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피겨 스케이팅 스캔들

덤프버전 :

1. 개요
2. 여자 싱글
2.1. 배경
2.2. 전개
2.3. 판정 발생 원인
2.4. 판정 논란
2.5. 판정 이후
3. 페어
3.1. 배경
3.2. 전개
3.2.1. 쇼트 프로그램
3.2.2. 프리 프로그램
3.2.3. 북미의 주장 : 우리가 졌을 리가 없다!
3.2.4. 판정 재조사 : 심판들 중 범인이 있다!
3.2.5. ISU의 내부조사와 결론
3.2.6. 최종 판정
3.3. 이후
4. 기타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nimg.sulekha.com/berezhnaya-sikharulidze-sale-2012-2-14-11-30-57.jpg
초유의 판정 사태에 휘말린 네 명의 공동 금메달리스트들이다. 왼쪽 남녀는 러시아 페어 옐레나 베레즈나야 / 안톤 시하룰리제 팀이며, 오른쪽 남녀는 캐나다 페어 제이미 살레 / 데이비드 펠레티에 팀이다.

안 그래도 전후 온갖 문제가 많아서 미국이 IOC에게 안 될 놈으로 찍히게 된 원흉인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중 일어난 피겨 스케이팅전설이 아니라 레전드급의 판정 문제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당시 남자 쇼트트랙에서의 연이은 판정시비로 온 나라가 공분하고 있었는데, 캐나다&미국과 러시아는 이 문제로 떠들썩했다.

싱글 스케이팅이 인기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실제적으로 피겨 스케이팅의 채점제를 바꾸는 기폭제가 된 희대의 판정 시비, 아니 심판 로비 or 협박 사건이다.

그렇지만, 여자 싱글에서의 한 명의 연기 후 갑자기 1・2・3위가 뒤바뀐 사건을 먼저 다루기로 한다. 사실 이 논란 역시 페어 논란에 묻혀서 그렇지, 당시까지만 해도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에서 여자 싱글 경기에서의 편파판정,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도핑 논란처럼 심각한 문제였다.

2. 여자 싱글[편집]



2.1. 배경[편집]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미국 국가대표는 미셸 콴, 사라 휴즈, 사샤 코헨이였다.

모든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미셸 콴, 그리고 콴의 라이벌이자 모든 러시아인의 사랑을 받는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금메달을 두고 경쟁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라이벌 구도가 정립된 상태에서 맞은 2001-02 시즌에는 막상 슬루츠카야에 전승을 거두고 있었다.올림픽 직전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이리나가 금메달이었는데, 그래도 올림픽은 미셸 콴의 홈그라운드인 국적깡패 미국에서 열릴 것이었기 때문에 그 점을 감안하면 승부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 지는 예측 불허였던 상황이었다.

2.2. 전개[편집]


쇼트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순위는 미셸 콴-이리나 슬루츠카야-사샤 코헨-사라 휴즈였다.

콴과 이리나의 심판 투표는 5-4로 한 끗 차이였고 기술 점수와 표현력 점수 평가는 기술의 슬루츠카야, 표현의 이라는 말 그대로 거의 나눠 가졌다. 3위는 당시 떠오르던 사샤 코헨이었으며 4위는 밀어주던 사라 휴즈였다.[1]

그런데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대형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러시아프랑스 심판이 서로 밀어주기로 하여 페어는 러시아, 아이스 댄스는 프랑스” 식의 편향된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3번 '페어' 항목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말하자면 나쁜 짓을 해놓고도 챙겨갈 건 다 챙긴 나라라는 게 여자 싱글 경기 직전 러시아의 이미지였던 셈이다.

