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사와 스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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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
平沢 進(ひらさわ すす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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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히라사와 스스무 (平沢進)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출생
1954년 4월 2일[1] (70세)
도쿄도 아다치구
거주
이바라키현 츠쿠바시
가족관계
부친 히라사와 키요시
친형 히라사와 유이치
직업
싱어송라이터, 그래픽 아티스트, 프로듀서
데뷔
1979년
美術館で会った人だろ
| P-MODEL
1989년
時空の水
| 솔로
레이블
POLYDOR (1989~1995)
COLUMBIA (1995~1998)
TESLAKITE (2000~)
소속사
MODEL HOUSE (1979~1989)
I3 프로모션 (1989~1996)
케이오스 유니온 (1996~)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https://twitter.com/크기=25@]]
[개인]
https://twitter.com/크기=25@]]
[공식] | 파일:Bandcamp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활동
2.1. Hirasawa Energy Works
2.2. 응집하는 과거환현주의 8760시간
2.3. 개인 미디어
3. 음악 스타일
4. 디스코그래피
5. 여담
5.1. 한국 관련
5.2. 사용하는 장비
5.2.1. 악기
5.2.2. 컴퓨터
5.3. 태국과 히라사와 스스무
5.4. 스텔스맨
5.5. 서브컬쳐와의 관계
5.5.2. 기타 서브컬쳐에서의 패러디 및 관계
5.6. 주변 인물
6.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파일:hirasawa_for_pc-01.jpg

스승(師匠)[2]

일본의 일렉트로닉 뮤지션.

1979년 정월 도쿄 카츠시카구 카메아리에서 P-MODEL이라는 뉴웨이브/일렉트로닉 밴드를 결성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솔로 활동과 P-MODEL을 원맨 밴드 형태로 계승한 프로젝트 핵(核)P-MODEL 활동을 병행 중.


2. 활동[편집]


[ 1979년~2014년까지의 모습 < 펼치기 · 접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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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미청년 오오 미중년 오오 미노년


맨드레이크 결성 직후 장발의 히라사와 (19세)

1973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맨드레이크를 결성하고 레코드 회사가 앨범 발매를 권유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히라사와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봤고, 밴드의 음악 스타일을 포스트 펑크에 가깝게 변경해나가다 1978년에 이르러선 해체한다.

한편 1978년경부터 83년까지 야마하 신디사이저 교실에서 강의를 하며 수입을 얻었고 P-MODEL의 새 멤버를 여기에서 선출하기도 했다. 2001년 방영된 NHK P-MODEL 특집 방송에서의 인터뷰에 의하면 당시 P-MODEL 멤버의 조건은 연주실력보단 "얼마나 재밌는 생각을 하느냐"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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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ODEL 데뷔 당시 히라사와 (1980)

1979년 P-MODEL의 리더로 메이저 데뷔한 이후에는 밴드 활동과는 별개로 각종 필명으로 여러 장르의 곡을 주문받아 작곡[3]하였고 나중에 그의 솔로 활동의 기반 중 하나가 된다.

1984년에는 실험음악 유닛인 슌(旬)을 결성.[4] 비정기적으로 싱글을 발매해오며 히라사와만의 음악세계를 확장해 나아갔지만 1996년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해체된 상태.

1988년 12월 동결 라이브를 개최하여 P-MODEL의 활동을 잠정 중지할 것을 선언하고 히라사와 스스무는 앨범 "시공의 물"을 발표하면서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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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데뷔 직후 히라사와 (1989)

90년대부터는 데토네이터 오건, 검풍전기 베르세르크 등의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을 맡으며 활동 반경을 넓혔다. 잠시 중단했던 밴드 활동도 1991년 P-MODEL을 해동. 재개하며 일렉트로닉 성향이 강해졌고 이후 솔로 활동과 밴드 활동을 병행하게 된다.

1994년에는 독학으로 키운 CG기술과 프로그래밍 실력을 활용해 마치 RPG 게임을 하듯 선택지, 세트리스트, 빌런과 전투방법, 엔딩 등을 관객의 호응이나 행동으로 정해 그날 공연의 향방을 바꾸어나가는 '인터랙티브 라이브(Interactive Live)'를 선보였고 이후 솔로 앨범 발매 때마다 열리는 히라사와만의 공연 형태로 자리잡았다.

후술하겠지만 90년대 초반 우연히 방문한 태국 방문을 통해 동남아시아, 특히 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태국 문화를 접하면서 작품 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1995년엔 바로 그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5번째 앨범 'SIM CITY'를 발매했으며, 이 시기에 사설 홈페이지와 공식 사이트를 개설하기도.

1999년엔 P-MODEL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音楽産業廃棄物 ~ P-MODEL OR DIE'를 통해 일본 내 프로 뮤지션으로선 최초로 MP3 음원 판매를 시작하며 시대의 흐름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0년, 8번째 앨범 '현자의 프로펠러(賢者のプロペラ)'를 개인 소속사 '케이오스 유니온'에서 발매하며 음반회사로부터 완전히 독립해냈다. 그러나 P-MODEL은 12월 배양(培養) 선언을 하며 다시 활동을 중지. 사실상 해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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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콘텐츠 그랑프리 수상 당시 (2002)

2001년엔 'Hirasawa Energy Works'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후술.

2002년에는 '인터랙티브 라이브 쇼 2000 현자의 프로펠러' 활동으로 디지털 콘텐츠 협회 주최 '디지털 콘텐츠 그랑프리'에서 최고상인 '경제 산업 대신상'과 '엔터테인먼트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

같은 해 곤 사토시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천년여우의 사운드트랙을 담당. 이후에도 곤 사토시 감독과는 망상대리인, 파프리카 두 작품 더 협업하며 그의 음악적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하기도.

2003년, 살육에의 항의 전달을 발표하며 반전주의 메세지를 전달했다.

2004년에는 핵(核)P-MODEL이라는 이름의 원맨 밴드를 만들고 1집 앨범 'VISTORON'을 발매. 이후 솔로 음반과 일렉트릭 성향이 강한 핵P-MODEL을 병행하고 있다.

2008년엔 태국의 쉬메일, 히라사와 본인은 '제 2의 여성'이라 일컬은 사람들에 대해 다룬 서적 'SP-2'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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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모습.

