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이데라 구장

덤프버전 :



파일:킨테츠 그룹 로고 타입1.png

[ 펼치기 · 접기 ]
현행 계열사
지주회사
킨테츠 그룹 홀딩스
철도 사업
킨키 일본 철도 | 나라이코마 고속철도 | 이가 철도 | 요로 철도 | 욧카이치 아스나로 철도
버스 사업
킨테츠 버스 홀딩스 (킨테츠 버스 | 나라 교통 | 엔씨버스 | 나라 관광버스 | 메이코 버스 | 키타닛폰 관광자동차 | 보초 교통 | 보초 관광버스) | 미에 교통그룹 홀딩스 (미에 교통 | 산코 이세시마 교통 | 핫푸 버스 | 미에 급행 자동차 | 메이한 킨테츠 버스)
택시 사업
킨테츠 택시 홀딩스 (킨테츠 택시 | 기후 킨테츠 택시 등) | 나라 킨테츠 택시 | 킨테츠 토비 택시 | 산코 택시
유통 사업
킨테츠백화점 | 킨테츠 리테일 홀딩스 (킨테츠 리테일 | 킨쇼스토어) | 산코 크리에이티브 라이프 | 나코 라이프
운송 사업
킨테츠 익스프레스 | 나라우편운송 | 시마 마린 레저 | 국도 94 페리 | 벳푸 로프웨이 | 나라오쿠야마 자동차도
부동산 사업
킨테츠 부동산 | 산코 부동산
문화 사업
야마토 문화관 | 쇼하쿠 미술관 | 아베노하루카스 미술관 | 하나조노 킨테츠 라이너스
운영 시설
아베노하루카스 | 아베노 and | 아베노 Loop | 아베노아폴로 | 아베노루시아스 | 우에혼마치 YUFURA | 이코마산조 유원지 | 시기이코마 스카이라인 | NIFREL | 텐포잔 하버 빌리지
레저 사업
KNT-CT 홀딩스 (킨키 일본 투어리스트 | 코퍼레이트 | 클럽 투어리즘) | 메이한 킨테츠 여행 | 킨테츠 미야코 호텔 (미야코 호텔&리조트) | 산코 인 | 토바 시사이드 호텔 | 카시코지마 호조엔 | 킨에이 | 시마 스페인무라 | 나코 푸드 | 가이유칸 | 고베 키타노 호텔
기타 사업
킨키차량 | 킨테츠 차량 엔지니어링 | 전일본 컨설턴트 | 대일본토목 | 킨테츠 정보시스템 | 킨테츠 케이블 네트워크 | 코마토리 케이블 | KCN 교토 | 킨테츠 보험서비스 | 나코 자동차정비 | 미에 이스즈자동차
과거 계열사
버스 사업
도쿄 킨테츠 관광버스
유통 사업
킨테츠 마츠시타백화점 | 에이엠피엠 킨테츠
운송 사업
킨테츠 물류 | 후쿠야마 통운
부동산 사업
킨테츠 부동산 | 산코 부동산
문화 사업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 OSK 일본가극단 | 킨테츠극장
운영 시설
후지이데라 구장 | 히가시오사카 하나조노 럭비장 | 도쿄 킨테츠빌딩 | 킨테츠 아야메이케 유원지 | 후시미모모야마성 캐슬랜드 | 시마 마린랜드
레저 사업
나라호텔
기타 사업
킨테츠모터스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후지이데라 야구장
藤井寺球場 | Fujiidera Stadium

위치
오사카부 후지이데라시 카스가오카 3-1-1
(大阪府藤井寺市春日丘3-1-1)
기공
1925년 12월
개장
1928년 5월 25일
폐장
2005년 1월 31일
홈 구단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1950~2005)
수용인원
32,000명
건축비용
1926년 기준 약 53만 엔
크기
좌우측 폴대 - 91m
좌우중간 - 110m
중앙 - 120m
펜스 높이 - 5m
잔디
인조잔디


파일:external/academic3.plala.or.jp/kyujyo1.jpg


파일:external/f1.aaacafe.ne.jp/fujiidera2.jpg


1. 소개
2. 역사
3. 기타



1. 소개[편집]


오사카부 후지이데라시에 있었던 야구장이며, 정식 명칭은 킨테츠 후지이데라 구장이다. 2005년 1월 폐쇄, 2006년 8월에 해체되었다.