러시아가 선수단 철수까지 논의 중인 상황에서 프리 경기가 열렸고, 미셸 콴은 두 차례의 실수를 저지르며 프리 점수가 사라 휴즈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휴즈는 쇼트에서 4위였기 때문에, 쇼트 순위는 반만 반영하고 프리 순위는 모두 반영하여 합산한 결과가 적은 순으로 최종 순위를 매기는 당시의 구채점제 규정상 미셸 콴은 선두를 유지했다. 2위는 사라 휴즈, 3위는 사샤 코헨이었으며 이제 이리나 슬루츠카야의 연기만 끝나면 최종 순위가 가려지는 상황이었다. 만약 슬루츠카야가 1위를 하더라도 콴은 최소한 은메달을 거머쥘 수 있었고, 콴이 금메달을 따려면 슬루츠카야가 프리에서 3위 이하를 해야 했다. 즉 프리 순위가 휴즈 1위, 콴 2위로만 확정된다면 콴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그러나 프리 프로그램이 끝나자 세계는 경악했다. 최종 순위가 사라 휴즈-이리나 슬루츠카야-미셸 콴-사샤 코헨이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은 "미셸콴이 사라를 이겼는데 왜 3위로 떨어지는 거냐?"라며 멘붕했는데, 이리나 슬루츠카야의 경기를 포함시켰다는 이유만으로 순위가 뒤엎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러시아인들도 "미셸 콴을 이긴 우리 이리나가 왜 2위라는 거냐?"라며 멘붕했는데, 미셸 콴을 이겼으면 당연히 1위인데도 불구하고 원래대로라면 3위였어야 할 사라 휴즈와 같은 점수를 받았고, 프리 프로그램에서 사라 휴즈의 점수가 높았다는 이유로 금메달을 빼앗겼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후 사라 휴즈는 전세계적으로 까였고, 2003 세계선수권에서 6위를 기록한 후 예일대학교 입학과 함께 은퇴했다.

2.3. 판정 발생 원인[편집]


위와 같은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 적용된 구채점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당시 적용된 구채점제의 기본은 많이 알려진 대로 기술점과 예술점을 각각 6.0 만점으로 채점하여 두 점수를 합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점수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점수를 토대로 각 심판이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 프로그램의 순위를 결정하는 근거가 될 뿐이다. 그리고 최종 순위 결정은 일종의 심사위원 투표제로 이루어져서, 우선 1위표 과반수를 얻은 선수를 1위로 결정한 다음, 그 다음 순서를 결정해 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방식으로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 프로그램의 순위를 결정한 다음, 쇼트 프로그램의 순위에는 0.5를 곱한 것이 최종 점수가 되고, 프리 프로그램에서는 순위 그 자체가 최종 점수가 된다. 두 프로그램의 최종 점수를 합하여, 점수가 낮은 순서대로 최종 순위를 결정하게 된다.(그래서 구채점제 시절에는 결과를 보도할 때 종종 '석차 얼마얼마'란 표현을 썼다.)

당시 쇼트 프로그램 이후의 순위가 미셸 콴-이리나 슬루츠카야-사샤 코헨-사라 휴즈였으므로, 쇼트 프로그램 이후 점수는 콴(0.5) - 슬루츠카야(1) - 코헨(1.5) - 휴즈(2) 순이였다.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연기하기 직전, 프리 프로그램의 순위는 사라 휴즈 - 미셸 콴 - 사샤 코헨 순이었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의 점수는 휴즈(1) - 콴(2) - 코헨(3)이었고, 최종 점수는 콴(2.5) - 휴즈(3) - 코헨(4.5) 순이었다. 슬루츠카야가 자기 실력만 100% 발휘했다면 사라 휴즈의 점수가 그리 높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충분히 1위가 될 수 있었고, 그러면 1점만 더하면 되기 때문에 총점 2점으로 콴을 제치고 금메달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녀 역시 3-3 점프를 완전히 뛰지 못하는 등 2번의 실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슬루츠카야가 프리에서도 2위가 되었다. 심사위원 9명의 투표 결과 5-4로 밀린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프리 점수는 휴즈(1) - 슬루츠카야(2) - 콴(3) - 코헨(4) 순이 되었다. 최종 합계 점수는 이에 따라, 휴즈/슬루츠카야(3) 동점 - 콴(3.5) - 코헨(5.5)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다만 동점일 때는 프리가 우선이라는 것이 이 당시의 규정이었으므로 결론은 휴즈가 1위, 슬루츠카야가 2위를 차지했다.

