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제철연합기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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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주체철 공법
3. 무연탄 가스화 고온 공기 가열로
4. 초고전력 전기로
5. 역사
6. 기타
7. 참고 자료



1. 개요[편집]


이 기업은 1918년 전범 기업의 미쯔비시사가 건설한 송림에 있는 겸이포 제철소를 바탕으로 만든 기업소로써 이때 북한은 일산 150톤 고로 2기를 건설하여 이때 연산 10만 톤의 용선 일관 공정의 제철소로 자리 잡게 되면서 이때 50톤 평로도 있었지만 용선을 가져다가 일본에서 용강을 생산하게 되었다.
이때 용선으로만 생산을 하였던 겸이포 제철소였지만 결국 2차 세계대전에 무연탄 제철을 하기 위하여 이때 20톤 용선로를 가지고 무연탄 제철을 추진 하였지만 결국 무연탄은 효과가 별로 없어서 결국 콕스 제철을 하고 말았다.
결국 1945년 소련군이 진주하고 결국 150톤 고로와 20톤 고로를 파괴하면서 결국 철수를 하였고 이때 북한은 결국 소련의 기반에 이끌려 이때 150톤 고로와 20톤 용선로를 복구를 하여 조업을 개시하였으며 이때 북한은 150톤 고로 2기와 20톤 용선로 5기를 복구하여 이때 철강 생산에 나서서 북한의 경제개발계획에 전면 복구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결국 김일성이 6.25 전쟁을 일으키면서 결국 성진제강연합기업소, 김책제철연합기업소, 황해제철연합기업소,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등 많은 제철 시설이 한순간에 무너졌으며 결국 1953년 휴전이 성립한 뒤 결국 전후 복구 3개년 계획이 추진이 되었다.
이때 150톤 고로 2기도 복구에 전면적으로 나섰고 20톤 용선로 5기도 복구에 성공을 하였으며 추가로 일산 680톤 용광로가 새로 추가가 되어 건설이 되었고 이때 소련과 많은 동구권에서 지원을 하여 자체적으로 건립을 하는데 성공하였다.
결국 연속 주조기를 설치를 하지 않았고 용선 일관 공정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으며 코크스 등 많은 지원을 동구권에서 받았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으며 하지만 결국 5개년 계획 추진중 결국 동구권은 지원을 거의 끊다시피 하여 결국 차질을 빚게 되었고 결국 자체적으로 추진을 하였다.
이때 황해제철연합기업소는 여기에 연산 40만 톤 용광로를 새로 1년 만에 건립하여 조업에 들어갔고 여기에 25만 톤 용광로를 37만 톤 규모로 새로 용적을 키웠으며 북한은 150톤 고로 2기와 동시에 천리마 운동을 추진을 하였다.
하지만 결국 1차 7개년 계획에서 코메콘의 가입 논란으로 인하여 결국 콕스 제철의 무리함을 깨닫고 함철 콕스 제철법으로 결국 저콕스 제철법의 기반을 다지게 되고 이때 2기의 연산 6만 톤 기반의 입철 회전로를 건설을 하게 된다.
하지만 김책제철연합기업소보다 훨씬 투자가 빨리 되었고 항상 김책제철연합기업소보다 투자 우선권이 주어졌으며 한동안 김책제철연합기업소보다 용선과 용강 생산량이 한동안 앞서게 되었고 특히 1973년 이때 김일성과 김정일의 명령으로 3대혁명소조운동이 이리로 파견되어 산업 TV화가 먼저 실현이 되었다.
여기에 연산 15만 톤의 후판 직장과 연산 6만 톤의 박판 직장이 설립이 되어 슬래브를 압연하여 가열로로 통하여 후판이나 박판을 생산할 수 있었으며 가장 먼저 여기에 1989년 먼저 컴퓨터화 하여 통합생산지휘체계가 먼저 수립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황해제철연합기업소는 결국 1980년대의 3대 실정으로 인하여 결국 경제난에 휩싸이자 결국 수출용으로 전용이 되었고 이때 북한은 결국 1995년 국가정지사태가 맞이하자 결국 투자가 정지가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산업 TV화 장비와 컴퓨터화를 하였던 통합생산지휘체계 장비도 결국 팔아먹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며 1998년 황해제철연합기업소 민주의거사건으로 인하여 수십명의 제철공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학살이 되는 비극이 벌어졌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결국 김정일은 이를 타파하고자 결국 콕스 제철법이 아닌 비콕스 제철법을 추진을 하게 되었으며 이미 저콕스 제철법은 1960년대 부터 시작이 되었고 이때 북한은 아예 우수한 박사의 산소열법을 사용하여 용광로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2. 주체철 공법[편집]


