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나가 유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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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후쿠나가 유이치(福永祐一(ふくなが ゆういち)
Fukunaga Yuichi
국적
일본파일:일본 국기.svg
출생
1976년 12월 9일(47세)
시가현 릿토시
신체
161cm, 51kg
가족
아버지 후쿠나가 요이치(福永洋一(ふくなが よういち) (75세)[1]
배우자 마츠오 미도리(松尾翠( まつお みどり) (40세)[2]
슬하 1남 2녀[3]
소속
일본중앙경마회
키타하시 슈지(릿토)
(1996.3.1 - 2006.2.28)
→ 프리(릿토)
(2006.3.1 ~)
데뷔
1996년 3월 1일
은퇴
2023년 2월 26일
승수
중상
중앙 160승, 지방 36승, 해외 5승
GI · JpnI
중앙 34승, 지방 6승, 해외 5승
통산
19497전 2636승
정보
파일:netkeiba_logo.png

1. 개요
2. 경력
3. 여담
4. GI/JpnI 승리 말



1. 개요[편집]


일본의 전 중앙 경마 기수. 천재 후쿠나가 요이치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에 비해 범용한 재능이라는 평가에도 굴하지 않고 더비 자키와 무패 삼관 기수의 꿈을 이룬 노력가. 2023년 은퇴하여 조교사로서 호스맨 인생 2기에 들어섰다.

2. 경력[편집]


오카베 유키오, 시바타 마사토의 동기이자 천재로 불렸던 후쿠나가 요이치(福永洋一)의 아들로, 아버지는 유이치가 3살 때인 1979년 낙마 사고로 현역에서 은퇴하지만,[4] 아들의 멘토이자 든든한 인맥 커넥션이 되어줬다.

재학 중이던 고등학교를 중퇴[5]하고 경마학교 11기생 모집에 응시하지만 직전에 입은 다리 부상 때문에 떨어졌다. 이후 재수하여 JRA 경마학교 12기[6]입사했다. 1996년에 데뷔해 53승을 거두며 JRA상 최다 승리 신인 기수를 수상했다.

1997년 킹 헤일로와 함께 도쿄스포츠배 3세 스테이크스(당시 G3)에서 레코드 기록으로 우승하며 첫 중상 우승의 기쁨을 맛봤고, 1999년 오크스에서 프리모디네에 기승, JRA GI 첫 승리를 거둔다. 훗날 기수 본인의 회고에 의하면 예상치 못한 승리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다음 주, 고쿠라 대상전에서 마장에 입장하다 낙마 사고를 겪었다. 큰 부상이어서 왼쪽 신장을 적출하고 3개월 반 휴양 후 7월에 복귀했다.

천재 후쿠나가 요이치의 아들로 데뷔 때부터 많은 기승의뢰를 받으며 오랜 세월동안 꾸준히 실적을 쌓았지만, 사츠키상에서 킹 헤일로를 타고 2착을 한 뒤, 경기가 끝나고 조정실에 들이닥친 타바라 세이키[7]에게 형편없었다는 혹평과 함께 '이 경기는 네가 이길 수 있었다'며 혼이 나기도 했고, 그 뒤로도 킹 헤일로일본 더비처럼 미숙한 모습을[8] 보여 기수 생활 초기에는 아버지 인맥빨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특히 월드 에이스(ワールドエース)와 에피파네이아의 클래식, 빅 아서의 2016년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 등으로 대표되는 큰 무대에서의 울렁증은 중견 기수가 되고도 고쳐지지 않아 일본 경마 팬들에게선 'G1 빼고 다 잘하는 기수' 등으로 실적에 비해 반쯤 네타 캐릭터 취급을 받곤 했다. 로드 카날로아 : ??????? [9]

그러던 2018년 와그네리안에 기승, 데뷔 약 20년만에 더비를 우승하면서 정신적인 면에서 큰 성장을 이루었으며, 2020년에는 콘트레일의 주전으로 무패 3관을 달성하는 등 각종 마일스톤을 실시간으로 갱신하고 있다.

2021년 더비에서 샤흐리야르로 우승하며 더비 통산 3승 및 사상 3번째 더비 연패를 달성했다. 또 동년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에선 픽시 나이트로 우승하며 21년도 3번째 GI 우승 기록을 거뒀다. 현재는 명실상부한 일본 탑 기수 중 하나이자 천재 아버지의 실적을 능가한 대기만성의 수재 이미지를 굳혀가는 중.

