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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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삼성 라이온즈가 전·후반기를 모두 우승해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
[B]: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개최일 연기, 고척 스카이돔 중립경기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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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한국시리즈 우승
해태 타이거즈
MVP
이강철

3구, 쳤습니다. 우중간 높~이 날아갑니다. 중견수와 우익수. 중,우익수 잡았습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결국 해태가 96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합니다. 해태, 한국시리즈 8번째 우승을 차지합니다.

MBC 한광섭 캐스터의 우승콜


1. 개요
2. 일정표
3. 엔트리
4. 경기 내용
4.1. 1차전
4.2. 2차전
4.3. 3차전
4.4. 4차전
4.5. 5차전
4.6. 6차전
6. 여담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1996년에 열린 KBO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현대 유니콘스가 대결했다.

1996년 시즌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부순 시즌이었는데, 당초 상위권으로 분류되던 OB, LG, 롯데가 모두 탈락하고 꼴찌를 다툴것으로 예상된 해태[1], 현대[2], 쌍방울[3]이 이렇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가만히 있던 삼성한화전혀 언급이 없었다. 허나 한화 이글스는 포스트 시즌 진출을 했고 삼성은 가을야구 탈락과 동시에 2016년 9위 이전까지 암흑기였던 6위를 기록했다.[4] 특히 해태는 시즌 전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이순철유남호 폭행 사건과 항명 파동까지 일어나고 선동열김성한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즌 우승을 했다.[5]

특이 사항이라면 숭의야구장에서 열린 4차전에서 당시 현대의 선발 투수였던 정명원이 현재까지 KBO 한국시리즈 최초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6] 이 때문에 인천에서 경기가 끝나고 잠실로 이동하는 중에 해태 선수들은 김응용에게 무시무시한 몽둥이 찜질을 당했다고 한다.[7] 그리고 4차전이 끝난 후 김응용 해태 타이거즈 감독은 상대 팀의 연고지인 인천광역시 출신 심판들이[8] 노골적으로 현대 유니콘스에 유리하게 편파 판정을 한다고 밝혔다.[9]

당시 한국시리즈 시작 전 해태 타이거즈일방적으로 이길 것이라는 것이 예상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현대가 많이 분전했는데 이는 투수진의 활약이 매우 컸다.[10]

결과는 4승 2패로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 통산 8번째 우승이었다. MVP는 2승 1세이브로 현대 타선을 틀어막은 이강철[11] 차지하였다.당시 하이라이트 영상 보러 가기


2. 일정표[편집]




3. 엔트리[편집]



3.1. 해태 타이거즈[편집]




3.2. 현대 유니콘스[편집]




4. 경기 내용[편집]



4.1. 1차전[편집]


한국시리즈 1차전, 10.16(수), 18:00, 무등 야구장 15,200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현대
위재영
0
2
0
0
0
0
1
0
0
3
4
해태
이대진
2
2
1
0
3
0
0
0
-
8
10
'''중계방송 채널: [[MBC|

파일:MBC 로고(1986-2005).svg
]] | 캐스터: 양진수 | 해설: 김소식'''[타사중계1]

승리 투수 : 이대진
패전 투수 : 위재영
세이브 투수 : 김정수

홈런 : 홍현우(1회 2점), 박재용(2회 1점), 최해식(5회 3점) 이상 해태, 김경기(2회 2점), 박재홍(7회 1점) 이상 현대

심판 : 주 황석중/1 오광소/2 허운/3 이규석/좌 김호인/우 임채섭

광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해태는 1회 홍현우의 2점홈런, 2회 박재용의 솔로홈런, 5회 최해식의 3점 홈런 등 홈런 3개와 희생플라이 2개로 장단 10안타로 8점을 뽑아 1차전을 대 승리로 장식한다. 이 경기에서 현대에서는 김경기가 2회에 해태 선발 이대진의 145km 직구를 받아쳐 2점 홈런을 터뜨리며 처음에는 나름대로 선전했었으나, 믿었던 선발투수 위재영이 2회를 버티지 못하고 강판...[12] 뒤이어 나온 전준호[13], 가내영 등도 해태 타자들에게 뭇매를 맞으면서 승부가 일찍 결정났다. 7회 현대의 대형 신인 박재홍의 솔로홈런 때는 점수차가 워낙 컸기 때문에 광주 관중들은 박재홍에게 박수를 보내는 여유?를 보내주었다.[14] 최고 149km의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와 파워 커브를 뿌리던 이대진을 현대 타자들이 넘지 못한 경기 죄다 헛스윙 하기 일쑤였다.


