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폭염 (r20210301판)

 

1. 개요
2. 상세
3. 해외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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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세


대한민국 기준으로 20세기 최악의 폭염이자 기상학자들이 현재에도 첫순에 놓는 전설의 가뭄이다.[2] 한국에서 1932년, 1939년, 1942년, 1943년 등의 아주 오래전의 폭염이 잊힐 쯤 가공할 폭염이 닥쳐 20세기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3] 아직까지 이견이 있지만, 일부 학계에서는 1994년을 기준으로 동아시아몬순이 변했다고 볼 정도. 그 덕에 더위가 지속된다 싶으면 비교대상으로 항상 언급이 된다.

일사병 사망자가 속출했으며 아스팔트 바닥에서 계란 후라이가 가능했다. 3월에는 1994년 중 유일한 이상 저온이 찾이왔으나 3월 말부터 기온이 크게 올라 4월에는 평년 기온을 크게 웃도는 등 전조가 보이더니[4] 6월 중순에 서울에서 34.7˚C까지 오르는 등 폭염이 시작되었고, 그 뒤 어쩡쩡한 장마로 인해 6월 말부터 재차 시작된 폭염은 9월 초순까지 길게 이어졌으며 9월 중순~12월 말에도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유지하고 있었다.[5][6][7] 이 때 대구직할시는 7월 12일에 39.4도를 기록하며 해방 이후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심지어 7월의 대구 월 평균 기온은 관측이래 유일하게 30°C가 넘는 30.2°C, 서울도 28.5°C로 역대 최고 기온 달성. 이 때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3,384명이라는 기사가 나왔으나 이는 '초과 사망자'라는 개념을 오해한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당시 전국 폭염일수는 무려 29.4일을 기록했고 서울에서는 열대야35일이나 발생했다. 몇몇 사람들은 작년에 올 더위가 올해 더위에 이자까지 얹혀서 왔다고 할 정도.[8]

거기다 습도 또한 최악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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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여름 일평균 습도
2012년 여름 일평균 습도

1994년도의 여름과 마찬가지로 더웠던 2012년 여름의 습도를 서로 비교해 보면 1994년 폭염 때의 습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는데 이렇게 높은 습도는 체감상 더 덥게 느껴지게 만들어서 1994년 폭염을 역사에 남기는데 크게 일조를 하게 되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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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폭염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농업용수는 물론 생활용수조차 공급에 차질을 빚었는데, 7월 초에 조기 종료된 장마 탓에 전국 대부분 지방의 강수량이 평년보다 훨씬 적어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남원시는 7월 한달 간 강수량이 단 1mm에 그쳤으며 거창, 정읍에서도 10mm 미만의 강수량을 보였다(...). 폭염은 계속되고 비가 오지 않아 가뭄 피해가 심각하여, 오죽하면 태풍이 오기를 기대할 정도였으며[10] MBC에서는 타는 들녘에 사랑의 물줄기라는 특별 생방송을 편성하여 각 지역 가뭄이 극심한 지역에 양수기를 배달시키는 방송을 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7월 말에서 8월 초에 잇따라 올라왔던 7호 태풍 월트, 11호 태풍 브랜던, 13호 태풍 더그바람은 그리 강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를 뿌려줘 효자태풍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어느 정도냐면 농민들이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만세를 불렀을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보통 태풍 관련 뉴스에서는 농민들이 탄식하는 장면이 많지만 당시 뉴스의 농민들은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다들 축제 분위기였다(월트 내습 소멸 직후).[11] 일본에서도 지역에 따라 40도를 넘어가는 무시무시한 폭염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가뭄까지 겹쳐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 여파는 매우 컸는지 다음해인 1995년에 대구와 경상도에 재차 폭염이 왔음[12]에도 잊혀질 정도였다. 해외로 가면, 도쿄는 되려 94년 8월보다 95년 8월 평균기온이 더 높을 정도였다.

3. 해외


독일 베를린에서도 1994년 8월 1일에 37.7도를 찍었다고 한다. 단, 1994년 여름은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이 무자비하게 더웠던 것 외에 세계적으로는 조금 더웠던 정도의 비교적 평범한 여름으로 기록되어 유럽쪽에서는 2003년 폭염 같은 특별한 폭염기록이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시적인 현상으로 추정된다.[13] 하지만 중국 베이징시의 여름철 평균기온이 역대 3번째이자 건국 이후 최대였다거나[14] 일본 도쿄의 열대야 최다일수가 2010년 여름이 오기 전까지 최대였다는 기록이 있는 등 중국과 일본 또한 한국 못지 않게 역사적인 폭염으로 기억되는 폭염이었다. 즉, 동북아에서만 최악의 폭염이었던 셈이다.

