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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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순(黃泰舜)

1958년 ~

1. 개요
2. 생애
3. 출연 프로그램
4. 논란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평론가.


2. 생애[편집]


1958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환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박철언 대한민국 국회의원(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통일국민당-자유민주연합)의 보좌관을 역임하였다. 2001년 새천년민주당 김중권 대표최고위원 비서실의 부실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기획위원 겸 언론담당 특별보좌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한국복지통일연구소 연구위원,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위키백과에도 직접 출연해 본인이 기여한바 있으나, 현재 저명성 부족으로 문서가 삭제된 상태.


3. 출연 프로그램[편집]


종합편성채널이 개국하자 채널A쾌도난마, 시사 인사이드, 뉴스 스테이션, TV조선의 TV조선 뉴스 4, 뉴스를 쏘다, 엄성섭의 일도양단, 이슈격파, MBN의 뉴스파이터, 뉴스 BIG 5, 뉴스 앤 이슈, 뉴스와이드, 시사스페셜 등에서 전문 패널로 출연하고 있고 KBS 제1라디오의 <안녕하십니까 윤준호입니다>로 출연하고 있다.

종편계의 수도꼭지로 원래도 틀면 나오는 사람이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로 종편 채널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말에도 거르지 않고 끊임 없이 출연해 주목을 끌고 있다. 그 와중에 JTBC에서는 불러주지를 않는다

방통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MBN에서 황태순을 비롯한 논란이 된 패널들을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기사보기

4. 논란[편집]


2015년 11월 채널A <뉴스 스테이션>에 출연해서 "민중총궐기로 1차~3차 저지선이 뚫리고 통의동 쪽으로 확 뚫려서 청와대까지 갔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건 딱 한가지. 위수령 발동이다"라고 하여 논란이 되었다.[1]

2016년 11월 11일 MBN <뉴스특보>에서 회비를 걷어 촛불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동원된 것이라고 폄훼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11월 15일 동프로그램에 출연해 "12일 토요일 날 3차 촛불집회에서 보면 (중략) 대부분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죄송합니다만 보수가 더 많습니다."라고 말해서 진행자가 근거를 묻자 "제 눈입니다."라는 정신 승리성 발언으로 같이 있던 사람들이 실소를 금치 못했다.민언련

2017년 1월 21일 MBN <뉴스특보>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대담을 하던 중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돈으로 쥐락펴락하는건 나쁜 짓이다”라고 전제를 한 후 “참고로 참여정부 시절 5년간 중앙정부에서 언론사에 지원하는 지원금이 있다. 1등 서울신문이다. 2등이 한겨레, 3등이 경향이다. 꼴찌가 조선일보다. 보수언론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근혜 대통령의 블랙리스트를 옹호할 생각이 없다. 일벌백계를 하기 위해서라도 본보기를 보여야하지만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던건 맞다”고 말했다. 이러자 김남국 변호사의 논리정연한 말에 논파 되었다. 이후 SNS에 그의 대한 비판이 올라오고 실사간 검색 상위권까지 오르고 있다.[2]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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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무위키에도 자세히 서술 되어 있지만 위수령은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발동된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박정희 정권에서 민주화 시위를 억압하려는 목적으로 발동하였다. 또한 황태순 위원의 설명도 박정희 정권에서는 위수령을 자주 발동 하였다는 식으로 말을 했으니 당연히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가 박정희 정권 시대상에 멈추어 있는 줄 착각을 하셨나?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2] 1월 21일 15시 28분 현재 2위, 1위는 vj특공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