2.4. 판정 논란[편집]


그런데 이리나 슬루츠카야가 프리에서 2위를 하게 된 것에 대해서 판정에 의구심이 제기되었다. 이리나가 프리에서 자신의 주무기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더블 룹으로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6개 트리플 점프로 기술점수 평가에서는 거의 모든 심판에게 사라 휴즈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2]

문제는 구성점수 평가에서 심판진의 의견이 확연히 갈린 것이다. 이리나의 프리 프로그램은 대체로 예술성에서 5.8점 전후의 평가를 받아 왔는데, 이 당시에는 예술성에 5.6점을 준 심판이 2명 있었다. 만약 5.6점을 준 심사위원 2명 중 1명이 예술성에 0.1점만 더 주었어도 프리 순위가 역전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슬루츠카야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표현 점수가 5.6점이라면 자신은 표현력이 없는 선수라는 뜻이 아니겠냐"고 발언했다. 즉, 자유주의 진영은 5.6점~5.7점의 점수를 주었고, 공산주의 진영은 5.8점~5.9점의 점수를 주었다. 즉, 한 경기를 두고 심판들은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린 것이다.[3]

슬루츠카야는 그전까지 구성점수 5.8점~5.9점을 받던 세계 정상급의 선수였다. 이건 콴에게 금메달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휴즈의 점수는 억지로 올리고, 슬루츠카야의 점수를 최대한 내리면서, 완전히 뒤죽박죽이 된 케이스이다. 그래서 이 채점을 두고 슬루츠카야를 도저히 실수가 많았던 콴의 밑 순위로는 둘 수 없으니, 점수를 억눌러 휴즈 밑으로 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다.[4]

또한 프리 순위보다 쇼트 순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었다. 보다 슬루츠카야의 기술 난이도가 더 높고 수행도 좋았기 때문에 그녀가 1위였어야 한다는 의견이다.[5] 만약 슬루츠카야가 쇼트에서 1위를 했다면, 최종 판정 역시 1위와 2위가 바뀌는 것이었다.[6] 러시아는 공식 항의 서한을 제출했으나 당연히 기각되었다. 이리나는 이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평생 생각하며 살 것' 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을 살펴 보면 구채점제의 모순이란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위 단락에서 서술한 것과 같은 순위의 변화가 '모순'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며, 심사위원이 보인 행태를 비판하는 데에 적당한 말일 것이다.

2.5. 판정 이후[편집]


일반인들은 사라 휴즈의 우승에 크게 반발했다. 미셸 콴과 사라 휴즈의 우열이 이미 가려졌는데, 그들과 무관한 이리나 슬루츠카야의 경기 때문에 우열이 뒤집히는 것은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은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에 나오는 무관한 선택대상으로부터의 독립(Independence of Irrelevant Alternatives)이라는 원칙에 따른 것으로, 설명은 복잡해 보이지만[7] 일반인에게는 아주 익숙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학교 시험에서 당신이 90점을 맞고 반 친구 A가 80점을 맞았는데, 다른 친구 B가 추가시험을 치른 것만으로 당신의 점수가 깎여서 A보다 순위가 뒤쳐지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것도 시험의 규칙이 이 원칙을 따르기 때문이다.[8]

