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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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로고.svg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 FC Kaiserslautern
정식 명칭
1. Fußball-Club Kaiserslautern e. V.
별칭
Die roten Teufel (붉은 악마)
창단
1900년 6월 2일(123주년)[1]
소속 리그
2. 분데스리가 (2. Bundesliga)
연고지
라인란트팔츠카이저슬라우테른 (Kaiserslautern)
홈구장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 (Fritz-Walter-Stadion)
49,780명 수용
라이벌
SV 발트호프 만하임 - 쥐트베스트더비
회장
파일:독일 국기.svg 라이너 케슬러 (Rainer Keßler)
단장
파일:독일 국기.svg 토마스 헨겐 (Thomas Hengen)
감독
파일:독일 국기.svg 디르크 슈스터 (Dirk Schuster)
수석코치
파일:독일 국기.svg 자샤 프란츠 (Sascha Franz)
주장
파일:독일 국기.svg 장 치머 (Jean Zimmer)
역대 한국인 선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종원 (1981~1982)
공식 웹사이트
파일: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로고.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파일:X Corp 아이콘(화이트).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LinkedIn 아이콘.svg
지난 시즌 성적
(2022-23 시즌)

2. 분데스리가 9위
약칭
FCK[2]
우승 기록

독일 챔피언십 (1부)[3]
(2회)
1950-51, 1952-53
오버리가 남서부 (1부)[4]
(11회 / 최다 우승)
1946-47, 1947-48, 1948-49, 1949-50, 1950-51, 1952-53, 1953-54, 1954-55, 1955-56, 1956-57
1962-63
분데스리가 (1부)
(2회)
1990–91, 1997–98
2. 분데스리가 (2부)
(2회)
1996–97, 2009–10
DFB-포칼
(2회)
1989-90, 1995-96
DFL-슈퍼컵
(2회)
1991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파일:브라질 국기.svg 링콘 (Lincoln)
(2004년, From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40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폴란드 국기.svg 미로슬라프 클로제 (Miroslav Klose)
(2004년, To SV 베르더 브레멘, 500만 €)
최다 출장
파일:독일 국기.svg 베르너 멜처 (Werner Melzer) - 440경기 (1974~1986)
최다 득점
파일:독일 국기.svg 프리츠 발터 (Friedrich "Fritz" Walter) - 357골 (1937~1959)



2022-23 시즌 골송

1. 개요
2. 스쿼드
2.1. 1군
3. 역사
3.1. 요약
3.2. 역대 팀 엠블럼
4. 최근 시즌
4.1.1. 2010-11 시즌
4.1.2. 2011-12 시즌
4.2.1. 2012-13 시즌
4.2.2. 2013-14 시즌
4.2.3. 2017-18 시즌
4.3.1. 2018-19 시즌
4.3.2. 2019-20 시즌
4.3.3. 2020-21 시즌
4.3.4. 2021-22 시즌
4.4.1. 2022-23 시즌
4.4.2. 2023-24 시즌
5. 울트라스
6. 라이벌
7. 여담
7.1. 과거 로고
8. 과거 주요 선수
9.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파일:1-fc-kaiserslautern-sv-meppen-3-liga-2018-2019-3.jpg


파일:2116423-44285675-2560-1440.jpg

Die roten Teufel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카이저슬라우테른 연고지로 한 축구단. 현재 2. 분데스리가에 소속되어있다.