1991년 김일성은 황해제철연합기업소에 비콕스 제철법을 사용하라는 명령으로 결국 이때 거론되었던 게 산소열법으로 사용한 산소열법용광로 공법을 이용하고자 하였으며 이때 우수한 박사의 산소열법을 이용을 한다면 좋은 품질의 용선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길 것이라면서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가 사용한 산소열법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중간 공정을 거치고 중간 점검을 하면서 연구를 하면서 산화알탄을 쓴 무연탄과 갈탄을 혼합 하여 이때 산소열법용광로 제철 공법이 성공을 거두었으며 직접 산소열법용광로를 사용하면서 이때 산소열법용광로 직장을 새로 건립 하면서 이때 연산 18만 톤으로 잡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연산 6만 톤의 입철 회전로를 즉시 성진제강연합기업소에서 사용한 회전로 방식 용융 환원 공법을 사용하기로 하면서 입철 회전로를 교체를 하게 되며 결국 1999년 산소열법용광로 제철 공법이 성공을 거두고 용광로가 건립이 되어 시험 생산 한 결과 우수한 품질의 주체철을 생산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추진한 공법인지 2002년에 차질을 빚게 되면서 결국 많은 문제점들을 알아본 결과 결국 산소분리기의 용적이 문제라면서 결국 2014년에 결국 15,000m3의 대형 용적의 산소분리기를 사용해서 개건을 하는데 성공을 하였다.
시험 생산한 결과 대성공을 이끌게 되면서 이때 2015년 원상태로 추진이 되었고 결국 아무탈 없이 사용을 하게 되면서 이것의 발달로 순천화학연합기업소와 김책제철연합기업소에 사용중이고 더군다나 아무탈 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
산소열법용광로의 방식은 욕조식 산소열법용광로로 상하취련방식으로 위에서 무연탄과 공업용 산소를 취입해서 상하 취련이 되는 방식으로 산소가 취입을 하면 자동적으로 용융환원이 되고 출재구와 출선구가 따로 존재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소량으로 나오는 용선으로써 좀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파일럿 플랜트 수준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그래도 효과는 금방이면서 하루 500톤의 주체철을 제선하는 게 가능하며 연산 18만 톤의 제선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초고전력전기로로 제강을 하면서 품질이 좋은 빌렛으로 압연이 되면서 효과가 존재해서 좋은 주체철을 제선하는 게 가능하며 100% 무연탄 제철로써 효과가 있다고 증명이 되고 있다.
이것을 사용하는 순천화학연합기업소와 김책제철연합기업소에서도 같은 방식을 사용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2009년에는 김정일이 회전로 방식의 용융환원공법을 사용하라고 명령을 내린 이래로 계속 추진이 되면서 성사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더군다나 입철 생산량의 3배 규모의 회전로 생산 방식으로 생산 방식은 성진제강연합기업소의 회전로 용융환원공법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래서 결국 3배 규모로 추진되면서 성공적으로 계속 추진 중으로 자기의 삽질의 경력이 있는 바 투자를 전혀 아끼지 않고 있다.


3. 무연탄 가스화 고온 공기 가열로[편집]


김인규 박사가 개발한 무연탄가스화 구역 분산식 고온공기연소압연가열로는 너무 중유로만 써서 가열로에 너무 석유의 낭비가 심하며 특히 중유의 가열로는 특히 북한 사정상 열이 고르지 못하는 단점이 명확히 존재하게 되었다.
결국 독일로 가서 기술을 도입하였으나 통제가 너무 심한 나머지 결국 비합법적인 요소가 있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결국 연구에 성공을 거두며 검토에 들어가 결국 사용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사용된 곳이 성진제강연합기업소와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이며 차후에 황해제철연합기업소에서도 사용하게 되면서 무연탄가스화 구역분산식 고온공기연소압연가열로는 열이 고루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후판 압연과 박판 압연과 열간 압연이 제대로 가능한 상태였음을 증명하게 되었으며 석유가 부족한 북한으로써 결국 사용하기 적합한 공법으로써 사용이 되었으며 성공적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무연탄가스화는 특히 북한이 비료 사업과 메탄올 생산 기반으로 삼았던 것으로 활용률이 끝내주면서 그러한 만큼 무연탄가스화 고온공기연소압연가열로 기술은 성공한 기법이라 볼 수가 있다.