4.2. 2차전[편집]


한국시리즈 2차전, 10.17(목), 18:00, 무등 야구장 15,200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10
11
R
H
E
B
현대
정민태
0
0
0
0
0
1
0
0
0
0
1
2
7
해태
조계현
0
0
1
0
0
0
0
0
0
0
0
1
4
중계방송사: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15]

승리 투수 : 조웅천
패전 투수 : 김정수
홈런 : 이숭용 (6회 1점) 이상 현대
심판 : 주 임채섭/1 이규석/2 오광소/3 김호인/좌 김동앙/우 허운

시구는 당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체조 종목에서 은메달을 딴[16] 광주 출신 체조선수 여홍철이 했다.[17]

용호상박의 대결이었다. 현대 선발은 정민태 (8이닝 1실점), 해태 선발은 조계현 (7.2이닝 1실점). 양팀 치열한 투수전양상으로 흘러가고 연장접전까지 갔다. 해태가 먼저 3회말에 이종범의 적시타로 장군을 부르자, 현대는 6회초 이숭용의 솔로홈런으로 멍군을 불렀다. 1:1로 맞선 현대의 11회 초 공격, 타석은 10회부터 대수비로 출장한 시즌 통산 6안타의 이희성. 투수는 가을까치 김정수. 모두가 해태의 승리를 점쳤지만, 이희성은 포수투수 사이에 떨어지는 절묘한 기습번트 안타로 출루해 김정수를 강판시켰고, 구원투수 이강철의 큰 투구폼을 이용해 2루 도루를 성공하고 보크를 유도해 1사 3루 찬스를 만든다. 그리고 권준헌유격수 사이 강습 내야안타로[18] 이희성을 홈인시켜 현대는 10회말 조웅천을 투입시켜 2:1로 승리한다.

이 경기에서 현대 유니콘스는 역대 인천 연고팀 최초로 한국시리즈 첫 승을 올렸다.[19]

여담으로 현대 주전 포수였던 장광호는 홈송구를 잡으려다 바운드된 공을 얼굴에 맞아 눈썹이 찢어져서 피를 흘리는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광주 무등야구장의 열악한 그라운드로 인한 사고인지라 무등야구장은 시리즈 내내 언론과 팬, 야구인들에게 까였다.


4.3. 3차전[편집]


한국시리즈 3차전, 10.19(토), 14:00, 숭의야구장 11,418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해태
이강철
0
0
0
0
2
0
0
0
3
5
4
현대
위재영
0
0
0
0
0
0
0
0
0
0
6
중계방송사: 파일:SBS 로고(1994-2000).svg | 캐스터: 유협 | 해설: 정동진[타사중계3]

승리 투수 : 이강철[20]
패전 투수 : 위재영
심판 : 주 오광소/1 김호인/2 이규석/3 김동앙/좌 황석중/우 허운

현대 선발투수 위재영은 4회까지는 무실점으로 역투했으나 5회 흔들리면서 무사 1,2루 상황에서 좌타자 동봉철에게 투 볼을 내주었다. 그러자 김재박 감독이 좌완 김홍집으로 조기에 투수 교체를 단행했고, 이에 김응용 감독 역시 우타자 이경복을 내면서 응수했다. 이경복은 도원구장 외야 철망을 맞추는 2타점 적시 2루타로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 점수가 결승점. 이후 9회 김종국의 2루타와 밀어내기 점수로 3득점하면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이 날 현대의 타선은 빈타에 허덕였고, 당시 우타자가 많았던 현대 타선은 잠수함 이강철에게 한국시리즈에서 매우 약한 모습을 보였다[21]. 겨우 잡은 찬스도 수비 달인인 이순철이종범의 호수비에 걸리면서 무산되었다. 현대측은 타선이 찬스의 흐름도 연결못하고 작전도 결정적일 때 실패를 해버렸다. 결국 해태의 일방적인 승리. 선발로 등판한 이강철은 마지막 타자인 하득인을 삼진으로 아웃카운트를 잡고 완봉승을 거두었다.