2. 스쿼드[편집]



2.1. 1군[편집]


파일: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로고.svg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군 스쿼드

[ 펼치기 · 접기 ]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2023-24 시즌[1]
등 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비고
1
파일:독일 국기.svg
GK
안드레아스 루테
Andreas Luthe

2
파일:독일 국기.svg
DF
보리스 토미아크
Boris Tomiak

4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MF
아페즈 아레무
Afeez Aremu

5
파일:독일 국기.svg
DF
케빈 크라우스
Kevin Kraus

6
파일:말리 국기.svg
DF
알마미 투레
Almamy Touré

7
파일:독일 국기.svg
MF
마를론 리터
Marlon Ritter

8
파일:독일 국기.svg
MF
장 치머
Jean Zimmer
주장
9
파일:독일 국기.svg
FW
라그나르 아헤
Ragnar Ache

10
파일:독일 국기.svg
MF
필리프 클레멘트
Philipp Klement

11
파일:독일 국기.svg
MF
케니 프린스 레돈도
Kenny Prince Redondo

13
파일:미국 국기.svg
FW
테렌스 보이드
Terrence Boyd

14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DF
니콜라 솔도
Nikola Soldo
[a]
15
파일:폴란드 국기.svg
DF
티모테우시 푸하치
Tymoteusz Puchacz
[b]
16
파일:독일 국기.svg
MF
율리안 니휘스
Julian Niehues

17
파일:독일 국기.svg
MF
에런 오포쿠
Aaron Opoku

18
파일:독일 국기.svg
GK
율리안 크랄
Julian Krahl

19
파일:독일 국기.svg
FW
다니엘 한슬리크
Daniel Hanslik

20
파일:독일 국기.svg
MF
토비아스 라슐
Tobias Raschl

21
파일:독일 국기.svg
MF
헨드리크 추크
Hendrick Zuck

23
파일:독일 국기.svg
DF
필리프 헤르허
Philipp Hercher

27
파일:독일 국기.svg
FW
렉스티거 로빙거
Lex-Tyger Lobinger

29
파일:독일 국기.svg
FW
리치몬드 타치
Richmond Tachie

30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svg
GK
압도 스파히치
Avdo Spahić

31
파일:독일 국기.svg
FW
벤 촐린스키
Ben Zolinski

33
파일:스위스 국기.svg
DF
얀 엘베디
Jan Elvedi

35
파일:독일 국기.svg
GK
니클라스 헤거
Niklas Heeger

37
파일:독일 국기.svg
DF
에리크 두름
Erik Durm

39
파일:독일 국기.svg
MF
에런 바제나흐
Aaron Basenach

#
파일:스위스 국기.svg
FW
필리프 스토이일코비치
Filip Stojilković
[2]
구단 정보
회장: 라이너 케슬러 / 감독: 디미트리오스 그라모지스 / 홈 구장: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
출처: 공식 홈페이지 / 마지막 수정 일자: 2023년 11월 16일
[1] 스쿼드에 변동이 있으면 간략화된 틀도 수정해주세요.[a] 1. FC 쾰른에서 임대[b] 1. FC 우니온 베를린에서 임대[2] SV 다름슈타트 98에서 임대






3. 역사[편집]


1900년 여러 클럽들의 통합으로 인해 탄생했다. 그 뒤로도 꾸준히 동네 축구 팀들을 하나로 끌어모아서 1931년에 비로소 최종적으로 현재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 그때부터 독일 전국 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이 당시 위세를 떨치던 샬케 04에 밀려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래도 우승권에 도전하는 강호로서 이름을 날리는 데는 성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50년대 클럽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특히 1950년대 초반 카이저슬라우테른은 1951년과 1953년에 우승을 차지하고 분데스리가의 전성기를 열며 서독 최고의 축구팀으로 부상했다. 팀의 주축 선수들은 대거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대표팀으로 차출되었는데, 당시 우승 멤버 중 다섯 명이 카이저슬라우테른 소속이었다. 특히 프리츠 발터는 독일 대표 팀의 주장으로서 당시 무적의 팀이었던 헝가리를 결승에서 격파하는 베른의 기적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런 위세 덕분에 1963년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 첫 16개 클럽으로 초청받아 리그에 합류했고, 꾸준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우승 컵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DFB 포칼 결승에 1972년과 1976년, 1981년 결승에 올랐지만 우승에는 실패했다. 리그에서 역시 마찬가지로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어느 정도 팀의 운이 풀린 것은 1990년대의 일이었다. 1990년 DFB 포칼 우승을 달성하더니, 1990-91 시즌 마침내 분데스리가 출범 후 첫 우승의 감격을 안았다. 그리고 1996년 두 번째 DFB-포칼 우승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해당 시즌인 1995-96 시즌 충격적인 강등을 맛보면서 2부 리그로 추락했다.[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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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샬레를 들어올리는 오토 레하겔 감독


