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허하오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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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행정구
지급시 9, 3
현급행정구
시할구 23, 현급시 11, 17, 49, 자치기 3
후허하오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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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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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내몽골 자치구의 수부
후허하오터시
呼和浩特(Hūhéhàotè(Shì | ᠬᠥᠬᠡᠬᠣᠲᠠ
Hohhot City[1]





시정부 소재지
내몽골 자치구 후허하오터시 신창구 신화둥루1호
内蒙古自治区呼和浩特市新城区新华东街1号
지역
화베이
면적
17,186.1km²
하위 행정구역
4구 4현 1기
시간대
UTC+8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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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446,100명 (2020)
인구밀도
200명/km²
민족 구성
한족 87.16% | 몽골족 9.98%
후이족 1.44% | 만주족 1.07%
HDI
0.810 (2016)
서기
바오강(包钢)(몽골족)
시장
허하이둥(贺海东)
GRDP
전체
$496억 2,000만 (2015)
1인당
$16,295 (2015)
상징
시화
정향
시목
잣나무
차량번호
蒙A
행정구역 약칭

행정구역코드
150100
지역전화번호
0471
우편번호
010000
ISO 3166-2
CN-NM-01

홈페이지
1. 개요
2. 상세
3. 기후/환경
4. 음식
5. 관광
6. 교통
7. 출신인물



1. 개요[편집]


중국 북부 내몽골 자치구의 수부(首府)[2]이다.

바오터우에서 서쪽으로 150km, 다퉁에서 서북으로 120km 떨어진 평원에 위치해 있고 인구는 290만 명이다.


2. 상세[편집]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후흐허트(Хөх хот)로 몽골어로 '푸른 도시'라는 뜻이다. 후허하오터는 중국어식 발음이다.

왕소군의 묘가 있는 것으로 보아 흉노 때부터 도시가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나라의 군현제 당시에는 운중군(雲中郡)으로 칭하였으나 실제적으로는 흉노 세력권이었으며 한 군현은 사실 흉노를 통제하고자 설치한 명목상의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5호 16국 시절 탁발선비족이 세운 북위의 첫번째 수도였던 성락이 되었다.[3] 오늘날 후허하오터시의 직접적인 기원은 1565년 몽골 투메드부의 알탄 칸에 의해 세워진 귀화성(歸化城)이다. 우리가 아는 귀화랑 단어가 같은데 바로 알탄 칸에 의해 명나라에서 북원으로 '귀화'한 한족들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귀화성이 위치한 오르도스의 투메드부 일대는 애초에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한 척박한 지역이라 한족이 원래 살지 않았으나 알탄 칸이 대원제국의 부활을 외치고 스스로를 중국 천자 자리를 되찾겠다고 선언하며 베이징을 포위하는 경술의 변을 일으키고 더 나아가 산시성, 허베이성 일대를 약탈하며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한족들을 잡아다 내몽골로 강제이주시킨 후 한족식 도시를 만든 게 바로 귀화성이었다. 그 덕분에 내몽골 외곽인 에렌호트 등과 달리 후흐허트는 원래부터 한족이 더 많았다. 이후 1571년 알탄 칸이 명나라와 강화를 맺고 순의왕으로 봉해지면서 이 지역의 정세가 안정화되자 귀화성은 명-몽골 국경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하여 크게 번영하였다. 또한 알탄 칸은 말년에 티베트 불교로 개종했기 때문에 귀화성에 수많은 티베트 불교 사원이 건설되어 귀화성을 중심으로 티베트 불교가 내몽골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그후 귀화성을 세운 투메드부가 귀화성을 거점으로 명-몽골 국경 무역의 이익을 한동안 독점하였으나 투메드부가 쇠퇴하고 1628년 차하르부의 링단 칸이 귀화성을 차지한다. 그러나 링단 칸이 1634년 병사하고 차하르부와 혼인동맹을 맺고 있던 만주족후금이 대원제국의 옥새를 차지하고 만주-몽골 동군연합을 이루면서 귀화성은 후금의 차지가 되었다. 이후 후금은 1636년 칭제건원을 하면서 국호를 으로 바꾸었고 귀화성은 오르도스 방면에서 청군이 만리장성 이남으로 쳐들어가는 거점이 되었다.

이후 강희제가 외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귀화성 북동쪽에 새로운 성을 쌓고 이를 수원성(綏遠城)이라고 하였고 여기에 팔기군을 주둔시켜 오르도스의 방위를 맡겼다. 귀화성과 수원성을 아울러 귀수(歸綏), 즉 구이쑤이라고 불리면서 청나라 치하 내몽골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신해혁명 이후 1913년 중화민국 북양정부가 귀화성과 수원성을 정식으로 통합해 구이쑤이라고 하였고 새로 만든 쑤이위안성(綏遠省)의 성도로 삼았다. 1939년 구이쑤이를 차지한 일본 제국괴뢰국 몽강연합자치정부의 수장 데므치그돈로브가 구이쑤이를 몽골어로 푸른 도시라는 뜻의 '후흐허트'로 고쳤고 중일전쟁 이후 다시 내몽골을 차지한 국민정부가 도시 이름을 다시 구이쑤이로 바꿨으나 1947년 중국 공산당이 만든 내몽골자치구의 수부가 1954년 칼간에서 구이쑤이로 옮겨온 이후 구이쑤이를 다시 후흐허트로 이름을 고쳤다.