2009년엔 P-MODEL 데뷔 30주년, 솔로 데뷔 20주년을 맞아 자신의 곡을 현악기풍으로 재해석,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 '응집하는 과거환현주의 8760시간'을 발표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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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에 접어든 히라사와 (2014)

어느덧 나이는 60대를 넘기게 되었지만, 핵P-MODEL의 앨범 'гипноза'의 발매와 HYBRID PHONON 라이브를 통해 여전한 그의 음악적 재능을 과시하였다. 이 때 머리카락도 하얀색으로 염색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에진(会人)과의 합동 라이브 (2020)

2019년을 기점으로 어느 시점부터 시력 저하로 안경을 쓰기 시작했고 예전보다 피부 노화가 더 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슬슬 70대에 접어들 나이고 팬들은 은퇴를 걱정하고 있지만, 2021년 정규 앨범인 'BEACON'이 호평받으며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최근엔 2019년과 2021년의 후지록 페스티벌 참가로 일본 내에서 다시금 주목받는 중.

2023년엔 9년 만의 히라사와 스스무/핵P-MODEL 합동 라이브 'HYBRID PHONON 2566'를 개최했다.

전국적으로 라이브 투어를 해오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1년에 1~2번 라이브 이벤트를 열고 있으며 이따끔 라디오나 인터넷 방송, 잡지의 인터뷰 등 매체에 출연하기도 한다.

2.1. Hirasawa Energy Works[편집]






Solar Ray 2
Sim City 2

히라사와 스스무가 2001년 7월 발표한 참으로 특이한 컨셉을 가진 프로젝트.
그 컨셉이란 바로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사냥한다는 것. 그것은 음악활동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태양 발전 등으로 대체한다는 프로젝트였다.
자택 스튜디오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5] 그 에너지만으로 제작된 음반이 SOLAR RA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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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프로젝트의 피날레라 할 수 있는 LIVE SOLAR RAY에선 새로운 악기가 등장하는데 영상에서 원판을 돌리며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런치패드 악기인 그래비톤이다. 자전거를 개조하여 자체제작하였으며 원형 판넬을 돌려 전력을 생산, MIDI 트리거 스위치를 누르면 소리가 나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자체 제작한 런치패드인 셈.

이 라이브는 아무래도 태양광 발전만으론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팬들 중에서 에너지 헌터를 선정하여 그들에게 발전 장비와 2차 전지를 나눠주고 전지에 전력을 사냥해오는 임무를 맡겼다.전무후무한 전기셔틀 모인 에너지의 양에 따라 단계별로 사용할 수 있는 악기들이 늘어났다.

레벨 1. 기타 솔로

레벨 2. 기타가 무선이 되어 스테이지 아래에서도 기타 솔로 가능

레벨 3. Miburi[6]

를 쓸 수 있게 된다.

특별 레벨. 신디사이저(Roland JD-800)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할 수 있게 된다.


Miburi가 연주되거나 신디사이저가 사용된 것을 보면 전력이 많이 모인 모양이지만 공연 당일에 비가 내려 라이브에 큰 차질이 생겨버렸다.
그러나 히라사와와 스탭들은 이 상황을 예상하였는지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스피커를 포기하고 그 대신 FM신호를 쏘아보내 관객들에게 지급해준 헤드폰으로 소리를 전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라이브를 강행하였다. 영상에서 일반 라이브와 음질이 이질감이 드는 것이 이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데 웬 아재가 정체불명의 몸짓을 하고 관객들이 열광하는 기괴한 풍경

이 라이브는 NHK BS2와 TBS에서 특집으로 다루기도 하였다.

2.2. 응집하는 과거환현주의 8760시간[편집]




P-MODEL 데뷔 30주년/히라사와 스스무 솔로 데뷔 20주년을 맞아 발표된 프로젝트.
8760시간, 즉 1년간 P-MODEL과 솔로 음악 중에서 앨범당 1곡을 선정하여 히라사와 스스무의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인 「전자음과 리얼한 현 섹션의 융합」을 극대화 즉, 현악기풍으로 리믹스하여 히라사와의 음악세계를 더 넓혀보는 프로젝트이다.

일단 그동안 나온 각 앨범에서 투표를 통해 리믹스할 곡을 선정[7] 선정된 곡은 리믹스 작업을 하면서 리믹스된 음의 샘플을 통해 그 과정을 공개하고 트위터를 통해 진행상황을 알려주고 그동안 쌓인 P-MODEL/솔로 관련 자료들도 공개하는 등 다양한 기획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환현주의 앨범 돌현변이(突弦変異)변현자재(変弦自在)가 발표되었고 이 프로젝트를 위해 시작한 트위터의 팔로워 수가 3만명을 돌파한 기념으로 라이브 도쿄이차현공동(東京異次弦空洞)을 개최. 3개월의 연장을 거쳐 프로젝트는 종료되었다. 트위터는 프로젝트가 끝나고 중단할 예정이었지만 계속하기로 결정되었다. 본인도 팬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든 것 같다. 그 후로 계속 저녁에 다양한 내용으로 트윗을 하고 있다.

2.3. 개인 미디어[편집]


  • 히라사와 스스무의 테크노 실험공방 | 파일:니코니코 동화 아이콘.svg [8]
1994년 FM군마에서 진행된 라디오 방송. 히라사와 스스무와 조수 우에다 요코가 일렉트로닉 음악 장비를 사용해보거나 근미래의 사용법을 연구하고 작곡에 대한 이야기 등이 진행된다. 개정 P-MODEL 멤버인 후쿠마 하지메, 코니시 켄지를 초빙하기도... 니코니코동화에 이 방송들이 남아있다.
  • 아종음 TV | #
히라사와 공식 사이트 NO ROOM에서 만든 유료영상. 1,2,3화 샘플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조잡한 영상효과와 히라사와 특유의 정신나간 센스가 묘미. 1,2,3화가 연이어 나오고 5년만에 4화가 나왔으며 2016년 2월 작곡 방법에 대한 에피소드가 올라오고 6월엔 태국 여행에 대한 에피소드도 나온 것으로 보아 다시 활성화하려는 추세인 듯 하다.
  • Hirasawa 감시 50000초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트위터 팔로워 수 50000명 돌파 기념 이벤트. 히라사와 스스무의 사생활을 통합 50000초 촬영해 송출하는 이벤트. 유스트림에서 부정규 방송되었으며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이다.
  • HIRASAWA 추적 70000보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트위터 팔로워 수 70000명 돌파 기념 이벤트. 걸음수 70000보를 목표로 하는 히라사와 스스무의 외출을 유스트림을 통해 부정기 녹화방송한다. 태국여행, 타 뮤지션의 레코딩 참가, 산책 등 히라사와의 일상생활을 알 수 있다. 이 이벤트는 2013년 8월에서 시작해 2015년 1월, 약 3년만에 끝났으며 1년 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 히라사와 스스무의 Back Space Pass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라이브의 방법 2 도입의 매직 발매 기념 유스트림 방송. 1회는 라이브의 방법 2의 해설이 주제였으며 남은 시간엔 트위터 댓글을 통해 질문을 받는 이벤트도 있었다. 2회에서는 인터랙티브 라이브 쇼 WORLD CELL 2015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풀어냄과 함께 또다시 남은 시간엔 트위터를 통해 질문을 받았다. 라이브에서 사용한 PC가 뭐냐는 질문에 자리에 일어나 노트북을 가져오는 친절을 보여줬다. 또 방송 당시 중2병스런 무늬의 옷이 주목을 받았는데 히라사와 본인도 인터넷에서 봤을 땐 이렇게 튀는 옷인지 몰랐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 같아 부끄럽다고(…).