하지만, 팀의 감독인 오토 레하겔은 오히려 이 시기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다. 1996-97 시즌 2부 리그 우승으로 1부 리그에 복귀하더니, 1997-98 시즌 치리아코 스포르차, 마르틴 바그너 등의 활약으로 충격적인 우승을 차지한다.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승격 팀이 우승을 차지한 기록으로[7] 이 기록은 다시는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8]

그러나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많은 빚을 지고, 여기에 선수 영입에도 실패하면서 나락으로 빠지게 되었다. 많은 부채로 인해 선수 영입이 어려워졌고, 그나마 있던 선수들도 팔아야 했다. 결국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2005-06 시즌에 강등되었으며, 그로부터 4시즌을 2부 리그에서 보냈다.


3.1. 요약[편집]




3.2. 역대 팀 엠블럼[편집]


파일: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로고(1955~1969).svg
파일: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로고(1969~2010).svg
파일: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로고(2010~2012).svg
파일: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로고.svg
1955~1969
1969~2010
2010~2012
2012~


4. 최근 시즌[편집]



4.1. 분데스리가[편집]



4.1.1. 2010-11 시즌[편집]


2010-11 시즌부터 1부 리그로 다시 복귀했다. 최종순위는 7위로 마무리했다.


4.1.2. 2011-12 시즌[편집]


2011-12 시즌 31라운드까지 겨우 3승을 거두며 승점 20점(11무 17패), 18위 꼴지로 강등을 거의 확정지었다. 21연속 무승에 7연패 부진 속에 다음 경기는 강등 탈출에 작은 희망을 남겨둔 17위 헤르타 BSC(28점) 원정 경기. 올리버 키르히앤드루 우튼의 골로 2대1 승리를 챙겼다. 하지만 다음경기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 5대2로 패하면서 강등이 확정되었다.


4.2. 2. 분데스리가[편집]



4.2.1. 2012-13 시즌[편집]


2012-13 시즌 2부 리그에서 31차전까지 52점으로 3위를 지키면서 승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1, 2위가 확정되었으므로 남은 3경기에서 마지막 승격권인 3위를 두고 다투게 되었다. 그리고 승점 1점 차로 추격 중인 1. FC 쾰른(51점)과 FSV 프랑크푸르트(50점)와 혈투를 벌인 끝에 2경기를 이기면서 58점이 된 카이저슬라우테른이 남은 1경기와 상관없이 3위를 확정지었다.[9]

분데스리가에서 막판에 극적으로 16위로 오른 TSG 1899 호펜하임과 플레이오프를 치루게 되었다. 1차전 원정에서 1:3으로 패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가 2차전 안방 경기에서도 1:2로 패하면서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다음 시즌에도 2부 리그에서 뛰게 되었다.


4.2.2. 2013-14 시즌[편집]


13-14 시즌에는 16차전까지 1. FC 쾰른과 승점 2점 차이인 2위를 기록하며 승격 분위기를 높이는 중이다. 다만 6위와 승점 차가 겨우 3점이라서 언제라도 바뀔지 모르는 상황. 결국 23차전 종료 시점에서 7위까지 추락해버렸다. 그나마 3위와 승점 차가 3점이라 승격 희망이 남아 있긴 하다. 심기일전하여 27차전까지 4위로 올라서면서 그나마 승격 희망을 남겨뒀다. 하지만 막판 33차전까지 그 3점 차를 좁히지 못하고 4위를 기록하면서 사실상 승격은 물거품이 되었다.