3. 기후/환경[편집]


전형적인 사막성 기후이다. 연 강수량이 약 300mm로 매우 건조한 환경이다. 겨울철 실내에 빨래를 널면 2시간만에 마른다. 원체 건조한지라 비는 구경도 힘들고 비가 내려도 금방 마르기 때문에 길가에 배수구가 없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이처럼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서 중국에서 가장 물이 부족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지만, 황하 및 요하에서 물을 끌어오는 덕분에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다.

대륙성 기후라서 낮에 덥고 밤에 춥다. 마찬가지로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 대신 건조하기 때문에 낮이라도 그늘만 가면 비교적 시원한 편이다. 애초 몽골 기후가 다 이렇다. 짧은 여름엔 섭씨 40°C까지 올라가고 긴 겨울에는 영하로 -50°C까지 떨어진다. 조드라는 강풍은 덤이다. 조드 한방에 부자도 망한단 몽골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몽골인의 주택인 게르의 경우 여름 더위와 겨울 추위에 모두 대비가 되어 있도록 설계했으며 강풍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점은 같은 사막에 사는 동계 유목민인 튀르크계 유목민들의 유르트도 똑같다.

여름이 짧은 편이라 호텔 같은 건물 제외, 대학이나 기숙사, 가정집, 식당 등에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기온이 들쭉날쭉하여, 5월에 난데없이 30°C까지 올랐다가 12°C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벚꽃피는 계절에는 벚꽃 위에 눈이 내려앉기도 한다. 햇빛은 굉장히 강한 편이라 선글라스 없이 다니기 힘들다.

또한 기압이 아주 낮아서 강풍이 심하다. 비행기도 내몽골 상공 비행 시 강풍에 심하게 흔들려서 몽골 고원을 통과하는 비행은 난이도가 꽤 높다. 내몽골이 어찌나 강풍이 심한지 바이킹을 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비행기가 수직하강과 상승을 반복하기도 한다. 북극항로 개척이 늦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렇게 까다로운 난이도의 기류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비해 몽골, 중국, 러시아 3국의 관제시스템이 열악해서 그런 게 컸다.

의외로 황사는 짧다. 대신 심한 경우 공기에서 모래 내음을 맡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공기가 매우 좋다. 흐린 날이 드물고 하늘은 높고 푸르다.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을 연상하면 된다.


4. 음식[편집]


"北咸南甜、东酸西辣"라는 말[4]에서 알 수 있듯 음식이 매우 짜다.

원나라 시대 이 지역에서는 한족들이 이주해왔고, 명나라 이후 감자가 중국에 전래된 뒤로는 전통적으로 감자 재배가 일반적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기후가 원인으로 보인다. 2010년대부터 도시 외곽에 우후죽순 생긴 신도시 지구가 1980년대~1990년대에는 전부 광활한 감자밭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 지역은 엄연히 내몽골 지역인지라 중국의 최대 소수민족을 이루는 몽골족, 즉 몽골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몽골 요리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주권국가인 몽골 즉 외몽골과 약간 다른 내몽골식 몽골 요리인데 이 내몽골식 요리가 만주 요리, 그리고 북방 중국 요리베이징 요리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5. 관광[편집]


파일:중국 호화호특.jpg
파일:호화호특 모스크.jpg
바이타 (백탑)
후허하오터 모스크 (호화호특 청진사)

원나라, 북원, 청나라 등 유목민 왕조 시대에 지어진 티베트 불교 사원들[5]과 역시 이 지역 토착민인 회족에 의해 지어진 이슬람 사원 청진사[6], 흉노에 끌려간 한나라 궁녀 왕소군의 묘인 소군묘 등이 관광지이다.

시내 동쪽에 바이타 국제공항이 있으나 철도 교통이 애용된다. 바이타 국제공항 인근에는 요나라대 중후기에 세워진 白塔[7]가 있는데, 시내버스가 통하지 않는다. 시내버스 종점에서 도보로 50분 거리인데 인도가 없다.

내몽골 박물원도 규모가 크고 이 지역을 차지, 개발한 유목민 왕조인 요, 금, 원, 청대 및 흉노와 돌궐 시대 역사 유물을 다량 소장하고 있어 볼 만 하다. 특히 한국에서 보기 힘들고 잘못하면 터키 이스탄불까지 가서 봐야 하는(...) 돌궐 유물들을 여기서 대거 볼 수 있다.


6. 교통[편집]


후허하오터 지하철이 있으며, 2개 노선이 개통된 상태이다. 후허하오터 바이타 국제공항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직항은 없으므로, 베이징 등지에서 환승해서 와야 한다.


7. 출신인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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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몽골어 지명이라서 중국어 발음을 한어병음으로 옮긴 표기가 아닌 몽골어 발음에 따른 로마자 표기를 쓴다. 우정식 병음을 쓰던 시절에는 옛 명칭인 구이쑤이의 로마자 표기를 약간 고쳐서 Kweisui라고 표기했다.[2] 중국에서는 자치구의 행정중심지를 성회(省会, shěnghuì)가 아니라 수부라고 한다.[3] 12년만에 남쪽에 있는 평성, 오늘날의 산시성 다퉁시로 천도해버려서 실질적인 중심지로 작동한 시기는 매우 짧고 영향력도 그리 크지는 않았다.[4] 북함남첨, 동산서랄. 북쪽은 짜고 남쪽은 달고 동쪽은 시고 서쪽은 맵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 동부 지역인 후난 성의 음식도 맵기로 유명하다.[5] 大召无量寺, 五塔寺 등.[6] 마스지드중국어로는 청진사라 한다[7] 바이타. 즉 백탑. 만부화엄경탑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