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 FIFA 월드컵 프랑스/8강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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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토너먼트
15강
8강 이후

1. 개요
2. 8강
2.1. 1경기 이탈리아 3 vs 1 프랑스
2.3. 3경기 헝가리 2 vs 0 스위스
2.4. 4경기 스웨덴 8 vs 0 쿠바
2.5. 5경기[1] 브라질 2 vs 1 체코슬로바키아
3. 4강
3.1. 1경기 이탈리아 2 vs 1 브라질
3.2. 2경기 헝가리 5 vs 1 스웨덴
4. 3&4위전
5. 결승


1. 개요[편집]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의 8강, 4강, 3&4위전, 결승에 대하여 정리하는 페이지.

1938년 월드컵 8강은 1938년 6월 12일부터 시작되었다. 이 당시 경기는 연장을 치르고도 무승부로 끝나면 재경기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러한 재경기는 1라운드와 같은 방식으로 5경기로 서술한다.


2. 8강[편집]



2.1. 1경기 이탈리아 3 vs 1 프랑스[편집]


경기장
스타드 올랭피크 드 콜롱브
파리 - 프랑스
경기일[2]
1938년 6월 12일 17:00
(1938년 6월 13일 00:00)
국 가
이탈리아[3]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프랑스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득 점
3
1
득점자
지노 콜라우시 (9')
실비오 피올라 (51', 72')
오스카르 에세레 (10')



이 경기는 월드컵 최초로 개최국디펜딩 챔피언이 붙은 경기이다.[4] 이탈리아는 당연히 이 대회에 참가하는 팀 중 최강의 전력을 보유한 팀이었고 프랑스는 홈 관중들의 열렬한 응원이 장점이었다.

경기의 선제골은 이탈리아가 먼저 뽑아냈다. 이탈리아의 아웃사이드 레프트 지노 콜라우시가 프랑스의 오른쪽 페널티 에어리어 언저리에서 날린 슈팅을 골키퍼 로랑 디로르토가 손으로 잡아내려 했지만 실패했고 공은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디로르토는 착지하자마자 뛰어가서 공을 잡으려고 했지만 골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프랑스는 1분 만에 동점골을 넣어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 놓았다.

전반은 그대로 이렇게 끝이 났다. 후반 들어 프랑스는 전열을 가다듬어 이탈리아의 골문에 여러 차례 슈팅을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이탈리아 골키퍼 올리비에리의 활약에 의해 좌절되었고 오히려 후반 6분, 이 균형을 깨뜨린 사람은 이탈리아의 스트라이커 실비오 피올라였다. 피올라는 비아바티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슛으로 디로르토가 막을 수 없는 오른쪽 구석을 꿰뚫었다. 이렇게 다시 불이 붙은 양상에서 이탈리아는 후반 27분. 비아바티의 스루 패스를 받은 피올라가 쐐기골을 넣었다.

이탈리아는 이렇게 프랑스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어 준결승에 진출하였고, 그들은 경기가 끝난 후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며 월드컵을 통한 평화적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60년 후, 다시 자국에서 월드컵을 개최한 프랑스는 8강에서 이탈리아를 다시 만나 승부차기에서 이겨 설욕에 성공하고 결국 우승까지 차지하게 된다.


2.2. 2경기 브라질 1 vs 1 체코슬로바키아[편집]


경기장
스타드 두 파르크 레스퀴르
보르도 - 프랑스
경기일
1938년 6월 12일 17:00
(1938년 6월 13일 00:00)
국 가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1889-1960).svg
체코슬로바키아
파일:체코 국기.svg
득 점
1
1
득점자
레오니다스 (30')
올드르지흐 네예들리 (65')(PK)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
바우테르 굴라르
GK
선발
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
GK 파일:주장 아이콘.svg
도밍구스 다기아

