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드(순양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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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HMS_Hood_March_17_1924.jpg
1924년의 후드.
파일:external/www.hmshood.com/hood45.jpg
전함 비스마르크에게 격침당하지 않았을 경우 예정되었던 1942년의 개장공사[1]가 시행된 것을 가상한 이미지.

1. 제원
2. 개요
3. 특징
4. 실전과 최후
5. 기타
6. 미디어에 등장
7. 모형화



1. 제원[편집]


파일:external/wiki.gcdn.co/Hood-11.jpg
파일:iXGMLSf.jpg
  • 함종: 순양전함
  • 전장: 262.3m
  • 전폭: 31.8m
  • 흘수선: 9.8m
  • 만재 배수량: 47,430톤
  • 기관출력: 144,000 마력(=107,00Kw)
  • 추진체계: 브라운-커티스 4축 기어 증기 터빈/예로우 수랭식 보일러 24기
  • 최고속도: 31노트(1920년)>28노트(1941년)
  • 항속거리: 20노트(=시속 37Km)의 속력으로 5,332해리(=9,870Km)
  • 승무원: 1,433명(1920)>1,325명(1941)
  • 전투체계: 279형 대공 레이더/284형 사격통제 레이더
  • 무장
    • 1920년
      • BL 15인치 Mk.I 포 연장포탑 4기 (8문)
      • BL 5.5인치 Mk.I포 포탑 12문
      • 21인치(=533mm) 어뢰 발사관 6기
    • 1941년
      • BL 15인치 Mk.I 포 연장포탑 4기 (8문)
      • QF 4인치 Mk.XVI 대공포 14문 (2연장 7기)
      • QF 2인치 폼폼 포 24문 (8연장 3기)
      • 0.5인치(=50구경) 빅커스 기관총 20정 (4연장 5기)
      • 7 인치 (=180mm) 대공로켓 (20연장 5기)
      • 21인치 연장 어뢰 발사관 2기
  • 특수장비: 1931~1932년까지 함미 캐터펄트 1기


2. 개요[편집]


HMS Hood (51)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초기까지 영국 해군이 운용했던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의 초도함이자 유일하게 건조된 함선. 1차 대전 이후 군축 시대인 해군의 휴일 기간 동안 무적의 후드(The Mighty Hood)라고 불리며 영국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군함이었다. 조약의 한계를 넘는 돌연변이가. 분명함에도 특별히 예외로 인정된 군함이기도 하다.[2]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마켄젠급 순양전함[3]에 대항하기 위하여 계획 및 건조된 신예 순양전함이다. 함명은 1859년 진수된 전열함 HMS Hood와 1891년 진수된 프리드레드노트(전노급)인 로열 소버린급 HMS Hood와 마찬가지로 새뮤얼 후드 제독의 이름을 따서 '후드'로 명명되었다. 이 함명의 휘장은 닻을 쥐고 있는 까마귀.

1916년 4월 7일에 계약이 체결되어 그해 9월 1일부터 건조되었다. 1918년 8월 22일에 진수, 1920년 5월 15일에 취역했다.[4] 후드는 건조중 유틀란트 해전의 전훈을 받아들여서 설계되었다. 이 때문에 장갑이 빈약한 영국 해군의 기존 순양전함들과 달리 전투함교나 측면장갑에 약 300 mm 두께의 장갑판을 둘렀다. 사실상 순양전함이라기보다는 고속전함에 가까운 함이지만 아무래도 건조중에 설계를 변경한 탓에 여전히 실제 방어구조는 순양전함의 방어구조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특히 갑판 장갑판의 두께는 19 mm ~ 76mm에 불과했다. 영국 해군도 이 점을 보완하고자 개량을 서둘렀으나 하필이면 그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방어력은 개선되지 못했다. 결국 머피의 법칙의 예시가 되었다. 하지만 탄약고 윗부분 메인덱은 이미 2 인치(51 mm)에서 3 인치(76 mm)로 강화된 상태였고, 1919년 7월의 제안되었으나 실행되지 않은 추가 강화안에서도 주요 방호부위보다 훨씬 얇은 5~6인치 정도로만 제시되기 때문에... 이 개장이 진행되었더라도 비스마르크에게 당한 최후를 바꾸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5]