2. 역사[편집]


모기업인 킨키 일본 철도가 오사카 교외인 후지이데라 주택지, 자연 체험 학습을 위한 화훼 농장과 과수원, 스포츠시설 등을 건립하기로 계획하였다. 1923년 한신 전기철도가 건설한 한신 고시엔 구장고시엔 대회로 인기를 얻고 있는 모습을 본 킨테츠는 킨테츠 미나미오사카선 후지이데라역 인근에 야구장을 건설했다. 1949년 일본프로야구가 2개의 리그로 분열되면서 킨테츠는 새로운 구단(킨테츠 펄스)을 창설하고 이 구장을 홈으로 삼았다.

그러나 조명 시설이 없어서 야간 경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로 밤에 열리는 평일 경기는 오사카 구장(1950~1957년), 일본생명 구장(1958~1983년)에서 개최하고 후지이데라 구장에서는 주로 낮에 열리는 주말 경기나 공휴일 경기 또는 2군 경기에만 사용하는, 그저 명목상의 홈구장이었다. 킨테쓰가 주로 사용한 일본생명 구장은 오사카 시내에 있어[1] 교통편이 좋고, 관객동원에도 수월했다. 게다가 그라운드와 객석의 거리가 가까워 팬들의 꾸준한 인기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생명 사회인 야구팀을 가진 일본생명보험에서 사용하는 구장이라 수용 인원이 적고(25,000석) 그라운드도 좁은 데다 조명이 다른 구장에 비해 어두운 점 등 때문에 프로 야구에 적합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연유로 일본 야구기구와 퍼시픽리그아이치현미에현 등의 긴테쓰 연선의 주쿄 지역으로의 이전을 검토했지만, 그 지역 터줏대감 팀의 독점 권익 침해와 팬 분산으로 이어질 수 있어 단념했다.[2]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후지이데라 구장과 일본생명 구장 모두 일본시리즈 및 올스타전 개최 조건인 "조명 설비가 있는 수용인원 3만명 이상의 구장"이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었다. 오랫동안의 성적 부진에 따른 회색 구단, 지하철 구단이라는 오명을 딛고 1970년대 중후반부터 전성기를 맞이한 킨테츠는 1975년 후기리그 우승 및 페넌트레이스 승률 1위 확정 후 진출한 플레이오프에서는 이 구장을 사용했지만 홈경기였던 4차전에서 한큐 브레이브스에게 패배하며 탈락하고 말았고, 리그 우승을 처음 달성한 1979년과 이듬해 1980년에 2연패 달성 당시의 플레이오프일본시리즈는 당시 난카이 호크스의 전용 구장인 오사카 구장을 빌려서 개최했다. 하지만 일본시리즈에서는 2년 연속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우승을 허락하고 말았다.

개수 공사 과정에서 구단 측과 인근 주민들의 다툼 그리고 중재가 거듭되었고 그 결과 방음벽 설치 및 나팔-북-종-트럼펫 등을 이용한 응원 금지를 조건으로 스탠드 개수, 그리고 라이트 시설 설치를 하며 킨테츠는 1984년부터 다시 이 구장을 정식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후 1984년 팀을 외로이 지탱하던 초혼의 에이스 스즈키 케이시의 300승 달성[3]과 1989년 리그 우승[4] 등 명장면을 연출했고, 1996년까지 홈구장으로 쓰다가 이듬해인 1997년 교세라 돔 오사카로 이전하였다. 이전 한 후에도 연습장, 2군 구장등으로 사용했고 팀명에 오사카가 처음으로 붙은 1999년 팬서비스 차원에서 정규리그 최종전을 이 곳에서 개최하였으며 이것이 킨테츠가 마지막으로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개최한 1군 경기가 되었다.