3. 음악 스타일[편집]


히라사와 스스무는 주로 노래를 부르면서 전자음과 일렉 기타, 외 첼로와 바이올린 등의 다양한 전자 현악기 및 보이스 샘플링(보컬로이드 포함)으로 악곡을 전개해 나간다. 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측되는 P-Model의 성향이 솔로곡에서도 완전히 퇴색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히라사와 스스무의 노래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주로 이를 괴악하다고 여기기 쉽다.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노래 Parade부터가 개성이 강하고 심상치 않은 인상을 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된다. 본인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어 라이브나 유튜브 라디오 등지에서는 스스로를 '마이너하다'라며 자신의 노래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 것을 심심찮게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악기 등을 메인으로 사용해 전자음이 절제된 곡이 있는가 하면 전자음과 일렉기타와 온갖 기묘한 샘플링으로 점철된 곡도 있다. 앨범마다 통일되는 악기가 있는 경우가 많아 하나의 앨범 안에서는 악곡들이 보통 비슷한 주제와 분위기를 연출하는 편이다. 일부 곡들의 경우 앰비언트 뮤직의 영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MOON TIME, サイレン*SIREN* 등.)

  • P-MODEL과 차별화되는 사운드는 스트링 세션의 적극적인 도입과 어쿠스틱 기타의 사용. 시공의 물, 사이언스의 유령, 버츄얼 래빗을 초기 3부작이라 부른다.
  • 1994년 P-MODEL을 리비젼을 이유로 활동정지한 후 나온 AURORA는 컴퓨터와 신디사이저만으로 현음악을 구현해냈으며 이후 히라사와의 음악 스타일을 재정립하였다.
  • 5집 앨범인 Sim City는 당초 90년대 버전의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목표로 한 컨셉 앨범으로 제작될 예정이었지만, 그 중간에 태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작풍이 크게 변화했다. 같은 시기에 활동을 재개한 P-MODEL에서도 히라사와 솔로와의 융합을 도모하여 민속 음악과 테크노 팝을 융합한 '아시안 테크노'를 내놓았다. 이러한 동아시아권 음악을 받아들인 SIM CITY, SIREN, 구제의 기법을 타이 3부작이라 부르며 제일 고평가를 받는 작품들이다.
  • 2000년대 초 9.11 테러이라크 전쟁등 국제사회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을 즈음부터는 P-MODEL 데뷔앨범 이후 거리를 두고 있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전면에 돌출되고 메시지성이 강한 음반이 연속해서 나온다. BLUE RIMBO, 백호야, 핵P-MODEL의 비스트론이 대표적.
  • 솔로 앨범 대부분이 각자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컨셉 앨범이다. 특히 1994년 인터랙티브 라이브를 시작한 이후 그 경향이 강해져 1998년 앨범 구제의 기법은 인터랙티브 라이브 「WORLD CELL」의 스토리에 따라 앨범이 제작되었다. 2009년 앨범 점호하는 혹성은 앨범을 제작할 때부터 스토리가 짜여 그것을 기반으로 인터랙티브 라이브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 후, 환현주의 8760시간에서 이전 곡들을 Hollywood Strings을 이용해 현악으로 편곡해냈고 현상의 꽃의 비밀 등 더 현악적인 접근을 강화해 현재에 이른다.


4. 디스코그래피[편집]



4.1. P-MODEL[편집]


P-MODEL/음반 목록 문서 참조.
유닛 '슌(旬)' 활동과 '핵(核)P-MODEL' 활동도 이쪽으로.

4.2. 솔로[편집]


히라사와 스스무/솔로 문서 참조.


5. 여담[편집]



  •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일렉트릭 기타를 치고 레코드를 빌려오는 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학창시절부터 특이한 컨셉의 밴드를 좋아했다고.

  • 어렸을 적엔 기계를 좋아했고 파일럿을 꿈꿨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한테 이걸 말하니 "파일럿은 수학을 잘 해야 해" 라는 말을 듣고 한번에 포기했다고. "학교는 나에게 여러가지를 싫어하게 한 곳"이란 말로 보아 학교에 좋은 추억은 적은 듯 하다. 우에사카 스미레의 라디오 방송에서 밝히길 학창시절엔 머리를 기르거나 자전거를 이상하게 타는 등 날라리 코스프레를 했었지만 그렇다고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어서 선생님들이 다루기 어려워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공업 고등학교 전자과를 졸업하였으며 졸업전시회에 남들보다 빨리 켜지는 TV를 출품했다고 한다. #

  • 그의 형 히라사와 유이치(裕一)는 맨드레이크 시절부터 공연장비 관리를 담당하거나 P-MODEL의 음반 작업에 관여하는 등 오랫동안 동생을 서포트해온 사람이다. ANOTHER GAME과 KARKADOR의 앨범아트나 フルヘッヘッヘッ과 旬 IV VISION 등 뮤직비디오도 여럿 제작한 바 있다. 일전엔 츠쿠바에 Gazio라는 카페를 오픈한 적도 있다. 종종 히라사와 스스무가 불시에 찾아오는 경우도 많아 실제로 아무 예상도 안하고 찾아갔다가 히라사와를 만났다는 사람이 제법 있다. 현재는 더 이상 운영중이지 않으며 다른 카페가 들어선 상태이다.

  • 팬들에게 엄청 쌀쌀맞다. 팬들을 말뼈다귀(馬の骨)[9]라고 칭하거나 팬들이 소리치면 시끄럽다고 호통을 친다거나 등등 츤데레 그러나 이젠 이런 발언들이 없으면 관객들이 오히려 섭섭해할 정도다. 그래서 팬서비스 내지 업계포상 차원에서 적당히 해주는 편이다.

  • 트위터 팔로워 수도 본인은 탐탁치 않은 모양이지만 하루하루 꾸준히 증가해 2023년 3월 기준으로 30만명을 돌파하였다. 트위터에는 매일 오후 9시부터 10시까지 꾸준히 하루 열댓개 정도의 많은 양의 트윗이 올라온다. 대부분 그의 생각이나 하루 일과 정리, 팬들과의 소통이 주를 이룬다. 다만 스승의 생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알고보면 간단한 사실을 기술했음에도 내용이 어렵다.[10] 덕분에 일본어가 자신 있는 사람들도 그의 트위터를 보고 절망하곤 하는데, 일본인들도 이해 못하는 건 마찬가지니 그리 신경쓰진 말자. 답글도 이해한 척만 하는 컨셉 천지.