4.4. 4차전[편집]




이 문서는 나무위키의 이 토론에서 9회 포수를 장광호로 서술 및 수비 강화를 위한 교체가 아닌 것으로 서술하기(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타 위키에서의 합의내용이 더위키에서 강제되지는 않지만 문서를 편집하실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시리즈 4차전, 10.20(일), 14:00, 숭의야구장 11,418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해태
이대진
0
0
0
0
0
0
0
0
0
0
0
현대
정명원
0
0
0
0
0
0
0
4
-
4
7
'''중계방송사: [[MBC|

파일:MBC 로고(1986-2005).svg
]] | 캐스터: 양진수 | 해설: 허구연'''[타사중계4]

승리 투수 : 정명원[22]
패전 투수 : 이대진
심판: 주 허운/1 김동앙/2 김호인/3 황석중/좌 임채섭/우 이규석

현대는 투수진도 완전 바닥났고, 주전 포수였던 장광호도 2차전의 부상으로 선발로는 무리였던지라, 포스트시즌 들어 작가 모드로 변신한 정명원이 선발로 나가겠다고 자청하자 해당 시즌 대타나 대수비로 겨우 5경기를 뛰었던 김형남[23]과 함께 선발배터리로 내세웠고, 해태는 에이스이자 1차전에서도 선발승으로 기선을 제압한 이대진을 선발로 내세웠다.

정명원은 1회초 선두 타자 이종범, 동봉철을 상대로 볼넷 연발을 내주며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무사히 잘 막아냈다. 이후 정명원은 단 3개의 볼넷만을 내주며 8회까지 노히트 노런으로 잘 막았다. 문제는 7회까지 현대 타자들이 이대진에게 억눌리고 있어서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8회 말 볼넷으로 나간 권준헌을 2루로 내보내기 위함이었던 손차훈의 번트 때 해태 수비가 꼬이며 무사 1, 2루가 되고, 김형남의 대타로 나온 이희성마저 상대 수비가 꼬인 틈을 타 번트 안타를 만들어내며 무사만루가 된다. 여기서 박진만이 우전적시타를 쳐 이대진을 강판시켰고, 이 후 김인호(1타점),이숭용(2타점)의 우전적시타로 3점을 보태 4:0을 만든다.

그리고 9회초에도 등판한 정명원은 이희성의 대수비 장광호[24]와 더불어 포스트시즌 첫 노히트 노런을 완성. 그리고 한국시리즈 최초의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다.[25]

스윙! 스트락 아웃~~!! 정명원,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습니다. 네~ 4대0으로 정명원,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습니다.

MBC 양진수 캐스터의 콜


이제 한 타자 남았습니다. 제 3구 스윙 아웃! 경기 끝났습니다! 4:0 완봉완투승! 정명원 노히트 노런을 세웠습니다! 노히트 노런을 세우는 정명원!

KBS 라디오 중계진 유수호 아나운서의 콜[26]

노히트 노런이 얼마나 극적이었나면, 7회까지 0대 0의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졌으며, 정명원은 1994시즌부터 선발로 뛰어본 경험이 없었던데다가, 포스트 시즌만 오면 불안함을 노출했다.[27] 더구나 이날 선발 포수는 상술했듯 해당 시즌 대타대수비로 겨우 5경기를 뛰었던 신인 김형남이었다. 심지어 이 둘은 시즌동안 배터리를 맞춰본적도 없었다! 노히트 노런은커녕, 대량실점만 안하면 다행인 상황이었지만, 결과는 노히트 노런이었다. 모 기사에 따르면 김형남은 단지 낮게 던지기만을 지속적으로 주문했다고 한다.


4.5. 5차전[편집]


한국시리즈 5차전, 10.22(화),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30,500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현대(원정)
정민태
0
0
0
0
1
0
0
0
0
1
6
해태(홈)
조계현
0
0
3
0
0
0
0
0
-
3
9
중계방송사: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

해태 선발은 조계현, 현대 선발은 정민태. 2차전에 있었던 양팀 에이스 대결.