2004년 프로 야구 재편 과정에서 긴테쓰와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합병되면서 2군 홈구장 및 합숙소는 오릭스가 기존에 사용하던 효고현 고베시로 이전했다. 시설 노후화로 2005년에 구장은 문을 닫았다.

야구장 부지는 학교 법인과 건설 회사에 매각하여 학교 및 평생 학습센터, 아파트 등이 들어섰다. 인근에는 킨테츠 버팔로즈와 후지이데라 구장 기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3. 기타[편집]


구장이 작아서 홈런이 나오기 쉬운 구장이었으며 펜스(2m)위에 철망(3m)를 추가로 설치했지만 홈런이 계속 많이 나왔다. 1986년에 세이부 라이온즈는 1이닝 6홈런의 기록을 세웠으며, 스즈키 케이시는 현역 시절 560 피홈런을 허용했다.[5]

한일 슈퍼게임 1회 대회(1991년) 제4차전이 이 곳에서 펼쳐졌다. 한국 팀은 1~3차전을 연달아 내주고 4차전에서 첫 승을 거뒀다.[6]

문교지구이며 지방 유수의 고급 주택지에 위치해 있어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다. 전신주나 벽에는 "야간 경기 반대" "엄마, 시끄러워서 내가 공부를 할 수 없어"등 동네 주민들의 거부 반응이 쓰여 있었다. 나시다 마사타카는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고생들로부터 야유를 받거나 얼음이 날아든 적도 있었다"라고 술회했다.

18세의 4번타자였던 도이 마사히로는 "1년내내 이 구장은 아마야구 게임에 사용되기 때문에 그라운드 상태가 좋지 않아 원바운드 되는 외야 타구 처리에 신경을 썼다""외야석은 만원이 안되기 때문에 관중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힘내라고 응원했던 사람이 다음날 야유를 하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후지이데라 구장 이름이 TV 스포츠뉴스나 신문기사에 반복 등장하게 되면서 작은 동네였던 후지이데라 시의 이름이 전국에 알려졌다. 동네에 고분군이 있었지만 역사와 고분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생소한 동네 이름이었으나 후지이데라 구장이 있는 곳이라는 형용어구를 통해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쉬워졌다.

후지이데라 구장의 역사와 변천에 자세히 설명해 놓은 사이트가 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7 09:45:55에 나무위키 후지이데라 구장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모리노미야역 인근에 있었다. 오사카 성 근처.[2] 다만, 긴테츠 구단은 일부 홈경기를 당시 그 지역 터줏대감 팀의 홈구장인 나고야 구장에서 치른 적이 있다. 후지이데라 구장을 다시 메인 홈구장으로 쓰기 시작한 이후에도 후지이데라보다 관중동원이 좋았기 때문에, 계속 그 지역 터줏대감 팀의 홈구장에서 일부 홈경기를 치렀다고 한다. 나고야 돔이 개장한 이후에는, 그곳으로 옮겨서 일부 홈경기를 치렀는데, 이전과는 달리 관객 동원력이 떨어져 버려서, 1999년을 끝으로 나고야에서는 더 이상 홈경기를 개최하지 않게 된다.##[3] 이는 일본프로야구에서 최후의 개인 통산 300승이다.[4] 그러나 같은 해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에게 3연승 후 4연패의 대역전을 허용했다. 심지어 후지이데라 홈구장에서 마지막 7차전이 열려 홈팬들 앞에서 우승을 놓쳤다.[5] 일본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통틀어 최다 피홈런이다.[6] 한용덕이 선발로 등판하여 6회까지 6안타 1실점으로 잘 막았고 박동희가 계투하였다. 김성한은 1-0으로 뒤지던 4회말 좌월솔로홈런을 때리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김성한은 4타수 3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이 날의 MVP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