한편 DFB-포칼은 4강전까지 진출했고, 디펜딩 챔피언 FC 바이에른 뮌헨과 맞붙어 1-5로 졌다.


4.2.3. 2017-18 시즌[편집]


17-18 시즌에는 30라운드를 치룬 상황에서 최하위를 기록중이며 3. 리가로의 강등 위험이 큰 상태. 결국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며 클럽 역사상 첫 3부리그 강등이 확정되었다. 분데스리가 역사상 유일한 승격팀 자격으로 우승했던 1997-98 시즌 우승의 20주년이라 더 씁쓸한 상황.


4.3. 3. 리가[편집]



4.3.1. 2018-19 시즌[편집]


3.리가에서의 첫 시즌인 18-19 시즌 9위에 그치며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채 기약없이 3부 리그에 머물게 되었다.


4.3.2. 2019-20 시즌[편집]


19-20 시즌에는 초반은 부진하였지만 이후 6경기 4승 2무로 무패행진 중이며 21라운드 현재 8승6무7패로 10위이다. 포칼은 16강에서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게 5대2로 패하며 탈락.

후반기엔 다시 부진하며 27라운드가 끝난 현재 8승 10무 9패로 14위에 쳐져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모든 축구가 멈췄고 몇달뒤 다시 재개되었지만 구단 재정에 입은 타격이 큰듯 하다. 거기다 예전에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까지 겹쳐지며 파산이 임박했다는 오피셜이 나왔다.# 창단 120주년이라 더욱 씁쓸한 상황. 보통 분데스리가의 빅클럽들이 파산을 막기 위해 돈을 빌려주는 경우도 많았지만 현재는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일시적 파산 완화법의 수혜를 입어 다행히 파산은 면하였고, 3. 리가에 잔류를 확정지었다.


4.3.3. 2020-21 시즌[편집]


9월 13일 포칼컵 1라운드에서 SSV 얀 레겐스부르크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해 탈락했다. 리가에서도 초반 2연패를 당했고, 승격팀 튀르크귀쥐 뮌헨에게 3-0 완패 후 보리스 쇼머스 감독이 경질되었다.

2020년 10월 2일 제프 자이베네 감독을 선임했으나 강등권을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2021년 1월 30일 자이베네 감독도 경질되었다. 자이베네 감독의 경기 기록은 총 3승 12무 5패. 후임 감독은 지난시즌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2. 분데스리가로 승격시켰던 마르코 안트베르펜이다.

시즌이 끝나고, 남서독일 축구협회(Südwestdeutscher Fußballverband)는 쥐트베스트포칼을 개최하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을 DFB-포칼 참가팀으로 결정했다.


4.3.4. 2021-22 시즌[편집]


코로나가 불러온 재정난으로 인해 선수단이 공중분해되고 있다. 주전 골리였던 레나르트 그릴, 플로리안 피크, 크리스티안 퀼베터, 티미 틸레, 만프레트 스카르케, 크리스토프 헴라인, 기노 페흐너, 야니크 바흐만 등 총 23명의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시즌 초반, 여러 노장 선수들과 어린 선수들을 자유계약으로 데려왔으나 한계를 보여주며 하위권에 축 쳐져있었으나 9라운드 SC 페를전 승리를 시작으로 4연승을 기록하더니, 이후로도 승승장구하며 시즌 종료를 앞두고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마지막 3경기에서 모두 패하면서 2위 자리를 브라운슈바이크에 내주고 3위로 시즌을 마치면서 승강 플레이오프에 참가했다. 마지막 리그 경기가 끝난 후 구단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마르코 안트베르펜 감독을 경질하고, 디르크 슈스터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승강 플레이오프 상대는 2. 분데스리가에서 16위를 기록한 SG 디나모 드레스덴이었다. 1차전 홈에서 경기 내내 주도권을 가져갔으나 0대0 아쉬운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전망이 밝지 않았는데, 2차전 원정 경기에서 다니엘 한슬리크의 선제골과 경기 막판 필리프 헤르허의 쐐기골을 바탕으로 2대0 승리를 거두면서 4년만에 2부 리그로 복귀했다.

