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사쿠 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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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사쿠 킨지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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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일본 아카데미상
파일:japan-academy-prize.png
최우수 감독상
제5회
(1982년)


제6회
(1983년)


제7회
(1984년)

오구리 코헤이
(진흙강)

후카사쿠 킨지
(카마타 행진곡)
(도톤보리 강)


고샤 히데오
(게이샤)
제9회
(1986년)


제10회
(1987년)


제11회
(1988년)

사와이 신이치로
(이른 봄 이야기)
(W의 비극)

후카사쿠 킨지
(불타는 집의 사람)


이타미 주조
(마루사의 여자)
제17회
(1994년)


제18회
(1995년)


제19회
(1996년)

야마다 요지
(남자는 괴로워 토라지로의 혼담)
(학교)

후카사쿠 킨지
(충신장외전 요쓰야괴담)


신도 가네토
(오후의 유언장)
최우수 각본상
제9회
(1986년)


제10회
(1987년)


제11회
(1988년)

마츠다 히로
(하나이치몬메)

코나미 후미오
후카사쿠 킨지
(불타는 집의 사람)


이타미 주조
(마루사의 여자)
제17회
(1994년)


제18회
(1995년)


제19회
(1996년)

야마다 요지
아사마 요시타카
(남자는 괴로워 토라지로의 혼담)
(학교)

후루타 모토무
후카사쿠 킨지
(충신장외전 요쓰야괴담)


신도 가네토
(오후의 유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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深作欣二
1930년 7월 3일 ~ 2003년 1월 12일

1. 소개
2. 후카사쿠 킨지와 영화
3. 영화들
4. 그 외


1. 소개[편집]


일본영화 감독. 이바라키현 미토시 출신. 아내는 여배우 출신의 나카하라 사나에. 아들은 마찬가지로 영화감독인 후카사쿠 켄타.

대한민국에서는 배틀로얄의 감독으로만 알려졌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배틀로얄이 아니라 야쿠자 영화로 더 유명하다. 일본위키에 의하면 SF 영화나 문예 영화도 만들었다.

영화 제작에 의욕적인 인물로 의리없는 전쟁 촬영 때는 메가폰으로 지시를 내리면 항상 가라!,해라!,죽어라를 외쳤다고 한다. 심야까지 촬영이 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을 거느리고 을 마시러 갔다가 이튿날 아침에 또 촬영에 들어가는 생활을 몇 달 동안 했다. 충분히 잠을 잘 수 없었던 배우들은 창백한 얼굴을 숨기기 위해 차가운 수건을 대거나 다크서클을 숨기기 위해 선글라스를 썼다. 아침에 약하고 밤이 되면 상태가 좋고 촬영이 매일 심야까지 계속 돼서 후카사쿠 조 = 심야작업 조를 가리킨다. 2003년 전립선으로 사망했는데 전립선암에 걸렸을 당시 성기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항암제 투여를 스스로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 후카사쿠 킨지와 영화[편집]


후카사쿠 킨지의 영화에서는 장난감이라는 작품 빼고는 사람이 죽는다. 중요해 보이는 인물도 갑자기 허무하게 급사하는 예측불허의 전개가 많다. 그리고 죽으면 그 인물 이야기는 사실상 끝이다. 그 인물이 하던 것도 뭔가 할 것 같았던 것도 다 베일에 덮여 사라지면서 시청자에게 상당한 허무감과 충격을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후카사쿠 킨지 자신은 전쟁을 겪어서 폭력을 반대한다고 하는데도 대부분의 영화가 이렇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가 허무하게 끝나는 건 아니다. 후카사쿠 킨지는실록영화에 입문한건 당시 일본 B급 영화계는 실록영화가 대세였기 때문이었다. 실록 영화는 실화에 기반한 야쿠자 영화를 이르는 말인데 임협영화라고도 한다. 일본에서 실록하면, 조선왕조실록이 아니라 야쿠자 이야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계는 1950년대에 시대극 붐이 일어났다. 그러나 구로사와 아키라감독과 미후네 토시로 주연요짐보츠바키 산주로가 흥행하면서 일본 시대극은 변신을 한다. 그전의 시대극은 로닌도 서민도 야쿠자도 짙은 화장을 했다. 칼로 베어도 피나 베이는 소리도 나오지 않는 가부키풍 이었지만 이제는 그로테스크 시대극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던중 츠루타 코지인생극장[1]가 대박나고 1964년에는 본격 야쿠자 영화 바쿠토가 나와서 야쿠자 영화는 흥행의 시대가 된것이다. 물론 그 때 쇼와잔협전도 나오긴했다.

