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오트 자동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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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ot Automatic Rifle
Le fusil automatique Huot
휴오트 자동 소총


파일:external/www.forgottenweapons.com/huot11.jpg

종류
자동소총
경기관총
원산지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868-1921).svg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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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
역사
1916년~1918년
개발
조셉 알폰스 휴오트
개발년도
1916년
생산년도
1917년~1918년
생산수
최소 5정
사용국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868-1921).svg 캐나다
기종
원형
로스 소총
제원
탄약
.303 브리티쉬
급탄
25발짜리 드럼탄창
작동방식
가스작동식
총열길이
635mm
전장
1,190mm
중량
5.9 kg (비장전 시)
8.6 kg (장전 시)
발사속도
475RPM

1. 개요
2. 개발 배경
3. 설계와 개발
4. 채용
5. 대중매체
6. 둘러보기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캐나다에서 생산한 제1차 세계 대전경기관총.


2. 개발 배경[편집]


1차 세계 대전 당시 해외 원정군을 60만명이나 보낸 캐나다는 영연방 소속으로 빅커스 기관총같은 영국제 기관총들을 대거 도입하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일단 생산된 기관총들이 포화 속에서 무적인 것도 아니고, 인명만큼이나 기관총도 많은 손실을 겪고 있었기에 영국군의 요구 수량을 채우기도 부족한 상황 속에서 캐나다 원정군에게 돌아가는 기관총의 양은 턱없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스트레이트 풀 볼트액션은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미신에 시달렸던 로스 소총[1] 1915년 즈음에 이미 영국제 리-엔필드 소총들로 대체되었고, 엔필드 소총들과 동일한 .303 브리티쉬 탄을 사용하는 기관총의 종류는 그닥 다양하지 않았기에 루이스의 대체재도 구하기 어려웠다.


3. 설계와 개발[편집]


조셉 알폰스 휴오트(Joseph Alphonse Huot)[2]는 퀘벡 출신의 기술자로 총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취미로 반자동 소총을 만드는 그런 독특한 인물이었는데, 그는 기관총 수량 부족 문제가 불거진 시점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헐값에 팔려나오는 로스 소총들을 사들여 기관총으로 개조한다.[3] 첫번재 프로토타입을 본 캐나다군은 그를 소화기 개발부서에 정식으로 고용했고, 휴오트는 군의 지원을 받으며 개발을 이어나갔다.

로스 소총은 그 당시로 따지고 보면 그리 흔하지 않았던 스트레이트 풀 볼트액션 방식[4]을 사용했는데, 이 덕분에 로스 소총은 다른 볼트액션 소총들에 비해 자동화기로 개조하기 용이했다. 그러나 본래 싱글액션이었던 소총을 자동장전으로 개조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문제가 있는데, 자동사격으로 인해 노리쇠에 가해지는 충격, 사수의 손과 얼굴 보호, 급탄방식의 문제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결 가능했다. 그래서 휴오트는 노리쇠가 왕복할 홈을 연장하고 끝에 완충기를 설치했으며, 그 위에 사수의 얼굴과 손을 보호할 거대한 철판 덮개를 추가했고, 탄창은 노리쇠에 연결된 걸쇠에 의해 라쳇 톱니바퀴로 회전하는 드럼탄창이 개발되었다. 이로 인해 탄창은 지나치게 무거웠고, 상부를 완전히 가리는 덮개 때문에 조준이 어려웠으며, 파지가 불편해 손이 큰 사람은 손잡이를 엄지로 감싸쥐지도 못할 정도로 비좁은 공간만 남아 있었다.[5]

자동사격시 총열이 과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루이스 경기관총의 냉각 총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장탄수를 25발로 늘린 휴오트의 프로토타입 무기는 1916년 9월 즈음 작동이 가능한 시제품이 나왔고, 이는 1916년 말부터 1918년까지 캐나다는 물론 영국에서도 여러차례 혹독한 테스트를 받았다. 이 당시 휴오트의 프로토타입은 동시대 나왔던 제품들(특히 루이스 경기관총)과 비교 테스트를 받았는데, 군용 화기에 대한 개발 경력이 없는 사람이 개발한 컨버전 키트인데도 불구하고 휴오트 자동소총/경기관총은 영국군과 캐나다군으로부터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캐나다군과 영국군의 테스트에 의하면 휴오트 자동소총은 루이스 경기관총보다 대응사격도 빨랐고, 신뢰성도 우월했으며 설사 작동불량이 생겨도 이를 해결하는데 시간이 덜 들어갔으며 결정적으로 루이스 경기관총 가격의 1/20 수준밖에 안되는 저렴한 가격(루이스 경기관총 생산에는 $1,000 캐나다 달러가 필요하지만 휴오트 자동소총은 생산에 $50 캐나다 달러만 소요)을 제시했다. 휴오트의 프로토타입 화기는 캐나다군의 제식 화기로 채용될 가능성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4. 채용[편집]


휴오트 경기관총/자동소총은 저렴한 개조비용과 우수한 성능으로 캐나다군의 전력 증가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물건이었다만, 아쉽게도 제식으로 채택이 되지는 못했다. 캐나다군이야 자국내에서 개발된 우수한 총으로 대호평을 받았으나, 전쟁에 들고 나가기 위해서는 영국군의 심사도 거쳐야 했다. 이 때는 이미 전쟁이 끝나가던 시기였고, 영국군의 입장에서는 기관총의 수량도 안정화되어 가고 있었던데다 휴오트가 이미 병사들이 익숙하게 조작할 수 있는 루이스를 대체할 정도로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지는 않았기에 최종적으로 채용을 거부했다.