2021년 콘트레일의 은퇴전을 겸한 재팬 컵을 우승한 직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기수 자신과 말 모두 훌륭한 아버지(각각 후쿠나가 요이치, 딥 임팩트)를 둔 아들 입장에서의 부담감, 그리고 생애 첫 클래식 삼관의 영광을 함께했음에도 고마 시즌에서 부진을 거듭한 채 맞이한 은퇴전을 승리로 마무리지었다는 점에 대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북받쳐 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우승이 커리어 사상 첫 재팬 컵 승리이다. 은퇴식 이후 릿토 트레이닝 센터를 떠날 때에는 현장을 방문하여 콘트레일을 배웅해주기도 했다.

2021년 12월 12일 홍콩 스프린트에서 픽시 나이트에 기승 중 낙마 사고에 휩쓸렸다. 2021년 홍콩 스프린트 낙마 사고 문서를 참조. 링크 처음으로 쓰러진 어메이징 스타와 사고에 휘말린 나부 어택[10]이 예후불량 처분을 받고 현장에서 안락사될 정도로 큰 사고였는데, 후쿠나가가 기승했던 픽시 나이트도 어메이징 스타에 걸려 넘어지고 후쿠나가는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면서 머리부터 땅에 떨어지는 아찔한 장면이 방송 카메라에 그대로 찍혔다.[11] 타고 있던 픽시 나이트는 은퇴할 정도의 부상은 입지 않았으나 장기 휴양이 불가피한 부상들을 여러 곳에 입었다.[12]

후쿠나가는 병원으로 옮겨진 후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좌측 쇄골 골절 등의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말과 기수 모두 장기 휴양은 불가피한 상황이며, 연말의 주요 G1에 기승 예정이었던 유력마들도 줄줄이 대체 기수를 구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후쿠나가는 최근 몇 년간 장기 휴양에 들어갈 만한 큰 낙마를 여러번 당하고 있는데 모두 본인의 기승 실수 등의 원인이 아닌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기막힌 상황이며, 아버지도 낙마로 인한 큰 부상으로 기수에서 은퇴한 만큼 대를 이은 불운에 팬들의 많은 걱정을 사고 있다. 다행히 어깨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한다.

부상이 회복되어 2022년 1월 27일부터 조교 기승을 시작하고 2월 5일에 정식으로 복귀, 카페 파라오를 타고 페브러리 스테이크스에서 압승하였고, 사츠키상에서는 지오글리프를 타고 우승했다.

2022년 12월 8일, 단번에 조교사 시험에 합격, 2023년 2월에 기수를 은퇴하고 조교사로 전향할 예정이다.# 후쿠나가가 오랫동안 소속되어 있었고 스승으로 모시는 키타하시 슈지(北橋修二) 전 조교사, 콘트레일의 담당인 야하기 요시토 조교사, 킹 헤일로의 담당이었던 사카구치 마사히로 전 조교사 등 경마계 인사들이 축하의 코멘트를 전해왔고, 평소 절친한 사이인 타케 유타카는 훗날 후쿠나가가 조교한 말을 타고 경기에 나가고 싶다며 축하인사를 건넸으며, 킹 헤일로를 배출했던 쿄와 목장은 마침 킹 헤일로의 딸이 콘트레일의 자식을 수태하였기에 태어나면 후쿠나가에게 맡기고 싶다는 축하의 메세지를 보내서 경마팬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조교사가 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공부를 잘해야 할 뿐더러 기승 실기 및 상대평가 방식의 구술평가(논술평가)도 있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2022년도에도 19:1의 경쟁률을 보여주었다[13].

시험 합격 이후 22년 12월 기승한 에리카상에선 노블 크라이에 기승, 1번 인기를 받는다. 그러나 12착으로 참패한다. 조교사가 왜 탔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 그 동안 보여준 형편없는 기승 실력이 다시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2023년 2월 19일 도쿄 9R에서 페리에르에 기승하여 1착을 기록, 누적 2636회 승리를 기록하였고, 12R에서 겐파치 프라이드[14]에 기승하여 인기 3위, 5착을 끝으로 JRA에서의 마지막 기승을 끝냈다. 경기 종료 후 열린 환송식에는 릿토를 대표하여 타케 유타카가, 미호를 대표하여 시바타 요시토미가 참석하여 후쿠나가 기수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후쿠나가 기수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 두 분에게 은퇴 꽃다발을 받게 되어서 복잡한 기분이라며 웃음을 지었고 일본 더비의 무대였던 도쿄 경마장은 뜻깊은 장소였으며, 최고의 기수 인생이었다고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환송식 인터뷰 중에서 "후쿠나가 기수가 첫 JRA 중상 승리를 한 곳도 이곳 도쿄 경마장이었다"는 사회자의 코멘트에 후쿠나가는 "그렇다. 킹 헤일로였고 도쿄스포츠배 3세 스테이크스였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고 답하기도 했다. JRA 공식영상 스포츠채널 공식 영상 넷케이바 기사

