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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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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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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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브론즈볼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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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골든슈 19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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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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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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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FFFFFF; font-size: 0.9em;"
UEFA 유로 1996



1992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마르코 판바스턴
2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3위
토마스 헤슬러
1994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호마리우
2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3위
로베르토 바조
1992 Ballond'or
수상
마르코 판바스턴
2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3위
데니스 베르캄프
1994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호마리우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로베르토 바조





불가리아의 축구감독


파일:external/www.uefa.com/1587190_w2.jpg

이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Hristo Stoichkov / Христо Стоичков
출생
1966년 2월 8일 (56세) /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플로브디프
국적
불가리아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신체
178cm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윙어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헤브로스 하르만리 (1982~1984)
PFC CSKA 소피아 (1984~1990)
FC 바르셀로나 (1990~1995)
파르마 칼초 1913 (1995~1996)
FC 바르셀로나 (1996~1998)
PFC CSKA 소피아 (1998)
알 나스르 FC (1998)
가시와 레이솔 (1998~1999)
시카고 파이어 SC (2000~2002)
DC 유나이티드 (2003)
감독
불가리아 대표팀 (2004~2007)
RC 셀타 데 비고 (2007)
마멜로디 선다운즈 FC (2009~2010)
PFC 리텍스 로베치 (2012~2013)
PFC CSKA 소피아 (2013)
국가대표
파일:BFU lion logo.png 83경기 37골 (불가리아 / 1986~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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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단검 (Камата), 현대적 좌익수 (Модерния ляв),
개 (Кучето), 총잡이 (El Pistolero)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2.2. 국가대표
3. 플레이 스타일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5. 성격
6. 여담



1. 개요[편집]


불가리아의 전 축구선수. 1994년 발롱도르 수상자로 펠레에 의해 FIFA 100에 선정되었다.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1992년에는 소속팀 FC 바르셀로나에게 에이스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구단 역사상 최초의 유러피언컵 트로피를 안겨주는데 큰 공헌을 하고,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득점왕에 오르고 불가리아를 4강으로 이끌어서 골든슈와 브론즈볼을 받았으며 같은 해에 발롱도르도 수상했다. 불가리아 출신 축구선수 중 가장 성공한 인물로 불가리아의 올타임 레전드로 평가되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 위상이 대단하다. 애칭은 ‘소피아(불가리아의 수도)의 별’. 한 신문사에서 주관한 '20세기 최고의 불가리아 출신 축구 선수' 투표에서 2위에 오를 정도. 하지만 다혈질적이고 거친 성질머리로도 유명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편집]


헤브로스 하르만리의 선수로 데뷔, 불가리아의 클럽인 PFC CSKA 소피아에서 6년 여의 선수 생활을 보내며 커리어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 지랄맞은 성질머리 때문에 1984-85 시즌 불가리안 컵 결승전에서 패싸움에 휘말리게 되며 무려 영구 출전 금지라는 징계를 당하게 되었으나 이후 징계는 한달 출장 금지로 줄어들었다.

1989-90 시즌에는 30경기 38골이라는 놀라운 득점 기록으로 전 유럽에서 탑 스코어러에 올라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하였고, UEFA 컵 위너스컵에서도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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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시 CSKA와 바르셀로나의 맞대결에서 스토이치코프를 눈여겨 보고있던 한 감독에 의해 FC 바르셀로나스카우트되는데, 그 감독은 다름아닌 그 요한 크루이프였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이적 첫 시즌부터 주심의 발을 즈려밟았단 이유로 2달 출장 금지 징계를 먹는등 역시나 그 성질머리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돌아왔을땐 여전히 리그 14골과 컵대회 6골을 넣으며 UEFA 컵 위너스컵 준우승을 이끈다.

스토이치코프는 1991-92 시즌 라리가에서 17골을 넣으며 우승을 이끌었고, 유러피언컵에서 4골을 득점하며 바르셀로나에게 첫 빅 이어를 안겨주면서 그 해 발롱도르 2위와 FIFA 올해의 선수 2위를 기록한다. 1992-93 시즌에도 리그 20골을 넣으며 우승을 차지한다.
파일:external/www.syrbazaar.com/Romario.jpg
바르셀로나에서 황금 듀오였던 호마리우와 함께
이후 바르셀로나에 합류한 호마리우와 환상적인 공격진을 구성하여, 라리가 4연패를 이끌었으며,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스토이치코프는 4강전에서 FC 포르투를 상대로 2골을 넣으며, 3:0 승리를 이끌어 결승 진출을 이끌었으나, 결승전에서 AC 밀란에게 4:0으로 대패했다.