야로슬라프 부르그르

마샤두
89'
페르디난드 다우치크

마르팅
파일:주장 아이콘.svg
블라스티밀 코페츠키

아폰시뉴

야로슬라프 보우체크

제제 프로코피우
14'
요제프 코슈탈레크

레오니다스
파일:득점 아이콘.svg
라디슬라프 시무네크

로페스

안토닌 푸치

에르쿨리스

얀 르지하
89'
페라시우

올드르지흐 네예들리
파일:PKGoal.jpg
호메우

요제프 루들

교체
바타타이스
GK
교체
카렐 부르케르트
GK
나리스

요제프 오르트

자우

파벨 체르니

브란당

오타카르 노지르시

브리투

카렐 콜스키

아르제미루

바츨라프 호라크

니지뉴

보이테흐 브라다치

루이지뉴

아르노슈트 크레우스



올드르지흐 룰츠

파체스쿠

요제프 제만

호베르투

카렐 세네츠키



사상 최악의 경기

보르도에서는 남미의 강호 브라질과 지난 대회 준우승팀 체코슬로바키아가 경기를 치렀다. 8강에서 치러지는 4개의 경기 중 팀의 수준으로 미루어보아 가장 재미있을 법한 경기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경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전반 14분, 브라질 수비수[5] 제제 프로코피우가 체코슬로바키아의 간판 공격수이자 지난 대회 득점왕 올드르지흐 네예들리를 팔꿈치로 가격한 것으로 축구 대신 난투극으로 종목이 바뀌었다. 이에 주심은 즉각 퇴장을 명령했다. 브라질은 프로코피우의 퇴장으로 한 명이 부족했지만 전반 30분, 레오니다스의 선취골로 앞서나가게 된다. 당대 최고의 골키퍼 플라니치카마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멋진 골이었다. 하지만 레오니다스마저 전반 끝날 무렵,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비수와 충돌하여 의식을 잃고 경기장에 쓰러지고 말았다. 비록 심각한 상태가 아니어서 경기는 끝까지 뛸 수 있었지만 정말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후반에 들어가서도 경기는 계속 거칠게 흘러갔다. 결국 후반 20분, 브라질 수비수의 핸들링으로 체코슬로바키아는 페널티 킥을 얻었고. 네예들리가 키커로 나섰다. 네예들리는 깔끔하게 페널티 킥을 성공시켜 동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얼마 후, 네예들리는 거친 파울로 인해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고 자신의 월드컵을 마감해야 했다. 또한 체코슬로바키아의 골키퍼 플라니치카도 경기 중에 오른팔이 부러졌는데 비록 경기는 끝까지 소화했지만 그로 인해 플라니치카는 자신의 A매치 기록을 73경기에서 마감하게 된다. 게다가 후반 44분, 브라질의 마샤두와 체코슬로바키아의 얀 르지하가 드잡이질을 벌이다 세트로 퇴장당함으로서 브라질과 체코슬로바키아는 각각 9명[6]으로 연장전을 치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 밖에도 체코슬로바키아의 코슈탈레크는 배를 맞고 기절하고 브라질의 레오니다스와 페라시우도 부상을 입는 등 퇴장이나 부상을 안 당한 선수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이틀 후 재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이 격렬한 경기 양상에서 흐름을 조절했어야 할 주심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고 덕분에 지금도 이 경기는 보르도의 전투라는 이름으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2.3. 3경기 헝가리 2 vs 0 스위스[편집]


경기장
스타드 빅토르 부케이
- 프랑스
경기일
1938년 6월 12일 17:00
(1938년 6월 13일 00:00)
국 가
헝가리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915-1918, 1919-1946).svg
스위스
파일:스위스 국기.svg
득 점
2
0
득점자
샤로시 죄르지 (40')
젠겔레르 줄러 (89')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
서보 언털
GK
선발
빌리 후버
GK
비로 샨도르

아돌프 슈텔처

코라니 러요시

아우구스트 레만

라자르 줄러

시리오 베르나티

설러이 언털

에르네스트 뢰르처

투러이 요제프

헤르만 슈프링어

빈체 예뇌

라우로 아마도

샤로시 죄르지
파일:주장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앙드레 아베글렁
파일:주장 아이콘.svg
셔시 페렌츠