그런데 피겨 스케이팅의 구채점제는 이 원칙을 부정했으므로 일반인들은 판정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 전문가들에게는 구채점제가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지니고 있었을지 몰라도, 전문가의 설명을 들은 일반인들은 구채점제를 납득하기보다는 "구채점제의 모순이 드러났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모순'에 힘입어 금메달을 차지한 사라 휴즈를 깠다. 또한 전문가들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사라 휴즈의 우승을 주장하는 측과 미셸 콴의 우승을 주장하는 측, 그리고 이리나 슬루츠카야의 우승을 주장하는 측으로 나뉜 것이다. 전문가들도 사라 휴즈의 우승에 의견일치를 못 볼 정도로 판정 논란이 심하다면, 사라 휴즈를 진정한 금메달리스트로 인정할 리가 없다. 러시아에서는 이리나 슬루츠카야에게 금메달을 만들어서 선사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리나 슬루츠카야는 인터뷰에서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자신이라고 평생 생각하면서 살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사라 휴즈2001 세계선수권 동메달, 2번의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동메달을 땄으며 그때 포디움에는 이리나 슬루츠카야미셸 콴도 있었다. 즉 올림픽 시즌 때도 이리나 슬루츠카야, 미셸 콴과 함께 올림픽 포디움 후보였으며 가능성이 적지만 금메달 후보이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 휴즈가 금메달리스트가 되자 사람들은(특히 미셸 콴의 팬들) "사라 휴즈가 부당하게 금메달을 땄다"고 의심했다. 이후 2003 전미선수권 2위, 2003 세계선수권에서 6위에 그치자 "본래의 실력이 드러났다"며 그녀를 마구 깠다. 이후 사라 휴즈는 은퇴했고, 미셸 콴이리나 슬루츠카야의 팬들은 지금까지도 사라 휴즈를 까고 있고, 앞으로도 깔 예정이다. 특히 유럽 피겨계에서는 사라 치티드 휴즈라고 불린다고 한다. 사라 휴즈가 2010년 미국 피겨 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을 때 미셸 콴의 팬들은 "솔트레이크에서 심판들이 이리나 슬루츠카야의 경기를 제대로 채점했다면 휴즈가 미국 피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불평했을 정도이다. 미셸 콴의 라이벌이었던 이리나 슬루츠카야의 편을 들 정도이면 콴의 팬들이 휴스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

그 후 사라 휴즈는 잊혀졌고, 피겨 스케이팅에서 편파 판정으로 문제가 일어날 때만 언급된다. 하지만 채점 논란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휴즈보다 더한 존재가 나타났다

3. 페어[편집]



3.1. 배경[편집]


당대 페어 스케이팅 종목에서 유력한 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꼽히는 팀들 중에 러시아옐레나 베레즈나야 / 안톤 시하룰리제 팀(이하 베시조)과 캐나다제이미 살레 / 데이비드 펠레티에 팀(이하 살페조)이 있었다.

전통적인 피겨 스케이팅 강국 러시아의 베시조는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에 이미 세계선수권 2회 우승 경력이 있는 강력한 팀이었고, 이에 맞서는 캐나다의 살페조는 베시조에 비해 경력은 다소 짧았지만 2001 세계선수권에서 베시조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팀이어서 둘의 올림픽에서의 대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게다가 미국과 캐나다는 북미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과연 살페조가 소련 시절까지 포함하여 1960년부터 11번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독식해온 러시아를 이길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어 엄청나게 설레어하고 있었다.

3.2. 전개[편집]



3.2.1. 쇼트 프로그램[편집]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피겨 스케이팅 페어 종목 쇼트 프로그램 경기가 시작되었고[9] 결과적으로 베시조가 쇼트 1위를 차지하였고, 살페조는 프로그램 마지막 포즈 중 넘어져서 수행 흐름을 흐트리는 실수를 하고 2위를 차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3.2.2. 프리 프로그램[편집]


베시조는 프로그램 수행 중 시하룰리제 선수가 사이드 바이 사이드 더블 악셀을 실패하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살페조의 프로그램에 비해 전체적 난이도가 높았다. 반대로 살페조는 베시조보다 전반적으로 난이도는 다소 낮지만 실수 없이 깨끗한 클린 수행을 해냈고 북미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여담으로 사실 실수가 한두 가지 있는 어려운 프로그램 수행 vs 쉬운 프로그램 실수 없이 잘 수행은 피겨 스케이팅에서 흔한 떡밥이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한지는 개인의 취향에 맡긴다.

당시 6.0 시스템[10]을 차용하던 피겨 스케이팅에서는 9명의 이름과 국적이 공개된 심판들이 경기를 심사했었다. 베시조보다 쇼트 점수가 뒤지고 있던 살페조는 기술점수에서 거의 모든 심판들에게 베시조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11] 하지만 그때 당시는 기술점수(Technicals)보다 예술점수(Presentations)가 더 비중이 컸었고, 살페조가 전체 합산 점수로 베시조를 이기기 위해서는 적어도 5개의 5.9점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심판들은 살페조에게 4개의 5.9로 전체 2위라는 판정을 내렸다. 미국 관중들의 야유 속에 베시조가 소련-러시아의 12번째 페어 금메달을 가져갔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었다.