한때 코로나로 인해 팀이 파산직전까지 갔으나 선수들과 감독의 노력으로 2부리그 복귀를 해내며 팬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4.4. 2. 분데스리가[편집]



4.4.1. 2022-23 시즌[편집]


맹활약한 유망주 주전 키퍼 마테오 라프함부르크 SV로 떠나보냈지만, 1. FC 우니온 베를린의 주전 키퍼 안드레아스 루테를 데려오며 오히려 전력 보강에 성공했다. 외에도 경험이 풍부한 에리크 두름을 영입했고, 2. 분데스리가 경험이 많은 벤 촐린스키까지 데려오며 영입 노선을 확실히 했다.

루카스 뢰저, 엘리아스 후트 등 잉여자원 처리도 어느정도 이루어졌다.

2. 분데스리가 시즌 개막 경기를 부여받았으며, 홈에서 하노버 96을 상대하는 대진이다. 2018년 이후 처음 갖는 홈 경기에 40,000명 이상의 관중이 운집하며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를 달궜다. 저번 시즌 사용했던 4-2-3-1을 그대로 들고나왔으며, 안드레아스 루테, 에리크 두름, 벤 촐린스키는 첫 경기부터 선발로 데뷔했다. 주장 장 치머는 윙으로 출전했다. 경기 시작 10여분 만에 하노버 후방에서 나온 실수를 테렌스 보이드마이크 분데를리히에게 연결하며 앞서나갔고, 80분까지 리드를 유지했으나 순간의 집중력 부족으로 동점을 내준다. 이후에도 밀리는 분위기였으나, 후반 추가시간 얻은 귀중한 세트피스 상황에서 케빈 크라우스가 극장골을 터뜨려[10] 2대1 승리로 4년만의 2. 분데스리가 승리를 장식한다! 하지만 벤 촐린스키의 부상은 라우턴의 고민거리로 남았다.

2라운드 상대는 홀슈타인 킬, 원정 경기이다. 부상으로 이탈한 벤 촐린스키의 빈자리는 다니엘 한슬리크가 메웠다.한슬리크는 믿음에 부응하듯 선제골까지 기록하며 활약했다. 세트피스로 두 골을 연달아먹어 리드를 내줬으나, 테렌스 보이드의 동점골로 2대2 무승부, 승점 1점을 따 오는 데에 성공했다.

2라운드가 종료된 후 마리우스 클라인조르게SV 메펜으로 떠나보냈다.

DFB-포칼 1라운드는 SC 프라이부르크를 상대해 분전했지만 결국 1대2로 패하며 대회를 조기 마감짓게 되었다.

3라운드 홈 이점을 활용해 FC 장크트파울리를 2대1로 물리쳤다! 테렌스 보이드는 1골 1도움 활약을 펼쳤고 에리크 두름도 첫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2. 분데스리가 최강의 공격력을 가진 SC 파더보른 07을 홈으로 불러들여 또 다른 승점 사냥을 노린 4라운드, 전반은 무사히 0대0으로 마쳤으나, 후반 4분 헨드리크 추크가 퇴장당하며 수적 열세에 처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싸우며 승점 1점 획득의 가능성은 있었으나 안드레아스 루테 키퍼의 치명적인 실수로 선제골을 내주며 아쉬운 0대1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5라운드 SpVgg 그로이터 퓌르트 원정을 떠나 선제실점을 하며 0대1로 전반을 마쳤으나, 상대 수비 실수 및 라우턴 공격진의 집중력으로 후반 3골을 몰아넣으며 3대1 역전승을 거두었다. 추크의 공백은 에리크 두름이 레프트백 자리로 옮기며 메웠고, 두름의 자리는 장 치머가 한 단계 내려오며 메웠다. 치머가 종전에 뛰던 윙 자리는 필리프 헤르허가 시즌 첫 선발 출전하며 대신했고, 헤르허는 동점골까지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헤르허와 함께 첫 선발 출전한 조커 자원 케니 프린스 레돈도 또한 1골 1도움 맹활약을 펼쳤다.