이후 1995년에 파르마 칼초 1913에서 1년간 뛰다가 다시 바르셀로나에 돌아왔지만 루이 판할과의 갈등으로 1998년에 PFC CSKA 소피아로 돌아갔다가 여러 팀을 거쳐서 2003년 미국DC 유나이티드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편집]


클럽에서의 활약상도 대단했지만 국가대표 활약상은 말 그대로 더 레전드. 불가리아는 그 전까지만 해도 FIFA 월드컵에서 단 1승도 없었던, 국제 대회에선 별 볼일 없는 나라였고,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스토이치코프가 이끄는 불가리아는 1라운드에서 월드컵에 첫 출전한 나이지리아에 3-0으로 완패했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 그리스를 4-0으로 대파한 후, 3라운드에서는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있던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2-0으로 완파하는 이변을 낳았다. 스토이치코프는 아르헨티나전 멋진 선제골을 넣고 시라코프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한다.

16강에서는 멕시코를 상대로 역시 선제골을 넣으며 1-1에 승부차기 끝에 승리. 8강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만나, 로타어 마테우스의 선제골로 앞서 나가던 독일을 스토이치코프가 동점골에 결승골 어시스트까지 올리며 2-1로 역전승. 1골 1어시로 맹활약하며 불가리아를 4강에 올려놓았다. 비록 4강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로베르토 바조에게 2골을 허용해 패했고, 3·4위 전에서도 스웨덴에게 4:0으로 패해 4위에 그쳤지만, 4강 진출은 현재까지도 불가리아 역사상 최고의 월드컵 성적으로 남아있으며, 스토이치코프는 6골의 기록으로 공동 득점왕으로 선정되며 같은 해에 발롱도르까지 받으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다.[1] 여담으로 이때 불가리아가 기록한 월드컵 3승 이후, 불가리아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과 멀어진 상태며 자연스럽게 월드컵 본선 통산 승수도 3승에서 머물고 있다. 즉, 스토이치코프가 불가리아가 기록한 월드컵 본선 승리와 모두 관여되어있는 것이다.

UEFA 유로 1996에서도 스토이치코프는 조별리그에서만도 3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맹활약했지만 팀의 조별리그 탈락은 막지 못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광탈을 당해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을 쓸쓸하게 마무리했다.[2]


3. 플레이 스타일[편집]






크루이프의 드림팀에서의 실질적인 에이스 왼발잡이 공격수로 스트라이커로 영입되었지만[3] 보다 창의적인 롤도 자주 맡은데다 어시스트 능력도 몹시 뛰어났으며 주로 좌측 윙포워드로 나왔지만 높은 전술 이해도로 우측 윙포워드와 자주 스위칭을 하는 움직임을 가진다. 왼발 프리킥이 단연 압권이었으며, 간결하고도 순간적인 침투로 수비 한두명을 무력화시키는 움직임과 한두명 정도는 제칠수 있는 개인기와 수려한 골 결정력을 가졌다


4. 기록[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4.2. 개인 수상[편집]


  • 발롱도르: 1994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LW 7위)
  • FIFA 올해의 선수 2위: 1992, 1994
  • FIFA 월드컵 골든슈: 1994
  • FIFA 월드컵 브론즈볼: 1994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94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1996
  •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득점왕: 1988-89
  • 불가리아 파르바리가 득점왕: 1988-98, 1989-90
  •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4]: 1993-94
  • 유러피언 골든부츠: 1989-90
  • 옹즈도르: 1992
  • 옹즈 드 옹즈: 1992, 1994
  • 불가리아 올해의 축구 선수: 1989, 1990, 1991, 1992, 1994
  • 불가리아 올해의 운동 선수: 1994
  • IFFHS 세계 최고 득점자: 1994
  • FIFA 100: 2004
  • UEFA 주빌리 어워드: 2004
  • 골든풋: 2007


5. 성격[편집]