3.2.3. 북미의 주장 : 우리가 졌을 리가 없다![편집]


미국캐나다라는 위상을 힘입어 영향력이 있는 영어권 언론들은, 살페조가 베시조에게 패배했다는 것을 초반부터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일단 북미 쪽 해설진들부터 살페조가 수행을 끝내자마자 그들이 우승한 거나 다름없다고 자축하다가 정작 결과가 다르게 나오자 살페조는 부당하게 패배했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했고, 경기 후 언론들도 그렇게 주장했으며 캐나다는 물론이고 미국의 국민감정도 '원래 1등해야 했을 살페조가 피겨계의 빨갱이 실세인 러시아의 농간에 희생당했다' 로 모아졌다. 선수들 본인들도 결과 자체에는 마지못해 승복했지만 언론 인터뷰에서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12] 그리고 일단 자세한 규칙에 대해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넘어진 팀보다 안 넘어진 팀이 잘한 것 아닌가" 란 시선이 당연한 것이다. 그리하여 경기가 끝나자마자 판정 불복은 물론이고 "러시아가 뭔가 수를 썼다" 는 의심이 팽배하면서 심판 개개인들의 판정에 지대한 관심이 모아졌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대부분의 러시아인들과 일부 북미 피겨팬들을 포함한 많은 전세계 시청자들은, “베시조는 정당하게 우승했거나 설령 살페조가 진짜 우승자였다고 해도, 이제까지 훌륭한 커리어를 쌓은 베시조의 실력 자체가 이번 일로 의심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쇼트트랙 때문에 반미감정이 끝내줬던 시절의 "무조건 러시아 팀이 이겼어야 한다. 100% 캐나다+미국의 징징으로 괜히 금메달 두 세트 줘버린 사건"도 아니었지만 현재 한국 내 미국&캐나다 스케이팅이 인기를 끌면서 생긴 "무조건 캐나다 팀이 이겼어야 한다는 말이 많았다. 100% 러시아의 치팅이니까 캐나다가 당연히 받았어야 할 금메달이다." 이란 의견도 지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심판 한 명의 예술점수 판정으로 메달이 갈릴 정도로 팽팽한 상태였다.

3.2.4. 판정 재조사 : 심판들 중 범인이 있다![편집]


그래서 IOC는 페어 프리 스케이팅의 판정을 하나하나 다시 정독하기 시작했다.[13]

베시조의 우세를 꼽은 심판들의 국적: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폴란드, 프랑스
살페조의 우세를 꼽은 심판들의 국적: 독일, 미국, 일본, 캐나다

나머지 8명의 심판들이 각자 출신 국가들의 성향에 충실하게 따라간 가운데 유일하게 서유럽 국가인데 러시아 우세로 판정했다는 이유로 유일하게?[14] 프랑스 출신의 여성 심판 마리-렌 르 구뉴(Marie-Reine Le Gougne) 씨에게 뭔가 있다는 심증이 거의 즉석으로 굳어졌다.

※ 주의: 이후 심판들, 관계자들 사이에 일어났다고 여겨지는 일들은 실제 물증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당시 심판들, ISU 및 IOC 관계자들의 증언과 전후사정을 통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다는 강력한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당시 관계자들, 특히 사건 중심에 서있는 인물인 프랑스 심판 본인이 여러 번 증언을 번복하였던 만큼 100% 신뢰성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프랑스 심판은 관계자 숙박 호텔로 돌아간 그 날 로비에서 ISU의 테크니컬 스페셜리스트에게 엄청난 추궁을 당했고 그 스페셜리스트 앞에서 울면서 '프랑스 빙상연맹 회장에게 무조건 러시아 쪽을 뽑으라고 강요받았다' 고 고백했다고 한다.[15]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임시 심판 회의에서 같은 내용을 반복했고 러시아를 위해 페어 결과를 조작하는 대가로 프랑스는 아이스 댄스 종목에서 자국의 에이스인 마리나 아니시나 / 그웬달 페이제라 팀의 우승을 보장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후 몇 주 동안 계속 발언을 번복하면서 이랬다 저랬다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발언으로 프랑스가 뇌물을 받고 부당판정을 하였고 그 배후가 러시아라는 것[16]은 물증만 없지 사실이 되었고 북미 여론이 처음에 좋지 않았다면 이제는 헬게이트가 되었다.

