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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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캘리포니아주 휘티어
2. 미국 알래스카주 휘티어
2.1. 개요
2.2. 특징
2.3. 역사


1. 미국 캘리포니아주 휘티어[편집]





휘티어
Whittier
국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위도 / 경도
33°57'56"N / 118°1'28"W
인구
86,635명 (2013)
면적
37 km²
인구밀도
2341.49명/km²
시간대
서머타임 미실시: UTC-8
서머타임 실시: UTC-7
파일:휘티어 시기.svg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카운티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86,635명 (2013) 이며, 면적은 37 km²이다.

1898년 2월 25일에 퀘이커 교도 부부가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도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휘티어 칼리지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2. 미국 알래스카주 휘티어[편집]





휘티어
Whittier
국가
미국

알래스카 주, 발데즈-코르도바
위도 / 경도
60°46'27"N / 148°40'40"W
인구
214명 (2015)
면적
51 km²
인구밀도
4.20명/km²
시간대
서머타임 미실시: UTC-9
서머타임 실시: UTC-8



2.1. 개요[편집]


미국 알래스카주 발데즈-코르도바 인구 조사 구역[1] 에 위치한 마을로, 214명의 인구 (2015년) 와 51 km²의 면적을 지니고 있다.


2.2. 특징[편집]


파일:WhittierAlaskaSkyline.jpg


동네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아파트 한 채에 몰려 산다. 스프롤 현상이 일반화된 미국 기준으로는 엄청나게 특이한 케이스.

영상

오른쪽의 높은 건물인 비기치 빌딩은 원래 호지 빌딩이라는 이름으로 1953년에 미군 육군 군단 본부가 주재하기 위해 건설된 빌딩이었는데, 1960년대 초에 군단 본부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마을의 여러 기관들과 주민들이 이곳으로 이사 오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른것이다.

비기치 빌딩내에는 주거 시설 뿐 만아니라, 경찰서, 우체국, 병원, 상점, 놀이터, 수영장, 시장[2]의 사무실, 호텔, 2개의 교회 등, 사람의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입주해있으며, 건물 외부에 위치한 학교와 이어지는 지하 통로까지 구비되어 있어, 야외를 싫어하는 인도어파들에게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주거지는 원룸의 경우 월세 700달러, 투룸은 1000달러, 쓰리룸은 1200달러 수준이며 여기에 모든 공과금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구입은 약 17만달러라고 한다. 이렇게 정식으로 입주한 거주자들은 15층에 있는 회의실에서 열리는 주민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 입주자들의 국적은 미국인을 기본으로 하여 필리핀을 비롯하여 다양한 국적이 있으며 외국인들은 대부분 어업으로 돈을 벌기 위해 와 있다고 한다. 물자 유통에 제한에 있다보니 당연하게도 전체적으로 물가가 비싸게 형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가구나 전자제품들은 10년에서 20년까지도 이전의 모델들이 사용되고 있다.
도시(건물)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유일한 출입구인 터널을 통해 앵커리지로 가서 볼일을 봐야하는데 겨울철엔 왕복에 긴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터널이 밤 11시에 닫히기 때문에 이 시간을 놓치면 차량에서 밤을 새야 한다. 물론 응급환자 등이 발생하는 경우는 개방된다.

왼쪽의 버려진 듯한 건물은 버크너 빌딩인데, 이 역시 1953년에 군사용 건물로 지어졌다가, 1966년에 이 건물이 쓸모없어지면서 폐쇄되어버렸다. 버크너 빌딩 근처에는 Whittier Manor라는 12호실의 연립주택이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여기에서 산다.


2.3. 역사[편집]


휘티어가 위치한 지역은 알래스카[3] 깊숙이 위치하여선지, 발견이 많이 느렸다. 일찍이 휘티어의 앞바다인 페시지 운하를 러시아미국 탐험가들이 몇 번 오간것이 전부이며, 이후 1915년에 와서야 미국의 한 시인에 의해, 인근 지역의 빙하가 휘티어 빙하로 명명되었다.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 쯤, 휘티어에는 미국의 군사용 시설 캠프 설리반이 지어졌는데, 캠프 설리반은 세계대전 시기에는 태평양에 대한 군사지원을 위하여, 이후 냉전시기에는 소련에 대한 견제용으로 쓰였다. 윗 부분에서 거론된 비기치와 버크너 빌딩 또한 이 시기에 군사용으로 지어진 것이다.

1960년대 들어 캠프 설리반이 패쇄되고, 그 건물이 민간으로 넘어가며, 휘티어의 역사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4]

1964년에 알래스카 지진이 일어났을때, 휘티어는 1천만 달러 상당의 재산 피해와 13명이 사망하는 인명피해를 입었지만, 마을을 이루는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지어져 별 손상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지진 피해가 복구되며, 휘티어는 크루즈 선박과 많은 중형 유람선이 지나가는 곳이 되었으며, 군사 시설 시절에 개통한 철도로도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또한 예전에 만들어둔 활주로로도 관광객들이 휘티어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며, 휘티어는 특히 자연 관광객, 낚시꾼 등 에게 인기가 많은 관광 명소가 되었다.

2000년에는 안톤 앤더슨 기념 터널이 뚫려, 외부와의 교통이 더욱 원활해 졌다. 원래 1940년대에 개통된 철도 터널이었는데 2000년에 도로 겸용으로 개조했다. 철도 터널이었던 만큼 폭이 차량 1대만 통과할 정도라서 터널 입구에 신호등을 두어서 양방향을 번갈아서 통행시킨다. 터널 통행료는 $10이었는데 2023년 6월 기준 $13으로 인상되었다. 전체 통과에는 14분이 걸리기 때문에 16분에 한 번씩 신호가 바뀐다. 양 끝 입구 쪽에는 차량이 대기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열차가 통과할 때는 차량을 모두 통제시키고 열차가 지나간 뒤에 통행을 재개시킨다. 휘티어의 인구가 적어서 통행량도 적기에 이런 번거로운 시스템이 가능한 것. 휘티어에서 빙하투어 유람선이 오전 11시 30분에 출발하는 데 휘티어 방향은 열차가 지나가기 때문에 오전 10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통행이 차단된다. 그래서 오전 10시 30분 전에 이 터널을 통과하지 못하면 빙하투어 유람선을 타지 못하게 된다. 해당 열차는 유람선과 패키지로 연결되는 승객들을 태우고 오는 데 가끔 오는 도중에 열차가 고장 나서 유람선이 늦게 출발하는 경우가 있다.

알래스카에서 제일 큰 대도시인 앵커리지 까지 자동차로 1시간 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문화 생활에 큰 지장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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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래스카는 다른 주와 다르게 인구 조사 구역카운티 대신 쓴다.[2] 인구가 214명에 불과하지만, city의 지위를 가진다.[3] 지금의 추가치 국유림.[4] 알래스카의 주 정부에서는 휘티어의 역사가 1969년 7월 15일에 시작된 것으로 간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