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르두 카르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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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르두 카르발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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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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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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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6EA842; font-size: 0.9em"
2006 FIFA 월드컵





포르투갈의 축구 코치


이름
히카르두 카르발류
Ricardo Carvalho
본명
히카르두 알베르투 실베이라 카르발류[1]
Ricardo Alberto Silveira Carvalho
출생
1978년 5월 18일 (45세)
포르투갈 아마란트
국적
[[포르투갈|

포르투갈
display: none; display: 포르투갈"
행정구
]]

신체
183cm / 체중 79kg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 / 은퇴)
축구 코치
주발
오른발
소속
선수
FC 포르투 (1998~2004)
레사 FC (1997~1998 / 임대)
비토리아 FC (1999~2000 / 임대)
FC 알베르카 (2000~2001 / 임대)
첼시 FC (2004~2010)
레알 마드리드 CF (2010~2013)
AS 모나코 FC (2013~2016)
상하이 상강 (2017)
코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19~2021)
국가대표
89경기 5골 (포르투갈 / 2003~2016)

1. 개요
2. 클럽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지도자 경력
5.1.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7. 논란
7.1. 탈세 논란
8. 여담



1. 개요[편집]


포르투갈의 前 축구 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이었다. 현역 시절 첼시, 레알 등 빅클럽에서 뛰었으며 2003년부터 2018년까지 포르투갈의 국가대표 수비수로 뛰며 유로 2016 우승에 기여했다.


2. 클럽 경력[편집]



2.1. 프리메이라 리가 시절[편집]


1998년 FC 포르투에 입단하였으나 곧바로 1군에서 뛰지는 못하고 이리저리 임대를 다니며 경험을 쌓았다. 01-02 시즌부터 1군 멤버에 포함되었으며 주제 무리뉴가 감독으로 부임한 03-04 시즌부터는 주전 수비수로 발탁되며 맹활약을 펼쳤다. 바로 그 시즌 무리뉴 감독 하에서 리그 우승을 이끌며 2003년 포르투갈 올해의 선수, 2004년 UEFA 챔피언스 리그 올해의 수비수 등을 수상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2003년 11월 포르투갈 대표팀에도 발탁되었다. 2004년 발롱도르 9위에 올라, 수비수 중 최고 순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2. 첼시 FC[편집]


유로 2004에서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으로 꼽힌 카르발류는 첼시 FC에서 그의 전 감독인 주제 무리뉴와 전 동료 파울루 페헤이라와 재회했고, 3년 계약을 맺었다. 그는 €30M(당시 환율로는 약 £20M)에 첼시로 이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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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전,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공격수 사무엘 에투의 드리블을 뒤쫓아가서 막는 카르발류.

첼시로 이적해 온 04-05 시즌부터 존 테리와 함께 첼시의 센터백 라인을 형성[2]하여 첫 시즌에 훌륭한 활약을 펼쳐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도왔는데, 이는 구단의 50년 만의 첫 1부 리그 우승이었고, 풋볼 리그 컵 우승에도 공헌하였다.

2000년대 말까지 존 테리의 파트너로 훌륭한 기량을 보여줬고 유난히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잦았던 06-07, 07-08 시즌에도 첼시 수비진을 지켰다. 카르발류는 2008-09 시즌을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2008년 9월 13일자 원정 경기에서 득점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경기는 3-1 완승으로 종료되었다. 다만 남은 시즌 기간동안 부상등의 이유로 입지가 낮아졌는데,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이 경질되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그는 주전 자리를 알레스에게 내주어야 했다. 결국 모든 대회를 통틀어 18경기를 뛰는 데 그쳤고, 이 중 2경기는 교체로 나갔고, 1골밖에 넣지 못했다.

하지만 알렉스가 유리몸 기질이 있는 선수인지라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부임한 09-10 시즌부터는 카르발류도 적지 않게 출장시간을 받았다. 하지만 안첼로티 감독은 알렉스를 더 선호했기 때문에 알렉스가 장기 부상을 당하지 않는다면 다음 시즌에도 주전으로 뛰기는 어려워 보였다.[3]


2.3. 레알 마드리드 CF[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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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 시즌부터 자신의 스승인 주제 무리뉴를 따라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같은 국가대표팀 동료인 페페와 함께 포르투갈산[4] 센터백 듀오를 형성했는데, 레알 마드리드의 최대의 단점이라고 불리던 얇은 수비진을 짠물 수비진으로 탈바꿈시키며 팬들의 호평을 받았다

레알 유니폼을 입고 나선 두번째 리그 공식전(오사수나와의 홈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는 산뜻한 출발과 함께 천하의 파비오 칸나바로도 못했던 레알의 수비진 안정화에 기여했다. 단 이제 나이가 좀 있는 편이라서 대체자를 구해야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라리가 10라운드 마드리드 더비 홈 경기에서 디 마리아의 패스를 받아 득점에 성공하였다.

24라운드 레반떼와의 홈 경기에서 호날두의 패스를 받아 리그 3호골을 넣었으며 국왕컵 결승전에서 선발로 나와 연장전까지 풀타임을 소화하여 코파 델 레이 우승에 기여하였다.

2011-12 시즌에는 시즌 초반 등 부상을 당해 결장하면서 마침 풀백에서 센터백으로 전업한 세르히오 라모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이후 점점 백업으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신예 라파엘 바란의 등장도 맞물려 시즌 13경기 (리그 8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2-13 시즌 전 카르발류는 꾸준한 경기 출전을 위해 벤치 멤버를 받아들이지 않고 경쟁을 선언했으나 라모스와 페페 라인은 더욱 확고해졌고, 주전 자리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2012-13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나 2013년 5월 27일 AS 모나코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레알에서 3시즌 77경기 3골 2도움을 기록하였다.