  • 2014년 Back Space Pass에서 발언한 것에 의하면 과거부터 관객 엿먹이는 게 삶의 낙이었던 듯하다. 테크노가 뭔지 보여주겠다고 관객석에 새 모이를 뿌렸던 일화가 대표적으로 공연하기 싫었을 때 노래만 틀어놓고 무대에 안 나온 적도 있다고. P-MODEL에서 개발한 음성기기인 헤브나이저[12]를 이용해 관객 함성 중에서 유독 기묘한 관객의 소리를 찾아내 반복재생하며 놀려먹은 적까지 있었다.[13]

  • 1995년엔 처음으로 인터넷 웹사이트를 개설했고 당시 주소는 'hirasawa.be'였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도메인이 다름아닌 벨기에 도메인이였는데, 당시 벨기에에서 무료로 인터넷 호스팅을 서비스해주는 업체를 발견해 바로 덥썩 물었다고 한다. 때문에 도메인이 be로 끝났던 것.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호스팅 업체가 문을 닫자 일본 내 호스팅 업체 c2i를 통해 사이트를 다시 개설했으며 현재는 JPRS로 이전했다.

  • 1999년 중후반 저작권과 관련해서 JASRAC과 대형 레이블하고 큰 마찰을 일으키고 둘 다 탈퇴했다. 본인이 이에 대해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저작권으로 통수맞은 적도 있고 20년을 활동하면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지만 원하는 음악을 못하고 결국 음반사의 뜻에 따를수 밖에 없었다며 불평했다.원문 지금은 독립 레이블로 활동중. 이 때문에 배급이 협소해져 일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앨범 입수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본인의 사이트에서 통판도 하고 있으며, 앨범을 직접 살 수 있다. 해외배송도 가능한데, 가격에 일본소비세가 안 붙기 때문에 배송비를 더해도 일본에서 사는거랑 차이가 별로 없다. 디지털음원은 권리가 본인에게 없는 곡을 제외하면 다른데선 배급되고 있지 않으며, 그 때문인지 멜론을 비롯한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에선 히라사와를 치면 이 사람은 안 뜨고 히라사와 유이히라사와 우이만 뜬다… 스포티파이 등 해외 스트리밍 서비스에선 사운드트랙이나 라이브 앨범이 조금씩 풀리고 있는 중. 최근엔 인지도가 반등하면서 일본 내 대형 음반매장 곳곳에 진열되는 추세.

  • JASRAC의 저작권 관리에 비판적인 한편 니코니코 동화유튜브 등지에 떠도는 라이브 영상이나 음원에는 매우 관대한 편. 본인이 직접 "자본주의와 상반되는 재밌는 현상"이라 발언하였고 니코니코 생방송에 게스트로 나와 본인의 음악을 소재로 한 MAD를 감상하기도 하였다. 최신 음원이나 유료배포하는 영상 등이 아니라면 영상이 삭제되는 일은 없다. 그러나 불법 다운로드는 엄연한 불법이니 홈페이지에 MP3파일로 판매하는 음원이라도 구매하자.

  • 팬클럽이 있다. 클럽명은 GREEN NERVE. 회원은 GREEN NERVE 팬클럽 회보, 특전 음원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 애연가로 밴드를 했을 적부터 담배를 피워온 듯 하며 담배를 집어드는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2000년대 이후엔 흡연을 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어졌으나 최근 트위터에 전자담배를 몇번 인증하였다.

  • 육식 성분 자체를 먹지 않는 비건으로 어렸을 때부터 채식을 했다고 한다#. 본인이 트위터에 밝힌 바에 의하면 영양적인 이유로 채식을 한다고 한다. 94년 라디오 방송에서 말하길 일전에 있었던 라이브 행사 당시(히라사와 3막 3시간) 근처 노점에 채식주의자용 야키소바를 주문했더니 그걸 해주었었다고. 이런 식성으로 곤란을 겪은 적이 있는데 16년 최근에 팬미팅 행사 주최측에서 뷔페를 안내해줬는데 채소요리는 데친 양배추밖에 없어서 접시에 양배추 산을 쌓아서 먹었다고 한다. 식사는 주로 특이한 채소들을 사서 조리해먹거나 비건 전문 레스토랑에게 협찬을 받기도 한다.

  • 고양이를 키워왔으며 옛날엔 대형견도 키웠었다. 대문에 작은 애완동물용 문을 달아 키우고 있는 고양이들이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해놨다고 한다. 가끔씩 트위터에 고양이들의 일상을 올리기도 하였다. 주인 닮아 눈빛이 날카롭다. 안타깝게도 최근 한 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마지막으로 남은 고양이 테빈도 18년 1월 세상을 떠났다. 여전히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최근에는 길고양이들을 챙겨주며 이름을 지어주곤 하는 듯. 2020년을 기준으로 '니시노메'라는 이름을 붙여 준 은회색 길고양이를 종종 만나 인사하는 사진을 트위터에 업로드했다.

  • P-MODEL 데뷔시절엔 먹을 수 있는 풀을 소개하는 책을 사 야산에서 나물을 뜯어먹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하나 현재는 모던한 인테리어의 집에 개인 녹음실을 만들어놓고 잘 지내고 있는듯하다.

  • 리볼텍화되었으면 하는 캐릭터 설문 조사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 성우 우에사카 스미레가 퍼스널리티인 라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다. #1 #2 이는 우에사카 스미레가 히라사와의 팬이라서 라디오 1주년 기념으로 게스트로 와주길 요청했는데 정말로 덜컥 와버린 것.



5.1. 한국 관련[편집]


의외로 일본의 히라사와의 팬들은 극우성향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데, 이러한 이유로 한때 혐한일 수도 있다는 근거모를 이야기가 2ch에서 나돌았고, 히라사와가 음악을 담당한 파프리카의 원작자인 츠츠이 야스타카위안부 망언을 한 것[14]으로 인해 애니메이션의 음악만을 담당했을 뿐인 히라사와를 포함한 주변인물이 모조리 혐한 취급당하며 트위터와 국내 언론에서 우익 내지 혐한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히라사와는 이전부터 트위터에서 이따금씩 한국에 대해 적의없이 언급하기도 하고, 작품 활동을 통해 혐한, 우익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왔다.