원래 후드는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으로서 4척이 건조될 예정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유틀란트 해전의 전훈을 받아들인 신예 순양전함 자매의 일원으로 리나운이나 커레이저스급 형제[6]들을 대체했어야... 했는데 그놈의 유보트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었기 때문에 후속함 계획이 줄줄이 취소되었고, 군축 조약으로 순양전함이 6척이나 갈려나가면서, 남은 리나운급 순양전함 리나운과 리펄스까지 달랑 셋 중에서 영국의 최신예, 최강, 최후의 순양전함이 되었다.

그러나 후드는 독일의 비스마르크급 전함과 일본의 야마토급 전함이 건조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군함으로[7]당시 16 인치 주포를 탑재한 전함에 비해 화력은 열세라도 그 외 전반적인 성능에서 이들을 능가하는 함으로 평가되며 영국 해군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미국의 콜로라도급 전함은 22 노트도 안 되는 저속함이고, 넬슨급은 워싱턴 조약의 제약을 받아 성능에 문제가 많았으며, 일본의 나가토급 전함도 26 노트여서 후드보다 5 노트가 느리다. 그 어떤 군함보다도 빠르고 충분히 강력한 15 인치 주포가 탑재되고, 방어력도 여타 전함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라면[8] 그 가치는 충분한 셈이었다.

취역 직후부터 영국 해군 대서양 함대의 기함을 맡아 여러번 출동했으나, 영국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이 군축 기조로 전함의 수를 늘릴 수가 없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 최후의 순양전함으로 남게 되었다.

3. 특징[편집]


후드는 폭에 비해 함체가 대단히 길다. 야마토급 전함과 비교해도 길이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는 두말할 것없이 속도를 위한 것으로, 고출력 증기기관과 보일러를 일렬로 배열하고 수중 저항을 줄이기 위해 가늘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방어에는 다소 소홀했다. 평균 300 mm에 달하는 현측장갑의 직사 포격 저항력은 우수했지만 갑판장갑이 최대 76 mm밖에 되지 않았다.

주포인 BL Mk.I 42구경장 15인치 함포[9]는 360도 선회가 가능한 2연장 포탑 4기에 장착되었다. 포탑 1기당 870Kg짜리 포탄이 120발 탑재되었고, 이 포탄을 최대 27.6Km까지 날려보낼 수 있었다.

부무장으로는 당시 영국 해군이 널리 쓰던 5.5인치 포가 탑재되었다. 포탑 하나에 200발이 탑재되었다. 37Kg짜리 포탄을 약 16Km까지 날려보낼 수 있었다. 기존 부포는 1940년 개장 과정에 모두 철거되고 Mk.V와 함께 Mk.XVI(16)4인치 대공포로 교체된다. 이 포는 부앙각이 -10도에서 80도에 달했고, 16Kg짜리 포탄을 초속 810 m로 12,000m까지 날릴 수 있었지만 유효사거리는 짧은 편이었다.

그밖에도 폼폼 포나 신형 어뢰를 추가하는 등, 전간기 개수를 통해 무장을 증설하였다. 하지만 다른 영국의 구형 전함과는 달리 단 1척만 존재하며, 영국의 어떤 군함도 후드가 부재한 때에 해당 역할을 대체할 수 없어서[10] 일본이나 이탈리아의 전함처럼 동력부를 교환하는 등 대개장을 실시할 여유가 없었다. 때문에 시간이 흐르며 기관부가 노후되어 후드의 최고속력이 31노트에서 28노트로 떨어졌다. 이마저도 간신히 복구한 것에 그친 것으로, 무려 25~6노트까지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더하여 대개장을 실시하지 못해 함체 방어구조를 변경할 수 없었고, 취약한 방어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며 안타까운 최후의 원인이 되었다.