함께 승격한 1. FC 마그데부르크를 홈으로 불러들인 6라운드, 4대4라는 굉장한 난타전을 벌였다. 집으로 돌아온 필리프 클레멘트율리안 니후스 대신 즉시 선발로 투입되어 데뷔전을 치뤘고, 어시스트까지 기록했다. 테렌스 보이드의 선취골로 기분 좋게 출발한 라우턴은 11분부터 10분간 3실점을 하며 단숨에 1대3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보리스 토미아크의 전반 막판 득점으로 2대3, 충분히 추격이 가능한 스코어로 전반을 마친다. 로빈 보르무트를 투입하고 쓰리백 전환을 이룬 후반은 라우턴이 거의 지배하다싶이 했고, 결국 66분 마이크 분데를리히의 PK로 4대3 재역전에 성공해낸다! 그러나 토미아크의 불운의 자책골로 인해 승점 3점은 거두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승부를 끌고 온 라우턴 선수들의 정신력이 돋보이는 경기였다.

7라운드 SV 잔트하우젠 원정에서 0대0 무득점 무승부르 거두었다. 주장 마를론 리터가 윙어로 출전한 이색적인 경기였다.

승격을 노리는 SV 다름슈타트 98을 상대로 한 홈 경기, 2% 아쉬운 컴백을 보여줬다. 마이크 분데를리히가 시즌 첫 벤치 스타트를 가졌고, 분데를리히 없는 라우턴은 공격에 고전하며 전반 막판 PK 실점까지 내주며 0대1로 끌려갔다. 후반 극초반 필리프 티츠에게 추가 실점을 내주며 무난히 패배하는 그림으로 가는가 싶었지만, 74분 케니 프린스 레돈도의 만회골, 77분 분데를리히의 PK 동점골로 균형을 맞췄고, 용광로처럼 달궈진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의 기세에 힘입어 레돈도가 87분 마침내 역전골까지 만들어냈다. 이렇게 역전승으로 굳어져가는 분위기였으나, 다름슈타트의 조커에게 한 방 얻어맞으며 3대3 무승부에 만족해야했다.

9라운드 1. FC 하이덴하임 원정에서도 2대2로 비기며 4연무를 달성했다. 40분 안드레아스 루테의 다이렉트 퇴장과 직후 실점으로 패배할 위기에 처했으나, 테렌스 보이드가 후반 멀티골을 완성하며 승점 1점 획득에 성공했다. 헨드리크 추크는 4라운드 퇴장 이후 첫 선발 경기를 가졌으며, 이에 따라 에리크 두름은 라이트백으로, 장 치머는 라이트윙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A매치 기간 이후의 10라운드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전, 계속 두들겼으나 오히려 철퇴 한 방을 맞고 리드를 내주게 된다. 그러나 3분 후 보리스 토미아크가 코너킥 동점골을 만들어내며 균형을 맞추는데에 성공했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슈팅과 유효슈팅을 만들었지만 다시 한 번 브라운슈바이크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고, 결국 1대1 무승부로 마무리되었다.

월드컵 시기를 지나 후반기에는 중위권에 들어설 정도로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4.4.2. 2023-24 시즌[편집]



5. 울트라스[편집]


파일:1-fc-kaiserslautern-fc-ingolstadt-3-liga-2019-2020-6.jpg
Westkurve에서의 열성적인 응원

얼마전까지만 해도 3. 리가 소속이었지만 한때 분데스리가 우승 팀답게 팬층이 두텁다.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이라는 3부 리그팀 답지않은 약 5만석의 대규모 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데, 이때문인지 3부 리그 시절도 약 3만~4만명에 달하는 관중들이 경기마다 들어선다.