승리 투수 : 조계현
패전 투수 : 정민태[28]
세이브 투수 : 이강철

홈런 : 이호성 (4회 2점) 이상 해태

심판: 주 이규석/1 오광소/2 황석중/3 임채섭/좌 허운/우 김호인

드디어 최후의 승부처는 양팀의 선발은 2차전과 동일 된 리턴 매치였다.[29] 5차전 잠실 야구장에서 열렸다. 해태는 4회 이종범의 중전안타와 도루로 만든 2사 2루에서 홍현우가 큼지막한 2루타를 터뜨렸고, 이호성이 정민태의 145km 속구를 받아치며 좌중월 2점 홈런으로[30] 도합 3점을 득점해 일찌감치 승세를 굳힌다. 현대도 나름대로 찬스를 많이 만들었는데, 득점연결을 시키지 못했다. 5회초 4명의 주자를 출루시켰지만 2차례의 주루사로 인해 김인호[31]의 2루타에 의한 1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32] 9회초 1사 2,3루에서는 장광호, 박진만이 연속 삼진으로 물러나는 등 무수한 잔루를 남기며 자멸한다.

9회에 좌완 마무리 김정수장광호를 13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으로 잡은 후 박진만이 다음 타석에서 큰 파울을 때려내자 김응용 감독은 투 스트라이크에서 우완 이강철을 마운드에 올렸고, 김재박 감독은 2차전의 영웅인 좌타자 이희성으로 타자를 교체하며 응수. 결국 이강철이희성에게 헛스윙을 유도하며 공 하나로 세이브를 올리며 경기가 끝났고, 삼진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 물러난 박진만의 것으로 기록되었다.

조계현은 7이닝 동안 단 1점만을 허용하면서 역투하여 승리투수가 되었고, 정민태 역시 6.1이닝 3실점으로 나름 역투했으나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패전을 기록했다.[33]


4.6. 6차전[편집]


한국시리즈 6차전, 10.23(수), 18:00 ~ 21:33 (3시간 33분),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30,500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해태(원정)
이강철
1
0
0
2
0
0
0
0
2
5
13
현대(홈)
정명원
0
1
0
0
0
0
1
0
0
2
6
중계방송사: 파일:SBS 로고(1994-2000).svg[34] | 캐스터: 유협 | 해설: 정동진[타사중계6]


승리 투수 : 이강철
패전 투수 : 정명원
세이브 투수 : 이대진

홈런 : 김경기 (2회 1점) 이상 현대

심판 : 주 김호인/1 김동앙/2 오광소/3 허운/좌 이규석/우 황석중

KBS 6차전 하이라이트 영상[35]

4차전 노히트 노런의 사나이 정명원과 3차전 완봉승의 이강철의 선발 대결.

현대는 4차전의 영웅 정명원을 선발로 다시 투입하는 초강수를 둔다. 그러나 해태는 1회에 이종범이 번트안타로 출루한 후 2루 도루와 악송구로 1사 3루를 만들었다. 3번 홍현우의 내야땅볼로 이종범이 득점하면서 1대 0. 그러자 2회말에 현대는 김경기의 좌월 홈런으로 응수하여 1대 1 동점을 이루었다. 이후 4회 박재용이 3루타를 치고 나갔고, 이순철이 1타점 텍사스 안타를 터뜨리면서 2루까지 파고든다. 곧이어, 김종국의 중전 안타 때 이순철이 투지를 불사를 듯한 몸으로 홈을 파고들면서 3대 1. 4회 이강철의 컨트롤 난조로 1사 만루. 이 때 이강철의 공이 9연속 볼 판정[36]을 받았고, 이러한 과정에서 4회 박재홍의 삼진으로 이닝이 종료된 후 해태 덕아웃과 김호인 주심이 1차로 충돌한다.

