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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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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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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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창원 황씨
1.1.1. 공희공파
1.1.2. 시중공파
1.1.3. 호장공파
1.2. 장수 황씨
1.3. 평해 황씨

로마자 표기
RR식 표기
Hwang
MR식 표기
통용 표기

1. 개요[편집]




파일:황씨종문.png
파일:황씨 상징.png



캡션


한국성씨. 족보 상으로는 중국 삼황오제 중 하나인 황제 헌원씨(黃帝 軒轅氏)의 후손이라고 전해진다. 황제라는 말의 어원이 황제 헌원씨이다. 조선 후기 정시술(丁時述)이 저술한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에 따르면 황씨(黃氏)의 도시조(都始祖,중국에서 건너온 시조) 황락(黃洛)은 중국 저장성 사람으로 후한의 유신(儒臣)이라고 한다. 28년(신라 유리왕 5)에 한(漢)나라 장군으로 교지국(交趾國; 베트남)에 사신으로 다녀오던 중 풍랑을 만나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정의 안아진(安我鎭)에 표류하였고, 황락(黃洛)의 셋째 아들인 병고(丙古)가 창원백(昌原伯)에 봉해지면서 창원 황씨를 이루었다고 한다[1]. 하지만 선계를 고증할 수 없어 세 계통이 각각 1세조를 다르게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인구는 2015년 기준 697,171명으로 16위이며 대한민국 전체 인구(2015년 당시 51,069,375명) 중 약 1.36%를 차지한다.

본관은 창원(昌原), 장수(長水), 평해(平海), 우주(紆州), 회덕(懷德) 등이 있는데 이 중 창원, 장수, 평해 황씨가 황씨의 메이저 3성(姓)으로 이 세 성씨가 황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황씨는 창원 황씨(약 27만 명)이고, 장수 황씨(약 17만 명), 평해 황씨(약 16만 명)가 그 뒤를 잇고 있다. 그 외 본관들은 중국계인 항주 황씨를 제외하면 모두 이 3개 메이저 본관에서 갈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간 기록은 실전(失傳)되었으나 도시조(都始祖)는 모두 황락(黃洛)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마이너 본관에 속한 황씨들은 그 본관의 직속 메이저 본관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덕산, 상주, 회덕 등은 평해 계열로, 남원, 우주 등은 장수 계열로, 제안[2], 황주 등은 창원 계열로 보는 식. 이 중 회덕과 우주는 창원 계열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창원 황씨는 단일 시조가 아니라고 알려져 있어 적게는 3개 파, 많게는 8개 파로 나뉘어진다.

한자가 다른 황보(皇甫)씨와는 달리 대중매체에서는 그다지 많이 나오지는 않는 성씨. 서브컬처에서도 특히나 황보씨가 꽤 나오는 성씨임에 반해서 황씨는 비교적 잘 애용되지는 않는 감이 있다. 황씨 성을 가진 가상 인물은 보통 이미지 컬러가 노란색인 경우가 많다. 단일로 발음이 어려운 편에 속하는 성씨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3]

로마자 표기로는 대부분 Hwang을 사용하고, Whang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중화권과 베트남에도 황씨가 많은 편이다. 중국에서는 Huang,[4][5] 베트남에서는 Hoang으로 표기한다.

학교 등지에서 출석번호를 매길 때 황이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은 거의 항상 끝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성씨들 중에서는 가나다순에서 가장 마지막에 위치하기 때문이다.[6] 따라서 이름순으로 치러지는 면접, 행사, 시험 같이 우리가 사회에서 흔히 겪어볼 수 있는 것들에서 거의 매번 마지막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을 겪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의 성씨들 중에서 황씨보다 가나다순으로 뒤에 들어가는 성씨들이 있기는 하지만[7] 이들은 인구 수가 워낙 적은 희귀성씨이기 때문에 살면서 만날 가능성은 매우 적은 편에 속한다. 이젠 거의 옛날 이야기가 되었지만 키 순서로 출석번호를 매길 경우도 키가 제일 큰 황씨의 경우 그 한 해 동안만은 마지막 번호만 담당하게 되는 아주 희귀한 경우도 있다. 특히 황씨는 조별과제에서 이름 순으로 조가 편성될 경우 거의 확실하게 맨 마지막 조가 된다.[8]

일본, 중국에서는 속자인 黄으로 쓰고 대만, 홍콩에서는 정자로 黃으로 쓴다. 대만에서조차 속자인 黄으로 쓰는 황씨들도 많아서, 황씨 성을 가진 학부모와 자녀가 한자를 틀리게 썼다고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중국어로 정자 黃은 廿一黃(이십일 황), 속자 黄은 草頭黄(초두 황)이라고 한다. 한국의 경우는 원칙적으로는 한국식 정자체인 黃을 쓰는 것이 옳지만, 黄을 혼용하기도 하며 이는 법적으로도 인정될 수 있다.[9] 한국에서는 黃과 黄을 서로 다른 글자가 아니라 다른 서체로 쓰여진 동일한 글자로 간주하기 때문.

