 해군은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이 2020년 봄에 임명되었다. 해병대는 군인사법 개정으로 이승도 해병대사령관의 대장 진급의 길은 열렸으나 가능성은 낮아보인다.[5] 김승겸 육군참모차장, 안영호 합참 작전본부장, 김정수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 김성일 국방대학교 총장, 정진경 육군사관학교장 등. 육사 42기와 동기급인 3사 21기와 학군 24기에서는 중장이 없다.[6] 세 명은 열린캠프 스마트강군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7] 전임자 박한기, 후임자 김정수[8] 15년 6월군번 51사단 예하 화성-평택 경계부대를 기준으로 매주 1회 이상의 독서 활동을 진행하도록 하였으며(보통 정신교육 훈련 일정이 있는 수요일이나 탄낱발실셈과 정비 일정이 있는 금요일에 했었다), 경계부대 각 소초에 진중문고 개선 및 설치, 인접 도서관에서 도서 대여 등을 실시하였다. 또한, 독후감 5권 작성시 짧은 일수의 포상휴가를 지급하고 부정기적으로 사단 내 다독왕을 선발해서 4박 5일 사단장 포상을 지급했는데 66개 작성으로 입상권에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경쟁이 꽤 심했다.[9] 독서 이외에도 군 내부에서 공부하는 것을 매우 장려하였는지, 사단 내 2017 수능 도전자 7명에게 전부 수능 격려 포상으로 4박 5일씩을 붙여주기도 했다.[10] 전역 전날 자대에서 전역신고를 한 뒤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집체교육 후 전역 당일 사단장에게 한번 더 전역신고 및 환송식을 하였다.[11] 이희원 사단장에서 권태오 사단장 사이의 문영환(육사 28기), 조영래(육사 29기), 권용원(육사 31기), 명충식(3사 9기) 사단장과 권태오 사단장 이후의 배봉원(육사 37기), 장광현(육사 39기), 김일수(육사 41기) 사단장, 그리고 본인 이후의 김만기 사단장 직무대리와 김인건 사단장은 소장 전역하였다.[12] 본인의 3사 선배이자 중장시절 직속상관이었던 박종진 장군(3사 17기) 역시 함께 진급한 김용우 장군(육사 39기)보다 임관년도(1980년)나 기수(학사학위 위탁교육으로 육사 38기, 학군 20기와 동기)상으로 선배이지만 김용우 장군이 육군참모총장에 보임되고 본인은 제1야전군사령관에 보임되면서 족보가 꼬이고, 1년 후 역시 같이 진급한 박한기 제2작전사령관(학군 21기, 육사 39기와 임관동기이다.)이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하면서 또한번 족보가 꼬이게 되어 결국 그해 12월 31일 제1야전군사령부의 해체와 함께 전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