2.4. AS 모나코[편집]


모나코와의 3년 계약을 맺었고, 3시즌 동안 주전으로 활약하며 상위권 유지와 안정된 수비에 기여했다. 나이가 들었는데 오히려 부상을 덜 당하며 많은 경기에 출전하였다.

15-16 시즌 종료 후,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그대로 리그앙을 떠났다.

AS 모나코에서 118경기 2골 4도움을 기록하였다.


2.5. 상하이 상강[편집]


6개월 간의 FA를 끝으로 2017년 2월 15일, 중국의 상하이 상강으로의 이적이 발표되었다. 상하이 상강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4경기에만 출장했으며, 2018년 시즌 시작 직전 자유계약으로 풀린 뒤 선수 은퇴를 발표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2003년 10월 11일 알바니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포르투갈 국가대표에 첫 출전하였고, 이후 포르투갈의 핵심 선수로 올라서면서 UEFA 유로 2004에서는 조별리그 1차전 그리스전을 제외하고 결승까지 모두 출전하며 주장 페르난두 코투를 제치고 조르제 안드라데와 호흡을 맞추며 주전으로 맹활약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하여 포르투갈의 4위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8강 잉글랜드전에서는 웨인 루니에게 하마터면 큰일날 뻔한 태클을 받아 퇴장을 이끌어냈다. 4강 프랑스전에는 티에리 앙리에게 PK 반칙을 범해 0-1 패배를 지켜보아야 했다. 이후 유로 2008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도 출전하면서 포르투갈 수비진을 이끌어갔다.

2011년 8월 31일 카르발류는 유로 2012 예선 키프로스전을 앞두고 파울루 벤투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감독이 선발 명단에서 제외하자 곧바로 훈련장을 떠났다. 벤투 감독은 이를 보고 탈영병으로 규정했고, 카르발류 또한 자신을 주전으로 써주지 않고 그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벤투 감독을 용병이라고 맹비난하면서 포르투갈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감독 눈 밖에 나게 되어 UEFA 유로 2012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선택받지 못했다.

월드컵 이후 벤투 감독이 경질당하고 페르난두 산투스 감독이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으로 부임하면서 카르발류는 2014년 10월 3일, 유로 2016 예선 덴마크전 명단에 발탁되어 3년 만에 국가대표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유로 2016 최종 명단에도 선발되었고, 조별리그 경기에서 출장도 하였다. 이 대회에서 포르투갈은 사상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달성했고 카르발류 본인은 자신의 마지막 국제대회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은퇴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카르발류의 최고 장점은 일명 '나노 태클'이라고 불렸던 태클 실력. 뛰어난 1대1 대인수비 능력과 태클 능력뿐만 아니라 혼전빠른 판단을 바탕으로 하는 길목 차단과 클리어링 같은 지능적인 수비력 역시 갖추었고 수비 리딩 또한 수준급이었던 선수였다. 그리고 센터백 치고도 속도가 상당히 빠른 준족이어서 센터백 파트너인 존 테리의 당시 유일한 단점이던 느린 스피드를 카르발류가 커버하는 모습이 자주 비춰질 정도로 수비수 중에서는 상당히 빠른 주력을 보유했다.

키는 183cm로 센터백으로서 큰 키는 아닌데다 마른 체격이기에 몸싸움에서 잘 밀릴 것 같지만, 상대가 드록바급이 아닌 이상 웬만큼 몸싸움은 잘 했다. 점프력도 상당해 공중볼 경합에서 대부분 승리했고,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헤더골도 몇 번 기록했다.

단점은 플레이가 다소 거친데다 다혈질이라는 점이다. PL에서 뛸 시절뿐만 아니라 라리가에서도 카드 수집광 수준으로 많은 카드를 받았다. 2010년 프리시즌 당시 손흥민에게 거친 태클을 가해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 또한 실수가 잦아 조금 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며 후방 빌드업 능력이 다른 정상급 수비수들에 비해 부족했지만 수비 능력은 당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은 월드클래스 수비수였다.


5. 지도자 경력[편집]



5.1.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편집]


2019-20시즌 프랑스 리그앙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이 부임하고서 수석코치로 부름을 받았다.


6. 기록[편집]



6.1. 대회 기록[편집]







6.2. 개인 수상[편집]




7. 논란[편집]



7.1. 탈세 논란[편집]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뛰던 2011~2012년에 54만 유로를 탈세한 것으로 논란이 되었다. 영국 데일리 메일, 스쿼카 등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스페인 검찰은 징역 7개월과 벌금 30만 유로를 구형했으나 법원은 벌금 14만 유로를 선고했다고 한다. 원문 기사


8. 여담[편집]


파일:/image/076/2014/01/13/2014011301001191800073701_59_20140113132203.jpg

  • 2014년 1월 10일, 리그앙 몽펠리에 원정 경기에서 유니폼을 거꾸로 입고 출전하였다. 본인뿐 아니라 동료들도 이 사실을 모른 채 10분 동안 뛰었고, 뒤늦게 발견한 주심에 의해 바로 고쳐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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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ʁiˈkaɾðu kɐɾˈvaʎu/[2] 다른 센터백으로는 윌리엄 갈라스가 있었으나, 측면 수비수인 웨인 브릿지파울루 페레이라 등이 자주 부상을 당하면서 공백을 메꾸기 위해 이동하였고, 카르발류가 리그에 적응하자 자연스럽게 카르발류가 갈라스의 자리를 차지했다.[3] 아이러니하게도 알렉스는 그 다음 시즌에도 잔부상으로 고생했고, 결국 첼시가 10-11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다비드 루이스를 영입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4] 페페는 브라질 출신이나 후에 포르투갈 국적을 얻은 후 포르투갈 국대로 선발된 케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