4. 여담


공교롭게 김일성 사망과도 때가 겹쳤기 때문에 항간엔 일사병으로 죽은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으며,[15] 당시 군인들은 혹독한 폭염에 겹친 초긴장 정국 덕분에 잊지 못할 여름을 보냈다.[16]

이 해의 압도적인 폭염 때문에 1994년의 폭염은 하나의 기준점이 됨으로써 이후의 폭염은 항상 1994년과 비교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6년 폭염과 같은 비교가 될만한 케이스의 경우 최고 온도는 갱신되었지만 폭염, 열대야, 가뭄이 지속된 일수는 아직도 1994년이 더 앞서고 그로인한 농작물 및 인명피해도 1994년의 기록이 아직도 더 앞선다. 그러다가 9월 중순부터 날씨가 풀리면서 이때 이후로는 예년 기온을 회복했고 1993년처럼 늦더위가 찾아오지는 않았다.[17] 오히려 혹서기의 체감온도는 2010년대 이후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중국 발 미세먼지까지...

여론 조사에 의하면 가정용 에어컨의 경우 1994년 폭염 사태를 기점으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해 2000년대 들어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1994년 폭염은 한국내의 에어컨 수요를 폭증시키고 에어컨을 대중화시킨 폭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18]

폭염이 찾아오기 1달여 전인 1994년 여름 날씨 전망에서는 올해 여름 역시 서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1993년 여름이 1980년, 1987년과 함께 한반도 기상관측 역사상 광복 이후 최저 여름 기온을 모조리 쓸어담은 이상 저온 현상을 보였기 때문에[19], 1994년은 1993년보다는 덜하지만 서늘할 거라고 대부분 전망했었다. 그러나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22]

그리고 24년 뒤, 한반도에 이 해를 뛰어넘는 역대 최악의 폭염이 찾아왔다. 물론 더위가 찾아온 시점은 2018년이 1994년보다 한발 늦었다.[23] 그리고 2018년 기온이 조금 더 높긴 했어도 에어컨 보급 비율을 생각하면 1994년 여름이 더 고통스러워서 오래 기억되고 있다. 다만 7월의 열대야 일수와 폭염은 아직도 1994년이 1위다.[24][25]