4. 초고전력 전기로[편집]


3차 7개년 계획의 차질로 결국 일반 전기로는 폭발 위험성이 크고 결국 50톤 규모 밖에 되지 않음을 알 수가 있었으며 결국 도입을 목표로 하였으니 맨 먼저 도입을 결정한 곳은 독일이었다.
하지만 독일의 법률상 결국 전략물자수출통제에 묶여 있었고 이때 경화로 선결제를 요구하였으니 결국에는 불발되고 말았으며 3년 만에 자체 개발을 결정하게 되며 라주현 박사를 독일로 보내 기술 습득을 하였으며 몇 명의 철강 학자들은 중국에 연수를 다녀오게 되었다.
결국 80톤 규모로 결정이 되다가 결국 용강한계능력인 80만 톤 규모인 100톤 초고전력전기로로 결정이 나면서 3개월 만에 설계가 되었으며 성공을 이룩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다.
이때 2011년에 황해제철연합기업소 1기를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는 2기를 성진제강연합기업소는 1기를 설치하면서 총 황해제철연합기업소는 80만 톤을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는 160만 톤 용강생산기반과 성진제강연합기업소도 80만 톤의 용강생산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5. 역사[편집]


  • 1918년, 미쯔비시사의 겸이포 제철소로 처음으로 건립 준공이 되어 150톤 고로 2기로 시작을 하였음
  • 1943년, 무연탄 용선로를 5기를 갖추어 일산 20톤 규모로 확장을 하였음
  • 1954년, 전후 복구 3개년 계획으로 연산 25만 톤 규모의 1호 용광로와 연산 30만 톤 규모의 1호 해탄로를 개건을 하였음
  • 1957년, 천리마 운동의 영향으로 연산 40만 톤 규모의 2호 용광로를 1년 만에 건립하고 시험 가동에 성공하여 정상 조업하고 있음
  • 1973년, 김정일의 지시로 황해 제철 연합 기업소의 1호와 2호 용광로에 산업 TV화를 실현을 시켰음
  • 1983년, 연산 25만 톤 규모의 1호 용광로를 용적 규모를 연산 37만 톤 규모로 확장을 시켰음
  • 1988년, 1호 연속 주조기를 건립 하여 빌렛을 제강할수 있는 발판을 마련을 하게 되었음
  • 1989년, 컴퓨터의 마련으로 통합생산체계가 구축이 되고 특히 생산지휘체계가 마련이 되었음
  • 1991년, 산소열법용광로를 건립하여 중간 공정을 거쳐서 시험적으로 조업을 하여 성공을 거두었음
  • 1999년, 산소열법용광로 직장이 준공이 되어 조업을 시작하였음
  • 2002년, 산소열법용광로 직장이 차질을 빚게 되어 조업을 일시 중단 하고 문제점을 찾고 있음
  • 2009년, 김정일은 성진제강연합기업소 방식의 회전로 용융환원공법을 그대로 실시하라고 명령을 내려 이때 연산 18만 톤으로 늘리는 개량이 진행중임
  • 2014년, 산소열법용광로 직장이 문제점이 해결되었는데 해결점은 6,000m3 중형 용적에서 15,000m3 대형 용적의 산소분리기를 교체하여 성공시켰음
  • 2016년, 산소열법용광로 직장이 다시 재개가 되었으며 별 무리 없이 성공시켜 지금도 현재 용선출선작업이 품질이 좋은 것으로 확인이 되었음
  • 2019년, 20톤 산소전로를 개발하면서 초고전력전기로와 함께 제강의 한부문을 담당하며 초고전력전기로와 산소전로를 동시에 운영


6. 기타[편집]


황해제철연합기업소는 현재 무연탄 제철로 큰 성공을 보고 있으며 더군다나 36만 톤 기반의 무연탄 제철로 큰 성과로써 파일럿 플랜트 체계이지만 별 이상은 없는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다.
황해제철연합기업소가 사용하는 산소열법 용광로는 널리 사용해서 황해제철연합기업소, 순천화학연합기업소, 김책제철연합기업소 등 안 사용하는 데가 없으며 특히 이것을 응용하여 회전로 용융환원공법에도 사용하고 있으니 정말로 북한의 과학이란 썩히지만 않으면 확실한 과학이기는 하다.
결국 우리나라도 경제성을 따지니 파이넥스 공법 처럼 도전성이 있으며 경제성만 있으면 확실히 추진을 하면 좋을텐데 한마디 말하자면 기술은 나올수록 언젠가는 그 경제성 있는 기술도 언젠가는 퇴보하기 마련으로 작용하면서 과학기술은 계속 발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7. 참고 자료[편집]


  • 민주조선 | 1999.03.04
  • 로동신문 | 2006.02.04
  • 로동신문 | 2006.02.21
  • 로동신문 | 2008.07.28
  • 조선중앙통신 | 2010.02.20
  • 로동신문 | 2015.12.19
  • 로동신문 | 2016.01.03
  • 북한 산업혁신체제 연구 : 철강 및 공작기계산업 중심으로 - 강영실 | 북한대학원대학교 |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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