4. 실전과 최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비스마르크 추격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attachment/Sinking_of_HMS_Hood.jpg

Hood vs. Bismarck(자막 없음)

후드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대서양에 진입한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를 저지하기 위해 영국의 신예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함께 출격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스마르크와 같이 행동하는 독일의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이 쏜 8인치 탄을 맞아서 작은 화재가 발생하면서 비스마르크에게 절호의 사격목표가 되었다. 이로 인해 후드는 곧 관측탑에 직격을 받았다. 그 직후 비스마르크의 포탄이 후드의 선회 기동시 드러난 흘수선 밑의 취약지점[11]을 뚫고 들어가 탄약고에 명중하며 유폭[12][13], 후드는 순식간에 단 3명의 생존자만을 남기고 폭침당한다.[14] 원래는 생존자가 더 살아있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저체온증으로 대부분 사망했다.[15] 살아남은 3명의 생존자들도 침몰한지 2시간뒤에 현장에 도착한 구축함 일렉트라에 의해 구조되었다.[16]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비스마르크에게 공격당하느라 생존자를 구조할 여유가 없었고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도 공격하느라 생존자를 구조할 여유가 없었다.

파일:external/1f2f6364280f35316f93eabbfeb152a0b8c0cc9e04fbbde2507e2fa5a54a23a4.jpg
생존자 1 테드 브릭스(Ted Briggs)(1923~2008). 신호수병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해군에 복무하였고, 6.25 전쟁제2차 중동전쟁에도 참전하였다. 이후 CPO로 진급했다가 1955년에 늦깍이로 장교로 임관했고, 1973년에 대위로 전역했다. 이후에 HMS 후드 협회 1대, 3대 회장을 역임하다가, 2008년에 사망했다.[17]

파일:external/padresteve.files.wordpress.com/tilburn411.jpg
파일:external/www.hmshood.com/BobTilburn.jpg
생존자 2 로버트 틸번(Robert Tilburn)(1921~1995). 장포수병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1952년까지 해군에 복무했다. 한동안은 배를 못타고 육상에서 근무 했다. 이후에 HMS 후드 협회 2대 회장을 역임하였고, 1995년에 사망했다.

파일:external/padresteve.files.wordpress.com/dundasw.jpg
생존자 3 윌리엄 던대스(William Dundas)(1923~1965). 소위[18]
HMS 후드 협회에 따르면 생전에 후드 침몰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한적이 없었다고 한다.[19]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해군에 복무하였으며, 6.25 전쟁에도 참전했다. 1958년에 소령으로 전역했으며, 전역 후에는 밍크농장을 운영하다가, 1965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목격자들은 그 큰 군함이 나뭇잎처럼 팔랑거리더니 두 동강이 나서 가라앉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순양전함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드러난 것이다. 더불어 동행한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A, Y 포탑이 말썽을 일으켜 제대로 된 사격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함교 부근에 명중탄을 맞아 함장은 무사했지만 지휘부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 사망 13명와 부상 9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여 대영제국 굴욕의 산 증인이 됐다.

대영제국의 자존심이라 불리우던 후드가 비스마르크의 킬카운트로 전락하고 신예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다는 비보를 접한 영국 해군은 한동안 멘붕 상태에 빠져 있다가...

이내 충격은 모두 분노로 바뀌었고, 매우 분노한 영국 해군은 전함과 순양함은 물론, 구축함과 잠수함, 심지어 항공모함까지 대서양의 가용 가능한 모든 군함들을 비스마르크 하나를 잡으려고 집결시키게 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후드의 허망한 최후는 영국 해군의 소극적 공격도 한 몫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비스마르크 추격전 전초전 때 영국 해군은 독일 해군을 먼저 발견하고 선제 공격을 할 수 있었음에도 전력 공격을 하지 않는 소극적 공격을 하다보니 탈출을 우선시하는 것을 거부한 비스마르크 승무원들이 반격할 틈을 만들어줘서 침몰을 자초했다는 내용이다.