7회말 김정수를 상대로 1점을 뽑으면서 현대가 3대 2로 추격했다. 이후 8회 1사 2루에서 해태 바뀐 투수 이대진[37]의 커브가 볼 판정을 받으면서 포수 최해식이 심판에게 볼 판정[38]에 대해 항의하다 김호인 구심으로부터 한국시리즈 통산 1호 퇴장을 당한다.[39] 그러면서 현대가 1사 1, 2루 찬스를 맞았지만, 믿었던 김경기가 2루수 앞 병살타를 치면서 기회를 무산시킨다. 결국 9회초 김종국의 안타와 이종범의 3루타, 동봉철의 안타 등 3안타를 묶어 2득점하면서 보기 좋게 해태는 도망갔고, 현대는 구원투수 이대진의 구위에 막히면서 결국, 한국시리즈를 해태가 제패했다. 선발 5이닝 동안 2실점으로 역투한 이강철이 승리투수. 경기를 마무리하며 포수 정회열과 승리의 포옹을 나눈 이대진이 세이브. 5이닝 3실점 2자책으로 역투했으나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한 정명원이 패전투수.[40]

해태는 주장 이순철의 주도 하에 마운드 뒤에서 뱃놀이 세레모니를 선보이며 승리를 자축했고 현대는 2년 후로 첫 우승의 기회를 미루어야 했다.


5. 우승반지[편집]


파일:1996반지.jpg

파일:1996반지2.jpg

이종범의 우승반지로 보인다. LJB로 보이는 이니셜과 2번째 짤에 7번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6. 여담[편집]


  • 1984년 한국시리즈부터 제과업계의 라이벌인 롯데 자이언츠해태 타이거즈하계올림픽이 열린 해마다 번갈아 가며 우승[41]한 것이 이 시리즈까지 이어졌다. 이후 하계올림픽이 열린 해에 우승한 팀은 2000년 현대, 2004년 현대, 2008년 SK, 2012년 삼성, 2016년 두산, 2020년 NC,[42] 2021년 kt이다.[43]

  • 현대의 2차전 승리는 삼청태현 프랜차이즈가 거둔 포스트시즌 첫 승[44]이었다. 첫 승의 주인공은 연장전 승리투수 조웅천.

  • 1996년 현대의 1선발은 정민태였는데 위재영이 대 해태전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1차선 선발로 나섰다가 시리즈 전체가 꼬인 케이스다. 위재영이 나선 1, 4차전은 모두 패배. 반면에 정민태는 2차전에서 좋은 피칭으로 연장전 승리의 발판을 놓았으며 5차전도 상당히 호투를 했다.[45] 사실 위재영도 정민태도 지금 관점에서 보면 1차전 선발로 나서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둘 다 플레이오프 5차전에 계투로 등판했기 때문(위재영 2이닝, 정민태 2⅔이닝 세이브). 정민태가 2차전 선발로 나선 건 이닝을 조금 더 던진 정민태에게 휴식을 주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이후 현대의 우승 당시 에이스를 보면 98년/03년의 정민태, 00년의 임선동, 04년의 조용준(마무리)이 있었다. 96년은 투수 대진에서 꼬인 케이스.

  • 4차전 선발 정명원의 경우 시즌 내내 마무리로 나섰으나 플레이오프 쌍방울 전에서 내내 불안한 모습을 보여 김재박 감독이 선수의 활용 측면에서 변칙 승부를 낸 케이스. 결과는 포스트시즌 최초의 노히트 노런 이라는 대박으로 이어졌다.