'UNDOをどうぞ'라는 곡의 가사가 과거 일본 제국시절의 대일본제국해군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어 히라사와가 우익일 수 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패퇴하던 일본을 위해 싸우다 희생된 군인을 추모하는 내용이 아니라 과달카날 전투에서 전세가 밀려 고립된 일본군이 궁지에 몰리다 못해 자신의 상관을 죽이고 그 고기를 먹으며 연명했다는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곡이다. 이에 곡의 제목을 더하여 생각해본다면 '전쟁 전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전쟁은 없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 볼 수 있는 것.

오히려 한국에 영향받은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의 또다른 곡 '세계 터빈'를 보면 백남준에게 영향받은 듯한 PV와 처음과 중간중간 인상적으로 외치는 "명금일하 대취타!"가 돋보인다.

그 외에 2000년 발표한 현자의 프로펠러(賢者のプロペラ)의 첫 소절에 '꽃이 불처럼 피어나는 나라'로 한국을 묘사하기도.

5.2. 사용하는 장비[편집]



5.2.1. 악기[편집]


라이브에서 주로 사용하는 악기로는 일렉트릭 기타[15], 신디사이저, 레이저 하프, 자체개발한 악기인 그래비톤(본 사진은 신형) 등이 있다.

그의 상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는[16] 기타토카이의 '탈보(Talbo)'라는 모델인데, 바디가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1983년 초기 금색 메이플&은회색 로즈우드 모델부터, 1994년 페르난데스에 주문제작한[17] 나무 바디 탈보 카피 기타 'PHOTON(개조 전)(개조 후)', 주로 받침대에 고정해놓고 사용하는 크롬 도금 Ver인 'ICE-9'[18] 등 여러 모델을 갖고 있다. 그리고 2012년경, PHONON 2555 라이브 이후부터는 이케베 악기에서 제작한 알루미늄 기타인 'EVO'라는 기타를 탈보와 같이 쓰고 있다. 한편 일전에 쓰던 1세대 타르보는 수리를 받아 TALBO-ASTRO로 다시 태어났다.

탈보 이외에 그가 기타를 처음 잡았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2008년(인터뷰 당시)까지 그의 손을 거친 기타들에 대해서는 인터뷰(일본어)를 참고해 볼 것.
사실 저 인터뷰에는 누락된 기타가 있다. 3페이지 2번째 사진의 '랜덤스타'와 병행하며 사용했었던 검은색 Fender Mustang. 이 영상에서 그가 들고 있는 검은색 기타가 바로 머스탱이다. 그럼 아즈사가 아니라 유이가 머스탱 써야했던 거 아냐? 사실 히라사와 스스무도 '맨드레이크' 시절엔 Les Paul 유저긴 했다. 그레코에서 만든 3만엔짜리 짝퉁이긴 했지만. 솔로 9집 TOWN-0 PHASE-5의 기타 솔로 부분은 Stratocaster로 녹음했다고 한다. [19] 최근에도 TALBO 특유의 얇은 소리를 대체하기 위해 음원 녹음용으로 레스폴을 종종 쓴다.

이렇게 많은 기타를 써왔건만 정작 본인은 계속 기타를 싫어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 손이 아파서 싫다는 이유부터 기타는 자신이 처음 일렉기타를 배웠던 시절과 달리 너무 흔해지고 막 쓰여서 진부하고 싫증난다는 이유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라이브 때마다 기타를 빼먹지 않고 기타로 현란한 연주와 묘기를 보여주고 개조까지 하는 걸 보면 진짜 싫어하는 건지는 의심이 간다.

신디사이저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일본에서 신디사이저가 발전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70년대에 신디사이저 강사까지 했던 사람이 이 사람이다. 비록 P-MODEL 시기에는 키보디스트 멤버들에게 신디사이저를 양보하긴 했지만, 곡 작업을 할 때에는 직접 신디사이저로 작업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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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PATTERN 앨범 시기의 작업실. 히라사와의 앞에 있는 신디사이저는 KORG Polysix.[20] 이 Polysix는 1981년 출시되었을 때 '일본산 프로펫'이라는 평을 들으며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쳤던 모델이다.(2년 뒤 야마하에서 DX7을 출시해서 좀 빛이 바랬지만) 그리고 히라사와의 오른쪽(사진에선 왼쪽)의 아이보리색(원래는 검은색) 컴퓨터는 야마하 CX5라는 MSX 플랫폼의 뮤직 컴퓨터로, 아미가 이전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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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년 후(대략 1991~2년)의 STUDIO WIRE SELF. RolandJD-800이 보이는데, 이 신시사이저는 이후 그의 첫 인터랙티브 라이브는 물론이고 2001년 SOLAR LAY 라이브까지 사용된다.

이후 라이브에서는 하드웨어 신디사이저보다는 노트북에 소프트웨어 신디사이저를 깔아놓고 마스터키보드를 연결하여 사용하는 듯 하다.

2018년부터 기존에 사용하던 '그래비톤' 대신, Novation사의 Launchpad를 사용중인것으로 나타났다.

5.2.2. 컴퓨터[편집]


코모도어社의 컴퓨터 아미가의 팬보이로, 세계적으로 사용자가 거의 없다시피한 2000년대 초반까지 사용했다. 처음엔 CG가 그냥 컴퓨터 한대 있으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아키하바라 전자상가를 돌아다녔으나 CG 환경을 갖추는 데에 돈이 엄청 깨진다는 걸 깨닫고 단념한 상태였으나 컴퓨터 관련 일을 하는 친구에게 아미가를 소개받고 지름신이 강림해 친구에게 소개받은 수상한 아파트에 있는 가게에 쌓여있는 걸 값싸게 구해왔다고 한다.[21] 1989년 CG연하장을 가장한 저주비디오 겸 신세한탄 및 솔로데뷔 예고영상[22]과 해동(解凍)P-MODEL의 뮤직비디오가 아미가로 제작되었다. 1998년

이후 독학으로 이것저것 만져보거나 아미가 유저들을 만나면서 음악 제작과 공연 퍼포먼스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인터랙티브 라이브에서 공연 기기의 문제로 라이브 진행이 정지되었을 때에도 "이번 사고는 절대 아미가가 원인이 아닐 것"이라고 장담하여 팬력을 과시했다. 결국 소프트웨어 부재와 기기 노후화 등의 문제로 2006년 백호야를 마지막으로 아미가 사용을 중단한 상태. 2019년 기준으로 맥북도 병행하여 같이 사용하는중이다. 소프트웨어의 한계로 macOS에서 거의 모든 작업을 한다고 한다. 단, 라이브 때에는 윈도우10이 탑재된 랩탑을 들고 나온다.