5. 기타[편집]


킹 조지 5세급 전함과는 달리 무척 허망하다면 허망한 최후를 맞았음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라고 불렸을 정도로 미려한 외형 때문에 팬들이 꽤 있다.(조약을 뛰어넘는 함선인데도 이 때문에 보유를 인정받은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다.) 사실 외형은 취향을 타기 때문에 당대에는 호평이었지만 지금은 구닥다리 티 난다고 별로라고 보는 사람들도 꽤 많고[20], 특히나 개장한 청사진의 모습은 영국의 캐슬형 함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혐오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인기는 여전하여 영국에는 'HMS 후드 협회'라 하여 후드를 연구하는 동호회까지 활동하고 있을 정도다. 아무래도 비스마르크에게 일격에 폭침당한 극적인 최후의 영향도 꽤 있는 듯하다.

생존 승조원 테드 브릭스의 유언에 따라 2015년 후드의 종이 바닷속의 잔해 인근에서 회수되었다.


6. 미디어에 등장[편집]


  • 디스커버리 채널의 세계의 톱10 군함편에서 10위를 차지하였다. 위협성과 혁신성은 중간, 운용기간은 최상의 평가를 받았지만 화력에선 낮음 방어력은 최하의 평가를 받았다.

  • 네이비필드에서도 역사가 증명해주셨는지 영국 전함 육성 유저들은 69레벨의 후드를 두고 70레벨의 넬슨을 기본 육성으로 하고 있다. 후드는 정찰기 운용이 가능하나 넬슨은 정찰기 운용이 불가능하다...[21]
파일:external/navyfield.co.kr/Hood.gif

파일:attachment/네이비필드2/영국 함선/BB.Hood_Field.png

파일:external/sea-group.org/Hood.jpg

  • Naval Front-Line에서 개장을 받은 후드가 등장한다. 강력한 성능이지만, 정신나간 가격(2500골드)을 자랑한다.개장 이전의 후드는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에 존재.

파일:Naval Creed 후드.png

  • 함선 의인화 게임 전함소녀강철소녀, 벽람항로에서 등장한다. 전함소녀강철소녀에선 도감 1번함으로 등장하는데, 전함소녀는 대영제국 식민지 시찰[22] 당시 기함이었던 후드의 삶을 본딴 황실순시 스킬로 함대의 속력을 올려줘서 거의 이벤트 필수 소리를 들을 정도로 취급이 좋으며, 벽람항로에서는 SSR 등급 전함으로 등장한다. 벽람항로 튜토리얼에서는 PoW와 함께 비스마르크와 싸우다 격침당한 전투를 재현한다.

  • 대체역사소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선 개변된 역사 때문에 비스마르크와 맞붙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비스마르크와 같이 연합국 함대에 배속되어(...)[23] 결국 일본 함대와의 결전에서 치열하게 싸우다 명예로운 최후를 맞이했다. 이때 비스마르크도 큰 손상을 입어 가라앉게 되고, 원역사처럼 분노한 영국 함대와 독일 함대가 대대적인 총공격을 퍼부어 야마토, 나가토, 무츠 등을 가라앉히고 후퇴하는 패잔병들을 유보트를 위시한 잠수함들이 습격하여 거의 다 잡아먹는다.


7. 모형화[편집]


길게 쭉 뻗은 선체 등 멋진 외형과 마이티 후드의 상징성 등으로 인기가 많은 함선이라 라이벌(?)인 비스마르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모형이 다양한 스케일로 출시되었다. 후드를 제외한 나머지 어드미럴급 순양전함들의 존재감이 워낙 미미하다 보니 어드미럴급의 모형들은 전부 후드의 모형이리고 보면 된다. 위에 서술된 HMS 후드 협회에서 아래의 모형들에 대한 리뷰를 볼 수 있다.