  • 현대에 괜찮은 좌타자가 없어 언더핸드에 시즌 내내 약했는데 결국 한국시리즈 내내 이강철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 심판 배정에 대한 시비가 한국시리즈 내내 따라붙었고 실제로 해태 선수들은 특히 인천 출신 심판들의 편파 판정이 많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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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동열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했고 김성한이 은퇴했으며 이종범이대진이 시즌 초까지 방위병 복무를 수행 하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1995시즌까지는 제한적으로 경기에 나설수 있었던 방위병이 1996시즌에는 전면 출전금지되었다.[2] 470억원이라는 당대의 천문학적인 액수로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했지만 만년 하위권에 머무르던 팀 전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나마 쓸만한 타자 신인들을 찾기에는 연세대 출신의 박재홍을 빼면 사실상 없었다. 인천고를 갓 졸업한 박진만도 기대를 모으기는 했으나 이때만 해도 방망이 실력이 형편 없었다.[3] 1991년 1군리그 첫 참가 이후 5시즌 연속으로 하위권을 맴돌았던 약체였다. 다만 이 시즌부터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게 된다.[4] 삼성은 정규시즌 단 한번도 최하위를 기록한 적이 없다.[5] 공통점이 있다면 시즌이 이후 그 주동자들을 모조리 찾아 에서 항명 사건에 가담한 선수들을 똑같이 보복과 뒤끝을 재현하여 방출시켰다.[6] 비공인으로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배영수10이닝 노히트 노런이 있긴 하다. 그런데 그 날 무승부에 뒷 투수가 안타를 맞으며,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유일한 노히트 노런 경기가 되어버렸다.[7] 사실인지는 모르나 그 당시 있던 사람들만 알고 있나보다. 어쨌든 해태가 끝내 이겼기 때문에 이 일을 언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8] 이 당시 심판진 중에 허운김호인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선수이자 삼미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인천 출신 야구인이었다.[9]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최해식과 김정수가 술회하기를 현대가 한화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승리를 거둘 때부터 냄새가 났으며 쌍방울과의 플레이오프에서 역스윕한 것도, 4차전에서 정명원에게 노히트노런을 당한 것도 인천 심판의 도움이 있었다고 밝혔다.[10] 당시 현대는 전신인 태평양 선수들을 물려받은 덕에 훌륭한 투수진을 갖추었지만 반대로 물방망이의 끔찍한 타선을 보유했다. 2할 겨우 턱걸이 한 김인호가 1번 타선을 꿰차고 있을 정도 였으니. 30-30 클럽박재홍이나 김경기, 이숭용 등 일부 중심 타자를 제외하면, 타선이 상위팀 치고는 약한 편이었다. 그래도 이 시즌에 팀홈런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장타력이 뒷받침 되는 가운데 전통적으로 강한 투수진에 힘입어 정규시즌 4위를 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준플->플옵->한국시리즈를 거치는 악조건 속에 진출했고, 특히 쌍방울과의 플옵은 기적으로 2패 후 3연승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그렇게 코시에 올라온 현대 선수들은 무기력한 체력의 한계로 패배, 해태 선수들이 가지고 있던 여지까지 통산 7차례 빛나던 우승의 DNA는 뚫을 수가 없었다. 이후, 현대는 타선의 강화를 위해 공격적인 영입과 트레이드 끝에 4년 후 투타 모두 역대 최강의 전력을 만든다.[11] 말 그대로 현대 타자들을 제대로 가지고 놀았다. 그의 손아귀에서 현대는 그야말로 무릎을 끓을 수 없는 처지였다. 현대는 당시 잠수함 투수들을 상대로 처참한 성적을 내고 있었고 쌍방울의 김성근 감독도 이 점을 플레이오프에서도 제대로 활용했다.[타사중계1] KBS 제2라디오 유수호-이광권[12] 그해 페넌트레이스에서 위재영은 해태전에서 3승 2패 평균자책점 2.50으로 상당히 강했다. 12승 중 해태에게 3승을 올렸을 정도.[13] 전준호는 급기야 땅볼을 잡을 때 실책을 더 하여 오히려 악효과를 더했다[14] 당시 무등 야구장의 아재들은 광주에 원정 온 박재홍을 향해 호된 욕설을 내뱉었다. 박재홍은 1992년 광주일고 졸업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았지만 해태 지명을 거부하고 연세대학교로 진학해버렸고 대학 졸업 후에도 해태 입단을 거부하며 실업야구 현대 피닉스로 갔다. 