오이겐 발라셰크

젠겔레르 줄러
파일:득점 아이콘.svg
툴리오 그라시

코후트 빌모시

프레디 비켈

교체
팔린카시 요제프
GK
교체
레나토 비초체로
GK
하더 요제프
GK
에르빈 발라비오
GK
벌로그 이슈트반

세베리노 미넬리

샤로시 벨러

알베르 갱샤르

쉬츠 죄르지

오스카 라우흐

폴가르 줄러

레오폴트 킬홀츠

비로 미하이

알레산드로 프리제리오

야노시 두다시

오이겐 루프

체흐 라슬로

조르주 에비

톨디 게저

폴 에비[7]

티트코시 팔

프리츠 바그너


헝가리 선발명단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915-1918, 1919-1946).svg

GK
서보 언털
FB
코라니 러요시

FB
비로 샨도르
HB
라자르 줄러

HB
투러이 요제프

HB
설러이 언털
FW
셔시 페렌츠

FW
젠겔레르 줄러

FW
샤로시 죄르지

FW
빈체 예뇌

FW
코후트 빌모시
VS
FW
툴리오 그라시

FW
오이겐 발라셰크

FW
프레디 비켈

FW
앙드레 아베글렁

FW
라우로 아마도
HB
에르네스트 뢰르처

HB
시리오 베르나티

HB
헤르만 슈프링어
FB
아우구스트 레만

FB
아돌프 슈텔처
GK
빌리 후버
스위스 선발명단
파일:스위스 국기.svg


경기를 앞두고 일부 스위스 팬들이 툴툴대는 상황이 있었다. 그 상황이란 스위스독일과 재경기까지 치르는 격전 끝에 간신히 8강에 올라왔는데 헝가리네덜란드령 동인도손쉽게 관광시키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 혈전의 결과 스위스는 주장이었던 세베리노 미넬리와 공격수 조르주 에비부상으로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헝가리는 그딴 건 없었다. 모두의 예상대로 헝가리는 주장이자 에이스였던 샤로시와 포워드 젠겔레르 줄러가 한 골씩을 넣음으로서 2대0으로 낙승을 거두고 4강에 올라갔다.


2.4. 4경기 스웨덴 8 vs 0 쿠바[편집]


경기장
스타드 포르 까레
앙티브 - 프랑스
경기일
1938년 6월 12일 17:00
(1938년 6월 12일 00:00)
국 가
스웨덴
파일:스웨덴 국기.svg
쿠바
파일:쿠바 국기(1902-1906, 1909-1959).svg
득 점
8
0
득점자
하뤼 안데르손 (9', 81', 89')
구스타브 베테르스트룀 (22', 37', 44')
토레 셸레르 (80')
아르네 뉘베리 (84')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
헤노크 아브라함손
GK
선발
베니토 카르바할레스
GK
올레 셸그렌

마누엘 초렌스

이바르 에릭손

하신토 바르킨

스벤 야콥손

페드로 베르헤스

에리크 알름그렌

호세 로드리게스

쿠르트 스반스트룀

호아킨 아리아스41'