4-5년을 거의 독자적으로 이 자동소총의 개발에 전념한 휴오트는 군에서 더 이상 줄 일거리가 없다 하여 해고되기에 이르러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민간에 팔아보려고 해도 1919년 캐나다의 민간 시장에 크고 무거우면서 쓸데없이 탄약을 낭비하는 기관총을 살 사람은 없었고, C$36,000 상당의 빚을 지게 되어 오랫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다.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은 승소하고도 1936년이 되어서야 C$25,000 가량을 휴오트에게 지급했고, 겨우 재기에 성공한 휴오트는 1942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캐나다군의 소화기 개발에 참여했으나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고, 1947년 사망했다.

총 5정이 테스트를 위해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오늘날에는 4정만이 남아 있다. 2정은 캐나다 오타와의 캐나다 전쟁박물관 (Canadian War Museum)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밴쿠버의 시포스 하이랜더 박물관 (The Seaforth Highlanders of Canada Museum)에 1정, 그리고 핼리팩스의 육군박물관 (Army Museum)에 1정이 보존되어 있다.


5. 대중매체[편집]





6. 둘러보기[편집]


제1차 세계 대전기의 연합군 보병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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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연합군보병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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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기
소총
볼트액션
리-메트포드, 리-네이비, 리-엔필드, P14, M1917 엔필드, 크로파첵 M1884, 르벨 M1886, 베르티에, K11, 베테를리 M1870/87, M1870/87/15, 모신나강, 베르단, 그라, 무라타, 카르카노, 크라그-에르겐센, 마우저 M1889, 마우저 M1893, 로스 소총, 30년식 소총, 38식 소총, 스프링필드 M1903
레버액션 / 폴링ㆍ롤링ㆍ리프팅블록 / 트랩도어
스나이더 Mk.III, 레밍턴 롤링블럭, 크른카 M1867, 스프링필드 M1873, 마티니-헨리, 윈체스터 M1886, 윈체스터 M1892, 윈체스터 M1894, 윈체스터 M1895, 새비지 M99D
반자동
레밍턴 모델 8, M1907 SL, 뫼니에 M1916, RSC M1917, RSC 1918, M1903 Mk 1, 브리티쉬 1918 파콰르-힐, 류장군 소총E
자동
리베롤 1918E, 윈체스터 버튼 1917E, M1907/17, 체이-리고티E, 표도로프, M1918 브라우닝
기관단총
MAB 18, OVP 1918, 쇼샤-리베롤 기관단총E
산탄총
M1897, M1912, 레밍턴 모델 11, 레밍턴 M10, 셰그렌 산탄총, 스티븐스 M520
권총
리볼버
콜트 M1873, 웨블리, MAS 1873, 보데오 M1889, S&W M10, 웨블리-포스베리E, 콜트 M1901, Mle 1892, 26년식 권총, 나강 M1895, S&W M3, S&W 트리플 락, 콜트 M1909, M1917
자동권총
C96, 마스E, FN M1900, FN M1903, 콜트 M1903, 새비지 M1907, FN M1910, 웨블리 권총, 리센티 M1910, M1911, 루비, 스타 M1914, 베레타 M1915/17
지원화기
기관총
경기관총
마드센 M1902, 루이스, 호치키스 M1909, CSRG M1915, 휴오트E
중기관총
가드너, 맥심, M1895/14 콜트-브라우닝, 빅커스, 호치키스, 생테티엔 M1907, 38식 기관총, 3년식 기관총, 페리노 M1908, 피아트-레벨리 M1914, 빌라르-페로사 M15, M1917 브라우닝
박격포
2인치 중박격포, 3인치 스토크스 박격포
유탄발사기
마티니 유탄발사기
유탄
No.1 수류탄, No.2 수류탄, 밀즈 수류탄, RG-14, F-1, Mk.1, Mk.2, Mk.3, 비방-베시에
경야포
빅커스 Q.F. Gun, Mk II, 37mm Mle 1916 보병포
냉병기
도검
구군도, M1902 세이버, U.S M1917 트렌치 나이프, U.S M1918 Mark I 트렌치 나이프
※ 윗첨자E: 테스트만 치른 후 제식 채용되지 않음

※무기체계 둘러보기 : 파일:영국 국기.svg · 파일:러시아 국기.svg ·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 파일:gun_icon__.png 대전기 보병장비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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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본래 수렵용 소총에 가까웠던 로스는 1차 대전의 진흙탕 참호 속에서는 쉽게 고장났고, 로스가 참고했던 M.95 소총은 오스트리아-헝가리, 네덜란드, 불가리아 등 다양한 국가가 군용으로 적극 채용한 스트레이트 풀 소총이었지만, 특유의 만리허식 엔블록 클립이 빠질 구멍이 총몸에 나 있었기에 스트리퍼 클립을 사용하는 마우저식 소총들보다는 신뢰성이 떨어졌다.[2] 실제 발음은 '후옷' 에 가깝다.[3] 이러한 시도는 휴오트가 처음은 아니었다. 총기 만든 경험이 있다 하는 나라는 각자 볼트액션 소총을 가져다 반자동이나 자동으로 개조를 시도했고, 각자 그 접근방식도 달랐다. 극히 일부만이 제식 채용되었다.[4] 일반 볼트액션 소총들이 노리쇠를 60도에서 90도 사이의 각도로 꺾은 다음 뒤로 당겨야 탄피를 배출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단순히 장전 손잡이를 뒤로 당기면 노리쇠가 홈을 따라 자동으로 회전을 하며 탄피를 배출하는 방식.[5] 손잡이와 개머리판을 개조해 권총 손잡이를 다는 것은 이 당시에는 낯선 설계였고, 로스 소총을 값싸게 개조해서 쓴다는 목적에서 벗어나는 개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