3.2.5. ISU의 내부조사와 결론[편집]


언론들의 집중포화와 페어 종목 주심[17]의 이의제견 끝에 ISU 회장 옥타비오 친콴타는 페어 종목 판정에 대해 내부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신성한 올림픽에 불미스러운 뇌물 사건이 터진 것에 상당히 기분이 나빠진 IOC에서도 빨리 사건을 처리하라는 압력을 팍팍 받게 되었다. 2월 15일 ISU와 IOC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내부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3.2.6. 최종 판정[편집]


1.살페조는 부정판정에 의해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판명하여 은메달을 금메달로 바꿔준다.
2.베시조도 8명 중 적어도 4명의 심판에 의해 1위로 뽑혔고 선수들 본인이 규정을 어긴 것이 아니므로 금메달을 박탈하지 않는다. 두 팀의 점수는 모두 파기하고 은메달은 공석으로 한다.
3.부정판정을 한 프랑스 심판과 심판의 부정판정을 강요하고 로비를 받은 프랑스 연맹 회장은 3년간 자격을 박탈하고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참여할 수 없다.
4.러시아가 로비를 주도했다는 물증이 없으므로 ISU는 러시아 연맹에 대한 추가 조사를 실시하지 않는다.

IOC는 두 번째 시상식을 준비하여 다시 선수들을 불러 살페조에게 새로운 금메달을 수여했다. 그리하여 피겨 스케이팅 사상 초유의 2팀이 동점도 아닌데 페어 시상대 맨 위에 4명이 올라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3.3. 이후[편집]


2002년 7월 러시아의 조직폭력배 두목 한 명이 미국에서 판결된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판정조작 관여죄로 이탈리아에서 구속당했으나 미국의 송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경찰은 그를 석방했다.

이 사건으로 채점제 자체를 투명하게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아져 ISU는 그 해 익명 심판제를 도입하게 되고 6.0점과 순위 시스템이 아닌 점수 시스템을 적용한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부터 상용되는 신채점제 IJS를 개발하였다. 덕분에 확실히 심판 한 명을 타겟팅한 로비 활동은 봉쇄되었으나 피겨계는 '심판들이 익명이면 채점이 정확, 투명하게 될 것이라는 신채점제로 바꾼다고 판정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낱 꿈'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확실히 IJS에서 기술점수가 기술 종류별 난이도, 기술 수행 정확도로 수치화되고 예술점수도 카테고리별로 나누는 등 점수부여와 프로토콜을 보고 심판의 판정 근거를 보는 데는 편리해졌지만 그거랑 별도로 수행정확도인 GOE와 예술점수인 PCS, 그 중에서 PE(Performance)나 IN(Interpretation) 점수 같은 쪽은 사실상 심판의 재량에 달렸기에... 물론 PCS나 GOE가 100% 심판 멋대로 부여 가능하단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소숫점대의 점수로 등수가 갈려버릴 수도 있기에 심판이 조금만 후하게, 혹은 박하게 점수를 줘도 거기서 거기다.

사건의 열기가 사그라든 후 당시 징계받았던 프랑스 심판은 '당시 자신은 미국과 캐나다 관계자들의 압력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부정판정을 시인했고 자신은 지금도 러시아 팀이 진정한 승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는 요지의 친필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미 주어진 메달을 또 바꿀 수도 없고 이미 사람들의 관심은 여기서 떠났고 엎질러진 물이다.

살페조 팀은 당시 자국과 미국에서 러시아의 음모의 희생양이자 북미의 영웅 취급을 받으며 아마추어 스포츠에선 은퇴했지만 화려한 프로 스케이터로써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가끔 한국김연아쇼에 출연한 적이 있어서 한국 팬들에게는 익숙할 것이다.