  • 1/200

현재로서는 플라이호크 1/700 후드와 함께 최고 품질의 후드라고 할 수 있는 제품이다. 크기가 큰 만큼[24] 디테일이 뛰어나며 구성도 좋다. 고증 면에서도 동사의 1/350 후드에 비해 개선되었다. 선체에 용접선도 잘 표현되어 있으며 한국의 폰토스 모델에서 전용 디테일 업 세트를 출시해 극강의 디테일을 추구할 수도 있다. 한 가지 흠이라면 가격이 1,396위안으로 상당히 비싸다.

  • 1/350

2006년 제품으로 이 시절 트럼페터 함선 킷들이 그렇듯이 나쁘지 않은 품질이지만 좋다기에는 좀 부족한 킷이다. 디테일과 고증 면에서 다소 아쉬우며 조립성도 그다지 좋지 않다. 플라이호크 등에서 전용 디테일 업 새트를 발매했기 때문에 충분히 퀄리티 높게 제작할 수 있다.

  • 1/400

  • 린드버그
1964년 제품이다.

1978년 금형으로 이 시절 서양 함선모형들이 그렇듯 품질이 그리 좋지 않다. 트럼페터 1/350 후드를 두고 이걸 살 필요는 없다.

엘레르 제품의 재포장판이다.

  • 1/600

1960년 제품이나 아직도 판매한다.

  • 1/700

1976년 제품으로 타미야 함선 킷답게 프로포션은 좋지만 디테일은 현재 기준으로는 많이 아쉽다. 워터라인 시리즈이다.

2000년대 후반 제품이다. 평은 괜찮은 편이다. 비스마르크처럼 에칭과 목갑판을 포함하여 ILK 브랜드로 재출시되기도 했다. 가성비는 상당히 좋다고 할 수 있다.

  • 피트로드
트럼페터 제품의 재포장판이다.

  • 플라이호크 모델
2021년 출시된 제품으로 플라이호크답게 크기 대비 극강의 디테일을 자랑한다.

  • 1/720

1978년 제품이다.

  • 테스터스
이탈레리 제품의 재포장판이다.

마찬가지로 이탈레리 재품의 재포장판이다. 100주년 기념판을 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이탈레리 제품의 재포장판이다. 월드 오브 워쉽 버전으로도 발매한 바 있다.

  • 1/1200

1974년 금형이다. 비스마르크 추격전 당시를 재현한 다른 함선들과의 합본 킷을 발매하기도 하였다.

  • 1/2000

1981년 금형이다.