5.3. 태국과 히라사와 스스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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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사와 스스무의 세계관과 태국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처음엔 1994년 개인 사정으로 잠깐 와보는 정도였지만 점차 태국의 문화와 역사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작품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태국어 이름을 만들고[23] 사인도 태국어로 바꿔썼을 정도. SIM CITY 이후 정규앨범의 일부 음원을 태국에서 녹음하기도. 요즘도 예고없이 태국에 놀러가곤 한다. 게다가 그 어려운 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고 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진행해오고 있는 PHONON 라이브에 2550, 2566 등의 숫자가 붙는데 정체는 바로 태국에서 사용하는 불멸기원이다.[24] 예를 들어 PHONON 2550 라이브에는 라이브가 이루어진 해 2007년의 태국불기인 2550년을 붙여 사용한 것.

또한 태국의 쉬메일들과 교류하면서 그들과 여행이나 봉사활동을 하며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시키곤 한다.

처음엔 그들을 카투이라고 불렀지만 이것이 비하적 의미라는 것을 알게된 이후 주변에 사용을 자제, 수정할 것을 요청하고 그 대신 제2의 여성을 의미하는 SP-2[25]라는 새로운 호칭을 사용한다. 2008년엔 SP-2에 대해 다룬 서적을 발매하기도 했다.

5.4. 스텔스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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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2011년 6월 24일, P-MODEL 시절의 곡 'BOAT'를 현악기풍으로 어레인지하고 개사해 노래한 곡 '원자력(原子力)'이라는 노래가 배포되었다. 다만 히라사와 스스무 본인은 '나는 6월 23일 새벽에 스텔스맨이라 자칭하는 자에게 뒷머리를 둔기로 구타당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묶여 있었던 데다 PC의 바탕화면이 'ス'가 그려진 그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후 내 공식 사이트 일부를 점거당해서 음원이 배포되었지만 스텔스맨과 나는 아무 관계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물론 눈가리고 아웅하는 말이며 (애당초 경찰에 사건 접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부터 말이 안된다) 이는 누가 봐도 히라사와 스스무 본인이다. 아무튼 공식적으로는 해당 음원은 스텔스맨이 만든 것이며 히라사와 스스무와는 관계없는 것이 되어 있다. 히라사와 스스무 본인은 해당 음원에 대해 '히라사와를 표절한 것(平沢のパクリ)'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단, (들어보면 알겠지만) 해당 노래는 원전 및 그것을 장려한 주제에 문제점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가사가 상당히 과격한 편. 사이트에서의 음원 공개는 2011년 6월 29일에 종료되었다.

이후 히라사와는 스텔스맨의 명의로 곡을 발표한 적은 없지만 현재까지도 개인 X에서 자신을 곧잘 '스텔스'라고 일컫고는 한다. 또다른 별명으로 자리잡은 듯.

5.5. 서브컬쳐와의 관계[편집]



5.5.1. 히라사와 유이와의 관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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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나는 히라사와 스스무라고. 히라사와 유이가 아니야."

@hirasawa


팔로워 수가 2000명이었을 때부터 말해뒀다만. 너희들 팔로워할 사람 착각한 거 아니야? #


케이온!의 원작자인 카키후라이의 공식 입장은 없지만 히라사와 유이와 방과 후 티타임의 모티브가 히라사와 스스무와 P-MODEL이라는 설이 팬덤에서는 유력하다. 스스무(進)에서 책받침(辶)을 입 구(口)변으로 바꾸면 유이(唯)가 된다. 사용 기타가 다르지만둘 다 기타리스트고, 소속사인 케이오스 유니온을 줄이면 케이온!이 되는 것도 비슷. 게다가 방과 후 티타임의 멤버들인 아키야마 미오, 코토부키 츠무기, 타이나카 리츠, 나카노 아즈사도 각각 P-MODEL에 속했던 적이 있었던 멤버인 아키야마 카츠히코, 코토부키 히카루, 타이나카 사다토시, 나카노 테루오와 대응된다는 점도 있다.

이 때문에 히라사와 스스무가 트위터 계정을 등록할 때 닉네임을 그냥 hirasawa로 등록했다가 이를 히라사와 유이로 착각한(?) 많은 덕후들로 인해 팔로워 수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히 Hirasawa Susumu로 정정했지만 팔로워 수가 멈추긴 커녕 계속 늘어났다. 이후로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계속 늘어나는 제군"과 같이 서두를 떼며 자학 개그를 하는 경우가 있다. # 본인은 이런 사태의 원인이 된 히라사와 유이를 지긋지긋한 뮤턴트(忌々しいミュータント)라고 부르는 듯. 이 때 나는 히라사와 스스무라고. 히라사와 유이가 아니야.(私は平沢進だぞ。平沢唯じゃない。)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

이후에도 니코니코 동화에선 히라사와 부녀 네타나 히라사와 스스무의 곡을 방과 후 티타임이 연주하는 MAD가 다량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2012년 니코니코 생방송에 나와서 본인이 직접 이런 MAD영상들을 감상하는 등, 케이온과 엮이고 있는 중.대표작 트위터에서도 "케이온에 나오는 애들 중에서 누가 가장 좋으냐"는 등의 질문도 종종 받는다. 이런 질문엔 "케이온은 본 적 없습니다."등의 대답으로 일축.

아이러니하게도 이 경로로 히라사와와 P-MODEL을 알게 된 사람도 꽤 된다. 2011년 라이브 MC 도중 "생각치 못한 반응이 많았던 트위터 때문에 자신을 처음 본 사람들도 꽤 있을 것 같다"고 발언하기도 했고.

5.5.2. 기타 서브컬쳐에서의 패러디 및 관계[편집]


니코니코동화에서 장르 불문하고 많은 패러디가 일어나는 추세인데, 가장 많이 엮이는 쪽은 당연하게도 케이온![26]이고, 그 다음으로는 아이돌 마스터와 많이 엮인다. SUSUMU HIRAS@WA라고 불리는 듯. 그 외에도 히라사와 스스무가 음악을 담당한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켄타로가 아이돌 마스터를 좋아하다보니 미우라 선생님 호이호이, 휴재의 기법[27]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 외에도 히라사와 유토라는 조연 패러디 캐릭터가 등장하는 우타프리, 앙상블 스타즈![28], 논리공군이 아닌 논리해군, 馬骨乱舞(말뼈난무), 주문은 버츄얼 래빗입니까? 등 별의별것과 다 엮인다. 대체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데 왜 엮는 거야. 19년 들어선 누군가가 만든 big brother, LAB 01의 쿠키 계열 음매드 버전 덕분에 쿠키☆음MAD로도 인기를 끌고있다. 이후 2021년에는 우마무스메의 등장 인물들을 활용한 소리 MAD가 속속 보이기 시작했다.[29]

2020년 이후로는 주술회전료멘스쿠나이타도리 유지와도 엮이는데 다름아닌 주술회전의 작가인 아쿠타미 게게 작가가 료멘스쿠나의 이미지송으로 히라사와 스스무의 곡인 Day Scanner를 언급하였기 때문. 이후에 팬들에 의해 고전 주술사 차림을 하고 있는 히라사와의 팬아트도 속속 등장하는 추세이며 팬들에 의하면 스승은 특급 주술사로 분류되는 모양이다.(...) 나중에 아쿠타미 작가가 자신의 최애곡이 세계 터빈(世界タービン)임을 밝히자 히라사와가 영역 전개하면 세계터빈 PV에 나온 정신나간 세계관이 열리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돌고 있다.