그러던중 질과 양에서 높은 수준인 토에이 야쿠자 영화가 다른 영화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생극장 시리즈, 쇼와잔협전, 일본협객전등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술영화 감독으로 재조명중인 이시이 테루오도 야쿠자 영화를 만들었다고... 이런 야쿠자 영화는 전공투들에게도 인기를 얻어서, 하루의 운동이 끝나면 영화관으로 직행했다. 그 당시에는 TV, 특히 컬러TV가 많이 보급되지 않아서 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보급은 되긴 되었는데 가난한 자취생, 노동자, 건달, 한량들은 살 길이 없었다(...)

사회가 혼란스럽자 정보를 갈구하던 대중들은 주간지의 옐로우 저널리즘덕에 자극적인 걸 접할수있게 되자 야쿠자 영화는 힘을 잃었다. 하지만 야쿠자 영화의 금자탑인 의리없는 전쟁이 대박나자 현실을 각색한 야쿠자 영화가 인기를 끌고 후카사쿠 킨지는 감독으로써의 주가가 올라갔다. 높은 관객에도 불구하고 야쿠자를 미화해서 비난받는 등 사회적 지위가 낮고 영화계에서도 무시를 당하던 야쿠자 영화였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허무주의적인 베이스의 의리없는 전쟁은 각계로 절찬되어 영화 작품상을 수상하고 스가와라 분타도 주연 남우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비디오의 보급으로 야쿠자 영화는 추락하고 비디오 영화의 시대가 열린다.

대표적인 연출로는 과격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촬영과 화면을 잠시 멈추고 정지 샷을 보여주면서 자막과 내레이션을 넣어 이야기를 진행하는 연출이 있다. 이 화면 멈추기는 필름과 촬영 시간을 아끼면서 영화 시간은 늘리기 위해 쓰던 저예산 기법이었으나 후카사쿠는 그것을 적재적소에 워낙 절묘하게 잘 써서 후카사쿠를 상징하는 연출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감독이다. 감독 작품의 수위가 장난이 아니라 대부분 수입되지 않아서 보기가 매우 어려우며, 일본어를 아는 사람도 의리없는 전쟁은 히로시마 사투리 때문에 알아듣기 쉽지 않고 번역도 제대로 된 게 없다. 한국에서는 배틀로얄 외에는 후카사쿠 킨지 작품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일본 영화를 많이 따라하던 20세기 중반의 한국 영화계에서도 후카사쿠 킨지의 스타일을 이어받은 한국 감독은 많지 않았다. 한국만 이런 게 아니고 같은 이유로 해외 영화계에서도 일본처럼 높은 평가를 받지 못 했다고 한다. 칸, 베를린, 베니스 그 어떤 외국의 유명 영화제에서도 후지사쿠 작품에 상을 준 적이 없다.

의외로 후카사쿠 킨지는 한국의 영화계가 아닌 예능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국 예능에서는 의리없는 전쟁, 배틀로얄 등 그의 영화 작품의 OST를 넣는다거나, 연출과 편집을 따라하기도 했다. 무한도전 또한 추격전을 할 때는 후카사쿠 킨지 작품 연출을 오마주하기도 했다. 다만 후카사쿠의 영화를 직접적으로 따라한 건 아니고 후카사쿠의 연출을 따라하던 일본 예능의 영향으로 보인다. 과거 한국 예능계는 일본 예능을 표절하는 일이 흔했다.

후카사쿠 킨지를 존경해서 오마주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있는데 이런 작품들은 애니메이션 팬들이 보기엔 잔인하고 허무하며 급작스러운 전개가 많아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아키바 메이드 전쟁 등이 그렇다. 그나마 안도 마사히로(1967)의 감독 작품이 호평받는 편이지만 이 감독은 후카사쿠 킨지 연출만 쓰는 게 아니고 여러 일본 영화 연출을 섞어 쓰는 감독이다.