경기 시작전 You'll Never Walk Alone을 부르는데, YNWA를 부르는 다른 구단들과는 다르게 밴드의 연주없이 팬들의 떼창으로만 이루어진다.

FC 메스, SV 베르더 브레멘, TSV 1860 뮌헨 울트라스들과 사이가 좋다고 한다. 그 중 특히 1860 뮌헨과 친하다. 반대로 TSG 1899 호펜하임RB 라이프치히를 굉장히 싫어하는데, 돈으로 성적을 샀다는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라우턴에서 라이프치히로 이적한 빌리 오르반이 경기장에 나올때면 야유가 나온다. 해외 구단으로는 스코틀랜드킬마녹 FC과 맺고 있다.


6. 라이벌[편집]



  • SV 발트호프 만하임: 인접한곳에 위치한 만하임과도 라이벌리가 형성되어 있다. 오랫동안 만날일이 없었다가 2019-20 시즌 만하임이 승격하며 만나게 되었다. 라이벌팀 답게 승격하자마자 SVW라고 적힌 훼손된 돼지 시체가 만하임 경기장에서 발견되고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이 있는 베첸베르크에선 동상의 머리가 날라가는 일도 일어났다.



7. 여담[편집]


  • 팀의 홈 구장인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은 팀의 전설이자, 1954년 서독의 월드컵 우승 당시 주장인 프리츠 발터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11] 1920년에 지어져 2002년 리모델링해서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도 쓰였다. 참고로 이 양반은 커리어를 이 팀에서만 보낸 걸로도 유명해서 이 동네에는 이 사람의 이름을 딴 맥주가 있을정도. 요즘에 홈플러스 등 수입 맥주를 많이 취급하는 곳에서 자주 볼 수 있다.

  • 팀명이 너무 길어서 현지에서도 흔히 줄여서 라우테른, 라우턴이라고도 한다.


7.1. 과거 로고[편집]


파일:Kaiserslautern2010.png

2010~2012

2010년이후 2시즌간 분데스리가에 소속되어있을때 사용했던 로고다.


8. 과거 주요 선수[편집]





9.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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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 원년 멤버

[ 펼치기 · 접기 ]
파일:FCN_logo_1940.png

파일:Logo_Borussia_Dortmund_(1945-1964).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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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V 베르더 브레멘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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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에프체카'라고 읽는다.[3]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각 지역 리그의 우승자들끼리 경기를 해서 전국 챔피언을 가려내는 방식이었다.[4]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5] 최종전 이기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레버쿠젠과의 단두대매치에서 1-1로 비겨 강등이 확정되자 안드레아스 브레메의 눈물과 독일 국가대표 동료였던 루디 푈러가 그를 위로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6] 이 시즌부터 바뀐 승점 3점제의 희생양이 됐다고 볼 수 있는데 카이저슬라우테른의 6승18무10패는 3점제에서는 36점이지만 2점제에서는 30점으로 9승11무14패, 승점 38점의 성적으로 15위로 턱걸이로 잔류한 FC 장크트파울리보다 높다. 장크트 파울리의 승점을 2점제로 계산하면 29점으로 카이저슬라우테른보다 낮아진다.[7] 다른 유럽 주요 리그를 보면 2차대전 이후 잉글랜드와 프랑스에서 각각 세 번씩 나왔다.[8] 2016-17 시즌 RB 라이프치히가 이 기록에 도전했지만 2위를 기록하였다.[9] 프랑크푸르트는 53점, 쾰른은 50점.[10] 사실 이 코너킥 자체는 나오면 안 되는 코너킥으로, 심판의 쓰로인/코너킥 판단 미스로 발생된 코너킥이다.[11] 클로제도 발터를 본인의 우상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