2010년대에는 케이온!으로 유명해졌다가 후반으로 갈 수록 점차 다시 인기가 식어가는 와중에 2020년대부터 주술회전을 통해 다시 인기를 되찾은 케이스이다. 케이온!과 달리 주술회전 작품 자체로는 히라사와와 작접적으로 관련되진 않았지만, 작품이 워낙 유명하고 아쿠타미 게게 작가가 작품 내에 히라사와의 곡을 인용하고 팬이라고 밝힌 순간부터 팬들이 호기심으로 히라사와의 곡을 찾아 듣고 거기서 입덕하게 된 케이스가 상당이 많아진 것. 과거 케이온 시절과는 달리 이번 케이스는 여성 팬들의 입문이 상당히 비중있다.

pixiv에서 유독 팬아트가 활발하고 60대의 나이에도 모에화를 당하고 있다. P-MODEL 데뷔 당시의 모습은 알록달록하게 그려지고 최근의 모습은 어두운 톤으로 그려지는 편.

2021년 9월 23일 애니메이션이랑 합치는 것 좀 적당히 해라. 내 공적 이미지에 손상을 입는다는 트윗을 올리며 이러한 일련의 패러디 창작에 대한 불쾌감을 표현했다. 패러디를 제작하던 음MAD 제작자, 한여름 밤의 음몽쿠키☆ 팬덤, 우마무스메 팬덤, 등에서는 각자 조심하자는 이야기를 내면서도 각종 패러디와 MAD에 관용적이던 스스무가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태도가 변하게 되었는지 추측하고 있다.[30]이는 한국에도 전해지면서 드럭스토어에서는 관련 게시물을 전부 내렸다.[31] 2022년 후반 이후부터는 히라사와 본인이 직접 클레임을 걸어 영상을 내리고 있는지 '주식회사 케이오스 유니온으로부터의 저작권 침해' 신고로 내려졌다는 사례가 속출중이다.

5.6. 주변 인물[편집]


  • 히라사와 유이치(平沢裕一)
그래픽 디자이너 및 P-MODEL의 서포터이자 히라사와 스스무의 친형. 맨드레이크 시절부터 스스무의 음악활동을 지원해왔으며 IN A MODEL ROOM에 본인 작사의 곡들도 수록되어 있다. 후루헥헥헥, 旬Ⅳ VISION 등 P-MODEL의 PV를 제작하였으며 이외에 공개하지 않은 뮤직비디오도 여럿 있다. P-MODEL의 6번째 정규앨범 KARKADOR 자켓의 점토 인형도 이 사람이 제작한 것. P-MODEL 동결 이후엔 딱히 활동의 흔적을 보인 적은 없으나 어느날 갑자기 츠쿠바에 카페를 개업하였다. P-MODEL의 영상을 상영하거나 히라사와 스스무가 사용하던 음악장비를 전시하는 등 이따끔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중.
  • 아키모토 키츠네 (秋元きつね) (1968.09.12~2014.10.20)
본명은 아키모토 카즈히데(秋元一秀). 히라사와의 CG제자.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히라사와에게 아미가 컴퓨터를 배우면서 라이브나 작품활동에 참가해왔으며 이후엔 각종 방송이나 어린이 프로그램 CG를 제작하는 프로 CG 아티스트로 성장. 세가레 이지리라는 게임의 제작자로 이름이 알려졌다. 14년 10월 당뇨병으로 사망.
일본의 연예인, CF모델, 가수. 히라사와 못지 않은 또라이 기질과 특이한 세계관으로 유명하다. 본래 배우를 해왔으며 1982년 CF로 유명해진 이후 가수로 데뷔했으며 83년에는 YAPOOS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히라사와가 솔로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턴 서로의 음반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히라사와의 경우 기타 세션을 토가와 쪽에선 코러스나 보컬을 담당하며 서로의 음악을 보완해왔다. 이 역할은 각 라이브에서도 이어졌으며 둘이 같이 나오는 방송자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 PEVO
P-MODEL과 DEVO를 섞은 컨셉 밴드. 90년대에 P-MODEL 카피 연주 대회에서 우승해 아예 히라사와 프로듀스로 앨범까지 발매해 현재까지도 활동중.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PEVO성에서 온 외계인들이라는 설정을 기반으로 독특한 세계관을 구성중이고 이 설정놀이에 히라사와가 끼기도 한다. 이들의 레코딩에 히라사와 헝제가 참여하고 라이브에는 히라사와 스스무가 게스트로 나오고 있다. 역으로 PHONON 2555 이래로 쭈욱 히라사와 솔로 라이브에 PEVO의 리더가 서포터로 출연하거나 히라사와 음악세계관과 PEVO의 세계관이 섞이는 등 현재로써는 가장 왕성한 교류를 하고 있는 중.
  • 오와쿠 마사루(大和久マサル)
CG 아티스트. TOWN-0 PHASE-5 이후로 히라사와 뮤직비디오나 인터랙티브 라이브 CG를 제작하고 있다. 3년에 한번씩 인터랙티브 라이브 CG를 만들면서 히라사와를 기반으로 한 여러 주옥같은 캐릭터들도 만들어왔다. 그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캐릭터는 Σ-12라는 이족보행장치를 단 로봇이라고 한다.
  • 요시카와 요이치로(吉川洋一郎)
토가와 준과 같은 Yapoos의 맴버로 종종 P-MODEL의 앨범과[32] 음악에 동참하기도 하였으며, 그 반대로 히라사와와 P-MODEL이 그의 곡에 참여한적도 있다. 국내에는 다큐멘터리 '지구대기행'의 음악 담당자로도 유명하다.
요시카와 요이치로는 이전부터 P-MODEL과 깊은 관계가 있었으며 종종 곡 제작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6. 외부 링크[편집]



