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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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항우가 초나라 부흥을 명분으로 몰락한 초나라의 왕족인 초 회왕(楚懷王)을 옹립하여 건국한 나라. 이후 항우가 통일 진나라의 함양을 정복하며 중원의 패권을 거머쥐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중국의 통일 왕조가 되었다. 그러나 초의제가 피살되고 각 지역의 제후들이 반역하며 후초 체제는 1년도 못가고 붕괴되어 버린다.
2. 상세[편집]
사실 통일왕조라는 것도 명목상에 불과하지 실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허울뿐인 왕조에 불과했다. 옛 초나라 영토에서 일어날 때부터 패권을 잡은 항우가 중원을 나누어 십팔제후왕을 봉할 때까지도 명분에 불과한 허수아비 왕조였고, 실권자인 항우마저 각 군벌이 난립하는 중원을 통제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통일왕조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진나라를 정리한 항우가 초의제를 형식상으로나마 천자로 받들고 본인을 통일 초나라, 즉 후초의 제후국인 서초의 패왕[3] 으로 선언했기 때문에 사실상 독립 상태나 마찬가지였던 중원 각 지방의 군벌들도 이를 수용하여 항우의 자의적인 분봉을 어느정도 받아들였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최소한 후초에게 형식적인 분봉 주체로서의 의미 정도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사실상 초의제가 피살된 시점에서는 완전히 끝났으며, 이후부터는 명분상의 천자마저 폐위시킨 서초패왕 항우가 절대자로 군림하는 서초만이 남게 된다. 물론 중원 각지에 봉해진 여러 제후들은 찬탈자 혹은 대역죄인으로 볼 수 밖에 없는 항우에 대하여 대대적인 반역을 일으켰다.[4]
3. 역대 황제[편집]
4. 후초의 인물[편집]
5. 관련문서[편집]
[1] 기원전 208년부터 칭왕[2] 기원전 206년부터 칭제[3] 항우가 패왕이라고 칭한 것은 자신이 다른 제후국의 왕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다.[4] 물론 초의제 피살 이전부터 항우에 대한 제후들의 불만은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초의제 피살은 일종의 트리거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십팔제후왕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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