구스타브 베테르스트룀
파일:득점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엑토르 소코로

스벤 요나손

토마스 페르난데스
파일:주장 아이콘.svg
아르네 뉘베리
파일:득점 아이콘.svg
페드로 페레르

토레 셸레르
파일:주장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후안 알론소

하뤼 안데르손
파일:득점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후안 투냐스

교체
구스타브 셰베리
GK
교체
후안 아이라
GK
에리크 닐손

마리오 소사

하뤼 닐손

카를로스 올리베이라

아르네 린데르홀름

호세 마그리냐

칼에리크 그란



렌나르트 분케



스벤 웅예르



에리크 페르손



오케 안데르손



쿠르트 베리스텐



크누트 한손




스웨덴 선발명단
파일:스웨덴 국기.svg

GK
헤노크 아브라함손
FB
이바르 에릭손

FB
올레 셸그렌
HB
에리크 알름그렌

HB
스벤 야콥손

HB
쿠르트 스반스트룀
FW
아르네 뉘베리

FW
스벤 요나손

FW
하뤼 안데르손

FW
토레 셸레르

FW
구스타브 베테르스트룀
VS
FW
후안 알론소

FW
후안 투냐스

FW
엑토르 소코로

FW
토마스 페르난데스

FW
페드로 페레르
HB
페드로 베르헤스

HB
호세 로드리게스

HB
호아킨 아리아스
FB
마누엘 초렌스

FB
하신토 바르킨
GK
베니토 카바할레스
쿠바 선발명단
파일:쿠바 국기(1902-1906, 1909-1959).svg


루마니아를 꺾고 올라온 쿠바의 돌풍이 스웨덴을 상대로 지속될 수 있을 지가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스웨덴쿠바를 8대0이라는 스코어로 깨버리면서 당시 역대 월드컵 최다 점수차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8] 그나마 쿠바는 전반 41분에 수비수 호아킨 아리아스가 부상으로 경기장 밖으로 나가버렸으니 후반은 그저 수비하는 데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골이 하도 많이 터졌고 옛날 기록이다 보니 FIFA 월드컵 공식기록과 RSSSF의 득점 기록이 매우 크게 차이가 난다.[9] 두 기록에서 득점자와 득점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8골 중 무려 5골이나 될 정도이니... 하지만 전해오는 영상이 없으니 진실은 더욱 알 수가 없다. 진실은 저 너머에

그나마 쿠바는 전반 42분에 토마스 페르난데스페널티 킥을 찼지만 공이 스웨덴 골키퍼 아브라함손에게 걸려 영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5. 5경기[10] 브라질 2 vs 1 체코슬로바키아[편집]


경기장
스타드 두 파르크 레스퀴르
보르도 - 프랑스
경기일
1938년 6월 14일 18:00
(1938년 6월 15일 01:00)
국 가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1889-1960).svg
체코슬로바키아
파일:체코 국기.svg
득 점
2
1
득점자
레오니다스 (57')
호베르투 (63')
블라스티밀 코페츠키 (25')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
바우테르 굴라르
GK
선발
카렐 부르케르트
GK
나리스

야로슬라프 부르그르
파일:주장 아이콘.svg
자우

페르디난드 다우치크

브란당

블라스티밀 코페츠키
파일:득점 아이콘.svg
브리투

야로슬라프 보우체크

아르제미루

요제프 코슈탈레크

레오니다스
파일:주장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바츨라프 호라크

루이지뉴

아르노슈트 크레우스



올드르지흐 룰츠

파체스쿠

요제프 제만

호베르투
파일:득점 아이콘.svg
카렐 세네츠키

교체
바타타이스
GK
교체
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
GK
도밍구스 다기아

요제프 오르트

마샤두

파벨 체르니

마르팅

오타카르 노지르시

아폰시뉴

카렐 콜스키

제제 프로코피우

라디슬라프 시무네크

니지뉴

보이테흐 브라다치

로페스

안토닌 푸치

에르쿨리스

얀 르지하

페라시우

올드르지흐 네예들리

호메우

요제프 루들


브라질 선발명단
파일:브라질 국기(1889-1960).svg

GK
바우테르 굴라르
FB
자우

FB
나리스
HB
브란당

HB
브리투

HB
아르제미루
FW
호베르투

FW
루이지뉴

FW
레오니다스

FW


FW
파체스쿠
VS
FW
올드리히 룰츠

FW
카렐 세네츠키

FW
요제프 루들

FW
바츨라프 호라크

FW
아르노슈트 크레우스
HB
블라스티밀 코페츠키

HB
야로슬라프 보우체크

HB
요제프 코슈탈레크
FB
페르디난드 다우치크

FB
야로슬라프 부르그르
GK
카렐 부르케르트
체코슬로바키아 선발명단
파일:체코 국기.svg


보르도의 전투가 벌어진지 이틀 후, 양 팀은 재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그 전투의 여파는 컸다. 브라질레오니다스를 제외한 필드 플레이어 전원을, 체코슬로바키아골키퍼와 공격진에서 6명의 선수를 바꾸고 재경기에 임했다.

전반 25분에 체코슬로바키아가 선제골을 넣는데 성공했고, 브라질 역시 만회골을 넣는가 했지만 브라질의 골은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인해 취소가 되었다. 하지만 브라질은 이에 굴하지 않고 후반 12분, 레오니다스의 동점골과 5분 뒤에 터진 호베르투의 헤딩골을 묶어 순식간에 역전에 성공했다.