반다이 제품의 재포장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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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 보면 킹 조지 5세급 전함과 함교 및 부포가 유사하다.[2] 사실 후드도 그냥 예외로 인정된 것은 아니라서 일본이 전함 무츠를 살리기 위해 배 4척을 줘야 했던 것처럼 영국도 후드를 살리기 위해 기념함으로 남길 수 있었던 드레드노트까지 포함해, 구식 전함을 10척이나 넘게 갈아야 했다.[3] 마켄젠급은 독일의 패전으로 완공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다.[4] 후드를 진수시킨 사람은 새뮤얼 후드 제독의 현손 호러스 후드 제독의 부인이었다. 호러스 후드 제독은 유틀란트 해전에서 기함 인빈시블의 탄약고 유폭으로 전사했는데 순양전함 후드의 운명을 생각하면 참 기묘한 운명.[5] 당장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11.1인치(280mm) 주포가 3만 야드(대략 27킬로)에서 현측 관통력이 200밀리가 넘게 나오는데, 비스마르크 추격전 당시의 거리는 훨씬 가까웠고, 샤른호르스트급보다는 더 강한 주포가 날아들었다.[6] 글로리어스, 퓨리어스와 함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그리고 남은 함포는 뱅가드에 달린다.[7] 야마토와 길이로는 0.7 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8] 가령, 후드의 집중방호구역을 둘러싼 300 mm 장갑은 18 km 밖에서 발사되는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주포탄에 면역이다. 게다가 함의 규모가 커 설령 피탄되더라도 탄약고나 보일러실이 정통으로 피격되지 않는 한 피해 통제 수준에 따라 침몰까지 소요되는 시간도 길었을 것이다.[9]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의 주포와 동일한 무장[10] 그래서 리나운이 후드를 땜빵칠 수 있을 만큼은 강력해지기 위해 1936년에서 39년까지 대개장을 받는다. 그 다음 차례였던 후드와 리펄스는 2차대전으로 인해 개장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리나운이 리펄스보다 먼저 받은 이유는, 리나운이 왕실 순방에 동원되던 전함이라서 KGV나 후드만큼이나 격이 높은 주력함이었기 때문.[11] 상식적으로 흘수선 밑부분으로의 명중탄은 보통 설계의 큰 고려대상이 아니어서 비스마르크의 럭키샷(?)은 후드 내부의 7인치 장갑판이 보호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교묘히 관통했다 [12] 목격자들에 따르면 마스트 부분에서 유폭이 일어났다. 탄약고 위치로 볼때 15인치 포탄이 아닌 4인치 부포탄들의 유폭에 제일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 .[13] 4인치는 구경상으로 100mm에 가까운 탄이다. 현용 구축함들의 주포인 5인치 함포보다 딱 1인치 적은 함포인것이다. 그리고 빠르게 쏘는것이 주 임무인 부포의 특성상 대량의 부포탄들이 탄약고에 적재되어있다. 거기에 해당 탄약고의 위치는 함체의 중앙이면서 동시에 후미의 3번포탑의 탄약고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해당 탄약고가 유폭하게되면 함체 중앙에 유폭이 일어나는 셈이고, 거기에 유폭으로인해 바로 옆의 주포탄약고도 같이 휘말려 유폭이 될 수 도 있었던것이다.[14] 여담으로 두 동강이 나서 수직으로 가라 앉을때 1번,2번 포탑이 가라 앉기 직전에 비스마르크를 향해 마지막 발포를 하였다. 그것도 수직상태로 침몰하고 있을때다.[15] 승조원인 테드 브릭스의 증언에 따르면 폭침을 당하고 두동강이나서 침몰할때까지 홀랜드 제독과 랄프 커 함장은 브릿지를 지키고 있었다고한다.[16] 후드가 침몰한뒤 3명의 생존자들은 각자 물에 뜨는 부유물에 하나씩 올라가서 서로 잡고 버텼다고 한다.[17] 여담으로 테드 브릭스가 해군에 입대한 계기가 어릴적 자신이 살던곳 항구에 정박한 후드의 모습에 반해서 였다고 한다. 그런데 훈련을 받고 첫 배치를 받은곳이 후드였다.[18] 승선당시에는 사관후보생[19] HMS 후드 협회 홈페이지에도 던대스에 관한 정보는 많이 없었다가, 던대스의 딸이 전기 정보를 제공해줘서 정보가 이전보다 많이 추가되었다.[20] 월드 오브 워쉽 컨트리뷰터인 Yuro는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서 배 중간의 비어있는 공간에 대해, 미국은 대공포를, 독일은 캐터펄트를, 일본은 포탑을 올렸을 건데 영국은 비워놨다며 깠다.[21] 역사 속 해전이나 게임 속 해전이나 공통적인 것은 상대의 위치 파악이 우선이다.[22] (The Empire cruise)[23] 비스마르크와 후드는 전부 30노트 정도로 항해할 수 있어서 고속 항모전단에 편성이 가능했다. 비스마르크의 연비와 수중저항이 거지같은 게 단점이었지만.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파공이 난 비스마르크가 크게 느려진 게 이를 반증한다.[24] 선체가 통짜로 사출되었는데 길이가 1,300 mm 이상이다. 박스 크기는 1,400 mm가 넘어 배송대행지에서나 택배를 접수할 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