5. 관련 문서




[1] 왼쪽에 보이는 문구는 무시하자...[2] 기온이 아니라 가뭄 일수 기준, 21세기 지구온난화가 제대로 두각을 보이기 이전의 기록이라서 더 특이할 만하다.[3] 1970 ~ 1980년대부터는 한국에서 본격적인 도시화가 진행되고 세계적으로 지구 온난화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이때는 기존의 열대야 기록까지 갈아치워 한반도의 열대야는 1994년이 관측 역사상 최대이다.[4] 서울 기준 4월 평균 기온이 15.2°C. 1998년 4월에 0.4˚C 차이로 갱신되긴 했으나 2020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2위이다. 5월도 평년보다 기온이 높았다.[5] 물론 계속 더웠던 것은 아니고, 중간중간에 비가 내려서 기온이 일시적으로 내려가기도 했다.[6] 이미 조짐이 4월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대구는 5월 1일과 9일에 31.3도를 기록하는 등 아주 이른 폭염이 찾아왔다.[7] 1994년 9월 1일에 대구가 37.5도를 기록한 이후 서서히 폭염의 기세가 누그러졌다.[8] 반대로 전 년도였던 1993년 여름은 되려 7월과 8월이 6월과 비슷한 수준에서 그쳤고, 서울 기준으로 아무리 더워도 31.2도를 넘지 못 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연중 최고 기온을 7~8월이 아닌 5월에 달성했다! 1998년은 5,6,7,8월 모두 아닌 9월에 달성했으며, 2020년은 서울에서 연중 최고기온이 5월이나 7,8월도 아닌 6월에 달성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졌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9] 괜히 1994년 여름이 역대 최악의 폭염이라 불리는게 아니다. 온도도 온도지만 습도부터 정말 엄청났다.[10] 이때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이렇게 태풍을 손꼽아 기다려 본 적이 있을까'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11] 참고로 태풍 월트는 일본을 지나면서 약해진 채로 얌전히 비구름을 몰고 오면서 비만 좀 세차게 뿌리다가 생을 마감했다. 진정한 효자 태풍[12] 대구 기준 8월 중순에 39.2도를 기록, 39.4도를 기록했던 작년과 차이가 거의 없다. 결국 94년 8월과 95년 8월 평균기온이 별 차이가 없을 정도.[13] 반대로 2003년 여름은 유럽이 매우 더웠지만 한국은 더위는 커녕 이상 저온과 9월 매미로 인해 1980년의 여름철 저온현상 이후 최악의 흉작을 기록했다.[14] 중국에서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역사적인 폭염기록이 나왔다.# 그리고 안후이성의 과거 여름 자료에서도 강수량은 낮고 기온은 최고수준이었던 1994년의 위엄을 알수 있다.#[15] 사실 김일성이 죽은 7월 8일 당시에도 이미 경기도 안성 이남 지방에서는 6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폭염이 시작되었던터라, 중북부 지방은 장마가 지속되던 북한 영향으로 덜 더웠을 뿐이다. 또한 아직 7월 초니 일시적으로 폭염이 왔다가 지나갈 거란 예측도 있었지만 7월 9일부터 서울을 포함한 중북부지방도 얄짤없이 폭염 시작, 이 날 기상청에서도 전국적으로 폭염이 오래 갈 것이란 예보를 하였다. 후대에 김일성의 죽음과 폭염을 연결시켜 이야기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로는 그때 김일성의 지병이 있는 상태였는데 그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무리하게 활동하다가 죽었다고 보는것이 타당하다.[16] 공군교육사령부에서 훈련 및 교육을 받던 장병들은 예외. 7월 첫 주 외박을 나가서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듣고 일요일에 복귀한 후 영내대기가 이어지겠지 하고 망연자실해하던 그 다음주에 대사건이 벌어졌다. 보통 토요일 일과 후에 외박을 나가는게 정상인데, 교육사 장병을 하루 일찍 내 보내면 진주 부근 논 수만평에 물을 댈 수 있다는 소문이 돌더니 2주 연속으로 금요일 일과 후 외박을 내보냈다. 조종사와 방공포병만이 전투병과이고 다른 특기를 가진 장병들은 지원인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교육중이였기도 하고.[17] 1993년에는 5월 말에 이른 더위가 찾아왔지만, 여름은 서늘했다. 그런데 처서가 지나고서 오히려 잠깐이지만 더위가 찾아왔고, 9월 초순까지 지속되었다. 자세한 것은 후술.[18] 지금이야 언제든 집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지만, 1994년 당시의 에어컨은 스텐드 20∼25평형을 기준으로 1대 당 가격이 당시 직장인 한 달 월급을 상회하는 200만 원대에 판매했던 고가의 가전제품이었다. (<시장물가> 에어컨가격 작년보다 10∼15% 올라(1994. 05. 25 연합뉴스)) 당연히 1994년 당시 에어컨이 설치된 상가나 공공기관도 드물었다. 그나마 에어컨이 많이 대중화 된 상황이었던 2018년과는 달리, 당시에는 에어컨의 예상수요 자체가 적다보니 물량 자체가 적었던 상황이라 에어컨 물량대란은 이 때가 더 심했다. 가정용 에어컨은 물론 차량용 에어컨에도 변화가 왔는데 바로 1995년부터 도시형 버스의 냉방화가 시작된 것이다. 냉방화와 함께 버스 이용객들이 더 이상 여름에 불편을 겪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체감온도는 1994년이 훨씬 더 덥게 느껴진다. 한편 서울에서는 이를 계기로 서울 시내에서만 운행하는 일반 좌석버스들이 점차 사라지게 된다.[19] 어느 정도냐 하면, 서울은 5월 29일에 31.9도를 기록한 이후, 5월 29일보다 높은 최고기온을 기록한 날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 7~8월에도! 결국 기록이 깨지지 않아서 그해 최고 기온 1위를 달성하고 만다. 이 점은 1980년 여름하고도 비슷하다. 심지어 1980년은 6월 강릉 이상 고온 현상 때문에 폭염일수는 있었으나 1993년은 폭염, 열대야일수 모두 0일이다.[20] 꽃샘추위때는 추웠지만 이상 고온 현상이 더 심해서 3~5월은 평년보다 높았다. 특히 3월[21] 8월 한정[22] 여담으로 2018년에도 1월 말~2월의 기록적 한파와 봄철 일부에 이상 저온이 찾아와서[20] 2017년[21]처럼 여름이 평년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5월 말부터 다시 올라서 7월 중순에는 큰 폭염이 찾아왔다.[23] 2018년의 경우 7월 초에는 한때 선선했던 적도 있다.[24] 비교해 보면 2018년과 1994년 모두 빨리 끝난 장마로 폭염의 배경은 비슷하였으나 2018년 여름은 7월 13일~8월 16일경이 무자비하게 더웠고 1994년 여름은 7월 초~8월 17일경까지 더위가 이어져서 좀 더 길었다.[25] 게다가 처서 이후 확연히 더위가 누그러진 2018년과는 다르게, 1994년에는 9월 1일에 대구가 37.5°C 까지 오르며 9월 전국 역대 최고기록을 다시썼다. 이 기록은 이후 20년 뒤인 2014년 5월 31일에 근접하게 되는데, 아마 이 때에도 관측 장소가 변경되지 않았다면(대구는 2013년 9월 30일에 관측 장소를 옮겼다.) 아예 이 때 기록을 넘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위의 기간면에서는 2018년과 결을 달리한다. 그리고 9~12월도 평년보다 높았다. 1939년도 지겹게 늦더위가 이어졌으나 열섬 현상이 없는 일제 시대인 만큼 최고기온은 높아도 최저 기온이 낮아서 평균기온은 별로 높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평균기온은 1994년이 탑이다. 다만 중부지방은 8월 이후로는 심하지는 않았고, 9월은 평년 수준, 10~12월만 높았다. 그러나 사실 1994년 자체가 3월만 제외하고 모두 평년 이상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8년이 폭염의 세기는 더욱 강력했다. 40도를 넘겼을 정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