브라질은 결국 체코슬로바키아를 2대1로 꺾고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와 붙게 되었다.


3. 4강[편집]



3.1. 1경기 이탈리아 2 vs 1 브라질[편집]


경기장
스타드 벨로드롬
마르세유 - 프랑스
경기일
1938년 6월 16일 18:00
(1938년 6월 17일 01:00)
국 가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1889-1960).svg
득 점
2
1
득점자
지노 콜라우시 (51')
주세페 메아차 (60')(PK)
호메우 (88')



브라질이탈리아와의 일전을 치르기 이틀 전에 체코슬로바키아와 재경기까지 치르는 혈전을 치렀다. 반면 이탈리아는 개최국 프랑스를 정규 시간 내에 꺾었기 때문에 브라질보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브라질은 흰색. 이탈리아는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렀다.

전반은 그렇게 눈에 띌만한 장면이 있지는 않았다. 브라질의 미들 진영에서 브라질 선수들이 공을 많이 잡기는 했지만 이탈리아의 수비가 한 수 위였기 때문이었다. 브라질의 공격이 몇 번 있을 뻔도 했지만 그마저도 이탈리아의 골키퍼 올리비에리에게 큰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당시 브라질의 감독이었던 아데마르 피멘타가 부상 치료와 결승전에 대비한답시고 주전 스트라이커 레오니다스를 뺐는데 레오니다스가 없는 브라질의 공격력은 매우 무뎠다.

후반이 시작되자마자 이탈리아의 공격수들은 본격적으로 브라질의 골문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결국 후반 6분, 이탈리아의 공격수 지노 콜라우시비아비티의 크로스를 받아 골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9분 뒤인 후반 15분, 브라질의 수비수 도밍구스 다기아피올라에게 파울을 범했고 스위스 출신 주심 위테라이히는 자비없이 페널티 킥을 선언했다. 키커로는 이탈리아의 주장 주세페 메아차가 나섰다. 메아차는 상대 골키퍼 바우테르를 완벽히 속이며 왼쪽으로 공을 꽂아넣었다. 하지만 이 때 월드컵 역사에 기록될 만한 해프닝이 하나가 있었는데 메아차가 킥을 하려는 순간 유니폼 바지의 고무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메아차는 상당히 엉거주춤한 자세로 칩샷을 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바우테르의 방어를 뚫기는 했다. 메아차는 골을 넣고도 마냥 좋아하지만은 못하고 그저 바지가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수 밖에 없었다.

브라질은 공세를 취했지만 그 때마다 올리비에리의 방어에 막혔고, 후반 43분이나 되어서야 호메우의 골로 기세를 올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결국 이탈리아가 브라질을 2대1로 꺾고 결승에 올라갔다.


3.2. 2경기 헝가리 5 vs 1 스웨덴[편집]


경기장
파르크 데 프랑스
파리 - 프랑스
경기일
1938년 6월 16일 18:00
(1938년 6월 17일 01:00)
국 가
헝가리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915-1918, 1919-1946).svg
스웨덴
파일:스웨덴 국기.svg
득 점
5
1
득점자
스벤 야콥손(O.G) (19')
티트코시 팔 (37')
젠겔레르 줄러 (39', 85')
샤로시 죄르지 (65')
아르네 뉘베리 (1')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
서보 언털
GK
선발
헤노크 아브라함손
GK
비로 샨도르

올레 셸그렌

코라니 러요시

이바르 에릭손

라자르 줄러

스벤 야콥손
파일:OwnGoal.jpg
설러이 언털

에리크 알름그렌

투러이 요제프

쿠르트 스반스트룀

샤로시 죄르지
파일:주장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구스타브 베테르스트룀

셔시 페렌츠

스벤 요나손

젠겔레르 줄러
파일:득점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아네 나이베리
파일:득점 아이콘.svg
톨디 게저