결국 지명권 트레이드로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는 바람에 해태팬들에게 돈을 좇아 고향을 버린 배신자로 낙인이 찍혔다. 그탓에 박재홍이 광주오면 온갖 욕과 야유를 듣기 일수였다. 다만 이후 밝혀진 진실에 따르면 대학 진학은 해태 측에서 먼저 제의한 것이었고 이후 현대 피닉스 건도 현대 측에서 자금력을 이용해 인질극을 벌인 바람에 해태가 어쩔 수 없이 포기했던 것임이 밝혀졌고 거기다 박재홍이 은퇴한지도 10년이 넘은지라 분노하던 올드팬들도 상당수 사라졌기 때문에 광주팬들의 박재홍에 대한 분노는 현재는 누그러진 상태다.[15] 중계방송 도중 KBS 뉴스 9로 중단되었다가 11회말 김재덕 타석부터 다시 연결해 중계되었다.[16]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양학선이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 역대 한국 체조 선수가 세운 올림픽 최고 성적이었다.[17] 이종범과 절친이며, 광주서림초등학교에서 같이 야구부를 하였고, 동창이다.[18] 이 때 공은 이종범의 왼 발목을 맞고 튕긴다.[19] 1994년 태평양 돌핀스 시절에 팀 최초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결과는...[타사중계3] KBS 제2라디오 김재영-이광권[20] 완봉승[21] 이틀 전날 중간에서 뛰던 이강철이였기에 그나마 다행, 해태는 이강철 이외에 잠수함 투수가 없다시피 하였다.[타사중계4] KBS 제2라디오 유수호-이광권[22] 한국시리즈 유일의 노히트 노런[23] 97 시즌이 끝나고 팀 동료 이근엽과 쌍방울로 9억원과 박경완의 맞바꿈[24] 앞서 서술한 듯이 장광호는 부상 때문에 선발이 무리여서 당일 날은 김형남의 백업으로 있었다.[25] 그후로 8년뒤에 배영수가 한국시리즈에서 10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지만, 11회에 교체가 되면서 비공식으로 기록하였다.[26] TV방송은 MBC가 했고 해설자는 허구연 해설이었다. 목소리가 좀 처럼 현대를 들어 줄 분위기가 아닌 해태 타이거즈 선수들에게만 적극적인 목소리였다.[27] 단적인 예가 1994년 한국시리즈 2차전과 4차전. 결국엔 LG 트윈스가 시리즈 스윕을 달성하며 우승했다.[28] 포스트시즌 선발투수 WAR 1위 정민태의 포스트시즌 유일한 1패[29] 두 선수 2차전 맞대결은 무승부.[30] 다른 스포츠 채널에서도 홈런이에요... 라고 말하는게 압권이다.[31] 6차전에서도 팀 패배와 선취점의 빌미를 제공한다.[32] 이순철이 정확한 3루 송구로 발빠른 대주자 염경엽을 잡아냈다. 김인호 역시 주루사.[33] 포스트시즌 끝판왕 정민태의 유일한 1패가 이때의 기록이다. 포스트시즌 통산 10승 1패. 한국시리즈 6승 1패. 1패가 바로 96년 5차전이다.[34] SBS 개국 후 처음 단독으로 우승 장면을 중계하게 되었다. 1995년 5월부터 4대 권역(부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남, 대전·충남) 지역 민영방송을 통해 전국방송이 실시되었고 작년 한국시리즈에서는 7차전까지 가면서 방송 3사가 전부 중계했기 때문. 그 이전까지는 타사와 함께 우승 장면을 중계했다.[타사중계6] MBC 표준FM 한광섭-김소식/KBS 제2라디오 유수호-이광권[35] 캐스터는 유수호[36] 당시 TV 스포츠에서 다시 보여줬지만 다시 봐도 거의 볼은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왔다. 그러니깐, 판정은 지금도 이랬고 저때도 개판이었다.[37] 원래였으면 7차전의 선발이었다고 한다.[38] 한 가운데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볼 판정을 했는데 이때 남긴 말이 내가 볼이라하면 볼이야[39] 이 당시 화가 난 일부 해태 팬들이 그라운드로 쓰레기통투척하기도 했다. 이 경기의 현대의 마지막 타자 장광호의 타석 마지막 아웃 장면 때 배경으로 등장하는 하늘색 쓰레기통이 이 때 투척된 것들이다.[40] 현대 선수들에게 있어서 정명원은 그 때 만큼 영웅 같은 존재였다[41] 1984년 롯데, 1988년 해태, 1992년 롯데, 1996년 해태 우승[42]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020 도쿄 올림픽을 2021년으로 1년 연기하여 개최했다.[43] FIFA 월드컵(+ 1994년 이후 동계올림픽)이 열린 해에 우승한 팀은 1982년 OB, 1986년 해태, 1990년 LG, 1994년 LG, 1998년 현대, 2002년 삼성, 2006년 삼성, 2010년 SK, 2014년 삼성, 2018년 SK, 2022년 SSG이다.[44] 1989 플레이오프 3전 전패, 1994 한국시리즈 4전 전패[45] 정민태 포스트시즌 통산 10승 1패의 기록에서 유일한 1패가 96 코시 5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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