[1] 호적 상의 생일. 본인이 직접 트위터를 통해 실제 생일은 하루 일찍인 4월 1일이라고 밝혔다.[개인] [공식] [2] 그의 대표적인 별명이다.[3] 그렇게 외주로 만든 곡 중에 하나가 프로레슬러 쵸슈 리키의 등장곡 Power Hall이다. 어떤 의미로는 히라사와의 곡들 중 가장 널리 연주되는 곡 중 하나이기도 하나 이 시기 히라사와는 아직 계약관계를 잘 모르는 초짜 시절이었던지라 곡을 넘기면서 판권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넘겨버리는 바람에 히라사와는 로열티나 판매수익 등을 전혀 받지 못한다고. 또다른 레슬러 슈퍼 스트롱 머신의 등장곡 Hurricane's Bam도 히라사와가 만들었고, 이쪽은 히라사와가 제대로 판권을 챙겼다고 한다.[4] 히라사와를 제외한 멤버는 유동적으로 바뀌었다.[5] 이 솔라 스튜디오(ソーラースタジオ)는 현재도 사용하는 중이다.[6] 사람의 신체에 장착해 착용자의 동작에 따라 신디사이저 또는 MIDI가 연주되는 방식의 악기. 참고로 미부리는 일본어로 '몸짓'을 뜻한다. 인지도 탓인지 연주방식의 어려움 때문인지 이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프로 뮤지션이 극히 적다고 한다.[7] 그러나 최종 결정권이 히라사와 스스무에게 있어서 그 외의 곡이 리믹스되거나, 또는 그 앨범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8] 니코동 계정을 필요로 한다.[9] 일본에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대충 듣보잡 정도로 번역 가능하다. 참고로 히라사와는 1954년생 말띠다. 자학드립? 참고로 말뼈다귀가 일본 도검난무 팬층에서 나마즈오 토시로호네바미 토시로를 떠올리게 한다고 하며, 가끔 팬아트도 나온다. 나마즈오 토시로는 말(馬)똥을 좋아하며 호네바미 토시로는 그의 이름에 뼈(骨:호네)의 한자가 들어가기 때문이다.[10] 대강 이런 식이다. "한계 돌파 생강이 11월까지 출고되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경혈(経穴)하여야 마땅할지를 자문하던 도중 띵동, 딸랑딸랑 하고 현관문이 열렸으니 문간에는 무농약의 새 생강이 서 있었다. '굉장하지? 그리하여 11월까지 (그것보다 오래) 생강이 내 몸의 재료로 공급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 20년 9월 24일 트윗 중. [11] 당시엔 아카이나 다른 회사에서 보편적인(이라고 해도 10만 엔이 넘는) 샘플러를 출시하기 전이었던 데다, 샘플러 기능이 들어간 워크스테이션 신디사이저였던 Fairlight CMI나 뉴 잉글랜드 디지털社의 싱클라비어(Synclavier)는 당시 가격으로도 1천만 엔이 넘었고, 앞의 두 기종에 비하면 저렴했던 샘플러 E-MU Emulator 역시 거의 300만 엔에 달하는 고가였다.[12] 80년대 초 샘플러의 가격이 비싸서[11] 키보드와 테이프 에코(원시적 형태의 딜레이)를 이용해서 자작한 샘플러라고 한다. 일종의 멜로트론인 셈.[13] 1981년 Potpourri 앨범에서는 이걸 'Heavenizerのための例題(Heavenizer를 위한 예제)'라면서 히든 트랙으로 수록해 놨다.[14] 츠츠이 야스타카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은 츠츠이 야스타카도 혐한이 아니다. 생각이 많이 짧았을 뿐, 의도는 일본 우익을 낚기 위했던 것.[15] 어쿠스틱 기타도 가끔 스테이지에 올려놓긴 하는데 많이 연주하지는 않는다.[16] 탈보를 사용하는 유명 뮤지션은 히라사와 스스무와 GLAY의 HISASHI 정도이다.[17] 이 때 당시는 탈보를 제작했던 토카이 악기 회사가 파산하고 사라진 뒤였기 때문이다. 히라사와가 이 제품이 미래적이라 대중화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 딱 들어맞았다. 1990년대 후반에 와서야 토카이 악기가 부활하여 지금까지 탈보 신모델을 생산하고 있다.[18] 이름의 유래는 아이스 나인. 2020년 12월 이케베 악기에서 예약 한정 판매하기도 했다.[19] 기타 부분은 태국의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는데 스탭들 모두 히라사와가 들고 온 기타보다 스튜디오에 있는 스트라토캐스터의 사운드가 더 낫다고 밀어붙여서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20] 1981년 출시되었다. P-MODEL 스테이지에서는 키보디스트였던 타나카 야스미, 미우라 슌이치, 타카하시 요시카즈가 연주했었다.[21] 그 제품들은 코모도어 재팬이 사업철수를 하면서 창고에 썩힐뻔한 제품들로 재고가 유출되어 아키하바라 등지에서 거래되었다고 한다.[22] 이 연하장을 받은 업계 관계자가 이걸 일반에 판매하고 차기작도 만들자는 연락을 했다고 한다.[23] วิวัฒน์ ธารา สงบ[24] 참고로 태국의 불멸기원은 국내에서 사용하는 불멸기원보다 1년이 늦다.[25] SaoPraphetson의 줄임말[26] 붙는 태그는 방과후 P-TIME 또는 케이오스유니온(けいおスユニオん)[27] 솔로 앨범 중 하나인 구제의 기법과 발음이 똑같다.[28] 한때 앙스타에서 나오는 히비키 와타루라는 캐릭터와 엮이기도 했다. 이유는 무슨 히라사와가 트위터에 언급한 적이 있는 이름이라서 라고 한다.(...) (물론 앙스타의 와타루 말고 다른 동명이인의 아티스트를 언급한 것이다.) 거기다 아이러니하게 (초기 P-MODEL 시절의)히라사와와 비슷한 이미지이기까지 한다. 기인이라서 그렇다[29] 이런 경우 보통 ウマ娘にも容赦しないすすむおじさん(우마무스메도 용서하지 않는 스스무 아저씨)라는 전용 태그가 붙는다. 이는 앞서 언급한 쿠키☆와의 연관성이 니코동에 선례로서 미리 퍼져 있었음을 의식한 태그.[30] 다만 MAD계에선 실력있는 제작자들의 경우 히라사와의 곡들 중 특히 많이 쓰이는 논리공군이나, LAB=01, Big Brother등은 아예 무반주로 제작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기에 존속중인 영상의 양이 여전히 매우 많다. 원곡이 음원에 사용되지 않은 무반주 영상들은 웬만해선 영상에 "저작권 침해 신고" 문구가 붙지 않는다.[31] 현재 Big Brother를 사용해 제작한 이 합작은 다시 공개가 되었다.[32] 대표적으로 One pattern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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