토레 셸레르
파일:주장 아이콘.svg
티트코시 팔
파일:득점 아이콘.svg
하뤼 안데르손

교체
팔린카시 요제프
GK
교체
구스타브 셰베리
GK
하더 요제프
GK
에리크 닐손

벌로그 이슈트반

하뤼 닐손

샤로시 벨러

아르네 린데르홀름

쉬츠 죄르지

칼에리크 그란

폴가르 줄러

렌나르트 분케

비로 미하이

스벤 웅예르

빈체 예뇌

에리크 페르손

야노시 두다시

오케 안데르손

체흐 라슬로

쿠르트 베리스텐

코후트 빌모시

크누트 한손


헝가리 선발명단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915-1918, 1919-1946).svg

GK
서보 언털
FB
코라니 러요시

FB
비로 샨도르
HB
설러이 언털

HB
투러이 요제프

HB
라자르 줄러
FW
셔시 페렌츠

FW
젠겔레르 줄러

FW
샤로시 죄르지

FW
톨디 게저

FW
티트코시 팔
VS
FW
구스타브 베테르스트룀

FW
토레 셸레르

FW
하뤼 안데르손

FW
스벤 요나손

FW
아르네 뉘베리
HB
쿠르트 스벤스트룀

HB
스벤 야콥손

HB
에리크 알름그렌
FB
올레 셸그렌

FB
이바르 에릭손
GK
헤노크 아브라함손
스웨덴 선발명단
파일:스웨덴 국기.svg


같은 시각, 파리에서는 헝가리스웨덴이 4강전을 치르고 있었다.

첫 골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빠른 시간에 나왔다. 시작한지 1분도 안되어 스웨덴의 아르네 뉘베리가 재빠른 돌파를 이용해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은 스벤 야콥손이 전반 19분에 자책골을 넣어서 리드를 오래 지키지 못했다. 헝가리의 공격수가 골문 구석 쪽으로 헤딩을 했는데 그걸 걷어낸다고는 했지만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고 골문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헝가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를 갖고 있는 팀답게 기술적으로 우월했는데 그 결실은 37분이 되어서야 나왔다. 티트코시가 스웨덴의 오른쪽 진영에서 날린 슈팅이 스웨덴의 골키퍼 아브라함손의 손에 맞고 들어간 것이다. 티트코시는 거의 사각에서 슈팅을 날렸고 아브라함손은 골문 오른쪽을 향해 몸을 날렸지만 공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2분 뒤에 헝가리의 간판 공격수 젠겔레르가 한 골을 추가함으로서 3대1의 스코어를 만들었고 그렇게 전반전이 끝났다.

후반에 들어서 헝가리는 스웨덴을 말 그대로 가둬놓고 패는 수준의 경기를 펼쳤고 후반 20분에는 헝가리의 주장 샤로시의 헤딩골이, 후반 40분에는 젠겔레르가 쐐기골을 넣음으로써 경기는 5대1로 끝났다.

헝가리는 이탈리아와 함께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4. 3&4위전[편집]



4.1. 브라질 4 vs 2 스웨덴[편집]


경기장
스타드 두 파르크 레스퀴르
보르도 - 프랑스
경기일
1938년 6월 19일 17:00
(1938년 6월 20일 00:00)
국 가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1889-1960).svg
스웨덴
파일:스웨덴 국기.svg
득 점
4
2
득점자
호메우 (44')
레오니다스 (63', 74')
페라시우 (80')
스벤 요나손 (28')
아르네 뉘베리 (38')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
바타타이스
GK
선발
헤노크 아브라함손
GK
도밍구스 다기아

에리크 닐손

마샤두

이바르 에릭손

브란당

아르네 린데르홀름

아폰시뉴

에리크 알름그렌

제제 프로코피우

쿠르트 스반스트룀
파일:주장 아이콘.svg
레오니다스
파일:주장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스벤 요나손
파일:득점 아이콘.svg
파체스쿠