2023년 2월 26일, 시바타 요시토미, 카와다 유가 등과 함께 사우디 아라비아 원정길에 올라 마지막 기승으로 리야드 더트 스프린트(G3, 더트 1200m)에서 리메이크를 타고 3착을 기록, 유종의 미를 거두며 27년간 이어왔던 기수 인생의 종지부를 찍었다.

2023년 3월 4일, 아버지인 후쿠나가 요이치 전 기수 등이 내빈으로 참석한 가운데 한신 경마장 패독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JRA 공식영상 은퇴를 기념하여 JRA에서는 은퇴 기념 페이지를 기한 한정으로 공개했고, 당일 한신 경마장에서는 '후쿠나가 유이치 기수 은퇴 메모리얼 북' 2만권을 입장객에게 증정했다. 은퇴식 전에 후쿠나가 기수는 유도마인 미츠바[15]를 타고 경마팬들을 맞이하였으며, 은퇴식 자리에서는 자신의 대표 커리어인 콘트레일(노스 힐즈)의 승부복을 입고 등장했다. 은퇴식에서는 후쿠나가가 탔었던 주요 경주마의 승부복을 딴 꽃다발들이 전달되어 일본의 경마 팬들 사이에서 소소한 화젯거리가 되었는데, # 후쿠나가 기수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꽃다발 인증샷을 업로드 하였다.[16]

2023년 7월에 열린 셀렉트 세일에선 첫날 최고 낙찰가액인 2억 9천만엔짜리 키타산 블랙 산구를, 2일차엔 무려 역대 3위 금액인 5억 2천만엔을 기록한 콘트레일의 산구가 후쿠나가의 마방에 맡겨지는 것이 결정 되었다고 한다. 노스 힐즈의 대표 마에다 코지씨는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최대의 개업축하 선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 킹 헤일로의 고향인 쿄와목장에 방문하여 킹 헤일로의 딸인 헤일로 후지가 콘트레일과 교배하여 낳은 말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렸다.쿄와 목장 트위터 알림 후쿠나가 유이치의 인스타그램 보고

3. 여담[편집]


  • 선배 기수인 타케 유타카와 매우 절친한 사이로 평소엔 껌딱지처럼 붙어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자주 어울려 다닌다고 한다. 1살 차이 나는 동기(후쿠나가 쪽이 연상)인 와다 류지 기수와도 상당히 친한 편으로, 미혼 시절의 후쿠나가가 와다를 데리고 유흥업소로 놀려가보려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17]그리고 타케 유타카와 유이치의 부모이자 명기수들인 타케 쿠니히코와 후쿠나가 요이치가 같은 G1 경기에서 같이 뛴 경력이 있다.

  • 본능적인 감각과 타고난 재능으로 천재 기수라고 불리는 아버지 후쿠나가 요이치와는 다르게 치열하게 공부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노력가형 수재라는 평을 듣는다. 이런 평가로 인해서 조교사 전업 후의 미래 역시 기대된다는 평이 많다.

  • 기본적으로 말을 굉장히 좋아하고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보통 경주마가 은퇴하면 마방의 조교사나 구무원이 배웅을 해 주고 기수가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드문 케이스라고 하는데, 킹 헤일로콘트레일이 현역에서 은퇴하고 종마 생활을 위해 릿토 트레이닝 센터를 떠날때에 후쿠나가 유이치가 직접 찾아와서 배웅을 해 준 일은 잘 알려져 있다. 은퇴하는 콘트레일을 배웅하러 나온 후쿠나가 유이치 킹 헤일로를 조교한 사카구치 마사히로 조교사가 2018년에 밝혔던 후쿠나가 유이치와의 추억 중에서 "(후쿠나가) 유이치군이 바쁜 스케줄을 다 미뤄두고 은퇴하는 킹 헤일로를 배웅하러 나왔던 일"이 가장 인상에 남는 추억이었다고 회상했다.
2021년 홍콩 스프린트 낙마 사고로 재활 치료중이었던 2022년 1월 5일에는 비원의 더비를 제패했을때의 콤비였던 와그네리안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날 아침에 급하게 도쿄에서 릿토 트레센으로 달려가서 와그네리안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

  • 더비를 3승이나 한 것에 비해 그랑프리 성적은 처참한 수준인데, 타카라즈카 기념은 19전 0승, 아리마 기념은 13전 0승을 기록하고 있다. 이건 후쿠나가 기수 본인이 타카라즈카 기념과 아리마 기념 같은 우회전 코스 경기에 약해서 그런 것이다.

