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프랑크푸르트 공항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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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전개
4. 결말
5. 여담


1. 개요[편집]


2000년 9월 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에서 밀레니엄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행 아메리칸 항공 비행기를 탑승하려던 김영남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에게 아메리칸 항공 측이 강도 높은 보안검색을 요구하였다가 격분한 김영남 위원장 측이 미국 방문을 취소하고 귀환한 사건이다.


2. 배경[편집]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뉴욕 유엔본부에서 188개 유엔 회원국 중 160여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이에 대한민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내외도 참석을 결정하였고, 북한의 국가원수 역할을 맡고 있던 김영남 위원장도 참석하기로 하였다. 이에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남과 유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관계 진전상황과 국제무대에서의 협력을 논하는 한편,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할 계획이었다.

김영남 측은 9월 2일에 독일에 도착, 9월 4일 오전 11시 30분, 아메리칸항공을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뉴욕으로 떠날 계획이었다. 사실 북한 외교관들은 미국을 방문할 일이 있으면 유나이티드 항공을 주로 사용하였고, 유나이티드 항공은 북미관계의 민감성을 잘 이해했기 때문에 북한 외교관들을 정중히 대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어쩐 일인지 북한 외무성은 아메리칸 항공을 예약했는데, 마이크 치노이 기자는 북한에서 아메리칸 항공이 미국의 국영 항공사인 것으로 오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3. 전개[편집]


북한 측의 설명에 따르면, 9월 4일 아메리칸 항공 <AA 176>기에 탑승하려던 상황에서 미국 측 항공안전관리들이 나타나 김영남과 그 일행들의 수하물을 검색하는 한편 옷과 신발을 벗고 국부까지 더듬으며 몸수색을 했다고 이는 범죄자 취급이라고 강변했다. 북한 측의 설명에 따르면, 김영남에게도 동일한 수색을 강요하려 하자 분노한 북한 측이 엄중히 항의하며 워싱턴에 이를 보고할 것을 요구하자 이들은 잠시 몸수색을 중단하였으나 곧 북한을 비롯한 8개 불량국가 관계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색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과의 상의도 없이 비행기표를 취소한 것 역시 미국 측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북한 측은 처음에는 뉴욕으로 가는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새로 예약했다가 이를 다시 취소하고 그냥 김영남의 밀레니엄 정상회담 참석을 취소했다. 이후 북한의 반응은 그야말로 격렬했다. 북한 외무성은 9월 5일 성명을 발표, 미국을 격렬히 비난했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하여 미국 우리와의 <관계개선>이요 뭐요 하면서 당면하여 일련의 회담을 하자고 하고 있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우리의 대외관계가 확대되는것을 달가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이번 사태는 미국이야말로 세계에서 최대의 불량배국가, 망나니국가라는것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다. 미국의 강도적이고 파렴치한 행위에 대처하여 강한 대응조치를 취하는것은 너무나도 응당한 우리의 자주권행사이다. 미국은 우리 인민의 존엄을 건드린 대가가 얼마나 비싼가를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김영남 측도 프랑크푸르트 쉐라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영남의 수행원이었던 최수헌 외무성 부상을 통해 미국의 공식사죄를 요구하였다. 북한 측은 '미국 측의 부당한 방해책동으로 하여 부득이 회의참가를 취소하고 귀국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라고 입장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행위가 국제법과 국제관례를 무시한 만행이었으며 미국이야말로 진정한 불량국가이니 공식사죄 및 모든 후과를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다만 남북관계에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9월 6일, 북한의 유엔 대표부 수석대사 리형철과 유엔 대표부 차석대사 리근도 성명을 발표, 미국의 사죄를 요구하면서 격렬히 비난했다.

이 사건 발생에 대해서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으로 가는 특별기 안에서 보고를 받았으며 빌 클린턴 대통령은 갓 부임한 주미 한국대사 양성철로부터 보고를 받고 매우 깜짝 놀랐다고 한다. 국무부의 대북 담당관들인 로버트 칼린, 찰스 카트컨, 토마스 허버드 등도 경악하여 올브라이트에게 상황을 보고하였고, 즉시 북한에 사죄하고 실수라고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브라이트도 동의하였다.