아르네 뉘베리
파일:득점 아이콘.svg
페라시우
파일:득점 아이콘.svg
에리크 페르손

호메우
파일:득점 아이콘.svg
오케 안데르손

호베르투

하뤼 안데르손

교체
바우테르 굴라르
GK
교체
구스타브 셰베리
GK
나리스
GK
올레 셸그렌

자우

하뤼 닐손

마르팅

스벤 야콥손

브리투

칼에리크 그란

아르제미루

구스타브 베테르스트룀

니지뉴

렌나르트 분케

루이지뉴

스벤 웅예르

로페스

쿠르트 베리스텐

에르쿨리스

크누트 한손



토레 셸레르


브라질 선발명단
파일:브라질 국기(1889-1960).svg

GK
바타타이스
FB
도밍구스 다기아

FB
마샤두
HB
제제 프로코피우

HB
브란당

HB
아폰시뉴
FW
호베르투

FW
호메우

FW
레오니다스

FW
페라시우

FW
파체스쿠
VS
FW
에리크 페르손

FW
오케 안데르손

FW
하리 안데르손

FW
스벤 요나손

FW
아르네 뉘베리
HB
쿠르트 스반스트룀

HB
아르네 린데르홀름

HB
에리크 알름그렌
FB
에리크 닐손

FB
이바르 에릭손
GK
헤노크 아브라함손
스웨덴 선발명단
파일:스웨덴 국기.svg


브라질은 마치 자신들이 이탈리아에게 패한 이유가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재경기의 후유증으로 인해 체력이 달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처럼 스웨덴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전반전은 그들이 원하던 대로 흘러가지 못했는데 스벤 요나손과 아르네 뉘베리에게 연속골을 허용하여 0대2로 끌려갔다. 그러던 브라질은 전반 종료 직전 호메우의 골로 1대2로 따라붙는데 성공하였다.

후반전에 들어오면서 브라질은 3분 만에 페널티 킥을 얻었지만 파체스쿠가 실축했다. 그래도 브라질은 레오니다스가 2골을 넣고 페라시우가 한 골을 추가하여 결국 4대2로 역전에 성공하였고 동메달을 따서 브라질로 돌아가게 되었다.


5. 결승[편집]



5.1. 이탈리아 4 vs 2 헝가리[편집]


경기장
스타드 올랭피크 드 콜롱브
파리 - 프랑스
경기일
1938년 6월 19일 17:00
(1938년 6월 20일 00:00)
국가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헝가리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915-1918, 1919-1946).svg
점수
4
2
득점
지노 콜라우시 (6', 35')
실비오 피올라 (16', 82')
티트코시 팔 (8')
샤로시 죄르지 (70')





이탈리아헝가리는 각기 훌륭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팀이었던터라 자존심 싸움이 대단하였다.

하지만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한 번의 시합이 더 설득력이 있는 법. 1938년 월드컵의 결승은 프랑스의 당시 대통령까지 와서 관전했을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관심 속에서 치러지게 되었다.

헝가리의 공격은 단연 젠겔레르 줄러주장 샤로시 죄르지가 이끌었다. 그들은 이전 3경기에서 무려 13골을 넣었는데 이들 두 명이 넣은 골만 젠겔레르의 5골과 샤로시의 4골을 합쳐 9골이었다. 반면 이탈리아는 헝가리만큼 골을 많이 넣지는 못했지만 쥘 리메의 고향이자 개최국인 프랑스남미의 강호 브라질을 연파하고 올라온 터라 사기가 충천해 있었다. 이탈리아는 3경기에서 5골을 합작한 피올라콜라우시의 활약에 기대를 걸어보았다.

파일:external/www.fifa.com/1701109_full-prt.jpg
경기 시작 전에 인사를 나누는 양팀 주장. 왼쪽이 이탈리아와 인터 밀란의 전설적인 공격수 주세페 메아차이고, 오른쪽이 헝가리의 30년대를 주름잡았던 샤로시 죄르지이다.

전반 6분, 이탈리아가 포문을 열었다. 선제골의 주인공은 지노 콜라우시. 이탈리아의 빠른 역습 상황에서 비아바티가 헝가리 진영 왼쪽에서 날린 크로스는 헝가리 수비수들이 아무도 신경 쓸 수 없던 위치로 교묘하게 콜라우시에게 날아갔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콜라우시는 당연하게 왼발 발리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았다.

파일:/20130525_230/kimhw85_1369479855757Fl7Uz_JPEG/1938_Final_First_Goal.jpg
검은색 유니폼-실제로는 빨간색 유니폼이 헝가리 선수들. 오른쪽에서 조금 옅은 색 유니폼-실제로는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크로스를 날리는 비아바티이고 왼쪽에서 무주공산으로 서 있는 선수가 콜라우시이다.