  • 2009년 고치 경마장에서 열린 토크쇼에서 "고치 하면 사카모토 료마후쿠나가 요이치"라는 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고치 경마장에서는 2010년부터 중상 경주인 후쿠나가 요이치 기념(더트 1600m)을 개최하고 있는데, 이 대회의 협찬금과 부상 및 트로피를 지원하고 있다. 쿠로후네상과 함께 대표적인 고치의 지방 중상이다.


  • 2021년 12월에 인터넷 방송에서 영상(2:00:00 부터) 우마무스메가 엄청 인기 있을 때 알아두고 싶어서 한 번 해본 적 있다고 밝혔다. 고증을 칭찬하면서 말을 잘 아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대호평했다.

  • 타본 말 중에서 제일 최고로 뽑는 말은 실버 스테이트다. GI은 커녕 중상 우승 경력도 없지만, 무패삼관마 콘트레일보다도 더 뛰어나다고 한다. #

  • 릿토에 자리한 은퇴마 시설 TCC 재팬[18]의 대표이사 야마모토씨는 후쿠나가 유이치 기수의 매제.

  • 2023년 4월 23일 교토 11R 마일러즈 컵에 게스트 해설자로 참가해서 시청자들이 깜짝 놀라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4. GI/JpnI 승리 말[편집]





  • 피스 오브 월드[19] - 한신 쥬브나일 필리즈(2002)

  • 에이신 챔프 - 아사히배 퓨처리티 스테이크스(2002)[20]