1.1. 창원 황씨[편집]


창원 황씨는 황석기(黃石奇), 황충준(黃忠俊), 황양충(黃亮沖)을 각각 시조로 하는 3파가 있다.
昌原 黃氏
창원 황씨
}}}
관향
경상남도 창원시
시조
황석기(黃石奇)
황충준(黃忠俊)
황양충(黃亮沖)
집성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하점면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
황해도 신천군
평안남도 강동군
인구
271,986명(2015년)


1.1.1. 공희공파[편집]


본래 본관은 회원(檜原)이었으나, 1408년(태종 8) 회원과 의창이 창원으로 합쳐진 후 본관을 창원으로 바꾸었다.

공희공파 시조 황석기(黃石奇)가 1349년(충정왕 1) 회산군(檜山君)에 봉해졌고, 1358년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다.

황석기의 아들 황상(黃裳)이 문하찬성사·서강도원수 등을 지냈다. 황석기의 현손 황형(黃衡)은 공조판서를, 황형의 아들 황기(黃琦)는 직제학·대사간을 거쳐 도승지 ·경기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황형의 증손 황신(黃愼)이 1588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공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회원부원군(檜原府院君)으로 봉해졌으나, 계축옥사 때 유배되었다.


1.1.2. 시중공파[편집]


본래 본관은 의창(義昌)이었으나, 1408년(태종 8) 의창과 회원이 창원으로 합쳐진 후 본관을 창원으로 바꾸었다.

시중공파 시조 황충준(黃忠俊)이 고려 충렬왕 때에 문하부판문하시중(門下府判門下侍中)을 역임하였다.

황충준 이후 세계가 확실하지 않아 고려 때 공부상서(工部尙書) 정토장군(征討將軍)을 지낸 황신(黃信)을 기세조로 한다.

황신의 아들 황거정(黃居正)이 조선 개국공신에 녹훈되었고,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에 이르렀다.

황거정의 6대손 황림(黃琳)이 1590년(선조 23)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으로 책록되고 의성군(義城君)으로 봉해졌으며,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이르렀다.

황흠(黃欽, 1639년 ∼ 1730년)은 숙종 때 이조판서에 오르고, 황흠의 손자인 황자(黃梓)는 호조참판을 지냈다. 황자의 큰아들 황인검은 형조판서를 지냈고, 둘째아들 황인점은 영조의 딸 화유옹주와 결혼하여 창성위(昌城尉)에 봉해졌다.


1.1.3. 호장공파[편집]


호장공파 시조 황양충(黃亮沖)은 고려시대 창원에서 호장을 역임하였다.

황양충의 후손 황사우(黃士祐, 1486년 ~ 1536년)가 중종 때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호조·예조·이조의 판서를 지내고 우찬성에 올랐다.

황사우의 아들 황응규(黃應奎)는 주세붕(周世鵬)·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43년(중종 3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임진왜란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을 거쳐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가 되었다.

황응규의 아들 황섬(黃暹)은 1570년(선조 3)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고, 소북파의 영수로 영의정을 지낸 류영경(柳永慶)의 처남으로서 부제학·대사헌이 되었으나, 계축옥사 이후 낙향하여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시호는 정익(貞翼)이다.


1.2. 장수 황씨[편집]


전라북도 장수군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통일신라 말기의 시중 황경(黃瓊)이 시조이다.

1.3. 평해 황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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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고증오류다. 창원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때에서야 등장하기 때문이다. 당장 고려 때만 하더라도 지금의 창원 지역은 의창, 마산 지역은 회원이었다. 조선 초 의창과 회원을 합치고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 창원인 것이다.[2] 제안 황씨 같은 경우는 시조 황을구가 창원 황씨 공희공파 파조인 황석기(? ~ 1364년)의 5세손이라고 하나, 척준경의 처 황씨가 황석기의 활동시기 보다 이전인 1126년에 제안군대부인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황을구의 5대조인 황석기 이전에도 계통을 달리하는 토착 제안 황씨가 있었을 것이다.[3] 황 씨들 중에서 비염이 있거나 코감기에 걸린 경우 황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발음이 새게 될 경우 한씨 혹은 왕씨와 혼동되기도 한다.[4] 표준중국어 한정. 홍콩계인 경우 광동어 발음인 Wong으로 쓰기도 한다. 이럴 경우 같은 광동어계의 왕씨랑 표기가 같아진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홍콩계 영국인 배우 베네딕트 웡이나 홍콩의 정치가 조슈아 웡 등이 있다.[5] 싱가포르에서는 민남어 발음을 바탕으로 'Ng'으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다. [6] 황보씨의 경우 성만 따지면 황씨보다 뒤에 위치하지만, 성씨가 두글자이기에 이름과 조합하게 되면 두 번째 글자에 따라 순서가 나뉘게 된다. 예를 들어 한 반에 이름이 황보X인 사람과 황현X인 사람이 있으면 후자 쪽이 뒷 번호가 된다.[7] 후씨흥씨가 있다.[8] 제일 마지막조라는게 가장 큰 단점이지만,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맨 마지막에 하기 때문에 이제 끝난다는 생각만으로 발표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줄 수 있고 앞순서들의 발표들을 들어볼 여유가 생긴다.[9] 즉, 성씨가 '黄'으로 쓰여진 한자 도장을 인감으로 등록할 수도 있다. 만약 공무원이 자형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약자체 사전 등의 자료를 첨부하면 통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