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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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시인민정부 청사 전경
1. 개요[편집]
훈춘시(珲春市)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현급도시이다. 조선족자치주의 도시지만 지명의 유래가 만주어 ᡥᡠᠨᠴᡠᠨ / huncun(눈썰매)이기 때문에 중국조선어 표기도 '훈춘'이다.
2. 역사[편집]
고대에는 북옥저(옥저)가 있었다. 북옥저의 다른 이름으로 미구루, 매구루, 치구루가 있는데, 삼국시대에 들어 고구려가 북옥저를 정복하고 치구루를 한자로 음차하여 책성이라고 하였다. 책성은 고구려 지방구획 5부 중 동부의 중심지로 동부욕살의 치소가 위치해 있었다.
남북국시대에는 발해의 동경용원부 또는 책성부였다. 발해 멸망 이후에는 여진족들이 살았다.
성종 시기에 세종대왕이 개척한 4군 6진의 압록강 - 두만강 국경을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농경이 가능한 야춘, 훈춘 지대까지 확장하려 했으나 불발되었다. 100여년 후의 니탕개의 난을 보면 알겠지만 두만강 삼각지대는 돌출부 형태라 양면에서 공격을 받기 쉽고 그 안에서도 훈융진같은 돌출부가 산재한데다가 두만강의 폭도 좁아 쉽게 도하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훈춘 지역이 동쪽으로 갈수록 계속해서 땅이 이어지고 동쪽으로 200여리는 가야 바다가 나오니 당시 조선 재정으로는 무리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두만강 건너편 하산 지역의 산성 유적에서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양식의 기와와 옹기 유물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는데, 시도 자체는 한 것으로 보인다.[2] 연구결과에 따라서 4군 6진의 실제 범위가 크게 넓어질 수도 있다.
조선 후기부터 조선인들이 많이 거주하면서 1920년에 훈춘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국공내전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속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이 꾸준히 한족을 동북 지방으로 이주하게 하면서 조선족 비율이 꾸준히 줄어들어 현재는 50% 정도이다.
3. 현황[편집]
훈춘은 러시아,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이때문에 장령자(창링즈) 세관을 경유하여 러시아인 관광객들이 상당히 유입되고 있다. 창훈도시간철도가 뚫리면서 창춘에서 3시간대로 접근이 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면서 러시아인 관광객들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조선족자치주인데 러시아 관광객도 많아서 상점 간판이 3개국어(중국어, 러시아어, 조선어)가 병기된 경우가 흔하며 영어까지 4개국어로 표기해놓은 곳도 있다.
도심중심부에 현대백화점이 있다. 하지만 그 현대백화점과는 이름만 같고, 운영주체는 다르다.
혼춘 동남쪽 땅거스러미에 방천이라는 곳이 있다. 북-중-러 3개국 국경이 접하는 곳으로 국가풍경구로 지정되었으며 훈춘 관광산업의 밥줄. 다만 현재는 권하진 이남 구간이 대대적으로 공사중이라 접근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주차장에서 셔틀버스가 다니는데 이걸 타면 전망대인 용호각 앞에서 한국인들은 다 내리게 하고 내국인 관광객들만 태운 채 진짜 국경 기념비까지 간다. 위에서 말한 야춘이 이곳이다.
4. 두만강을 통한 동해로 진출?[편집]
지도를 보면 지린성 훈춘시의 남동쪽은 북한과 러시아 영토에 막혀 아슬아슬하게 동해 바다와 접해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동해로 나가고 싶은 중국 정부가 동해로의 진출로를 모색하려고 북한에게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면서 나진항 이용권을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실용성이 있을지는 미지수이긴 하다.
과거 청나라와 제정 러시아 시절에 연해주를 놓고 갈등을 벌인 적도 있다. 양국은 네르친스크 조약과 캬흐타 조약이라는 국경 획정 조약을 맺었지만, 1800년대에 서구 열강들이 중국을 차례차례대로 전쟁에 이기면서[3] 아이훈 조약과 베이징 조약으로 지금의 국경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와 별개로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훈춘시 팡촨(방천,防川)일대에 내륙항구를 만들어 두만강 물줄기를 통해 동해안 진출을 노리고 있어 훈춘에서 4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취안허(圈河)에서 부두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고 한다.
5. 군사[편집]
북부전구육군 제 329 국경경비여단이 주둔해있다.
6. 출신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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