  • 세자리오 - 우준 빈마(2005), 파일:미국 국기.svg 아메리칸 오크스 인비테이셔널 스테이크스[21](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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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8년 12월 18일생. 고치 출신으로 기수 3년차였던 1970년부터 1978년까지 무려 9년 연속으로 최다 승리 기수를 수상했으며, 데뷔 3년차에 처음으로 리딩 자키에 올랐다. 이는 최단기간 리딩 자키 타이 기록이자(타케 유타카도 3년차에 처음 리딩 자키가 되었다.), 최다 연속 리딩 자키 기록 타이 기록이기도 하다.(타케 유타카 역시 9년 연속으로 리딩 자키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타케 유타카는 1991년에 오카베 유키오에게 리딩 자키를 한 번 내주고 세운 기록이지만, 후쿠나가 요이치는 리딩 자키를 차지하고 불가항력적인 낙마 사고로 은퇴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타이틀을 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대단한 기록이라고도 볼 수 있다.[2] 전 후지테레비 소속 아나운서.[3] 그 중 셋째이자 막내 아들은 2020년 1월생으로, 후쿠나가 유이치 나이 43살에 낳은 늦둥이이다.[4] 당시 탄 말이 오다기리 유이치 소유마인 메리 조이(マリージョーイ)였기 때문에 오다기리는 꽤 오랫동안 후쿠나가 요이치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고, 유이치가 기수가 되었을 때 사정을 모르고 조교사가 오다기리의 말에 태우려 하자 "오다기리의 승부복을 아드님께 입혀도 되는지, 가족분들께 물어봐 달라"고 물어볼 정도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당시 사고는 메리 조이의 문제가 아니라 전방에서 접촉 사고로 낙마한 기수를 제때 피하지 못하고 걸려 넘어진, 말 그대로 불가항력적인 사고였기에 요이치 측에서는 "신경쓰지 마시고 아들을 꼭 태워달라"며 허락해 주었다고.[5] 원래 중학교 졸업 후 바로 아버지를 이어 기수가 되려 했지만, 어머니의 강한 반대로 고등학교에 가서야 겨우 설득에 성공했다고 한다. 남편이 사고로 평생 장애를 가지게 되었으니 후쿠나가의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아들도 같은 일을 하겠다 하면 걱정이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작 후쿠나가 본인은 한동네 살던 형인 타케 유타카가 20살에 포르셰 끌고 다니는 걸 보고 기수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여담으로 낙마 사고 당시 요이치가 31세, 부인은 겨우 24세였다.[6] 동기로는 와다 류지, 시바타 다이치, JRA 최초 여성 기수 호소에 준코 등이 있다.[7] 당시 타바라 세이키는 기수를 막 은퇴하고 조교사로 활동하던 시기였다. 현역 시절에는 유이치의 아버지인 후쿠나가 요이치가 낙마사고로 은퇴한 이후 후쿠나가 요이치를 이은 '새로운 천재 기수'로 주목을 받았었다.[8]더비 기승이라 너무 긴장한 나머지 출발하자마자 스퍼트 사인을 걸어버렸다. 선입 각질이었던 킹 헤일로는 스퍼트 사인을 받자 도주해버렸고, 2번 인기가 무색하게 18두 중 14착으로 침몰했다. 이 65회 일본 더비는 후쿠나가 유이치 본인도 두고두고 곱씹을 정도로 그의 기수 인생 최악의 기승 중 하나가 되었다.[9] 2012년 하코다테 스프린트 스테이크스에서 저지른 희대의 병크 덕분에 로드 카날로아의 주전에서 강판되었다. 이전에도 기승 미스로 문제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로드 카날로아에겐 잘 된 셈. 실제로 로드 카날로아는 이와타 야스나리로 주전 기수가 변경된 후 전성기를 맞았다.[10] 630kg이 넘는 거체로 대회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된 말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넘어질 때 이 무거운 체중이 독이 되어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11]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이 아버지의 부상 순간과 너무 흡사하여 일본의 올드 경마 팬들 중에는 40여 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12] 카와다 유가가 기승했던 다논 스매시도 이 사고에 휩쓸렸는데, 다논 스매시가 점프로 쓰러진 말과 사람을 잘 피했고 카와다가 침착하게 속도를 줄이며 외곽으로 말을 빼내 큰 사고를 모면했다. 이후 경기 포기 없이 속보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이후 카와다 유가는 홍콩 마일의 다논 킹리, 홍콩 컵러브즈 온리 유(은퇴전)에 무사히 기승하였으며 홍콩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13] 대여섯 번 불합격하는 건 흔한 정도고, 후쿠나가의 동기인 시바타 다이치도 무려 10수를 하며 전직을 준비중이지만 계속 미역국을 먹고 있다. 야하기 요시토 조교사도 무려 14수 끝에 합격했을 정도로 어려운 시험이다.[14] 부마는 미키 아일, BMS는 A.P Indy.[15] 미츠바는 사실 후쿠나가가 2014년 신마전,201년 2세 미승리전,2018년 G2 경기인 나고야 그랑프리 총 3번을 기승한 바 있으며 미츠바의 외할머니에 해당되는 골든 잭은 후쿠나가의 은사인 키타하시 조교사 소속으로 후쿠나가 유이치도 골든잭을 타고 코쿠라 닛케이 오픈을 이기는 등 여러가지 인연이 있어서 미츠바를 타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16] 좌측부터 순서대로 프리모 오디네, 세자리오 + 에피파네이아, 와그네리안, 킹 헤일로, 에이신 프레스턴, 콘트레일, 라인 크라프트의 승부복 디자인을 의미한다.[17] 이 소식을 들은 와다의 아내가 휘발류를 들고 왔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와다가 그건 휘발류는 예능용 부풀리기라고 해명했다.[18] 해당 단체는 말 테라피를 하는 시설과 함께 은퇴한 경주마가 부상을 입은 채로 승마장에 갈 경우 부상 심화로 인해 사망하거나 승마장측이 살처분을 의뢰하는 등의 경주마 세컨드 케리어의 불안정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치료를 하면서 동시에 승마 교육을 시켜서 승마장이나 은퇴마 목장에 보내기 전에 은퇴마 후원자들을 모집하고 이들을 통해서 걷은 수익을 위탁료로 삼아 승마장이나 은퇴마 목장 등에 제공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19] 킹 헤일로를 조교한 사카구치 마사히로 마방 소속의 암말. 후쿠나가 유이치 기수는 과거 킹 헤일로의 건으로 사카구치 조교사에게 반드시 은혜를 갚고 싶었다고 밝혔고 결국 한신 쥬브나일 필리즈에서 우승으로 보답했다. 경기가 끝나고 웃음짓는 후쿠나가 기수와 사카구치 조교사(2분부터)[20] 에이신 프레스턴으로 이어진 에이신 관명과의 인연으로 기승했으며, 그러기 위해 포기한 것이 네오 유니버스. 이에 후쿠나가 대신 기승하게 된 미르코 데무로가 훗날 네오 유니버스를 계기로 일본에 눌러앉게 되는 스노우볼이 굴러갔다.[21] 현 아메리칸 오크스 스테이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