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 정책

덤프버전 :



파일:아프리카 분할.png

1. 개요
2. 상세
3.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프랑스 식민제국이 추진한 세계 정책의 일환이다. 아프리카 대륙 횡단을 통해 홍해로 진출하기 위한 프랑스의 정책이다.

2. 상세[편집]


프랑스는 1830년 오스만 제국령이었던 알제리점령하고 1881년에는 튀니지를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프랑스는 알제리와 튀니지를 중심으로 팽창주의 정책을 실시하여 아프리카 분할을 가속화한다.

프랑스는 사하라 사막으로 진출하여 서아프리카 지역을 점점 식민지로 만들고 1894년 수단과 지부티를 점령하게 되자, 서아프리카 식민지인도차이나남태평양 일대에 있는 프랑스의 식민지를 연결하고 영국과 이탈리아를 견제하기 위해 홍해로 진출하려고 하였다. 프랑스 식민제국이 추진한 아프리카 횡단 정책은 여기에서 말미암았다.

그런데 프랑스의 아프리카 횡단 정책은 영국이 추진하고 있었던 종단 정책과 충돌하게 되었는데, 프랑스의 횡단 정책과 영국의 종단 정책이 교차하는 곳이 바로 북아프리카 수단 남부 파쇼다 지역(오늘날 남수단 지역)이었다. 1898년, 프랑스가 파쇼다 지역에 국기를 게양하자 영국이 여기에 항의하며 프랑스와 충돌하였고 이렇게 발생한 사건이 바로 파쇼다 사건이었다. 당시 군사적으로 영국에게 불리했던 프랑스는 결국 한발 물러서서 철수했다.

이로써 프랑스의 횡단 정책은 물거품이 되었고 영국에 대한 프랑스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이후 독일 빌헬름 2세의 팽창 정책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두 국가는 1904년 영프협상[1]을 통해 화해했으며 국제문제에 있어 서로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했다.[2]


3. 같이 보기[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7 00:59:48에 나무위키 횡단 정책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프랑스가 이집트(수단 포함)을 영국에 맡기는 대신 영국은 모로코에서의 프랑스 입장을 지원한다. [2] 실제로 이후 두 차례의 모로코 사건(1905, 1911)에서 영국은 강력하게 프랑스를 지지하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