3. 영화들[편집]


그의 영화는 야쿠자 영화들이 많은데 주인공들 대부분이 허무하게 죽는다(...). 사실 당시 심의가 영화 속 야쿠자들은 죽거나 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 검은 도마뱀, 흑장미의 관. 1968~1969년작.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소설 아케치 코고로미시마 유키오가 각색해서 감독한 영화 시리즈. 검은 도마뱀이 먼저 개봉하고, 스핀오프인 흑망미의 여관이 후에 나왔다. 검은 도마뱀에서는 미시마 유키오가 카메오로 나온다(...) 킬빌에서 패러디된다. 참고로 괴도 검은 도마뱀역의 미와 아키히로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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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 슬라임 1969년작.
미국, 일본 합작 영화로 미국 배급은 MGM 영화사에서 담당했다. 일본에서는 '감마 3호-우주 대작전'이란 제목으로 미국보다 1년 빠른 1968년에 개봉했다. 007 썬더볼 작전에서 악역 본드걸 피오나를 연기한 루치아나 팔루치가 히로인으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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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공습을 소재로 한 미국, 일본 합작 영화로 20세기 폭스 영화사가 제작하고 토에이 영화사가 촬영 협조를 했다. 원래 일본 파트 감독이었던 구로사와 아키라가 중간에 강판 당하자 마스다 토시오와 함께 일본 파트를 공동 감독했다. 다만 이 작품은 평론계에서는 마스다 토시오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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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도외인부대(박도:바쿠토는 도박하는 야쿠자를 의미함) 1971년작.
오키나와가 무대인 야쿠자 영화. 츠루기 테츠야가 나오는데, 늘 선글라스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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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부끼는 군기 아래에서[2] 1972년작.
후카사쿠 킨지의 반전 사상이 잘 드러나 있는 영화. 남편이 뉴기니 전선에서 애매하게 사망 처리가 되어서 전몰자 보상을 못 받게된 미망인이 남편의 전우들을 만나 남편의 생전의 행적과 남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더듬어가는 내용인데, 상관의 구타, 식인, 포로 학대, 약탈 행위 등 당시 막장이던 일본군의 행태를 다루고 있다. 심지어 PTSD에 시달리는 군인도 다루고 있으며, 자위대의 팽창에 우려를 보내는 내용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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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베는 불량배-광견 삼형제 1972년작
여기에서도 스가와라 분타타나카 쿠니에가 주연이다. 일본 만화에서 나오는 쇠못이 잔뜩박힌 야구방망이가 처음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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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이 나서 2년안에 시리즈가 5편이나 만들어졌는데도 퀄리티가 뛰어나다. 물론 저예산 영화다. 그런데 다음해에 신 의리없는 전쟁이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아들을 동반한 검객의 도살자, 와카야마 토미사부로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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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리의 무덤 1975년작.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야쿠자 이시카와 리키오(1926~1956)를 다뤘다. 첫부분에서 이시카와에 대해 말하고 있는건 실제 관계자지만, 영상은 상관없는 인물. 주인공인 와타리 테츠야는 대하 드라마 카츠 카이슈 촬영 도중에 강판되어, 요양생활을 거친 후 복귀작. 후카사쿠는 광견 삼형제에서도 이시카와를 다루긴 했다. 촬영전에 제작진들은 이시카와의 무덤에 성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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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쿠리쿠 대리전쟁 1977년작.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호쿠리쿠의 야쿠자를 중심으로 간토 세력과 간사이 세력간의 대리전쟁을 다뤘다.영화를 보고 자신이 당하는걸로 묘사되어 분노하게 된 야마구치 구미의 간부가 주인공의 모티브가 되는 인물을 쏴죽여서 더 큰 논란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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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마츠 신지의 만화를 영화화한 일본판 더티 해리 짝퉁 영화. 마츠카타 히로시 주연. 원작 자체가 더티 해리 짝퉁인데, 놀랍게도 소년 점프에 연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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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로부터의 메세지 1978년작.
당시 스타워즈의 어마어마한 인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SF 영화. 사이보그 009, 가면라이더 원작자로 잘 알려진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각본에 참여했고 할리우드 여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의 아버지인 빅 모로가 출연했다. 후에 '우주로부터의 메세지-은하 대전'이라는 제목으로 스핀 오프 TV 시리즈가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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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 일본침몰의 원작자인 코마츠 사쿄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당시 최대 제작비를 들여서 제작됐다. 로버트 본, 글렌 포드, 조지 케네디, 올리비아 허시, 오가타 켄 등 지금 기준으로도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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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후타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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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실상의 유작으로 그의 작품 중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항목 참조.

파일:attachment/후카사쿠 킨지/4.jpg
엄밀히 말하면 이게 그의 유작이지만 만들다가 도중에(아마도 초반부에) 고인이 됐기 때문에 사실상 그의 아들 후카사쿠 켄타의 작품으로 취급받는다.


4. 그 외[편집]


게임 클락 타워 3의 이벤트 무비 감독도 맡았다. 이것도 유작에 해당한다.

제자는 호리 나가후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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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그냥 쌈마이 영화이다.[2] 일반 영화팬들에겐 '군기는 똥구덩이 아래에'란 제목으로 잘 알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