하지만 헝가리도 그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2분 만에 티트코시 팔이 이탈리아 수비수들의 3연속 걷어내기 실수를 틈타 왼발슛으로 만회골을 뽑은 것이다. 대회 내내 계속된 선방으로 상대 공격수의 기를 죽이던 올리비에리도 어찌하지 못할 강력한 슈팅이었다.

이탈리아는 전반 16분, 피올라가 메아차의 어시스트를 받아 골을 넣어 다시 도망가는데 성공했고, 피올라는 골키퍼가 막아낸 공을 재차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공은 아쉽게 크로스바를 때렸다. 그리고 35분, 콜라우시가 헝가리의 왼쪽 골문을 꿰뚫는 정확한 슈팅으로 추가골을 기록, 스코어는 3대1로 벌어졌다. 이 추가골로 콜라우시는 FIFA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결승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이탈리아가 계속해서 헝가리를 밀어붙이는 양상으로 전반전이 종료되었다.

후반 25분, 헝가리의 주장 샤로시 죄르지가 이탈리아 수비수들의 방어에서 잠깐 벗어난 틈을 타서 만회골을 넣었다. 스코어는 3대2. 이제 헝가리가 추격의 불씨를 살려 턱 밑까지 쫓아왔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더 이상 방심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탈리아는 만회골을 넣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때마다 헝가리의 서보 골키퍼의 선방과 골대의 수훈으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파일:external/www.fifa.com/1701108_full-lnd.jpg
서보 골키퍼의 사력을 다한 방어

하지만 후반 37분, 이탈리아의 피올라가 결국 서보 골키퍼와 수비수 비로 샨도르의 방어를 뚫고 쐐기골을 뽑아내었다. 비아바티의 슈팅이 헝가리 수비수를 맞고 흘러나온 것을 논스톱으로 골을 뽑아내었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었다.

이탈리아는 월드컵 2연패를 이룩해 낸 최초의 팀이 되었으며, 월드컵에서 개최국 이외의 다른 팀이 우승한 최초의 기록도 갖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쥘리메 컵 영구 소유에 한 발짝 더 다가섰으며, 당시 이탈리아를 이끌던 포초감독은 현재까지 유일한 월드컵 2연패를 이끌어낸 감독으로 남아있다.[11] 여담으로 두번째 우승 직후 축하 파티에서, 포초 감독은 얼마나 기뻤는지 코치가 장난으로 그의 발에다가 술을 붓는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했다고 한다.

파일:external/mondialhistory.com/Champion_France_1938.jpg
위 사진에서 트로피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포초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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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강 2경기의 재경기[2] 괄호 안은 한국시간[3] 프랑스와 유니폼 색이 겹치는 관계로 무솔리니를 상징하는 검은색 유니폼을 입었다.[4] 직전 대회에선 초대 월드컵 우승팀 우루과이가 자국 월드컵 때 유럽팀들의 단체 불참에 불만을 품고 대회 출전을 거부해서 아예 이런 매치가 성사될 기회가 없었다.[5] 현대 축구로 따지면 미드필더에 해당하는 하프에서 뛰었다.[6] 네예들리가 발목 골절로 경기를 뛰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월드컵에는 선수 교체 제도가 없었다.[7] 조르주 에비의 형.[8] 종전 기록은 1934년 월드컵에서의 이탈리아미국과의 경기에서 나왔던 7대1이었다. 현재 기록은 9골 차로 총 3번이 기록되어 있다. 1954년헝가리대한민국, 1974년유고슬라비아자이르, 1982년헝가리엘살바도르의 경기에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8골차 경기는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루과이볼리비아상대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독일사우디아라비아상대로 기록되어 있다. 승리팀들은 각각 이 경기와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상대를 박살내버렸다.[9] 이 페이지의 기록은 FIFA 월드컵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공식기록들을 기준으로 작성하였다.[10] 8강 2경기의 재경기[11] 브라질이 1958년1962년 월드컵에서 연속 우승하여 이탈리아의 기록을 재현해냈지만 감독이 각기 다른 사람이라 월드컵 2연패를 이끈 감독은 현재 포초 감독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