이후 한국 외교통상부 장재룡 차관보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주 프랑크푸르트 미국 총영사관 측에 김영남 측과 접촉하여 유감을 표명할 것을 지시하였으나 김영남 측은 미국의 접촉을 거부하였다. 임동원의 회고록 피스메이커에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백남순 외무상에게 유감 입장을 표명했다고 적혀 있다. 이에 미국은 다른 외교채널을 통해 이는 민간항공사 차원에서 발생한 것으로 유감스러우며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입장을 다시 전달했다. 장재룡 차관보는 "유엔에서의 회담이 남북정상회담이후 화해협력 분위기를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예기치 못한 엉뚱한 일로 회담이 무산된데 대해 애석하게 생각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메리칸 항공 본사도 유감표명을 했으나 자신들은 미국 연방법을 준수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북한은 9월 8일자 로동신문을 통해 이를 미국의 '오만무례한 날강도적행위', '주권국가의 자주권에 대한 엄중한 침해이며 인권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고 유엔과 그가 조직한 새 천년기유엔수뇌자회의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라고 날뛰었으며 이것이 미국 정부의 각본에 따른 일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9월 9일, 북한은 이 사건이 미국 정부와 무관한 일이었다는 미국의 유감표명을 접수하고 '미국당국자들이 모두 떨쳐나 사죄해왔다'라고 의기양양해하며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겠다고 함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어 유엔총회에 참석하기로 했던 외무상 백남순의 방미와 남북 외무장관 회담도 취소되는 등 여진이 이어졌다. 사건 발생 2주 후, 국무부의 동아시아 담당 차관보 토마스 허버드가 김계관을 뉴욕의 유엔 미국대표부로 초대하여 커피를 대접하며 사과했다. 미국 측은 사건으로 북미관계가 쫑났을 것이라고 우려했으나 김계관은 이어 조명록의 미국 방문을 타진하면서 김정일이 북미관계에 적극적이라고 언질하였고 이에 북미관계는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4. 결말[편집]


김영남 측은 9월 5일,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예약하고 9월 6일 중국으로 돌아갔다. 한겨레신문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선을 버리지 못했다고 비난하면서도 일방적 정상회담 취소는 외교적인 관례에 어긋난다고 북한의 대응도 지나치다는 양비론을 보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한항공 특별기를 타고 9월 6일, 미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역시나 김영남과 회담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일본의 모리 요시로 총리와 회견한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북한과 외부세계의 관계, 그중에서도 북미관계에 손상되지 않도록 할 것이며, 단순한 사건이었다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만약 김영남이 방미했다면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 최고위급 인사가 되었겠지만 결국 이후 미국을 방문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총정치국장 조명록에게 이를 양보해야 했다. 나중에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하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던 북미관계는 어느 정도 호전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반미 측이나 북한은 미국의 만행이라고 날뛰었으나 정작 클린턴과 올브라이트 측의 당혹스러운 반응과 적극적인 수습 노력을 보면 미국의 고의적 결례였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아메리칸 항공사 직원들의 관료주의적 병크였다고 보기에는 독일 측에서 자기들은 아메리칸 항공에게 김영남은 북한의 국가수반이라고 이미 설명했다고 입장을 밝히면서 의문이 제기되기는 한다. 이에 대해서 북미관계 개선에 불만이 있던 공화당의 사보타주라는 음모론도 제기된다.

5. 여담[편집]


  • 만화가 박시백은 당시 한겨레 신문에서 연재 중이던 <박시백의 그림세상> 2000년 9월 8일자 만평인 '성명'을 통해서 미국을 비난하며 남한 정부가 미국의 사죄를 촉구하고 김영남을 위로하는 성명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국제정치학자 차머스 존슨은 베오그라드 중국 대사관 오폭사건 급의 미국의 실수라고 평가했다. 괜히 쓸데없는 보안 검색을 했다가 그래도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한 나라의 국가수반까지 건드린 격이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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