그리고 정작 본인들은 못해도 은메달일 연기를 펼쳤지만 소속 국가의 로비질로 바가지로 욕을 먹은 베시조도 올림픽 후 은퇴하여 미국에서 프로 스케이터로 공연을 하다가 2006년에 러시아로 돌아가 시하룰리제는 현재 러시아 연방의회 하원의원으로 스포츠위원회장을 맡고 있고 베레즈나야는 러시아와 미국에서 프로 스케이터로 활동하다가 최근 피겨 스케이팅을 그만두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과연 저들 두 팀 중 누가 진짜 더 잘했는가는 해외 피겨 스케이팅 포럼에 대충 던져놓기만 해도 만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쉬지 않는 떡밥이기도 하다.

4. 기타[편집]


  • 베시조는 2000 유럽선수권 중 심한 감기에 걸린 베레즈나야가 실수로 금지 약품이 들어간 약을 복용하여 1년간 선수 자격을 박탈당한 적이 있다. 그 밖에도 옐레나 베레즈나야는 시하룰리제 전의 라트비아 국적 파트너에게 주기적으로 폭행을 당한 데다가[18] 경기 중 스켓날로 차여 뇌손상이라는 중상을 입는 등 실력과 커리어는 화려했지만 선수 인생에 굴곡이 많은 사람이다. 그나마 부상으로 선수 생활이 불투명했던 시기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시하룰리제와 새 팀을 짜서 세계 정상에 서봤으니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다.

  • 살페조는 2002년 당시 Canadian Sweetheart 이미지와 시너지를 일으키며 북미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커플이었고 실제로도 연애도 하였다. 2005년에 결혼을 하였다가 2010년에 이혼하였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아이스 쇼는 파트너로 뛰는 걸 보면 프로페셔널 정신이 대단하다. 2009년 캐나다 피겨 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둘 다 프로 스케이터이자 피겨 관계자로써 여기저기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위에서 프랑스 아이스 댄스 팀으로 언급된 간지 리버스 리프트를 자랑하는 아니시나-페이제라 팀은 금메달을 땄지만 판정이 문제 될 게 별로 없을 정도로 잘한 데다가 결정적으로 메달순위 팀들이 전부 유럽 출신이어서 별 논란을 겪지 않았다. 그런데 금메달 팀의 아니시나 선수는 원래 러시아인이었다가 프랑스로 귀화한 선수인데 귀화 전 파트너가 은메달리스트 일리야 아베부흐였다. 깨진 이유는 아베부흐가 다른 선수와 사랑에 빠져서라고 한다. 이런... 그웬달 페이제라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선정 때 프랑스 안시 홍보대사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뮌헨과 평창에 관심이 쏠렸다.