현역 시절이나 지금이나 다혈질 성격으로 유명했으며, 파트너로 호흡을 맞추던 호마리우나 감독이었던 요한 크루이프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게으름뱅이였다 한다. 거기다 피치위에서의 다혈질 성격으로 몹시 유명했다. 주심과 상대팀에게 큰소리를 질러대기 일쑤였으며 걸핏하면 싸우고 항의를 하다가 징계를 먹곤 했다. PFC CSKA 소피아 시절에는 영구 출장 정지 징계까지 거론되었고 FC 바르셀로나 이적뒤엔 주심의 발을 밟았다가 2개월 출장정지를 먹었다. 인터뷰에서도 독설과 도발을 쏟아내는등 여러모로 화끈하고 거칠 것이 없었던 플레이어. 크루이프에게 감정이 쌓였을 때 샌드백에 그의 사진을 붙여놓고 분이 풀릴 때까지 두들겼다는 일화가 있다. 은퇴하는 그날까지도 성질은 조금도 죽지 않아서 2003년 DC 유나이티드와 미국 대학축구팀의 대결당시 한 선수에게 거친 태클을 가했다가 그 선수의 다리가 부러진 일 때문에 고소까지 당했다. 당시 그 대학축구팀의 코치로 있던 레이 허드슨이 이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은퇴한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그 성질은 변하지 않아 독설가 기질은 여전하여 어록을 쏟아내고 있다. 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답게 레알 마드리드 CF에 대한 독설이 주를 이루며, 당연하겠지만 리오넬 메시, 펩 과르디올라 등 현세대 바르사의 황금기를 만든 팀 후배들은 몹시 아낀다. 그러나 바르토메우를 위시한 현 바르셀로나 보드진들에 대해선 상당히 비판적이다. 보드진들이 리오넬 메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보도가 나가자 '축구는 내비두고 농구나 신경써라 이 축구 좆도 모르는 사무원들아' 라는 식으로 말할 정도. 리오넬 메시와 엔리케 감독의 불화설 당시 팀이 메시를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다고 메시를 감싸면서 '바르셀로나가 외국인 선수들을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았고 외국인들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팀을 떠나기 일쑤였다' 고 증언하며 메시도 자기처럼 팀을 떠나게 될거라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스토이치코프 스스로가 감독과의 불화 덕분에 바르셀로나에서의 커리어를 끝낸 기억이 있어서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바르셀로나 선수들 중에서도 리오넬 메시, 루이스 수아레스, 네이마르 같은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선 유난히 각별하다. 그리고 스토이치코프의 예상대로 메시와 수아레스는 좋지 못한 방식으로 바르셀로나를 떠나게 되었다.

같은 이유로 루이 판할 감독을 몹시 싫어한다. 내뱉은 독설의 반 이상이 판할이 쓰레기라는 내용이다. 거의 즐라탄펩 과르디올라 디스하는 수준으로 판할을 막 까대는데, 바르셀로나에서 행복했지만 판할과의 갈등 때문에 떠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스토이치코프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부상당했던 당시 판할이 스토이치코프의 아내에게 '어쩌다 저렇게 나쁜 남편과 결혼했냐'고 드립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틈만 나면 판할을 대놓고 쓰레기라고 부르면서 까는걸 보면 앙금이 정말 남다른듯. 프리미어 리그로 이적의사를 밝힌 같은 팀 후배 페드로 로드리게스에겐 맨유만은 가지 말라며 예전에는 바르사를 무너뜨리더니 이젠 맨유까지 말아먹고 있다고 독설을 날렸다.

바르셀로나와 재계약 문제로 파문을 일으킨 우스만 뎀벨레에게 ‘구단 더럽히는 짓 하지 말고 떠나고 싶으면 유니폼 벗고 ‘나가겠다’ 라고 말하라’ 라고 화를 내며 강하게 질책하였다. 이후 뎀벨레의 폼이 올라왔지만, 여전히 뎀벨레에 대한 그의 반응은 싸늘하다.


6. 여담[편집]


  • 바르셀로나 시절 크로스바 맞추는 내기에서 호마리우와 함께 크루이프에게 참교육 당한 적이 있다.[5]


[1] 1994년 FIFA 올해의 선수는 마찬가지로 월드컵 우승과 골든볼 수상으로 맹활약한 팀 동료 호마리우가 수상한다. 스토이치코프는 이 해 FIFA 올해의 선수에서는 2위를 기록한다.[2] 1998년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불가리아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3] 미카엘 라우드루프가 스트라이커였다. 정확히는 가짜 9번.[4] 돈 발롱 어워드[5] 바르셀로나 감독 시절, 다혈질의 '미친 개'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와 역시 멘탈로는 어디서 절대로 지지 않았고 별명이 심지어 'animal'이었던 호마리우가 서로 팀의 넘버원이라고 투닥거렸다. 이를 보던 크루이프는 "놀고들 있네. 내가 감독이니까 내가 최고다. 그러니까 제발 말 좀 들어."라 했지만 이들이 말을 들을 리가 없으니, 서로 공을 10번 차서 크로스바 맞추는 내기를 하기로 했다. 다른 선수들도 간만에 흥을 돋울 거리가 생기니 승부에 관계없이 모두 참가했다. 결과는 스토이치코프 2번, 호마리우가 3번. 이에 호마리우가 자기가 최고라고 나대자 크루이프는 단숨에 6번을 성공시켰다. 호마리우가 주제도 모르고 겁도 없이 감히 크루이프에게 인정할 수 없다고 개기자 가만히 듣던 크루이프는 갑자기 왼발로 공을 냅다 갈기는데 그게 그대로 크로스바에 적중했고 호마리우는 바로 아닥했다고 한다. 훗날 크루이프가 이에 대한 뒷이야기를 했는데, 왼발로 공을 차서 맞춘 건 뽀록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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