  • 남자 싱글에서는 우승자 자격에 대한 논란이 전혀 없었다. 티모시 괴벨이 동메달을 따내면서 북미의 자존심을 챙겼다. 본격 인간본좌 왜 3등인데 자존심을 챙겼냐고? 금메달과 은메달을 챙겨간 러시아 선수들이 알렉세이 야구딘예브게니 플루셴코라면 어떨까? 어쩔 수 없이 북미 여론은 미국에서 훈련하는 야구딘에 빙의하여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억지로 판정 논란을 찾아본다면 당시 괴벨이 과연 4위 혼다 타케시나 5위 알렉산더 압트보다 훌륭했냐는 것이었다. 일단 동양인 남자 싱글 선수는 2010년이 되어서야 올림픽 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하자. 솔직히 메달 3개를 다 러시아가 가져가면 개최국인 미국이 좀 불쌍한 데다가 압트는 박한 판정에 더해서 프리에서 거한 실수를 저지르며 "1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레전드" 라는 후세의 슬픈 평판만 강화시켰다.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에서 판정 논란이 발생했고 특히 그 판정 논란의 당사자가 김연아가 되는 바람에 많은 한국의 피겨 팬들과 일반인들이 이 사건을 떠올리게 되었다. 해외에서도 피겨계 인사 중에 이 사건을 떠올리는 사람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이 사건의 직접 관련자인 제이미 살레는 미국 언론과 캐나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의 기억을 떠올리며 김연아가 우승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고 ISU의 심판위원장과 집행위원을 지낸 피겨계 재야 인사 소냐 비앙게티는 아예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사건보다 소치 올림픽 여자 싱글의 판정이 더 심각한 사건이라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8년 뒤 더 심각한 논란이 터졌다.
[1] 4위도 말이 많았다. 율리아 세바스티안, 수구리 후미에, 마리아 부티르스카야를 후려친 결과물이라는 말이 많다. 사라 휴즈를 쇼트 9위로 준 심판도 있었다.[2]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사라 휴즈의 점프는 회전수 부족에다가 러츠를 플러츠로 뛰었는데도 감점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늘 회전수 부족과롱엣지로 5.6점~5.7점을 받던 기술점수와 구성점수가올림픽 때만 딱 한번 5.8점~5.9점로 올라갔다.[3] 웃긴 것은 올림픽이 끝나고 열린 2002 세계선수권에서 이리나의 프리 토스카의 점수를 모든 심판들이 5.8점~5.9점을 주었다. 더구나 경기 내용도 별반 차이 없었고, 쇼트 세레나데는 6.0점도 받았다.[4] 이것은 신채점제가 탄생하게 되는 원인이 되며, 미셸 콴의 은퇴 이후 신채점제에서 미국 여자 싱글은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5] 미국 해설진도 콴의 회전수 부족을 언급했다.[6] 2002 세계선수권에서는 쇼트 6.0 만점을 받았다. 음악은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였는데, 보통 그녀 최고의 쇼트 프로그램으로 꼽는다.[7] 사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는 투표에 적용되는 이론이며 후술하는 것과 같은 시험 채점 제도에는 절대 적용될 수 없다. 애로가 제시한 투표 제도가 갖추어야 할 여러 원칙 중 하나가 무관한 선택대상으로부터의 독립인 것이고,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에 의해 투표가 갖추어야 할 모든 원칙을 만족하는 투표 제도는 수학적으로 절대 있을 수 없다. 이 정리의 골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 정리를 끌고 온 모양이다.[8] 후에 이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는 미국 대학 논리학 시험에도 출제되었는데, 이 여자 싱글 채점 논란을 예로 제시했었다. 사샤 코헨이 이 시험 문제를 접했다고 인증한 적이 있다.[9] 참고로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대회는 페어-남자 싱글-아이스 댄스-여자 싱글 순으로 진행된다. 즉, 시작하자마자 대형 사고가 터진 게 되는 것이다.[10] 구채점제라고 불리며, 기계체조에서 쓰는 시스템과 비슷하다.[11] 살페조가 실수를 안했으니 기술에서 높은 점수는 당연하다.[12] 사실 러시아가 당시까지 페어 스케이팅을 지배하다시피 했었고 1990년대에 아이스 댄스에서 편파적으로 우승해간 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13] 당시 심사단에 있었던 한 심판의 회고에 의하면 이 사건과 이 사건과 연관된 아이스 댄스 판정, 그리고 다른 이유지만 또 논란이 있었던 여성 싱글 판정 때문에 일주일 내내 심판들이 회의를 거듭하면서 모두들 거의 멘붕 상태였다고 한다.[14] 중부유럽의 폴란드는 냉전이 끝난 1990년대 이후로 친미, 친서방으로 전향하던 중이었고 역사적 이유 때문에 러시아와 사이가 좋지 않다. 따라서 폴란드까지 포함하면 유일한 건 아니다.[15] 공개된 호텔 로비에서 벌어진 사건이었기에 당시 심판들과 관계자들 중 이것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몇 명은 프랑스 심판이 러시아가 직접 로비한 것이라고 발언했다고 말했지만 ISU는 조사시 이들의 발언의 신빙성을 부정했다.[16] 참고로 마리나 아니시나 선수는 귀화한 러시아인이다.[17] 9명의 심판 외에 전체 판정을 총괄감독하는 주심과 부심이 있다.[18] 베레즈나야 전에 일곱 차례 파트너십을 파토낸 경력이 있었을 정도로 성격에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었다. 10대였던 베레즈나야를 때리거나 일부러 리프트하다 집어던질 정도의 인간 쓰레기였고 그의 평판이 피겨계에 퍼져서 코치를 구하기가 엄청 힘들었고 겨우 구한 코치도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갈 정도였다. 결국 후술하는 스켓날 사건 이후 헤어졌다. 항상 페어와 아이스 댄스에 남자 선수가 모자라다 보니 생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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